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석의 사기 진작 


보드라운 잔털의 기둥에서
혼혼한 씨물이 흘러 나옵니다
후각과 비강을 태우는 뜨거운 화염
혼침해진 그녀는 긴 기둥속으로 몸을 숨깁니다
씨물은 그녀만의 소유가 아닙니다
이미 공중 부양중인 새의 부리
벌떼의 흡착판이 쉴 새없이
수액을 탐닉하는 저들의 사냥 터
왼종일 푸르르 깃털이 날립니다
앵앵 사이렌 소리가 요란합니다

언제나 사냥꾼이 지나간 길목에는
수두를 앓고 생긴 상처처럼 표적이 남지요
이 표적은 합방도 없이 수정이 이루어진
참으로 해괴하고 망측한 것이라
뿔을 달고 나옵니다
풀이 달려서 인지
갈대도 쑥덕쑥덕 머리를 흔들고
갈참나무도 바스락 바스락 몸을 비틉니다
새로운 개체로 변이된 유전자의 변형이라면
정성적 [定性的] 변이인지
자연적 변이인지 야릇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돌연변이라 해도 생명의 잉태는 경이롭고 숭고해서 축복해야 합니다

푸서리에서도 초라하지 않은 행색
삐쩍 마른 볼품없는 몰골이 아닌걸 보면
분명 방화범은 훌륭한 유전자를 지녔을 겁니다
카랑카랑한 금속 목소리
살인적 초열에도 혼절치 않고
쾌미의 노래, 춤추는 녹의로 포릉포릉
양수를 불려
오동통 살이 오른 가시 달을 해산합니다
그 옛날 토끼가 방아를 찧던 동화속 달을 소환하면 이처럼 토실토실 크고 야물었을까요?

가시 달을 연결하면
수 만 볼트 전류가 흐르는 초대형 트리가 되는데요 트리는 성관 [盛觀] 을 에워싸고
성벽에  방호막을 칩니다
독거미도 오르다 감전되는 무시무시한 방호벽이지요
방호벽에서  폭죽이 터지면 어미 새도 고단한 날개를 접고 뭇 벌의 흡착판도 뱅그르르
해 그림자를 따라 맴돌다 소리없는 목 울음 울며
무덤 속으로 사라집니다

하찮은 생이라 얕보지 마세요
인류의 진화답게 생존 염색체를 배양
불멸의 유전인자를 생산하는 고고한 족보입니다
그러니 빠드득 양수가 터지는 격렬한 진동에
놀라지도 마세요
감지되는 균열은 변이를 마친 유전자의 숨비소리니까요
볼모의 땅에 뿌리내려 불멸하는 만대불후작의 탄생이니 고귀하게 생각하셔야 해요
천년을 거슬러 하얀 꽃잎 흐트러진
그루터기로 거듭 나
가난한 자의 주린 배를 채우고
곤고한 이의 쉼터가 되는
우주의 중심,땅꽂이를 간지르며 환생하는 천년을 사는 돌이랍니다



겨울 밤 

저무는 창가에서 별이 뜨기를 기다린다
별이 뜨면 꿈을 꾸는 사람아
자박자박 젖어드는
폐부를 찢는듯한 육중한 고독에
호젓이 눈시울 붉히지 마라
숭숭 구멍 뚫려 서걱이는 가슴에도
갈맷빛 파도의 추억은 푸르게 푸르게  자라나
짙 푸른 별로 뜬다
외로워 마라
총총한 순백의 별자리도 
회색 낯빛의 흐느낌으로
모로 누워 숭덩숭덩 목 울음 삼키며
뼈 아픈 그리움의 노래를 불렀다

벌목으로 황폐해진 벌판
날 선 그림자 세워 울부짖는 동야의 거친 숨소리도
알고보면 홀로 선 외로움을 감추려는 고도의 위장술이다
그러니 교묘한 전술에 추포당하여 오열하지 마라
곰팡이 처럼 피어나는 고독에 모혈하지마라
한 줌 두 줌 먹빛 고독의 별을 따
묵향의 향기로 개명하면
따스하고 섬세한 살빛 동야가 소환되어
반짝이는 별의 향기
살빛 향기 품은 별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리니





