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의 웃음


권순자                                      

 

낮이 가방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바다는 네 방에 가득 몰려와 밤마다 파도친다

바다의 목소리들

 

내일을 미리 열고 들어간

너의 밤이 물결에 철썩인다

네 부푼 꿈이 오므라지고

늘어놓은 책들이 스르르 일어서서

네 방문을 연다

비상구가 떠올라 허공으로 올라간다

 

기웃거리는 밤

깜빡이며 바다를 뒤척이는 밤

 

어제의 노을이 돌돌 말려서

가슴속으로 밀려온다

파도처럼

모래는 바람에 실려

창자 속으로 뒤틀리며 몰려온다

길 잃어버린 바람이 문 앞에서

울음처럼 펄럭거린다

 

분해된 꿈들이 조개들 따라 입을 다물었다

물살을 헤치고 이름들이 솟구친다

슬픔이 너무 오래 말라갔어

몸을 짜내는 기다림이 너무 길어졌어

널뛰는 그리움이 해일처럼 밀려왔어

 

아름다운 목덜미에 열여덟의 시간이 새겨지고

얼음처럼 차가운 실망

끙끙 앓는 혀

  

어미의 수심은 빈방에서 철썩거렸다

비가 오면 귀가 열린다

너를 듣는 밤이 길다

밤이 젖어

뱀처럼 느리게 기어간다

 

너는

움켜쥔 소라로 소리를 들으며

고둥으로 나팔을 불고

영원을 호출하며

세상 밖으로 가는 길로 헤엄을 치고 갔다

 

달이 뜨고

삶을 습격한 폭력과 혼돈의 문턱을 넘어갔다

벚꽃망울 터뜨리던 열여덟의 웃음이

그립다

 

 권순자/1986포항문학사루비아2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2003심상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낭만적인 악수,붉은 꽃에 대한 명상,순례자,천개의 눈물,청춘 고래등이 있음. 한국작가회의회원

 

 

 

그들에게는 노을도 바다에 슨 녹이다

김길전

 

그곳 목포 신항 철제부두에는

망각의 뜰채에 채집된 부레인 듯 그럼에도 아직 바로세우지 못한 시공에 세월이 동기화되어 벌겋게 녹슬고 있다

건저올린 그녀 그 유기遺棄의 경계에서 진저리를 치며 삼백네 걸음을 찬찬히 세어 물러서면

그러나 녹슬지 않은 아이들의 표정이 노을 속 나비의 무늬로 정연하다

 

아이들은 저마다 여러 발의 총을 맞은 채 발소리 죽인 저녁바람에 떠는 노란 리본이 힘겨웠다

근접사격에 그 아름다운 이마와 눈길 꽃 봉우리 가슴과 귀가 찢기고 관통된 채로 이승의 노을에 걸려 있었다

보라, 신은 이미 함구하지 않았는가

이제 산 것들이 불쌍해야할 차례이다

 

끼어들지 못한 해류 속

관 안에 또 다른 관이 들어 있는 척색동물문 멍게의 유충은 끊임없이 야광충의 해류 속을 표류하는데 이윽고 살아남은 멍게가 자리를 잡아 정착하게 되면 우선 제 뇌를 먹어치운다

뇌는 동물에서 가장 에너지의 소모가 큰 기관으로 의식과 행동을 제어하는데 이미 멍게이므로 더 이상 기억과 행위를 삼켜 스스로 자아를 소거해버리는 것이다.

 

그 배설의 입과 가늘고도 긴 창자를 이은 소화시키지 못한 말의 항문뿐인 멍게의 아종처럼

제 방아쇠수지증후군을 치켜들고 킬킬거리던 호모하빌리스의 그 받침 없는 귀곡성과 무정란의 납색 깃발  

그들에게는 저 노을도 끝내 바다에 슨 녹이어야할 것이다

  

거기 세월호 아이들의 사진은 호모사피엔스의 비비탄에 뻥뻥 뚫려있었다.

 

 

김길전/2018년 시 동인지 씨앗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발간 동인 2019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팽목항의 사진을 보며

내일을 여는 작가 65(2014년 여름호)를 보고

정대호

 

엄마들이 줄을 지어

바다를 보고 섰다.

눈 앞에 잠겨버린 배

눈 앞에 떠 있는 배

그 배 너머 흐릿하게 서 있는 섬, , ……

 

돌아오겠다 하고 집을 떠난 아들들

돌아오겠다 하고 집을 떠난 딸들

돌아오겠다 하고 집을 떠난 아버지들, 어머니들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서

먼 섬처럼 멀어질 것만 같아서

소리 내어 불러보고

소리 죽여 불어보고

소리 없이 불어본다.

 

경찰들은 줄을 지어 땅을 보고 섰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땅을 보고 섰다.

 

바다는 출렁출렁 그리움으로

밀려오고

바다는 파랗게 물깊이로 막고 섰다.

그렇게 짧은 거리가 그렇게 먼 거리가 되어

아들아, 딸아, 아버지, 어머니,

 

바다를 바라보고 섰는 사람들은

땅을 향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렇게 살아 있어서 미안하다.

땅을 향해 섰는 사람들은

마음속을 향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렇게 가슴으로 보고만 있어서 미안하다.

 

 

정대호/1958년 경북 청송 출생. 1984분단시대동인으로 활동,

시집:다시 봄을 위하여, 겨울산을 오르며, 지상의 아름다운 사랑, 어둠의 축복, 마네킹도 옷을 갈아입는다

평론집:작가의식과 현실, 세계화 시대의 지역문학, 현실의 눈, 작가의 눈

 

 

 

아직도 물속이다

최기종

 

아직도 물속이다.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아직도 진실은 인양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이

말도 안 되는 사고로

말도 안 되는 대응으로

말도 안 되는 기다림 속에서

천 개의 바람이 되고 나비가 되고 리본이 되고 팔찌가 되고 풍등이 되고 종이배가 되어

아직도 물속이다.

아직도 세월네월이다.

왜 침몰사고는 일어났는지

왜 선내에 대기하라고 방송했는지

해경은 왜 구할 수 있는데도 구하지 않았는지

도대체 왜 CCTV영상은 바꿔치기 했는지

사고발생 어언 5년이 흘러갔는데도

사고발생 무려 1,825일이 지났는데도

우리 아이들이 아프다, 원통하다, 미안하다.

누구는

아직도 세월호냐고

아직도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냐고

그것, 다 끝난 것 아니냐고 지겹다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아프다, 원통하다, 미안하다.

아직도 물속인데

아직도 오리무중인데

아직도 진실은 인양 중인데

내일의 아이들을 위하여

내일의 세월호를 위하여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서는 아니 되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거짓거리들이 숨어 있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아프다, 원통하다, 미안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희망이다, 생명이다, 안전이다.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팽목항에서

색 바랜 리본은 멈추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

우리 아이들은 이제 그만 떠나고자 하나 아직도 세상은 물속이라고

 

 

최기종/전북 부안 출생, 1992년 교육문예창작회 활동, 나무 위의 여자, 슬픔아 놀자, 목포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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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는 2019년 상주동학농민혁명기념문집- <녹두꽃 필 때>에 특집으로 실린 것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