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기억]

                                                

 

 

 

대구 남구청 민원실 호적계에서

어느 날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했지만

나를 낳은 어머니의

생년월일도 주민번호도 없었다.

 

2007627

호주제 폐지 시행일을 기점으로

이 전에 돌아가신 사람은

생년월일, 주민번호는 알 수 없다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가셨지만

나의 두 눈에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의 생모가 언제 돌아 가셨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이제 나의 눈물은 마르고 없었다.  

 

자연과 인간을 존엄 존귀하게  

참 된 사랑의 감성과 감흥

세상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촌철살인의 창작을 말하면서

 

태양을 먹는 사막의 나그네처럼

사랑의 목마른 갈증을 풀지 못하고

야자수, 오아시스를 찾는 중생처럼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기억은 과거에 머물고 있었다.    

 

나를 낳은 어머니는 어릴 적

세상을 떠나가셨다 했던

아버지의 말씀만 믿고 살았다

 

청년,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어디에 살아 계신다는 소식에

 

어느 날

이재용 남구청장의 조언으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생모 김계연을 찾았고 만났지만

이복남동생과 살던 모습 볼 때    

그 땐 정말 너무 서먹서먹했다.

 

어머니는 7월 무더위에

냉수에 밥을 말아서

새우젓갈 한 젓가락  

된장에 풋고추 찍어먹던

그 가련한 모습을 볼 때  

가슴 철렁거리는 찡한 마음은

 

19947월 총파업 당시

긴급체포로 구속 되어

1년 쯤 감옥 살고 나온

상신브레이크해고노동자로

자주 오가지 못했던 것이

변명 일 수밖에 없겠지만  

 

하루하루 포장마차 하면서

밤낮 가정생활 쪼들렸던 그 시절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기억은

빛바랜 낙엽 잊혀 진 추억이 되었다

 

 

  

2.[8군 봉덕동아이들]

 

 

 

 

8군 봉덕동아이들은

어린 시절 볼거리가 많았다

가끔 미군장갑차를 보고

미군지프차에 군용트럭을 보며

때때로 정찰기가 날고

코브라잠자리비행기가 날아가는

8군 봉덕동은 참 요란했다

 

어린 시절 미8군 담장 따라

이중철조망 담장 길을 따라

파리한 눈빛에 까만 얼굴로

얼룩무늬 개구리군복을 입고

군홧발 딱딱한 소리 내며

까만 얼굴의 하얀 이빨로

쫑알쫑알 거리는 미군을 보면

8군 봉덕동아이들은

"깜디"

"코쟁이"

"양키"라고 외치고 놀려 댄다

 

둥그런 눈빛의 놀란 얼굴

까만 얼굴의 성난 이빨로

쫑알쫑알 거리고 씩씩대며

시커먼 양키손이 달려와 때리면

8군 봉덕동아이들은

"깜디"

"코쟁이"

"양키"라고 외치고

연탄재를 굴리며 짱돌을 던졌다

 

토끼눈빛으로 놀라서

겁먹은 얼굴로 달아나는 미군을 보고

"만세" "만세"하며 좋아했던

그 시절 지금도 생각이 난다

 

 

아득하게 세월은 흐르고 흘러

8군 봉덕동아이들은

이제 청년노동자가 되었다

매일 같이 야근을 마치고

통근버스에 지친 몸을 실고

8군 캠프워크

8군 캠프헨리를 지나 갈 때면

아직도 미제사탕을 빨고

미제껌을 씹고 걸어가는

8군 담장 길 너머

대구시 남구

봉덕동, 대명동의 미국이고

"깜디"

"코쟁이"

"양키"의 미군땅이다

 

어찌해서 남구만 그러하랴

"이천동" "대봉동" 중구에서

동구 동촌 "K2공군기지"

경북 왜관 "캠프캐럴"까지

 

우리가 사는 마을은

살기 좋은 방방곳곳마다

양키치외법권지역으로

양키군바리가 양주 마시고

양담배연기를 내품는

이중철조망 군사경계지역이고

이 땅의 민간인출입금지구역이다

 

