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 족속들

 

 

몇 번의 돌풍과 폭우가

부족마을을 덮치고 지나갔는데도

부락민들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배가 가라앉아 젊은 전사들이

찬 바다 밑바닥에서 죽어나갔으나

몇 번 혀를 찰뿐 아무도 공분하지 않았다

족장은 마녀사냥을 나가 7일 만에 돌아와

인공눈물을 흘리며 부재를 증명하려 했다

며칠 후 씨족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비문명접촉인들을 제치고 문명접촉인들이

전과를 무시한 채 대거 당선되었다

한번만 도와달라는 公約空約이 되어  

부족사람들을 다시 졸개 취급하였다

씨족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명품이나 부동산,

아이들의 족집게 학원 등뿐이었다

부족의 공분보다는 맛집과 범칙금과 같은

사소한 것에 더 광분하였다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일정한 속도로

짜여 진 각본대로 잘 돌아가는 부족마을

몇 번의 돌풍과 폭우가 지나갔는데도

부락민들은 그 진원지를 캐내려 하지 않았다

오는 비만 탓하고 우산을 펼 줄 모르는

일회용 같이 속편한 족속들.

 

 

 

A플러스

 

 

축제가 끝났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축제의 여흥에 빠져 있었다

중간고사가 이 주 후로 다가오고

교정의 은행잎은 물들기 시작했다

현실로 돌아가는 발걸음들이

빙판길을 디디는 듯 휘청거렸다

빈 강의실에서 들려오는 노교수의

자장가 같은 환청이 저녁바람을 타고

도서관을 지나 기숙사까지 따라왔다

이상은 이상의 것으로 간절히 바랬지만

현실은 현실 이하의 것으로

축제 뒤의 우리를 잔인하게 하였다

현실에서는 늘 최고라고 자부했는데

이상에서는 최악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현실과 이상이 괴리된 슬픈 좌표

날이 갈수록 캠퍼스가 시들해지고

낭만을 빙자한, 청춘을 방기한

처절한 대가가 입동으로 치달았다

우리들의 야무진 기대는

기대한 만큼 실망으로 되돌아 와

가슴에 얹힌 돌덩이처럼 낙인을 찍었다

현실은 최고였지만 이상은 최악이 된

교정의 덫에 걸린 쓸쓸한 성적표.

 

 

권혁재/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안경을 흘리다>>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