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자신을 끝까지

  타이르면서

  살아야지.

 

  1990.9.

 

 

 위의 글은, 내 첫 시집인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 「自序」다. 벌써(?) 긴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스스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신을 타이르면서 살고 있다. 자신을 타이르면서, 만약에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를 상정想定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활화산 같은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잠

 

  오늘은,

  오늘만이라도

  내 탓이라 생각하면

  편안한 잠

 

  찾아오실까

 

 

 「잠」은, 두 번째 시집인 『환한 빈자리』(2009년 출간)에 있는 시인데, 이곳에 인용하게 된 것은, 딸이 이 시를 캘리그라피로 적어 놓은 것을 며칠 전에 보았기 때문이다. 「잠」은 참 나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날에…….

 

 이 글을 쓰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머리맡에 『菜根譚』을 두고서 한 구절, 한 구절 ‘씹으면서’ 자신을 달래곤 하였었다. 마음의 불을 껐는지도 모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시인이 되겠다,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일기 쓰기는 계속되었다.

 

(내 키의 반쯤 되는 높이의 일기장들을 어느 해, 30대였을까, 공터에 나가서 모두 태워 버렸었다. 진정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서. 그것은 실패!)

 

 

  無題7

 

  오늘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내 긴긴 삶에서 까짓것, 액땜한 셈 치면 된다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無題7」은, 2015년에 나온 세 번째 시집 『소가 간다』에 실은 시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껏 살고 있는 것이다.

 

 먹고, 자고, 배설 잘하고, 이것만큼 시가 나에게 중요하지는 않다. 시를 쓰지 않아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있다면(내가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긴 시간 동안 시를 생각하고, 시를 썼으니 허전은 하겠지만…….

 시 쓰기는 분명 ‘목숨’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 와서 시를 버릴 수는 없다.

 

 시를 쓰면서, 자신이 맑아지고, 깊어지고,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세상에 당당할 수 있다면 크게 기쁘고. 시를 쓴다고, 문학을 한다고, 세상에 비굴해 한 적은 없는지 두렵다…….

 

 솔직히 나는 시보다는 『무문관 일기』(동은 지음, , 2011)와 같은 책이 좋다. 시보다는 늘 ‘나’가 문제인 것이다.

 

 

 

오형근

1955년 서울 출생.

1978년 《시문학》주최 전국대학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1988년《불교문학》과 2004년《불교문예》로 등단.

교직에 315개월 동안 종사했다.

시집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환한 빈자리』, 『소가 간다』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