 사람 냄새가 그리우면 나는 장으로 간다 


입담좋은 그녀의 구변에 시장통이 요란하다
키 158cm 몸무게 70kg
불룩한 배를 스캔하면 영락없는 임신 5개월
365일 5개월인 그녀의 배는 장날마다 만삭

콩나물 두부 깻잎장아찌 고추절임
저가의 경매에도
그녀의 전대는 입을 활짝 벌리고
다섯 살 짜리 손녀도 얼굴 색 변한다는
천원짜리 지폐를 날름날름
잘도 집어 삼킨다

인심좋은 녀편네 풋나물 팔듯
천원짜리 두 장이면 듬뿍듬뿍
덩치만큼 후한 덤에
봉다리는 토하기 직전인데
더 달라 입 벌리는 밉상맞은 아낙들
" 마트가서 사. 천원짜리 덤 자꾸 손 내밀면
엄마 인생 서글퍼 " 건넨 봉지 낚아채며
암팡진 속사포로 조크를 날린다

좌판은 박장대소,
배꼽빠져 실신하기 직전이다
인기 폭발인 그녀의 구변에는
현란한 가위질의 엿장수도 울고 갈 판

사람 냄새 풀풀나는
어런더런 북새통 좌판에서
할머니는 꽃순이
나는 웃순이

오늘 그녀의 배는 얼마큼 불러올까
사람 냄새 그리운 날
만삯인 그녀를 만나러 나는 일산 장으로 간다




노을


이보게 술 한잔하세
어허 어쩌나
나는 이미 거나하게 취한 걸
활활 타는 내 모습 보이지 않는가

소살 대는 바람과 한 잔
낮아지는 나무와 또 한 잔
무너진 자존감에 가슴 뜯는 친구
위로하며 한 잔 두 잔
휘휘 저었더니 이리 취해버렸다네
취한 내 모습 좋아 보이지 않은가

불혹의 나이에 골 깊이 패인
훈장 아닌 옹이를 미간에 박아놓은
저 친군 발바닥에도 옹이가 박혔다더군

자네는 무슨 하소연을 하고 싶은 겐가
인생사 별거 없다네
그저 흐르는 물처럼
흘러 흘러 가면 되는 거라네

나를 보게나
먹구름에 가려 잔뜩 찡그렸다가
바람에 숨어 펑펑 울기도 하잖는가
오늘처럼 이리 취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나



산수유 연가

내 일찍이 널 사랑한다 한 적 없으나
척박한 땅
봄의 전령으로 화사하게 피어나
하늘하늘 꽃물들이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천상의 선물일까
유혹의 날개를 단
황금 빛 고운 화관은

소살대는 바람속 비집고
영원불변의 사랑으로
아낌없이 아낌없이
순정의 속살틔워

세월 내내 흐드러지게
점점이 불 밝히는
봄 밤의 점등식


노숙자를 연대하다 


모란역 2번 출구 앞
인도를 점령한 무허가 가옥
어느 생의 행각일까
낡은 매트리스에는 세상과 단절된
유배 자의 고독이 흐른다
금싸라기 땅을 점령 제약 없이 경계 없이
새삼 부러울 것 없는 풍요의 행적에도
화해할 수 없는 빈곤한 희망
허무한 절망이 옆구리 터진 베옷을 입고 누워있다

어느 누군들
절망의 허파를 이식하고 싶었을까 마는
고독한 유배 자의 새우등에서
야윈 기억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가끔은 곰팡이 핀 절망을 씻고
밤하늘의 별을 세며
별빛에 누운 기록 하나쯤은 훔쳐내 보기도
했음 직한 남루한 홈리스니스

기울어지는 나의 모습이었다가
너의 모습이었다가
무언의 공허를 유발하는 처연한 자화상에
시린 통증의 바람 몰아 친다
이 순간은 노을빛마저 섧다
늦더위가 남았다지만 이불을 끌어다 당기는 잠결의 반사적 행동 양식[行動樣式]
차디 찬 냉소의 시선을 쪼개어 온기를 포갠다
재활의 압박붕대를 칭칭 동여매어
곧추세우고픈 모호한 연민이다

