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관

                                                 

 

어린 날엔 자주 앓았다.

지금 돌아보니 아픈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는 본능 같은 감으로, 살아남아진 삶이었다.

외할머님 댁에서의 일상은 우울과 외로움을 가져다주었다.

일곱 살은 자주 구부러졌고, 이모와 막내 삼촌 사이에서 눈총을 받으며

일곱 살은 많이 울어야 했다.

그렇기에 나의 유년기는 곧은 직선이 아닌 구부러진 곡선이었다.

 

서울 변두리에서의 셋방살이로 시작된 엄마의 삶 또한 고달프고 고단했다.

그 고단함과 고달픔을 베고 누워 밤마다 엄마의 눈물을 훔쳐보며 아침을 맞았다.

고단함을 잊는데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놀이였다.

공기놀이, 비석치기, 고무줄놀이, 구슬치기, 딱지치기, 발야구 등등.

어린 날에도 사는 게 버거우면 버거울수록, 손등이 곱아 터지도록 밖으로 나돌았다.

 

중학교 2학년 폐결핵을 앓으며 한 학기 동안 휴학을 했다.

그러는 사이 꽃이 피었다. 가슴에 흥건히 피어난 것은 폐를 갉아먹은 결핵균만이 아니었다.

그때 내 가슴 한 복판, 무너질 수 없는 경계에서도 송이송이 꽃망울들이 방울방울 꽃송이를 터뜨렸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나는 한 마리의 고양이와 고요를 벗삼아 시를 읽고, 쓰며 죽음과의 싸움에서 승자가 되어보고자 애를 썼다.

늘 죽음을 껴안고 있으면서도 행복했다. 밤 아홉시만 되면 전등을 꺼버리는 엄마의 야속한 손길도 밉지 않았다. 어두운 창가를 내다보면서 머리와 심장 속을 뛰어다니는 시어들을 주우며 지냈던 그 시간들이 내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저만치 떼어 놓았다.

 

휴학을 마치고 학교에 다시 복학하면서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났다. 밖으로만 떠돌던 선머슴 같은 계집아이가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오는 말수 적은 아이가 되었다. 그 후 몇 번의 휴학과 복학을 넘나들면서 나는 원인모를 우울과 슬픔을 지닌 눈빛을 갖게 되었다.

 

나의 시, 근간은 죽음과 삶이다.

삶속에 숨어사는 죽음과 죽음 사이에 드러나는 삶의 미학을 찾아낼 때마다 나는 살아 있음의 희열을 느낀다. 조금은 늦게 만난 불교와의 인연 또한 요즘 내 삶의 의미이자 화두이다. 색즉시공과 성주괴공을 알아가면서 깨닫는 법열은 살아있음이 곧 공덕임을 알게 한다.

 

몸 공부든 마음 공부든, 그리고 시 공부든 끝이 없는 길임을 안다.

몸과 마음을 가급적 사랑하려 애쓴다.

오고가는 인연에 매이지 않고 내 앞에 놓여있는 여건 속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걸림이 없는 내 안에서의 시와 마음공부.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가다 보면 내 앉을 자리 하나 보이지 않겠는가.

온전한 나로 피어나는 꽃 한 송이 만나지 않겠는가.



전북 남원 출생. 1991<시와 의식> 여름호에 <, 여자>2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시작. 작품집으로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

<신림동 연가> <아름다운 비밀> <굿바이, 자화상> 외 공저 다수

 

전자우편 ingu815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