오늘도 야근을 마치고

생산의 지친 몸은 통근버스에 졸며

8군 캠프워크

8군 캠프헨리를 지나갈 때면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8군 봉덕동아이들이 생각난다

 

8군 봉덕동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자기 가정을 지키며 살고 있을까

어린 시절 미8군 봉덕동아이들처럼

"캄디"

"코쟁이"

"양키"라고 외치고

미군을 놀려대며 살고 있을까

 

자기 일터나 마을에서

시커먼 양키손이 달려와 때리면

연탄재를 굴리고 짱돌을 던지며

"깜디"

"코쟁이"

"양키"라고 외치고

토끼눈빛으로 놀라

겁먹은 얼굴로 달아나는 미군을 보고

"만세" "만세" 하며 좋아했던

어린 시절 미8군 봉덕동아이들처럼

 

8군 봉덕동아이들은

지금도 그렇게 잘 살아가고 있을까

 

 


3.[이천동 골목길]

                                             

 

 

 

중학생 청소년시절

옆구리에 신문을 끼고

이 골목 저 골목 내달리며

새벽을 깨우던 기억 저 편

 

두부나 맛있는 어묵 사려

따끈한 두부나 비지 사려

딸랑 딸랑 종소리처럼

아낙네 두 바퀴 작은 손수레

조그만 냉장통을 싣고

놋쇠 종을 흔드는 소리

예나 지금이나

딸랑딸랑 맑게 들려 와도

 

대봉동 미8군 캠프헨리

이중철조망 담장 따라

이천동 미8군 이중담장 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건만

 

8군 이중담장 길 따라

오늘도 돌아가는 출근 길

가버린 청춘의 내 발걸음은

? 이리도 무거운 건가

 

 

 

 4.[빈 터에서]

                                                                                   

 

 

 

8군 캠프워크 관제탑을 돌아

빛바랜 붉은 벽돌 부서진 블록담장

30여 년 잡초만 무성한 빈 터에서

나의 발길은 홀로 머무르고 있다

 

미군병사 수화신호 깃발을 따라

코브라헬기 수송헬기 푸다다 딱딱

정찰기 웅 웅 웅 귀전에 맴돌고

8군부대 이중철조망 담장 아래

 

어느 날인가 회사예배당에 모여

아리아악기주식회사노조를 창립했다

 

안기부개입, 교섭거부, 노조불인정

사장 자택 월담하여 양주병을 깨고

이중회계장부 빼앗은 노동탄압사건

돼지사장배가 찢어졌던 그날의 기억

 

첫 직장 노동자 삶의 필름은 돌고

1977년 유신독재 칼날바람은 불어

노조위원장 3년 간부 2년 감옥살이

부서진 붉은 벽돌 허름한 블록담장

 

노조간부 형들의 순결했던 그 투쟁

꺾어도 쉼 없이 벽을 타고 오르는

다섯 손가락담쟁이 넓은 잎사귀처럼

오늘도 밤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5.[조선의 어머니]

                                                 

 

 

 

무명 학도병 의병 눈물인지

노동 현장 노동자의 넋인지

분단조국 통일열사 영혼인지

찬바람에 꽃봉오리 떨어지고

산짐승처럼 울던 4월의 밤

꿈 많은 검정교복 고등학생

친구 아버지는 죽임 당했다

 

언제부터 학교선생을 그만두고

대구시 팔공산 기슭에 살며

꿀벌을 동지 삼고 살려했지만

조선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조작간첩사건쇠사슬에 묶여  

박정희독재 사형장이슬 되었다

 

뼈와 살이 으스러져 부서지고

전기고문에 검게 맨살이 터지고

피고름 피멍든 고문자국 감추려고

시신까지 탈취한 추악한 유신독재

죽음을 통곡하던 친구의 가족들

어머니의 한은 구십 평생 남았다

 

암울한 세상 가슴에 흘린 눈물

강단진 마음을 된장찌개 담아

고봉밥 차려주던 친구의 어머니

인혁당재건위사건 슬픈 눈물은

지금도 쉼 없이 흘러내리지만

우리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분단 철조망을 걷는 그 날까지

참 된 삶의 그 길로 함께 가요

 

 

  

6.[대덕산을 내려오며]

                                                   

