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팔년도 메아리

 

 

 

  다 알아. 그럼, 다 알지. 누구라도 무지나 부주의를 피할 수 없는 만큼 착오도 범한다. 그래서 모모가 쌍팔년을 단기 4288년이 아니라 서기 1988년으로 알아도 놀랍지 않다. 난들 서기 1955년 분위기를 어찌 제대로 알까. 아마 단기 쌍팔년엔 전쟁이 끝난 직후여서 저마다 심신을 추스르느라 바빴을 것이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서기 쌍팔년이 마치 엊그제인 듯한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얼마 전 수원화성(水原華城)에 갔다. 예전에 친구와 이곳에 들렀는데, 그게 대략 30여 년 전이다. 내가 무심했던가? 세월이 순식간에 흘렀던가? 그날 이후로 다시 여기로 온 적이 없다. 그 친구와 연락이 끊긴 지도 이미 오래이다. 홀로 자문해본다.

  ‘그 친구가 보고 싶은가?

  이내 자답한다.

  ‘굳이 그럴 것까지야…….

  이제는 우리들 사이도 멀어진 것이다. 어쩌다 어디에서 만나 서로서로 알아본다고 해도 이내 덤덤해질 것만 같다. 피차 성품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해도 서먹서먹할 것이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과거 사진을 다시 보면서도 알고, 그때 책을 다시 읽으면서도 안다. 어쩌면 이게 이럴 수가 있을까? 동일한 사물조차 이렇게나 달라 보이는데, 하물며 그게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과거를 향해 고함을 지르면 메아리를 들을 수 있을까? 설령 이게 가능하다 해도 기대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그 당시에 나는 원경을 바라보며 한때 저기 살았다던 민물고기 서호납줄갱이 이야기를 했다. 그는 어릴 적에 저 서호(西湖)에서 물놀이를 했노라 했고. 이 근방에 있었던 그 집에도 놀러갔다. 대체로 남루한 거처였다. 담장도 낮았다. 마침 마당 한 구석 수돗가에서 여동생이 쪼그리고 앉아 빨래를 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게 못생겼지?

  오라버니가 이 무슨 말본새냐! 만약 동생이 들었더라면, 뭐라고 했을까? 그즈음 아무개는 내게 누구를 ‘천사’라고 자랑했는데. 그래서 나로서는 무척 많은 상상력이 필요했다. 하기야 천사라고 해서 어찌 다 같으랴. 이들 가운데 왈패도 있겠지. 더러는 비속어도 마다하지 않으리. 수원 그 친구는 멋대가리가 없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대꾸하나.

 

  “응. 못생겼어!

  그는 잘 지내겠지. 아무렴, 무슨 변고야 있었으랴. 그도 나를 잊고 살려나. 아무래도 상관없다. 미련도 없다. 이건 내가 별나서가 아니다. 실지로 인연이 내내 이어졌다고 하자. 그런들 뭐가 달라졌을까? 나 없는 그 자리에 누가 대신 있겠지. 그의 삶에도 우연과 필연이 뒤섞였겠지. 그래, 그러고 보니, 내가 다시 화성에 오게 된 사연도 그렇잖아.

  아내가 고집을 부렸다. 작년에 아들이 인근의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래서 학기마다 기숙사로 짐을 들이고 빼낸다. 누구나 처음이야 부모가 따라가는 게 자연스럽다. 그 학교가 어떤 곳인가? 당장 이것부터가 궁금하다. 그러나 개강과 종강이 한두 차례 잇따르면, 부모도 으레 그러려니 한다. 요즘은 택배업도 발달했다. 그런데도 아내는 달랐다.

  ‘왜 저 사람은 쓸데없이 이러는가?

  이러다가 갑자기 생각난 게 있었다.

  ‘아하, 그렇지.

  생전에 어머니도 이와 비슷했다. 이게 효율성과는 무관하다. 어머니도 나를 자꾸만 시장으로 데리고 다니려 했다. 나는 흥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가게에서 내 관심사도 아닌 옷가지를 자꾸만 입히려 했다. 이게 요즘은 아내가 하는 바로 그 행태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내가 더러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이거 어때요?

  질문은 단순하다. 정답도 쉽다. 내가 솔직히 의견을 내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아내가 옷가게에서 자기 옷을 고르면서 이럴 때마다 나는 그만 아득해진다. 내가 경험으로 안다. 이 답변도 아니고, 저 답변도 아니다. 어디에도 정답이 없다. 이럴 바에야 왜 묻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가 보기에는 이거나 저거나 별반 차이도 없다.

  이래서 동일한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도 상당한 수준의 번역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우선 기호학 지식을 빌려와 기의(記意)와 기표(記表)의 차이부터 납득해야 한다. 여기에 혼동이 오면 매사가 어그러진다. 발화자(發話者)와 청취자(聽取者) 가운데 누구라도 이걸 확실히 간파해야 그나마 파탄을 면할 수 있다. 이게 쉽지가 않다.

