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스르륵,

발 없는 잠이 블랙홀에 빠지듯

몸을 주-욱 늘이세요

불면의 문턱을 마악 넘어오는 잠에서

꿈이 제외되도록 관절마디 마디에

토막 난 잠을 박아 넣으세요

자꾸만 일어서려는 불뚝거리는 생각의 욕망일랑

꾹꾹 접어 비트세요

삼일 간 비틀린 당신 잠의 실타래를 최대한

느슨하게 풀어내세요

생각이 생각을 먹고

시간의 고개를 넘어가다 낳은 말들일랑

모두 하얗게 게워내세요

천지간에 사라지고 말 희뿌연 한마디의 고백일지라도

접선된 암호를 믿듯 무작정 믿고 뱉어내세요

옆으로 몸을 말아요

고개는 겸손하게 처리된 부호처럼 앞가슴에 박고

마음의 질량을 최대한 늘여보아요

발 없는 잠과 꿈 없는 잠이 서로 밀납꽈배기처럼

몸을 꼬아 올라가는 잠의 나선형구조처럼

당신을 꼬아보세요

어설프게 배치된 당신 몸짓일랑은

절대 들여다보지 말고 깊은 우물 속 들여다보듯

당신 무의식의 창만 들여다보며 잠을 끌어다 덮어요

잠의 늪에 매몰된 잠으로 다시 당신을 만나요

스르륵-!

당신, 잠의 문턱을 밟지는 말아요.







미스 홍당무

                                     

 

이쁜 것들은 모두 땅속에 묻어야 해

나는 내가 창피해 마음보다 먼저 얼굴이 달아오르지

사랑이라 믿었던 의혹들 모두 테잎 풀어지듯 늘어지고 나면

외설처럼 욕설처럼 입안에 껄끄럽게 남는 좁쌀 같은 언어의 굴욕들

모두 얼굴로 가 붉은 꽃잎처럼 피어나지

 

슬픈 건 내가 나를 욕망한다는 것

부재된 사랑의 힘 알 수 없어

모든 것 사랑으로 착각된다는 거지

착각이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저 수많은 눈들 속에서

내가 숨을 곳은 나밖에 없다는 거지

 

내안에 꽃피는 이 착각

정말 사랑인지도,

분노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거지

정말 슬픈 건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

세상을 향해 터져 나가는 일갈의 침묵도

내 안의 침묵인지 알 수 없다는 거지

 

나는 나, 너는 너

우리로는 함께 꿈꿀 수 없는 슬픈 방정식의 함수

밤마다 거울 속에서 확인 사살하는 총구는

나를 향하고 있다는 거지

혼재된 욕망이 열꽃처럼 핀 얼굴로

멋들어지게 버무려 견뎌내야 한다는 생의 법칙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통에 구겨 던져버릴 수 있다는

내 안의 착각 신전처럼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거지

 

숨을 곳 없는 붉은 꽃잎들의 흔적

오늘도 밤을 흔들어 내 어깨를 깨워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이 삶의 정의

비록 꽃 필수 없다 해도

나는 나의 꽃






바닥 꽃

                                     

 

 

모두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야

앉은 자리에서 싹을 내민다.

 

모든 걸 놓아 버리고 난 뒤에야

슬그머니 손 내밀어 핀다.

 

잃을 것, 가질 것 없어

두 손 툴툴 털어 버리고 가는 뒷모습에서

푸른 현기증처럼 아른대며 피어나는

바닥 이라는 꽃 한 송이

 

바닥을 치고서야

꽃으로 피는 그 눈물 꽃의 꽃말은

일어서야지

일어서야지.

