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꿈


 

 

 바람이 후회하고 있다. 스스로 물체에 부딪쳐 소리를 냄으로써 자기가 바람임을 깨달은 바람이 울고 있는 것이다. 이 바람의 울음을 창백한 거울이 귀기울이고 있다. 거울은, 거울 이외의 어느 것도 되지 못함으로써 끝까지 거울이지만, 얼굴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바람소리 요란한 밤마다 거울은 얼굴 갖은 꿈을 꾼다.

 

  

 

 

혼자 노는 아이 1

 

 

혼자 노는 아이야

남들은 모두가

친구들끼리 어울려서 노는데

너는 혼자서도 잘 노는구나

남들은 서로가 서로의 장난감이 돼서도 잘 노는데

너는 네 스스로가 장난감이 돼서도 잘 노는구나

언제부터 혼자 노는 아이가 됐는지는 모르지만

가끔 그들 속에 끼어서

한번 신나게 놀아 보아라

혼자 노는 아이야

인생은 그렇게 살아가는 거란다

혼자만 깊어가는 아이야

 

  

  

1

 

 

그리움마저

죄가 될 줄이야

 

누렇게 타 버린 소

 

  

 

 

 

2

 

 

소는 눈을 뜨고 있지만 앞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소는 서 있지만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소는 항상 가을산

 

  

 

 

3

 

 

눈을 감은 만큼 눈 뜰 수 있을 테지만

눈을 뜬 만큼 눈 감을 수 있을 테지만

 

소는 눈 감은 그 이상으로 눈뜰 수 있다

소는 눈 뜬 그 이상으로 눈감을 수 있다

 

 

 

6

 

 

소의 눈에는 태어나기 전부터

비가 내렸다

 

눈 껌벅일 때마다

세상 하나씩 지나간다

 

 

 17

 

 

빗물에도 소 발자국 떠내려가지 않네

눈보라에도 소 발자국 흐트러지지 않네

따라가면

 

소가 발자국을 핥고 있네

 

 

 

 

無題 6

 

 

 도선사 화장실에서 오줌 싸다가 늦게 발견한 날벌레 한 마리. 벽에 부딪혀 떨어지다가 날아오르기를 반복할 때 쏟아 낸 오줌 줄기에 빗맞은 날벌레가 마지막으로 힘껏 날아오를 때 나는 운명처럼(!) 오줌을 멈출 수 있었다.

 

 터덜터덜 내려오면서 하얀 변기 속을 빠져나간 날벌레에 나를 겹쳐 놓으면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나를 일으켜 세우는 지렛대 역할을 못 하는 자신을 물감처럼 허공에 풀어 놓고서는 멀거니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조성모, 「가시나무」 중에서

 

  

번호판 없는 고라니

 

 

깜깜밤중

고속도로, 길 잃은 한 마리의

고라니가 달린다

두 동강난

산기슭에서 떨어진

고라니에게는

질긴 타이어가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엔진도 없다

놀란 가슴만 있는

고라니의 숨결은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에서는

점점 눈물이 맺히는데

건너편 차선에서 사납게 달려오는

자동차의 불빛에

고라니의 몸뚱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몇 번,

고라니에게는

질긴 타이어가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엔진도 없다

자동차처럼

좌우측 깜박이도 없다

이제는

고라니의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끼어 있던,

엄마와 형제의 오줌 냄새가 스며 있는

달콤한 흙마저 떨어져 나갔다

고라니의 뒤에서

자동차가 냅다 덮친다 사람의

비명 소리가

칼날을 펴고 화들짝 날아올랐지만

 

자동차처럼 번호판 없어서,

나동그라진 고라니가

 

어떤 고라니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의 치욕

 

 

   1

거친 숨결, 멈추지 않는

분노

몸을 데면서까지

뛰어가지만

제자리

 

주전자의 삶

 

   2

오토바이에 맨 줄에 묶인

쪼그만 개가 그만,

힘센 오토바이 따라가는 것이 역부족이어서

넘어졌다

죄수같이 몸통이

끌려간다

두 발과 두 손이

하늘 향해

 

아 ․ 우 ․ 성

 

주위의 따가운 눈총 맞은 남자가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쪼그만

개에게 다가가자

개가 먼저 제힘으로 일어나면서

―주인, 만세!

―충성!

놀랍게도 온몸으로 꼬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