대나무는 세찬 비바람에도 탄성을 유지하려 속통을 비우고 죽순은 퍼붓는 장맛비에도
파란 순을 내민다 는데
곰팡이 핀 운명의 지팡이에 선뜻 길을
내어 주지만 않았던 들 한 뼘 높이도 안 되는 낮은 세상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가치 없는 무형의 존재로 전락하진 않았을 터
그의 이력이 담긴 내용물이 빵빵한
검정 비닐봉지
먹다 남긴 소주 반병
그리고 이미 바닥을 비운 빈 병들이
세상 속에 널브러져 두런두런
아찔할 정도로 소란하다

                                      

여름 바다...추억을 말하다 

하얀 모래 위에 남겨진 수많은 발자국처럼
우리의 추억도 그렇다

하늘과 바다
넘지 못할 경계의 끄트머리에서
갈맷빛 파도는 검은 기침을 뱉어내고
하얗게 부서진다

서러워 말아라
가슴을 짓누르는 기억의 단상(斷想)이
굽이굽이 바닷길을 돌아 나오면
푸른 청춘의 빛으로
뜨겁게 뜨겁게 포옹하던 바다야

소금기에 절인 솟구치는 그리움 토하며
환한 동살로 피어나라
은모래 빛 빛나는 해변
밤바다를 밝히는 찬란한 불꽃처럼
가슴에 꽃 등불 켜고

살다가 살다가
문득 외로워지면
백옥 빛 향기로 유희하며
에메랄드빛 빛깔로 속삭이던 바다야

모래 위에 떨군 추억을 밟으러
그리움 좇아가리니
꿈으로 피어난 사랑아
잠들지 말고 있어라

그윽한 목련 꽃 우려낸 그 날의 향기
찻잔에 담아
나 그대 입술 적시는 꽃물로 출렁일 테니


논골담 길 


동해의 젖줄
하늘 아래 일번지
동트는 마을

파아란 하늘 머리에 이고
낮달이 슬퍼 보여도
울지 않는다

옹기종기 주린 슬픔 감추고
오르고 내린
비탈진 언덕길

얼마나 뛰어야 할까
헐떡이는 숨 몰아쉬는
숨 가쁜 여정

오징어잡이
명태잡이 떠난 배
손꼽아 기다리다

시퍼렇게 멍든 가슴
바닷물로 채우고
절멸한 뱃고동 소리
담벼락에 새겼다


고인돌 


탯줄 끊고 
한 생을 살다간 웅장한 족적
선사에서부터 영원으로
암각을 따라 흐른다

풍우에도 흔들림 없이
지축 흔들어  깨우는
째깍째깍
수 억 만년 이어온 장구한 태엽 소리

고고한 달빛의 유연함 잉태하고
낭랑한 의식으로 합장한
영생으로의 염원
승천하여

안식하는 불멸의 굄돌이 되었다.


혼자만의 알람 (pieta)

별일 없냐, 간밤에 꿈자리가 사납더라
안위를 빙자한 그녀의 수화 문자는
등덩쿨에 휘감겨져 몸살을 앓은 그리움이 둥덩거린다

신발장에 놓인 가지런한 신발들의 수를 세어보다가
' 밥은 먹고 다니려나 '
허공에 흘린 독백에 목이 메었을 게다

살아온 숫자만큼의 공허한 바람이
버적거리는 지푸라기로 더듬더듬 활자를 키우고
" 무심한 것 밥은 먹고 다니냐  " 안부를 묻는다
손수건 흔드는 짧은 입맞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젖은 속눈썹을 본다 

지근지근 모래알을 씹다가 
나비의 날개로 팔랑거리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빈 우주에서
밤이 새도록 울었으리라

''사랑하는 우리 엄니 오래 사셔 ''
나부시 귀엣말 너불이면
다섯 손가락 마디마다 붉은 핏물 우려내 
수많은 지문이 찍혔을 
휴지통에 버려진 활자들 나열하여
음각을 새긴다








초저녁 선 잠결에도
행여 변방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놓칠까
귀마개 벗고 당나귀 귀 창에 걸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