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 않은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문관석(文官石)을 바라보던 병규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어졌다.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근엄한 자세를 하고 있는 모습에서 아버지가 떠올라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고층 빌딩 앞을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조형물을 볼 때마다 다짐했었다. 식당을 개업하면 그럴 듯한 예술품 하나를 정원에 세워두겠다고. 그것이 공교롭게도 아버지를 닮은 문관석이 돼버렸다.

그것을 사들이던 때가 떠올랐다.

“뒤탈은 걱정 마시고 일단 들여놓으세요.

첫인상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지만 조사장이라고 불린 그의 경우는 어쩔 수 없었다. 한때 도굴꾼이었다는 골동품 판매업자인 그를 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전직 정도는 짐작했을 것이다. 원한다면 박물관에 소장된 이성계의 전어도까지 가져다줄 수 있다는 말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주로 지하세계에서 살았던 이력 때문인지 피부색도 허여멀건 것이 그마저도 섬뜩하게 했다.

손은 물론 혀마저 합법과는 전혀 거리가 먼 그였다. 하지만 그쪽에서 나온 것 하나 정도 갖춰야 번성한다는 말에 솔깃했다. 그쪽이란 조선시대 양반가 문신의 무덤가로 불현 찜찜한 생각이 든다고 하자 그는 새봄맞이 특별 할인가를 운운하기도 했다. 새봄맞이? 특별 할인가? 터지려는 웃음을 눌러 삼켰다.

전문가에게 조형물을 의뢰하기에는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 어쩔 수 없었다. 더군다나 벼슬과 인덕으로 명성이 자자한 집안이었다는 말에 지갑을 열고 말았다.

식당 개업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것은 고향에 있는 아버지였다. 병규는 종갓집 종손으로서 지금껏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실체가 없었다. 종손이라고 이십 대 중반에 서둘러 결혼해 거느리게 된 처자식만이 전 재산이었다. 무거운 어깨를 벗어놓고 고향을 떠나온 천하의 망할 놈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지만 이제는 달라질 수 있었다.

꿈이었던 식당을 차리기 위해 일자리를 가리지 않고 노력했었다. 낯설고 힘들었지만 출발의 단단한 발판이 되었던 온라인마트 배송기사를 시작으로 생수대리점, 휴대전화 판매점, 반찬가게, 푸드 트럭, 실내포장마차 등. 아내와 맞벌이로 채워온 적금은 준비와 용기를 주었고 크지는 않지만 처갓집 도움은 결단의 응원이 되었다. 적지 않은 은행대출금마저 짐이 아닌 풀어볼 만한 숙제로 여겨지게 된 것은 자신감 때문이었다. 떳떳하게 문중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가슴 펴고 사는 일만 남았다고 확신했다.

가장 먼저 당당해진 가슴을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는 자식의 새로운 출발에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도 흐뭇해했다. 아직 자식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였으리라.

“허허, 일단 기쁘구먼. 바쁜 일 있어도 내 꼭 가마.

 

장터에 있는 평범한 식당이 아니라 야외 정원이 갖춰진 고급 한정식집이라고 하자 아버지 특유의 반응이 흘러나왔다.

“밥 처묵고 트림 남기고 나가는 곳은 같은디 머.

순간 말문이 막혀 움츠러들 뻔했지만 병규는 더욱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대성정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대성정?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잖아요. 천하의 망할 놈이지만 언젠가는 대성하라고요.

“허허허, 암튼 간만에 기차나들이도 할 겸 그날 갈텐께 그리 알고. 