 

 

 

경북 김천시 무실마을

아버지는 종손으로 태어났고

일제식민지 강제징집을 반대했던

할아버지 문경석은

청년들을 모아서 북만주로 갔고

일본경찰이 집안을 풍지박살 냈다  

 

만주초등학교 여름방학 어느 날

아버지 문덕희는

고향에서 올라온 고모를 따라

친구가 보고파서 남녘땅 왔다가

삼팔선철조망 가로막힌 생이별로

다시는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고

조선반도 분단의 고아가 되었다

 

일제식민지 시기  

와세다대학 유학을 다녀와서  

김천시청 고급 간부를 했던

사촌친척집 문간방 살며

논밭농사를 아무리 지어도

머슴처럼 중학교 보내지 않아

분단고아로 상처가 깊었던 날

가끔씩 내게 말씀 할 때면

검정교복 중학시절 나는

찡한 눈물만 가슴에 담았다

 

앞산 대덕산을 내려오며

조선반도 휴전선철조망너머

그리운 할아버지 생각하면

부모 자식을 찢어 놓아

눈물 피고름 상처 맺힌

83년 세월 가련한 아버지

 

대구시 남구청 호적에는  

지금도 할아버지 문경석이  

호주로 있어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아 놓고

이별의 눈물로 살아왔던 세월

이제 참된 자주평화통일 그 날

우리끼리 만나 하나로 살아가고 싶다  

 

 




7.[8군 캠프워크 담장 따라]

                                             

 

 

 

앞산 대덕산을 내려오며

8군 캠프워크 담장 따라

그 길을 걸으며

철조망 분단가시 가슴에 품고

미군부대 보초병이 지키는

사거리 신호등에서

질긴 시간을 갉아 먹고 있다

 

앞산공원을 내려 와서

마을로 가는 길이 여기 뿐 인가?  

꼴 보기도 싫은 양키미군

8군 캠프워크 담장 따라  

이리 갈 까? 저리 갈 까?

좌로 가면 대명성당

우로 가면 보훈청

좌측도 아니고

우측도 아니다

8군 캠프워크 담장 따라  

우리의 갈 길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 지?

 

바로 건너가는 마을은

자주평화통일로 살맛나는  

좌우가 하나 되고

북남이 하나 되는 그 길인가?  

내 일생 한 생명을 걸고

8군 캠프워크 담장 따라

그 길을 돌아 돌아가며  

파아란 하늘 새털구름 품고 간다

 

 

  

8.[깡통]

 

 

 

 

길을 가다 울적하면

찌그러진 깡통을 차보라

 

세치 혀라고

빈말만 지껄이는 깡통도

자기 갈 길을 알아서

차이는 대로 굴러가는데

 

길을 가다 답답하면

주먹 쥔 두 손을 펴보아라

 

손가락뼈 마디마디

억센 군살 노동의 힘도

자기 갈 길 모르면

일터는 피땀 절은 죽음이다

 

 




9.[8군 민들레]

 

 

 

 

8군 이중담장 아래

피어나는 작은 민들레야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너는 잘도 피어나는 구나

8군 송수탱크 아래

봉덕동 이천동 대봉동은

대구시 남구를 갈라놓은

이중철조망 분단의 땅

 

8군 이중담장 따라

피어나는 작은 민들레야

참으로 고운 너는

참혹한 더위에도

칼바람 추위에도

참 올곧게 피어나는구나

 

8군 담장 60년 세월

환갑 지난 육신 시들어도

밟히고 뜯겨도 다시 살아나는

질기고 강한 작은 민들레야

민초의 한을 품고

사시사철 깊이 뿌리 내리는

너의 강철 깡다구로

진정 진솔하게 피어나는구나

 

8군 이중담장 아래

피어나는 작은 민들레야

캠프워크 골프장 지나

캠프헨리 미군장교 숙소 너머

이중담장 이중철조망 없는

우리 땅 식민지 남녘하늘에서

분단조국의 북녘하늘까지

너의 곱고 하얀 씨앗으로

수천 만 생명의 꽃이 피는 꿈을

오늘도 나는 꿈꾸고 있구나

 

 

10.[길 따라 돌아간다]

