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헨나

- 한 지옥에서 다른 지옥으로 건너는 게 죽음일 거라고 오늘 밤 기록한다.

  

 

 

1

풍 맞은 아버지에겐 방문 밖이었고 나에겐 방문 안이었다.

 

2

오 년 동안 S와 갈 데까지 다 갔다. 그해 봄, S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는 2년 뒤 가을비 구질구질 내리던 날 유부녀로 나타났다. 나는 그 봄부터 그 가을까지 밥 먹고 똥 누고 잠자고 생물학에만 충실했다. 머잖아 설악산 가을이 쓰러졌고 쓰러짐을 배경으로 모르는 여자랑 사진을 박았다. 나는 벌레도 어쩌지 못할 위인이지만 간혹 아내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곤 한다.

 

3

권 반장이 윤 반장 아내와 야반도주를 놨다. 권 반장은 허리 아래에 지옥 한 개를 더 건축한 것이고 윤 반장은 머리에다 지옥늬 도면을 옮겨 놓은 셈이다. 권 반장 아내는 농약을 마셨지만 죽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도 생지옥을 허우적거릴 것이다. 혹 지옥탈출에 성공했더라도 그녀는 믿음의 딸이므로 자살=지옥의 등식에 의해 그 결과 값은 같게 된다.    

 

4

장미꽃도 지옥에서 왔다. 타오르는 불덩이를 온몸으로 밀어내며 죽음을 게워낸다. 당신도 이 지옥을 건너가면 저 지옥에서 장미나 영산홍을 게워낼 수 있다. 잘하면 미친 꽃도 게워낼 수 있다. 꽃을 함부로 꺾는 것은 무의식 안에서 지옥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5

죽지 않고 혀만 자른 오대수를 위해 울어주곤 했다. 그는 지옥을 향해 나비처럼 가볍게 날았어야 옳았는데 나비 대신 괴물이 되었다. 어떤 경우엔 유황불 펄펄 끓는 게헨나도 구원일 수 있다. 오이디푸스는 신에게 구원을 받았지만 오대수는 벌레에게도 구원받지 못했다. (흑흑)

 

 나와 나의 분인分人과 겨울에 갇히던

 

  

공포는 나에게서부터 시작되었고

내 뿌리 끝에는 눈동자가 있었다

 

윤리에 감금된 눈동자가 떨릴 때

일곱 개의 눈동자 속으로 어둠이

밀려들었다

 

어머니를 아내로 삼는 파사국과 다섯 형제든 여섯 형제든 공동으로 한 명의 아내만 삼는 사율국에서도 태양이 쓰러지고 겨울이 스며들었다 토화라국과 계빈국과 범인국에서도 그러했다 그즈음

 

나는 내 분인과 설산을 넘고 있었다

분인은 피에타에 등장한 남자이기도

올드보이 안쪽의 외로운 타자이기도

소설 『서드』속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다

 

, 피에타 아바타 아미타불의 날들이여

 

그러므로 나는 하나에서 출발하여 여러 개로 설산을 넘었고 눈이 펑펑 내렸고 아내는 둘이 되었다가 넷이 되기도 했는데 서로의 목에 밧줄을 걸었고 흰 피가 결빙되고 있었다 다시 밤눈이 내리자 아내는 두 개의 화분으로 놓여 자라기 시작했다 아내의 숫자만큼 나의 분인은 인수분해 되지 못했다 일억 광년 거리의 어느 행성에서 또 다른 나의 분인이 눈물을 흘렸고 애인의 남자는 두 번만 등장하기로 했는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꽃은 각본이 없었고 아이의 퇴화는 빨랐다 마침내 아내는 하나만 남았고 애인은 손가락 숫자만큼 되었다 하지만 나의 분인은 계산되지 않았다 흰 피가 허공에서 내렸고 그믐 무렵 하나 남은 아내마저 희미해져 갔다 서른두 개의 지옥에서 나의 분인은 계속 잉태되었고    

 

공포는 나에게서 오고 있었다

그건 눈동자뿌리에서부터였고

뿌리들, 시원은 구멍들이었다

 

 

사건지평선까지의 거리

- 내가 속한 별은 어두운 구석이고 네 혈액형은 람다(,Λ)

 

  

가을을 지워도 여전히 가을, 너는 손가락마다 우물을 지닌 바람, 우물이 흔들릴 때마다 비가 내린다 비의 표면에 맺히는 별빛들,

 

나는 늘 흘러가고 너는 비 내리는 요일에만 온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바람은 여전히 우울증을 앓는다 먹빛 일기에도 금세 들키는 표정처럼

 

우울은 화이트홀까지 계속될 테지만 그곳은 천체 망원경으로도 관찰된 바 없다 그러나 소멸 안쪽에서도 움찔대며 태어나는 입자들, 흘러가는 나는 사건지평선에 근접해 있다 그것은 우울한 비에 노출되었기 때문

 

오늘, 바람이라 명명하는 네 전생은 흐린 나무,

 

