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관

 

 

1. 문학을 접하게 된 계기와 배경

 

문학을 접하게 된 계기는 삼십 대에 중한 병을 앓은 적이 있다. 그때, 병실 문밖까지 죽음이 와 서성이는 거 같았다. 지나간 날들은 한 줌 바람 같았고 남은 생의 그 문양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에세이나 시의 형식에 의지하여 기록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문학과 동행을 하고 있다.  

 

 

2. 종교와 인생관

 

내 작품에는 가톨릭과 불교, 무속 더불어 이슬람 문화적인 내용이 혼재되어있다. 나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하지만 어떤 종교에도 편견이 없다. 종중의 종손이기에 천도재나 무속 등의 제의를 종종 접하기에 불교나 무속과도 친숙하다. 또한 회사 업무 때문에 중동지역 출장이 잦아 이슬람교에도 관심이 많았다. 종교란 질병과 죽음 그리고 사후 세계 등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원적 문제에 관한 것을 다룬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도 결국 인간과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귀결되기에 종교와 비슷한 접점이 있다. 하여 종교에 대해 사유를 하다가 그것이 모티브가 되어 창작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인생관은 다소 비관적인 편이다. 세상에 나올 때 어머니가 산고를 겪지만 태아는 몇 배 더한 고통을 경험한다고 한다. 죽음은 또 어떤가. 과거 몸이 아팠을 때 2인실에서 말기 암 환자와 한 달 정도를 함께 지낸 적이 있다. 그는 밤마다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다. 세상에 나와 저렇게 가야 하는 게 인간의 생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시리도록 먹먹했다. 태어남과 죽음이 시련이니 어쩌면 인간의 생은 구할이 슬픔과 고통일지도 모를 일이다.  

 

 

3. 문학과 우주

 

나는 시에서 우주를 다루기도 한다. 사건 지평선, 블랙홀, 빅뱅 이론과 같은 천체우주적인 이론을 차용 그것을 모티브로 한 시다. 어릴 적 강변 방천 둑이나 산복도로 밤하늘에선 무수한 별들이 붉고 푸른 빛을 뿌리며 흘러 다녔다. 별들은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청소년기를 지나고부터는 우주와 관련된 책들을 자주 접했다. 빅뱅이론에 의하면 천지의 물질은 약 140억 년 전에 한 점에서 폭발, 팽창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결국 별과 풀꽃과 돌멩이와 사람까지도 만물의 시원은 동일하다. 수십억 년 전 해변의 조개가 진화하여 창공을 나는 새가 되고 바다에서부터 뭍으로 올라온 원형 생물이 인간으로 진화된 것이다. 이런 우주의 신비를 시 속에 담아보고 싶었다.

 

졸시 「사건지평선까지의 거리」란 시가 있다. 사건지평선은 블랙홀의 경계면이다. 내가 경험한 사랑은 5차 함수 같은 거였다. 나 자신이 어리석고 무지한 탓이기도 하지만 여하튼 사랑은 힘들었고 실패로 끝났다. 다중우주 해석에 의하면 우주는 우리가 선택하는 순간 여러 개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무한개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주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또 숱한 우주를 선택하는 행위를 한다. 그중 사랑은 극단적 우주를 선택하는 것이다. 즉 블랙홀에 스스로 빠져들기 위한 행위가 사랑이다. 사랑의 선택은 자신을 블랙홀의 경계인 사건지평선에 옮겨 놓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4. 시론과 분인(分人)

 

시를 창작할 때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 먼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문장을 창조하는 것과 그러면서도 완전한 문장을 만든 것을 목표로 한다. 예컨대, 고독에 대해 서술할 때 “고독하다”는 문장은 “지독하게 쓸쓸하다”라는 문장보다 불완전하다. 내가 아는 어느 선배의 말인데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면 나는 심장을 꺼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 진술이 고독을 표현한 세상에 없는 완전한 문장에 가까울 거로 생각한다. 시는 혁명 같은 거다. 그런 의미에서 앞의 내용과 더불어 나의 졸시 「시안」은 시론인 셈이다. 안은 시의 혁명을 위해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시와 관련해서 아직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공부도 많다는 것을 잘 안다. 시의 본질은 오늘이 어제와 달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혁명적으로 다르면 더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나는 시안에 진입하지 못했고 시안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시안의 혁명을 꿈꿀 것이다.  