개업식에 걸맞게 날씨마저 온화했다. 볕 좋은 봄날에 새로운 출발이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식당 안에서는 개업 축하손님들을 치를 준비로 분주했다. 대학 동창들은 물론 삶의 전선에서 인연이 된 사람들까지 빠짐없이 초대한 상태였다. 자신을 바라보던 눈높이가 대부분 낮았던 그들에게 새로운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병규는 그런 속내를 어루만지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를 마중 나갔던 아내가 잰걸음으로 오며 손짓을 해대는 것이 보였다. 현관 쪽으로 가자 한복에 은회색 두루마기까지 차려입은 중절모의 아버지가 꼿꼿이 서 있었다. 한 손으로 쥔 손때 절은 지팡이는 바닥과 아버지 사이에 건성으로 서 있는 형상이었다. 아버지는 그만큼 정정했는데 때로는 장식품과 같은 그것이 당신이 지금껏 심신으로 떠받들고 있는 종갓집 기둥이었으면 했다.

고향을 떠난 지 구 년 후 한 번 찾아간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다시 사 년 만의 부자상봉이었다. 그동안 명절 때마다 용돈이나 선물과 함께 겨우 목소리를 내려 보냈을 뿐이었다.

“좋구나!

아버지는 천천히 정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병규는 과연 오랜 세월 가슴 한구석으로 밀어두었을 자신에게 어떤 감탄사를 안겨줄지 궁금했다.  

아버지가 조용히 입을 떼었다.

“공들인맨치 성공을 혀야겄제.

“그럼요. 대성공을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비법도 마련해두었으니까 다 잘 될 겁니다.

병규는 속으로 문관석을 떠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은근히 신경을 썼던 그 믿음 앞에 아버지가 이르렀을 때였다. 병규는 순간 숨을 멈추고 긴장했다. 허허허, 이 양반은 나를 쏙 빼닮았네. 별걸 다 신경을 썼구나. 유쾌하고 흡족해서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반응이 나올 것 같았다.

“으메!

아버지에게서 단발마의 탄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감탄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냉랭하고 경직된 기운이 담겨져 있는 듯했다. 아버지의 몸이 곧 쓰러질 사람처럼 한차례 휘청거렸다. 지팡이로 몸을 의지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저, 저건….

아버지의 입에서 다시 건조한 목소리가 신음처럼 새어나왔다.

“어떠세요. 아버지를 꼭 닮았죠? 일부러 골랐어요.

“시상에나.

“놀라실 줄 알았어요. 돈도 꽤 들었거든요.

“그려, 얼마나 주었드냐?

“사백.

순간 병규의 안면으로 무언가가 날아왔다. 사백에 이어 삼십만 원을 깎았다고 하려던 입이 휙 돌아가 버렸다. 눈앞에 별을 뿌려놓고 지나간 것은 아버지의 지팡이였다. 병규의 입가에 피가 맺혔다.

“워, 워찌 지를 때리고 그러신다요?

잊으려 애를 썼던 고향 말투가 튀어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며 고개를 꺾었다.

“요것은 말이여, 지난 가을에 도적맞은 우덜 조상님 무덤 앞에 있던 문관석이다. 이 눔아!

아버지는 할 말을 잃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병규는 아버지를 일으킬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가슴에서 무언가 터지려고 하는데 쉽게 열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지팡이를 의지한 채 천천히 일어섰다.

“그나마 다행이여. 행여 일본이나 생판 낯뿌닥도 모르는 넘우 손에 넘어갔을 거라 생각혔는디….

병규의 머릿속으로 쉽게 눈을 맞출 수 없는 빛들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다리가 후들거리려는 찰나 곧 수많은 빛 중에 하나를 잡아낼 수 있었다.

“아부지!

병규는 오랜만에 아버지의 품을 찾았다.

그토록 뿌리치고자 했던 고향의 냄새, 종갓집 대청마루 퀴퀴한 냄새가 구수하게 전해왔다.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문관석이 자신을 닮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  

 

 

 

이원준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한 시인, 소설가.

《흔들림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 《김오랑》 《김구》

《이상》 《권정생》 《노먼 베순》 《넬슨 만델라》

《정약용의 편지》 《조선왕들의 속마음》 《누가 조선의 영의정인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