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대

  

 조개구이 먹으러 태종대 간다 KBS일박이일에 나왔던 집은 유명세를 치르느라 바쁘고 포장마차로 간다 비닐천막 구멍으로 바닷바람이 술술 들어와 서늘하다 목소리 걸걸한 아주머니는 자리 갓난아기에 붙어 앉아 일손을 놓고 까꿍까꿍, 연탄불에선 조개가 자글자글 밖에선 하늘 쪽이 불그스름하게 익고 바다 배들은 전기회로도 스위치를 닫는다 기쁘고도 서러운 것이 노을 때문인가 약해진 잇몸에 질긴 조갯살이 근심이구나 포장마차 바다를 나는 자꾸 기웃거린다 어두운 바다 여기저기 배들이 꼬마전구를 밝혀 몸도 환하게 출렁인다 별들도 저희들끼리 손잡고 출렁인다 망개장수를 불러 망개떡을 사먹고 은박지 조개양념에 볶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 먹는다 바닥이 드러난 어둔 하늘에 은빛으로 구겨지는 , 별들...... 영도구청을 지나 영도를 바퀴 돈다 바다를 잇몸처럼 끼고 사는 곳은 기쁨과 서러움이 방향을 바꿔가며 전류처럼 흐른다 김진숙씨가 크레인에 300 넘게 올라가있었던 한진중공업이 어디냐 묻는데 바로 차창 밖이다 크레인도 보인다 김진숙씨의 외로움에 바다가 했을거라 생각한다 위로와 힘이 되어 역시 바다일거라고 잠깐 생각하며 돌연 나는 숙연해져 조개처럼 입을 다문다

 

 

 

하늘을 붕붕 날다

  

기상이변으로 꽃들이 뒤죽박죽으로 피고 지는 봄날,

태어나 처음으로 종기가 나서 그것도 가슴에

깊숙이 나서 나는 겁을 먹었다 겁먹은 나를

겁주려는 종기는 단단해지고

며칠 벼른 끝에 고약을 붙였다 고약한

종기에서 고름과 진물이 흐르고 그것은

찌릿찌릿한 고통이면서 참을 없는 가려움이기도 했지만

년이 지나 다시 만난 옛사랑은 찌릿한

아픔도 견딜 없는 가려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맞춤법이 틀린 오래된 책을 펼쳐 읽는 것처럼 어색하고 신뢰가 가지 않는

계단을 오를 가끔 무릎이 삐끗했고 인간관계도

번씩 삐끗해 싫은 사람은 다시 보기 싫어졌다

나는 정의롭고 공명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부끄럽지 않게는 살고 싶었다

차등지급하는 성과상여금을 똑같이 나누자는 제의는 정도였다

그들에게 의견을 말하는 얼굴은 붉어지고

종기에서는 진물이 질질 흘렀다

몇몇의 후배들에게 거절당하고 좌절한 가슴은

근질근질 고통스러우면서도 찌릿찌릿 가려웠다

우리가 그들에게 없었으므로 물려준

없었으므로 늦은 나는 얌전히 고약을 갈아 붙였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밥상 찌개는 뚝배기에 말라붙었고

반찬은 김치에 고추장 같은 고약 종지.

괜찮아요, 조신한 후배가 말했다

, 그러고서 나는 밖으로 나와 누군가에게 쫓기고

하늘을 붕붕 날아다녔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하늘을 나는 꿈을 꾸다니 하여간 하늘을 날아다니니

기분이 좋긴 좋네

 

 

 

주루룩 흐르는 눈물보다

 

 

 변기 옆으로 흘린 오줌, 지린내, 아침활동은 자율적으로, 책상 흐트러진 지우개 가루, 주의 산만한 책상다리는 부러진 연필심을 문질러 교실바닥을 검게 먹칠하지, 매실, 오미자 따위를 먹다 흘린 검고 진득한 자국은 동글이밀대로 빡빡 밀어야해요, 물기를 너무 짜버리면 얼룩이 닦여요, 멍하니 앉아있는 아이, 눈빛, 말을 걸면 눈물을 흘릴 듯한 , 어린 나이에 세상의 밑바닥을 먼저 체험한 체념한 눈빛, 물기 마른 밀대로 마음 얼룩을 문대고 문댔을 , 다른 눈빛,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는 아이, 흘릴 듯한 눈물이 아니라 주루룩 주루루룩 범벅이 되는 눈물, 칠판에 이름 적히고 세상의 종말을 맞은 비참해진 얼굴, 가면 같은 얼굴, 자라지 않는 손톱, 동생과 비교 당하는 구겨진 자존심, 부러진 연필심으로 속을 시꺼멓게 문지르는 아이, 주룩 주루루룩 흘리는 눈물보다 흘릴 듯한 눈물이 절망적이지, 아프지, 위로도 꾸짖음도 없는 , 저도 알지 못하는 삶의 진득하고 검은 얼룩이 동공에 박혀있지, 아침활동은 자율적으로, 변기 옆으로 흘린 노란 오줌, 코를 찌르는 지린내......