 

 

 

 

하루 종일 굶주리며

폐수 쏟아지는 도랑길 넘어

이 공장 저 공장 두리번거리며

전봇대에 붙은 구인 광고지 살피며

길 따라 돌아간다

 

공장 담벼락 구멍가게에서

라면으로 허기진 배 채우며

이 거리 저 거리

잿빛 어둠이 올 때까지

길 따라 돌아간다

 

눈치 보면서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 마시고

물량걱정 불량걱정

생산라인 따라 내 푸르던 청춘도

길 따라 돌아간다

 

찌르렁

벨소리와 함께 잔업은 끝나고

공단거리 종종 걸음으로

찌들린 자취방까지

홀어머니, 누이동생 기다리는

단칸 셋방살이 슬레이트집까지

길 따라 돌아간다

 

너도 없이

나도 없이

모두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공장도 시골도

사회도 나라도

세상살이 모든 것이

길 따라 돌아간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는 것이 있다

 

노동자의 일손이

내일을 약속하며 끊임없이 돌아가도

사장의 썩어가는 머리는

건강한 생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저임금의 단맛이

언제부터 언제부터

쐐기를 박아 버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너희가 자본의 족쇄 채운다해도

자본가 죽음의 길 따라

가지는 않겠다

 

어느 누가 외면해도

노동자의 길 따라

내일의 밝은 희망 약속 할

민주노조 공단 길 따라

길 따라 돌아간다

 

   

11.[비정규직노동자] 

 

 

 

 

나는 비정규직노동자 

사람들은  

나를 보고 사회적 약자라고

사회 양극화의 말단에서

우리가 살아간다고 말한다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늙은 어르신과  

부모에게 버려진 고아들 

길거리의 노숙자와

법외 사랑하는 동성애자들 

 

몸을 파는 자갈마당 매춘부와 

정신과 신체 휠체어 장애인들  

최저 생활 보호대상자와

일자리 잃어 방황하는 실업자

산업재해자와 장터의 노점상인들  

 

찬비가 오는 날에

새벽신문배달원 아저씨와

새벽우유배달원 아줌마

골프장 캐디와 조경기사 

학습지배달원과 학습지선생들

 

야간에 질주하는 택시노동자

덤프트럭, 레미콘

화물차량노동자는  

노동 3권 노동기본권도 없는

개별사업자 사장의 껍데기에 

특수고용직노동자로 

이 땅에 살아가는 비정규직노동자 

 

 

달동네 철거촌 세입자를 쫓아내는

비정상적인 집행관이 통하고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 정부  

3D 업종에 일하는

동남아 외국인노동자들은

기름때 낀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이 땅  

 

오늘도 섬유공장의 열기 속에  

3교대 주야간 맞교대근무로

마음도 육체도 생활고에 지쳐가고

가녀린 아내는 4대 보험도 없는 

소사장제 개별사업자로 

특수고용직노동자로 일하는 공장

 

이 땅에 살아남은 노동자는

850만이 아니라

1500만 노동자 모두가

비정규직노동자로 보이는 세상

 

국민이 일하다 

병이 나고 다쳐도 무상의료 안되고

배워야하는 아픔과 상처까지

갈아 먹어도 무상교육이 없는    

귀가해서 잠자야 할 집에서

임대료, 공과금 걱정 때문에

모두 살아 갈 무상주택이 그리운 나라

 

무능하고 책임지지 않는 정부가  

민중의 삶을 참혹하게 하는 현실  

백성을 무시하고 죽이는 정치로

아직까지도  

사기집단의 정당정치가 판치는데  

 

반민족 반민중의 섞은 뿌리박은 반동이  

백성의 민중항쟁의 저항에도 무너지지 않고

수구보수골통의 힘만 믿고 버티고 있는데

 

 

비정규직노동자가 

변혁적 노동자관점으로 사회를 보고

역사적 유물론사관으로 생각하고   

아무리 세상을 보고

인간과 사물을 판단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반도 분단의 남녘에서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12.[우리들 맞잡은 손]

 

 

 

 

돈내기수당에

굶주린 빈창자는

겨울바람에

유리가루 채우고

귓가는 차가워도

 