 



백년의 고독 3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죄를 만들지 않네

우리는 오랫동안 깨어 있으려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지르는지

고양이는 평균 14시간을, 파리는 12시간 잠을 잔다네

우리는 4시간,5시간만 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반나절은 비몽사몽 또 다른 반나절은 비실대며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지

깨어 있는 것은 다시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에너지를 모으는 일

빨리 먹이를 구하는 동물들일수록 오랜 시간 백년의 꿈을 꿀 수 있다네

지나치게 오래 깨어 있는 건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일

우리는 슬프게 깨어 있기 위해 카페인을 마시고

항상 어디론가 더 빨리 떠나기 위해 휘발유를 필요로 하지

서두른 잠에서 깨어 에너지는 날려 버리고 지구 한편을 망가뜨리네

지금 그대가 있는 그곳에 간절히 머물러 주시라

고요의 나라로 비행하는 동안 나와 그대는

죄를 만들지 않는 선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네




천년을 들다

                                              

 

 

 

그렇듯 순한 눈빛과 그렇듯 겸허한 손등 아래로

아직 피지 않은 동백, 고개 밑을 표표히 지나

때 이른 봄날 품속을 마중 나온 서행의 나비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노니는 석불과 석불 사이

 

내 소망의 끝은 동백, 그 작은 그늘에

생의 무게 싣지 않고 가벼이 건너가

절두된 석불의 목덜미에 나의 천년을

반듯하게 접목하는 것

졸음처럼 쏟아지고 쏟아지는 천년의 푸르름을 지나

마침표가 있는 서방정토에 가 닿는 것

 

그 순한 천년의 눈빛과 여린 동백의 눈빛을

탁본으로 떠 다시 울울창창하게 소리 내어 우는 것

륵 치맛단에 흐르는

천년의 곡선을 새기고 또 새겨 넣는 일

 

나는 천년의 겹 주름을 풀어 헤치며

천년의 나를 지나왔다

 



 

 거울 속으로 난 길

 

 

욕실거울을 닦는데

거울 한 쪽이 닳아있다

거울도 외로웠을까

드나드는 사람들의 고정된 눈길을 따라

비스듬히 기울어진 길을 내었다.

아무나 볼 수 있지만 함부로 들여다 볼 수 없는

저만의 길을 내놓은 거울의 길속엔

오랜 슬픔으로 다독여진

깊은 상처가 웅크리고 있다.

거울속의 길엔 볕이 들지 않는다

응달 속,

햇볕을 담지 못한 여린 잎맥 사이로  

배추흰나비 애벌레 한 마리 숨어 든다

슬픔의 모퉁이만 갉아 먹고 자란 애벌레의 체액에는

한껏 슬픔을 이겨낸 쓸쓸함이 들어앉아  

시간의 마디를 채워나간다

거울은 빠짐없이 그 시간의 마디를 닮은 길을

내게 보여준다

생의 무엇이 되었건 간에  

정점에 닿아본 적이 있는 것들이란

가벼이 기억의 회로를 통과하지 않는다는 듯

거울 속으로 난 길들은 모두 닮은 예각을 지니고 있다

 

마악 허물을 벗은 배추흰나비 한 마리

날개를 퍼덕여 거울 밖으로 날아 오른다  

 



경계를 잃어버린 달에 대하여

 

 