 

 

 

우리끼리 좋아도,

 

 

인터넷으로 주문한 바지는

허벅지까지만 나를 허용하고

융통성 없는 입을 이상 벌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느끼는 완강한 거부의

그렇게 악착같이 나를 집어넣으려 애쓴 일이

나이 들어 있었던가

 

신축성 없는 세월은

허벅지까지만 우리를 받아들여

입지도 벗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래도

우리끼리 좋아 술을 마시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 우리끼리 좋아도 세상은 좋아라

너스레를 떠는 것이지만

입지도 벗지도 못한 바지로 엉거주춤

춤도 추는 것이지만

양푼이에 보리밥을 비벼먹고

끝도 없는 논쟁에 빠지는 것이지만

사용설명서도 없는 인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저마다 마디씩 조언도 던져보는 것이지만

간절함을 찾으려는 간절함으로

서로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다

주문한 것과 다른 삶에 어리둥절해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비루하게나마 살아있으므로

반품할 없는 세월을 걸치고

, 그냥 우리끼리 좋아도 세상은 좋은 것이라

 

 

뚱보식당

 

 

 범일동 뚱보식당은 오래 되고 낡아 웃풍이 심하고 탁자 다섯 개를 길게 이어 붙이고 마주 앉으면 운신할 공간이 거의 없어 달걀판 달걀처럼 제자리에서 고개만 이리저리 돌리며 붙박여 있어야한다 가스렌지 위에선 소고기를 듬뿍 넣은 전골이 끓고 앞치마를 두른 숙모님은 차곡차곡 포갠 앞접시 위에 스텐국자를 얹어 탁자마다 올려놓으신다 어머님이 해온 호박버무리, 작은 시외숙모님이 아침에 바로 끓여온 메밀묵이 놓이고 고성 시누가 썰어온 회는 초장에 몸을 담그기 바쁘다 늦게 사람들을 위해 명은 달걀곽에서 나오고 그를 위해 사람은 몸을 앞으로 숙여야한다 그래도 가운데쯤에 쪽문이 있어 답답한 출입이 숨통 트인다 문으로 나가면 당겨 내리는 좁은 화장실이 있다 음식으로 불리고 케이크에 불을 켠다 어머님은 기다란 곽의 한가운데 균형을 잡고 앉아 웃풍의 힘을 빌어 번에 ! 촛불을 끄신다 백발이 뭉게뭉게 크림처럼 피어오른다 러시아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비숫한 생김새에 크기만 다른 세트 삼대 친족들은 앉아서, 일어서서, 혹은 반만 일어서서 손뼉을 친다 기다란 곽이 출렁인다 뚱보 시외삼촌은 커피물을 올리신다

 


추석 무렵

 

 

지진이 일어났다

깊숙이 자고 있던 지진파가

부스럭대며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족발집에서 인간관계의 균열에 대하여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존재의 흔들림에 대하여, 흔들림으로

조직이 어떻게 뒤틀리는지 어떻게

혼란에 빠지는지 침을 튀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게 밖으로 나와 전화기를 들고

불안에 떨었다 멀지 않은 원전을 우려하는

소리도 있었다 중력보다 묵직하게

몸을 끌어당기는 취기를 밀어내려고

나는 눈을 크게 껌벅이는 것이지만

여기, 소주 !