어께 활짝 펴고

홍합국물

소주 한 잔에

생산현장

하루 툭툭 털어낸다

 

하루종일

2,500

3,000개를 찍어도

"생산라인 개수 부족하다"

조장은 울상 짓고

 

100, 200짝 씩

상자에 담아내도

"좀 더 해라" 보채는 반장

그 목소리 짜증난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1, 2년 세월은 흘러

자동차라이트 제품생산에

온 몸은 지쳐 가는데

 

금형가다 유리제품 찍고

용접불꽃 튕겨 봐도

1,800도 유리가루 녹는 열기

두 뺨은 달아올라

핏기어린 눈동자

붉은 얼굴은 아려온다

 

 

희뿌연 안개처럼

화공약품 분말은 날려

머리카락 올마다

콧구멍

목구멍 서걱대고

남 몰래 물 마셔도

입안은 타는데

화공약품 유리가루

1,800도 넘어가고

붉은 도가니 24시간

눈물처럼 녹아 흐른다  

 

이마에 흐르는 땀

두 눈에 흘러들고

수백, 수천 번 씩

제품을 찍어내는

반복되는 성형작업

근무교대 하고 나면

소금 낀 온 몸

속옷까지 다리를 감아  

수돗물로 몇 번 씩  

마른 가슴 씻어내도

 

유리공장 6년 동안

소금 땀 절은 삶

한 달 두 달을 못 가

이리 저리 찢어지고

번들거리는 불길에

떨어진 작업복처럼

금형기계 깔린

엄지손가락 으깨진 뼈마디

욕쟁이 이과장 불량소리

유리램프처럼 깨어지고

오늘도 검은 세단승용차  

썩은 금오강변을 따라  

비개 낀 뱃살 사장을 싣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사원을 가족처럼"

정문 표어는 떨어져

흙바람에 구겨져

이리저리 뒹구는데

 

퀴퀴한 쓰레기

매스꺼운 배기가스

여기 저기 구멍 난 장갑

까만 마스크로 파고들지만

우리들 맞잡은 손

굳은 살 주먹으로

분노의 입김 내품으며

우리들 노동세상 위해

1,800도 유리도가니 불길로  

함께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

 

 

 

13.[우리의 한 길]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한 길

자주와 평화로 가는 길이어라

우리의 가슴이 찢어져 슬퍼도

우리는 참된 한길을 가야하리

 

우리끼리 자주로 가는 그 길

천둥번개 치고 폭풍우 몰아쳐도

분단의 장벽 철조망 걷어내고

우리는 참된 삶을 살아가리라

 

변혁을 꿈꾸는 우리의 한 길

해방의 주인이 되는 길이어라

우리의 발바닥 갈라져 아파도

우리는 참된 한길을 가야하리

 

우리끼리 해방으로 가는 그 길

칼날바람 불어 눈보라 휘몰아도

굴종의 족쇄 쇠사슬 끊어내고

우리는 참된 삶을 살아가리라

 

 

 

14.[들불]

                                                 

 

 

 

구미 상모동 금오산능선에  

붉은 노을 빛깔로 물들면

새봄을 열어가는 농부의 손  

논두렁마다 불꽃 지피우면

 

논두렁 밭두렁 새 까마게 타고

붉은 불길 세찬바람 휘몰아가고

썩어 곪아가는 세상 모든 것들

껍데기 쭉정이까지 싹쓸이하듯이

 

맑은 눈빛 농부의 꿈과 희망은

참 노동의 영근 열매를 꿈꾸고

새봄 새날 품고 사르는 들불처럼

차디찬 어둠을 활활 태우고 있다

 

 

 

 

15.[장미의 가시 사랑]

                                               

                                         

 

 

장미의 가시처럼

날카로운 가시로

세상에 탐하는 모든 것을

경계하는 사랑이라면

 

아침 이슬 꽃잎에 맺히는

장미의 가시처럼

자기 흠을 알고

허물을 벗는 고통으로

가슴 깊은 곳에 흐르는

눈물의 성찰이라면

 

장미의 가시처럼

날카로운 가시로

자신을 찌르는 아픔을 참듯이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랑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