 

  “이 모자가 예뻐요?

  아내가 모자를 쓰고 던지는 이 질문의 내용과 형식이 일치한다면, 그 답변이야 어떻든 좋다. 그러나 이게 기표로는 ‘모자가 예쁘냐?’는 거지만, 기의로는 ‘내가 예쁘냐?’이다. 때로는 이게 ‘당신은 지금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일 수도 있어. 어쩌다 부부싸움이라도 벌인 처지라면, 남편의 답변이 모자의 형태나 색채와는 무관해야 한다.

  “뭐, 그런 걸 또……. 당신은 허영심과 낭비벽이 너무 심해. 그러니까 간밤에도 내가 그랬지. 이미 가지고 있는 모자만 해도 도대체 몇 개냐?

  아마 하느님도 이렇게나 아둔한 남자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그대한테 홀딱 반했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온 만큼 이참에 맛이 가버리자.

  “우와, 그대가 바로 절세가인입니다.

  이러고도 고민해야 한다.

  ‘더 참신한 말은 없나?

  아마 나도 구닥다리일 것이다. 내게도 쌍팔년도 정서가 있으니까. 이걸 내면 깊이 간직하려는 버릇마저 있다. 이러고서야 어찌 함부로 신세대의 미래에 참견하랴. 그렇다고 아들이 아버지와 많이 다를까? , 가끔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 그 자식이 그 아비를 닮는다. 이 자식은 또 자기 닮은 자식을 둘 테고.

  기숙사로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간 이것도 언젠가 그리운 추억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짐은 아들이 나중에 알아서 풀기로 하고, 일단 모두 사진이나 찍으며 놀기로 했다.

  내게도 욕심이 있어서 아들 성향이 나와 유사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둘이서 농담을 해도 잘 통할 테니까. 아들은 화학공학을 지망했다. 나는 곧 적응했다. 이 분야라 해서 나쁠 것도 없지. 어느 분야든 깊이 들어가면 어딘가에서 만나겠지. 그러자면 여기에도 애정이 있어야 하는데.

  ‘혹시 아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서 결정하는 게 아닐까?

  이게 궁금했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막상 본인이 뭘 하고자 하면, 이게 결코 만만치 않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광고지 한 장에도 누군가의 땀방울이 스몄다. 아무나 인쇄기를 돌려 뚝딱 만들 수가 없다. 그런데 누가 이걸 마지못해 해야 한다면, 이것도 무지무지 고역일 것이다. 본인도 고달프고, 기계도 탈이 난다.

  먼저 그 방면에 적합한 유전자가 있어야지. 당장 나부터가 그렇다. 노래방에 갔으면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도, 화면의 자막을 보면서 무심코 가사를 다듬는다. 무협영화를 보면서도 저렇게나 정교한 장면을 어떻게 문장으로 구성할까 궁리한다. 가로수들이 산들바람에 가만가만 흔들리는 풍경마저도 행간의 분위기와 연관을 짓는다. 이런 걸 누가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

 

  녹음 아래에서 책을 읽노라면 책장에 자그마한 벌레들이 떨어진다. 요렇게나 작은 것들한테 나무는 엄청나게 광대한 세계이다. 여기를 보금자리 삼아 악전고투하는 생명체들이 있고, 또 이들을 노리는 천적들도 있다. 한낮의 폭염이 물러나자 한밤의 폭우가 쏟아진다. 누군가는 온몸으로 이들의 아우성을 듣는다. 이러니, 어쩔 거냐.

  아무리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해도 꿈마저 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서로 말도 없이 지내나. 아들이 가만히 있으면 나라도 나서야지. 연전에도 그랬다. 지하철역에서 밤늦게 귀가하는 아들을 기다렸다. 이것도 아내가 수험생 아버지의 책무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나타났다. 책가방이 무거운 듯했다. 내가 말했다.

  “이 가방에 헬륨 넣은 풍선을 달면 어떨까?

  아들이 즉각 반박했다. 헬륨이라는 물질의 성질이 이러저러해서, 이 가방의 무게를 영()으로 하자면, 풍선의 지름이 최소한 얼마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이걸 달고는 전철이나 버스의 비좁은 출입문을 도저히 드나들 수 없다. 나는 이때 아들의 생각머리가 이렇다면 화학공학을 전공해도 괜찮으리라 판단했다.

  “한 변의 길이가 10인 정육면체와 동일한 체적의 구()는 지름이 얼마인가?

  한때는 나도 해법을 알았을 것이다.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정육면체의 체적은 그렇다 하더라도 구()의 체적은 어떻게 구하지? 이것조차 오리무중이다. 이건 내가 무심했기 때문이다. 매사가 이렇다. 그 역도 다르지 않다. 비록 고난도의 문제라 해도 거듭 궁리하다 보면 끝내 풀리겠으나, 이것도 애정이 없으면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원피스가 3벌이라면 경우의 수는 3이다. 그러나 투피스가 3벌이라면, 이게 9이다. 여기에 모자와 손가방이 3개씩이라면, 이게 자그마치 81이다. 식탁에 놓는 음식도 이렇게 추산할 수 있다. 국수나 죽이 아니라 오로지 밥만 먹는다고 하자. 이에 따르는 국과 탕을 한 가지로 하고, 무침과 볶음과 절임을 두어 가지로 하자. 이래도 경우의 수가 많다.