별빛을 모으면서 결빙되었다가 해동되었다가 부서지면서 바람이 된 너, 기억 속의 천문학자들 또한 그들의 별에선 나무였다 나보다 한발 앞서 사건지평선에 도달한 그들,

 

몸속으로 비가 샌다 어떠한 절망도 중력보다 무겁다 저 너머의 별에선 왕비와 병사가 참수당하는 게 보인다 불륜을 목격한 나무의 목에 걸리는 밧줄, 중력에 동의한 그들,

 

비는 무겁게 내리고 새는 음악을 작곡하고 누군가는 우주에서 가장 어두운 섹스를 꿈꾸고

 

네 혈액형이 내 눈동자에 번진다 사건지평선에 도달할 시간은 어제 내린 비와 내일 내릴 비만큼의 거리

 

 

 

어제

- 하나의 절망이 가고 하나의 절망이 흘러오던

 

 

 

잠들지 못한 어둠마다

폭우가 쏟아졌다

비는 포말이 되어 끓었고

그러한 어둠 저편,

사자死者가 버린 눈알 속에서

내 어린 날,

눈물 흘러가는 게 보였다

말보다 울음을 먼저 배웠던 게

금번 생에서의 가장 큰 실패,

한 번 흐느낄 적마다

누군가의 손에 끌려

먼 대륙의 우기에 다시 또 다녀와야 했다

띄워 보낸 종이배 행방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어둠론

 

 

 

회색 알갱이들이 흐르고 있다 불면의 눈동자 위로 천천히 떠가는 알갱이와 알갱이, 이것을 길의 입자라고 부르자 그리고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길을 뼈라고 부르자

 

길 밖의 길은 몸 안쪽에 있다 고독한 자는 길을 잃었을 때 지도를 구하는 대신 어두운 거리에서 제 뼈의 냄새를 찾아 헤맨다 그렇게 서성이다 길이 되는 사람들, 이들을 낭인이라고 부르자

 

시한부 길을 눈치챈 이가 울고 있다 무거운 음률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한편에선 눈을 도둑맞은 여자가 해머로 피아노를 부순다 이러한 풍경을 아방가르드라 부르자

 

결빙된 동물의 잔해처럼 부스러진 시간이 혼미하다 아방가르드 혹은 난해한 미로를 몸이라고 부르자

 

길이 엉켜버리거나 무너진 이들은 미로의 심정으로 제 몸을 데리고 녹슨 십자가를 찾는다 이들을 병인病人이라고 부르자

 

계단 난간에서 말기 병인이 무너진 길을 흘리고 있다 눈에서 입에서 귀에서 길이 흘러나온다 흘러나와 흩어져 날린다 이 모든 미로와 피아노와 난간의 표정을 장막이라고 부르자

 

장막이 펄럭이는 지금, 당신도 흘리고 있다 회색 입자들을

   

 

; 무너진 길을 버리는 배출구 [비슷한 말: , ]

; 아방가르드 혹은 미로의 유전자 풀(pool)

어둠; 복수複數의 회색 알갱이 [같은 말: ()의 입자들]

 

 

 

바라나시 겅가

 

  

겅가로 떠나지 못한 나날이었다 눈보라가 쓸쓸하게 치고 있었다 겅가 겅가 겅가의 강가 그 강가로 난 떠날 거야 되뇌며 겅가 강가를 그리다가 그림이 되질 않아 찢어버리고 겅가 강가의 유연한 곡선을 닮은 붉은 나신을 그리던 밤이었다 문밖에는 어둠이 강가처럼 질척거렸고 캔버스 안 나신이 완성될 즈음이었다 초대한 적도 없는 젊은 사두가 내 방문 앞에 당도했다 그러고는 뱀을 부리듯 나신 한 구를 그림 안으로 운구하였다 그림 밖에선 눈보라가 여전히 흩날렸고 그림 안에선 검은 잎들이 무성해지려 하였다 사두의 눈동자가 나신을 향해 풀어지자 나신의 중심에선 강이 흘렀다 사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시신을 내려놓고 화장을 시작했다 아, 화장되는 시신은 흘러간 내 몸이었다 그림밖엔 눈보라가 쳤으므로 나는 뜨거워졌다 식기를 반복하며 졸았는데 졸음 틈새 그토록 원하던 겅가 겅가 겅가의 강가 그 강가에 내가 놓여 있었다 미래의 내 주검이었고 모든 주검은 다 내 몸이었다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다시 임종을 맞지 않도록 사두는 주검을 버닝가트에 차곡차곡 쌓았다 바라나시 겅가 겅가 희뿌연 강가에서 내 육신은 어제까지 죽은 사람 오늘 임종을 맞게 될 사람 그리고 다시는 임종이 없을 사람이었다 화장용 속옷을 걸친 주검을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주문이 넝쿨 모양 칭칭 감았다 눈썹 끝에선 나비가 팔랑거렸고 연기가 눈보라처럼 너울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울지 않았다 생과 사가 그림 같았다

 

 

 

 

 사막 의 풍경

 

 