 내 몸에서 달의 기울기가 사라지더니 나는 점점 뚱뚱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내 안으로 기어들어와 내 중앙의 변두리를 차지하더니 급기야 나는 뚱뚱한 발목과 뚱뚱한 허리를 가지고 기우뚱거리며 걷기 시작 했다. 달이 빠져 나간 다음 나의 가장 깊숙하고도 내밀한 그곳에서 진행된 일들은 나의 그 어디쯤에 서 있던 기울기의 경계를 잃어 버렸을 것이다. 경계를 잃어버린 나침반들이 사방 그 어딘가에 자신의 생애를 눕힐 어둑한 공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반생을 뒤척이고 다독인 노곤한 갈지자를 어딘가에 가두거나 고착시킬 비밀의 방이 필요 했을 게다. 무사히 안착된 그들의 생애가 도도하게 내 중심부에서 뿌리를 내리고 둥글게 가지의 순을 치고 내며 자리 잡은 곳. 내 중앙의 변두리에서 그들은 내게 뚱뚱한 사물의 힘을 각인시키기 위해 날마다 팽창하려는 세포의 본질에 몸을 내 맡긴 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조금씩 더 나를 뚱뚱하게 만드는 작업에 열중했다. 뚱뚱한 것을 우롱하는 온갖 매체들을 자신의 영역으로 구겨 넣으며 이 땅의 제3의 성으로 살아남았을 게다. 내 안에서 빠져 나간 그 많은 달들의 표정들이 하늘로 올라가 푸른 달빛을 낳았다. 나는 조금씩 뚱뚱해져 가면서 내 안의 달들을 꺼내보는 버릇을 지니게 되었다. 마녀도 성녀도 없는 그 달 속에는 달의 기울기가 사라진 후 밤낮없이 희고 붉은 꽃숭어리들이 피고 졌다. 조금씩 더 뚱뚱해지는 사물들의 힘을 작품처럼 만들어 내며 오늘도 어제 보다 조금 더 뚱뚱해진 모가지로 서둘러 사라지려는 나를 지탱한다.





 Spica*

 

                                       

 

길이 끊긴 길 위에서 너를 찾아내는 단 하나의 방법은

길 위의 불빛을 모두 거두어

동병의 어둠에 나를 휘묻는 것이다

보여주지 않는 길들의 길을 어둠 속에 접어 넣고

어둠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그 때 너는 희미하게 네 모습 드러내어 길 하나 밝히고

땅의 먹빛에 순백의 은회색 빛을 뿌려줄 것이다

 

천천히 부유하는 빛을 따라 농부는 씨앗을 뿌리고

손가락 사이로 주르륵 시간의 아득함을 흘릴 것이다.

시간의 야속함마저 땅 끝에 심는 이 사라짐에 대해

너는 무슨 말을 보태어 세상 한 자락 품어 안을까

묵묵히 둥글게 생의 을 돌고 있는 자리 맴돌다

네가 사라진 자리에 뜨거운 입맞춤 조용히 내려놓으면

네가 사랑이라 명명했던 팽팽한 슬픔들

모두 손아귀에서 놓여날 수 있는 건지

 

너는 단 한 번도 쉬임 없이 길들의 길을 위해

어둠위에 서 있었음을

나 어둠과 함께 이마를 맞대고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야 알았다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은 언제나 뒤늦게 찾아오는 법

, 그렇게 뒤늦게라도 너를 찾아

어둠 속의 어둠을 끌어안고 네게 붙박히는 것이다.

시작의 끝에 또 다른 시작을 매다는 둥근 원처럼

네 주변을 하나의 점처럼 서성이는 것이다

 

 

*spica : 처녀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별






허공 법문*

                                              

 

 

시든 꽃 묶어버리고

 

각을 지닌 유리꽃병을 비운다

 

빈병 가득 허공 한 자락 들어와 앉는다

 

꽃병의 모양을 따라 나투는

 

허공의 허공

 

끝도 없는 그 무극의 어느 선상에서

 

허공은 태어나셨는가

 

금이 간 유리 꽃병

 

허공 가득 내가 들어 앉는다

 

 

 

*백봉 김기추거사 법어집 제목에서 빌어옴





해빙 무드

                                        

 

바람이 일어선다

출렁임을 받는다

오랜 가뭄 끝 단비가 내린다

 

입을 크게 벌려 빗방울을 받는다

어둑컴컴한 낮은 하늘 아래

키 큰 풀꽃들의 자잘한 수다가

사방으로 꽃피는 수면 위

 

꾸역꾸역 배가 불러온다

첫 아기 임신처럼

바깥쪽 둑길부터 조금씩 불러오는

검고도 푸른 포만감

오랜만의 폭식이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배위에 얹고

오늘 하루 배운 감사함을

머리맡에 풀어 놓는다

 

살짝 가려진 귀밑머리 옆으로

당신이 지나간다

설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