비 갠 후


윗가지에 매달려 있던,

마지막 남은

빗방울이

눈꺼풀 감기듯

떨어지자

바로 아래,

곧바로

빗방울 맞은

대추는

몇 번을 대롱대다

겨우

조용, 조용


대추는 아직 푸르네



나의 사전의료의향서


이제는

이곳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식보다

눈치 빠르게 먼저 알아차려서는


상처 입은

짐승이 외딴 곳에 가서

죽듯이

(홀로)


선승禪僧이

앉은 채 육신의 옷을

벗듯이

(무념無念으로)


떨어진 과일이

아래로 굴러가듯이,

죽음의 문을 넘고 싶으니

바라오니


그대로

그냥, 그냥 죽는

그대로


오형근/1955년 서울 출생. 1978년 《시문학》주최 전국대학문예 시 당선, 1988년《불교문학》과 2004년《불교문예》로 등단. 시집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환한 빈자리』, 『소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