내 작품에서 ‘분인’이란 시어도 종종 등장한다. 그것은 ‘내 안의 내가 너무 많다’ 는 의미이다. 타인이 본 나, 내가 생각하는 나, 아니면 무의식의 나, 어떤 내가 정말 나일까, 라는 의문이 자주 든다.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다가 또 부정하다가 어떤 계기에 의해 평행우주론을 접하고는 모든 ‘나’의 존재가 ‘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상상인 것 같으면서 과학이다. 나는 평행우주론에 동의하는 편이다. 우리가 속한 우주를 벗어나면 또 다른 우주의 어느 별에서 동일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평행우주론이다. 그러니 일억 광년 거리의 어느 행성에서 또 다른 나의 분인이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5. 무의식의 흐름

 

때때로 장시를 쓴다. 첫 시집에 「비어秘語 혹은 비어悲語, 「제례의 구간」, 「시안」 등은 발표 당시보다 반으로 줄인 것이다.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순식간에 써 내려간 시들이다. 가령「비어秘語 혹은 비어悲語」는 무의식에 몸을 맡겨 둔 여행 같은 것이다. 메타포는 무수히 존재한다. 남성성이기도 하고 음악이기도 사랑과 미움이기도 확장된 우주이기도 하다. 운항하는 우주 그 속에서 아픔과 상처를 배경으로 한, 사랑과 이별의 서사이다. 한편으로는 지나간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의지와 상관없이 모호한 운명에 의해 흘러간다. 그러면서 어떤 구간에선 사랑을 하고 또 어떤 구간에선 미워하며 갈등한다. 기차에 오르는 순간 우리는 기차의 속도만큼 빠르게 낡아간다. 기차의 내부는 아름다운 지옥이기도 황량한 천국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 시공간 속에는 불편한 규칙과 윤리의 힘도 존재한다. 어쩔 수 없이 그것에 순종하려는 또는 이탈하려는 행위가 생의 과정일 것이다.          

 

 

 

6. 소멸과 생성과 윤회 그리고 게헨나

 

어릴 적부터 소멸과 생성, 윤회 등에 관심이 많았다. 「사막의 풍경」과 「모래시계」 등의 시는 그런 사유에서 생성된 시이다. 나는 시를 생산할 때 인간 내면과 외면에 복잡하게 얽힌 시간의 흐름을 투시해보려고 노력을 한다. 현재가 육신을 구성하고 그것은 일견 완전해 보이지만 또한 순간적으로 소멸해버릴 불완전한 존재이다. 4차원 시공간 속의 윤회, 그것은 우주가 존재하고 시간의 흐름이 계속되는 한 반복될 것이다. 불가해한 시간에 갇힌 우리는 그 속에서 생로병사를 겪는다. 그것은 사막을 견디는 것이며 낙타와 은빛 여우가 심장에 고독 같은 족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몸을 뒤집으면 타인의 무덤이 되기도 하고 천년 후의 또 다른 나의 무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세상을 하직했다. 할머니가 종부이기에 문중의 대소사까지 챙기다 보니 기울어져 가는 가세가 더욱 기울게 되었다. 할머니는 명문 집안 출신이다. 전 국회의원 박찬종씨의 아버지가 할머니 남동생이다. 그런데 어머니 친정도 꽤 저명한 집안이었다. 두 분 자신이 그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자존심과 성정이 강해 갈등이 심했다. 거기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세상을 떠돌다 병을 얻어 집으로 왔고 설상가상으로 동생마저 폐결핵으로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

아픔, 고통, 죽음 이런 게 내가 지나온 구간이다. 산복도로 산동네 단칸방, 병을 앓던 아버지, 노동을 해야만 했던 어머니, 가난하다고 사귀던 여자의 부모로부터 결혼을 거부당했던 불행한 연애, 가난의 극복과 남보다 빠른 출세를 위해 병이 나도록 일에 목을 맸던 생활 등등, 지나온 시간이 참으로 고단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첫 작품집 제목처럼 내 생의 은유가 ‘게헨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극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삶을 완성해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극과 극은 통한다. 지난한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게헨나’가 구원이며 안식일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그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사실 ‘게헨나’는 도처에 존재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구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탈무드에서도 게헨나를 정화의 장소로 보며, 이곳을 거친 후에는 더 큰 고통이 없다고 한다.

 

 

 

7. 맺는말

 

밤하늘 흐르는 수억만 개의 별들도 길 위의 나무도 돌멩이도 최초에 동일한 시원에서 출발했기에 생각해보면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게 우리의 형제이며 근친이다. 그저 우리는 잠깐 동안 나와 너라는 개체로 몸을 입고 그 몸의 일부인 뇌 신경세포들의 신비한 활동으로 슬픔도 아름다움도 느끼고 생각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제의 독재자 아들이 오늘 민주투사일 수도 오늘 범죄자의 아들이 내일은 부처일 수도 있다. 또한 나의 원수가 타인의 사랑일 수도 있고 타인의 원수가 내게는 백합보다 순결한 성자일 수도 있다. 나는 한 없이 미흡한 존재이지만 그런 이치를 잊지 않으려 한다. 더불어 이생을 마감하고 또 다른 유전자 풀로 이동을 하는 그 순간까지 인간과 물상에 대해 애정을 지니고 그것을 시에 담아내려 한다.    

 

 

 

 

프로필

 

. 본명 안병호, 경남 김해 출생

.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 18회 부산작가상 수상

. 시집 『게헨나』 현대시기획선

. 현재 부산작가회의 회원

 

메일 dominiko8@hj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