족발접시는 비어가고 소주잔은 차올랐다

우리 믿음의 접시는 바닥을 드러내고

울분과 분노와 공포가 밑까지 차올랐다

자꾸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밤이었다

 

남은 지진이 우리의 침대를 흔들었으나

아침이면

선물세트를 손이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택시문을 무겁게 열고 나왔다

 

 

심폐소생술

 

 

바닥에 무릎 꿇고 가슴을 꾹꾹 누르다

나는 그만 둔다 옆에 서있는 젊은 소방관은

환자가 죽는다며 재촉한다

나는 얼굴이 붉어지며 다시

겹쳐 깍지를 끼고 힘을 준다

그러다 슬그머니 손을 푼다

상체만 덩그러니 놓인 마네킹을 대하니 아무래도

싱거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라고 머리가 자꾸 말한다

죽어가는 이는 이렇게 조용하지 않다, 라고도 말한다

바다에 묻힌 어린 목숨들 때문에

우리는 교육을 받게 되었지만

죽어가는 아이들을 명도 살리지 못했다는

무력감만 학습될 .

이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위선의 제스쳐

마네킹은 말이 없다

꼬집어도 꿈쩍 않는다

무덤덤한 마네킹이 나인 듯도 하고

우리인 듯도 하고 우리가 미워하는 권력자인 듯도 하다

도무지 여린 목숨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조잘대고 깔깔대고 사랑의 문자를 타전했으니

누구보다 생생하게 반짝반짝 살아있었으니

 

그리하여

나는 실감나지 않는 응급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정작 죽은 것들은, 죽어가는 것들은 따로 있으니.

 

 거미에 기대어

 

 

엄마집 천장을 가득 메운 거미줄

천장과 벽이 만나는 솔기에 실밥처럼 너덜너덜 붙은 거미줄

엄마집은 거미가 부족(部族) 이루었다

거미의 엄마, 거미의 아빠, 거미의 할아비의 할아비까지 죄다

엄마집에 모여 엄마 숨결을 나누며 살고 있다

나는 붉은 플라스틱 의자를 딛고

거미줄을 치우다가

살아있는 거미를 만나기도 하고

죽은 거미를 만나기도 한다

거미는 비쩍 마르고 눈에 띄지도 않는다

벌레대신 엄마의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먹고

살았을 것이다 그것마저 없는 날엔

낡은 벽지를 갉아먹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몸통이 저렇듯 벽지 색깔과 일치할 있겠는가

도망도 간다

가느다란 다리로 빈약한 몸통을 지탱하고

허술한 유모차에 기댄 노인처럼 간신히 서있다

집을 철거하는데도 가만 보고 있다

가끔 엄마가 먹는 국그릇이나 물컵에 스며들어가기도 했을 거미, 거미줄

엄마가 성모마리아 앞에 기도할

같이 고개를 조아리고 여덟 다리로 성호를 그렸을 거미

 

독거와 거미 사이

뜯어진 외로움의 솔기마다 바늘 같은 다리를 갖다 대었을

거미, 거미줄

 

얘야, 내가 어미란다

 

 꽃들이 저물고

 

 

꽃들이 저물고

삐죽삐죽 연둣빛 번지는

아래 오래된 주점에 앉아

막걸리에 홍어, 파전을 주문한다

흐린 하늘, 가늠할 없는 빗방울

댓돌에 벗어놓은 신발이 젖을까

주인장은 신문지를 내밀지만

우리는 속에 콩나물을 집어넣기 바쁘다

달큰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아래 신도시 켜지는

노오란 콩나물대가리들

우리들 가슴에는 영원히 소화되지 않는

노란 슬픔이 도사리고 있다

무슨 이야기들을 했던가

학교 이야기, 선거 이야기, 떠도는 소문들

아주 오래되고 낡은, 새롭고 혁신적인, 이것도 저것도 아닌.

꽃을 꽃을 부정하여 잎을 틔우고 겨울이

겨울을 부정하여 봄을 부르고

우리가 우리를 부정하여

우리를 잉태하는 봄밤

가게 불이 꺼지고도 우리는 우리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을 보듬고

한참을 뭉그적댄다

신발을 멀쩡하다

조금 젖어도 좋으련만

젖은 신발로 젖은 세상을 흔들흔들 걸어가도 좋으련만

 

 

새롭고 따뜻한

 

 

중앙현관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마리

나를 피하지도 않고

몸을 외로 꼬고 앉아

곳을 본다

 

화단가

날개 접은

까치 마리

 

날을 맞이하는 자세

 

숙직어르신은

티비를 크게 틀어놓고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소리도 들으신다

그러면 어떠랴

 

날이다

 

하늘로만 날던 까치가

안심하며 땅에 내려앉고

눈치 보며 먹이 찾던 고양이가

여유롭게 앉아

하늘을 쳐다보는

 

새롭고 따뜻한 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