  어디에든 변수는 있다. 조화가 깨어지면 오로지 난잡하기만 하고 유용성이 사라진다. 물건만이 아니라 사람도 그래. 삼삼오오 모여 정담을 나누는 그 자리에 하필이면 빚쟁이가 끼어들다니! 디자인이 좋아야지. 그러자면 안목이 높아야 하고. 이마저도 어려우면 어떻게 하나? 탁자에 꽃병을 놓거나 술병을 놓자. 이러니 설령 헛소리를 하더라도 뭘 알고 해야 한다.

 

  “아들아! 만약에 네가 어머니한테 죄를 지으면…….

  이러면 아들도 다음 내 말이 ‘어디에도 빌 곳이 없다.’인 줄 안다.

  “나야 속인이어서 누가 실수하더라도 용서 받을 수 있으나, 네 어머니는 천사여서 사정이 매우 다르다. 옛말에도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했다. 천사는 하늘에 속하는 존재이다.

  과연 내가 많이도 한 소리이다. 이게 형식은 아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내용은 아내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 만큼 나는 언제나 이 말을 아내가 듣는 앞에서 한다. 그런데 혹시 엉뚱한 게 궁금한 분들도 있으려나. 누가 누구를 정말 그렇게나 사랑하는지 마는지. 우문이다. 그거야 어떻든 응답은 같으니까. 초점은 그 말의 진위가 아니고 그 말의 역할이다.

  사람들이 헷갈리나 보다. 혹시 각자가 문제를 문제로 인지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동쪽에서 백화점이나 할인매장으로 가자고 하면, 어휴, 서쪽에서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그거야, , 콩나물 사러 가자는 것 아닌가요? 부부가 이러고도 30년 동안을 함께 살았다니! 진작 누가 설명이라도 해줬어야지. 이런 과정마저 없었다. 그러니까 남편의 입도 주먹만큼 나온다.

  “제발 좀 기의와 기표가…….

  , 아니다! 여기서 나는 멈춰야지. 각자가 질문도 제기하고 해답도 궁구해야 한다. 이게 합당하다. 혹자는 콩가루 집안 출신이어서 부부가 나란히 시장에 가는 모습만 봐도 부럽다. 또 이렇게 작은 위안도 있다. 봐라, 여기 내 편이 있다. 이러다가 치를 떤다. ‘남편’이 ‘남의 편’이었다니! 더러는 느닷없이 현기증을 일으킨다. 겁도 난다. 누가 괴성이라도 지르면 어쩌지? 그렇다고 너도나도 내내 외면할 수도 없다.

  바로 두 달 전이었다. 식구들이 성균관대학교에 갔다. 늦더위가 남은 교정을 다니면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또 이제는 몰락한 왕조의 염원이 서린 화성(華城)에도 갔다. 장안문(長安門)이라. 그렇지, 오래오래 안녕해야지. 200여 년 전 정조도 심심해서 공사를 벌인 게 아니었다. 나름대로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나도 그래. 어쩌면 과거사를 떠올리는 이 행태 역시 자신도 모르는 슬픔의 발로인지도 몰라.

  선의도 때로는 병통이 된다. 조언도 신중히 하자. 자식은 이미 나를 구시대의 꼰대로 알지 않을까? 심지어 나는 다소 우스운 당부도 했다. 혹시 너 좋다고 성가시게 하는 처녀가 있더라도 너무 구박하지는 말아라. 쌍팔년도 그 무렵에 꼭 그럴 것까지는 없었는데, 유독 아무개한테 나는 너무나도 야박했다. 참 미안한 일이었지. 하기야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 녀석이 아들로 태어나지도 못했겠지만. 혹은 어머니가 바뀌었거나.

 

  어감이란 게 있어. 어째 ‘쌍팔년도’라는 낱말에는 싸구려 기운이 훅 느껴져. 이제는 워낙 케케묵었으니 그만 내다버릴까. 그러나 그 시절에는 이게 최신식이었고 최첨단이었다. 또 이건 내게 여전히 익숙하다는 미덕도 있다. 그러고 보면 서기 2018년 오늘도 30년쯤 뒤에는 무척이나 아련한 과거로 변하겠다. 나는 인공지능로봇과 쪼그리고 앉아 개미나 들여다보고 있을까? 행여 그럴 수 있다면, 그나마 나름대로는 장수하는 거지만.


 

 

 

 

  김인기 수필가

  경상북도 영천 출생(1962).  1991년《월간에세이》로 등단.  수필집『함께 가는 우리들』(1999),『참 좋은 날』(2006),『장등산 개나리꽃』(2017).

 

  전자우편: gagozig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