등허리로 어둠이 내리면

희뿌연 바람이 불어온다

등을 눕힐 때마다 살갗에 붙은 모래 알갱이

송곳처럼 파고든다

오랫동안 무덤을 짊어지고

사막을 건넜기에 등은 점점 휘어진다

등짝에 저장된 기억을 불러내면

눈빛 깊은 낙타가

흘러나왔다가 모래처럼 무너져 내린다

 

나는 표정 없이 앞으로만 걷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멈춘다는 건 해 질 무렵, 사막의 능선에서 휘파람을 부는 것과 같다 다쉬테 사막, 석양을 배경으로 시아 무슬림이 사체를 짊어지고 메카로 향하던 모습을 본 적 있다 점처럼 작아지던 사내의 등은 적요한 문양을 풀어냈다 그때도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에 낙타가 무너져 내리며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아버지도 등 후면으로만 무늬를 남겼는데

 

변곡선, 까만 점이 될 때까지 가 본 적 없는 대륙의 사막을 횡단하면서도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시아 무슬림 성자 이맘 레자처럼, 이승의 끝 날까지 낙타도 대상도 없이 등에 짐을 짊어지고 모래를 밟을 때, 새들은 휘파람을 작곡했고 나는 아버지 뒤편에서 새를 사육했다 등 앞쪽의 계절은 모래 폭풍 중이었으며 어둠은 짙었다 아버지의 후면이 아닌 전면의 문양을 입관 때야 겨우 볼 수 있었는데 사막 경계 부근에 다다라서인지 참으로 고적했다

 

 

 

모래시계

 

 

그러니까 이건 난해한 스토리다 시간이 감금된다는 것, 지평선이 허물어진다는 것, 아무리 버둥거려도 네 안에선 꽃이 피지 않는다

 

믿기지 않겠지만 네 운명은 사막을 견디는 것, 주위를 돌아봐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데 너는 수북했겠지 전생에선 낙타와 은빛 여우가 네 심장에 고독 같은 족적을 남겼겠지 뿌옇게 흩날리는 허구들,

 

그건 너인 동시에 나였다 그즈음 거대한 언덕이 또 다른 너와 나로 분열되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불가해한 지대에서

 

바람의 몸을 빌려 이곳에 갇혔다 그리고 윤회, 이제 더는 세포분열이 없을 것인가

 

그러나 네가 속한 이곳도 블랙홀, 네 원적에선 아직도 푸른 두건을 두른 자들이 몸을 횡단하겠지만 이곳에선 알몸의 안구들이 네 몸을 횡단한다 너는 죄명도 없이 유죄다 눈들이 헉헉거리며 너를 가늠한다 어떤 눈은 탈레반처럼 날카롭다 어떤 눈은 대상처럼 탐욕적이다 그들의 눈 또한 주르륵 흘러내린다 폭염과 침묵 속에서  

 

흘러라 흘러,

삭막한 육신이여,

 

너는 사막을 허물어 나의 무덤을 짓는다 이젠 내 차례다 내 몸을 뒤집어 네 무덤을 지어주마

 

눈들이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난장을, 소멸을, 이해할 수 없는 순환을

 

 

  

천칭좌-Zubenelgenubi

 

 

 

 

. 그대는 밤을 깊숙하게 짚어보며 자신의 별자리로 떠나본 적 있는가?

. 내 문장이 길게 풀어지는 것은 어느 날 문득 내 별자리가 한없이 그리워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 짧은 멜랑콜리만 ‘시’라고 예단하는 당신은 여기까지만 읽어도 밤에 당도할 것이다

 

 

- 1

나는 적도 부근 어둠에서 왔다 한 때는 전갈자리의 집게발이기도 했지만, 늦가을 귀퉁이에 추락하여 겨울을 저울질하며 겨울을 불러들이는 게 내 운명이었다 시원에서부터

 

내가 습득한 것은 울음이었는데

그것은 남색으로 흐르는 강물을 별 속에 풀어 넣기 위함이었다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별자리가 모두 달랐으므로 불화에 익숙해지는 것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고 허기는 술렁댔다

 

오랫동안 진창을 독학했고 진창은 사방에 널려져 있었다 그 외의 시간엔 잠들었다 잠은 허기를 속이고 지도를 저장하는 장치이므로

 

 

- 2

할머니는 별자리를 귀신만큼 정확하게 짚어냈다

 

동짓달 한천에선 어린 별들이 우후죽순으로 자라났다 다시 바람에 실려갔다 그 무렵, 노인과 아이들이 자주 지워졌고

어둠이 내리면 할머니는 장독대에 당신의 영혼을 수장시켜 놓고 주술을 풀었는데, 그런 행위는 별빛을 박제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속한 구약舊約할머니였고 장독대는 가계의 이교였다

 

애초부터 신약新約나의 문명이 아니었기에 즐겼던 예술은 종이비행기를 접는 것이었다 비행기를 접을 때는 말을 지워야 했다 날개에서 묻어져 나오는 균형을 수신하기 위한 예의는 묵언이므로

 

때가 오면 팽팽한 균형 위에 내 흐린 영혼을 싣고 본향을 향해 이륙할 거라는 게 나의 신앙이었다

 

 

진창의 날들 안에서 날개를 접고 있으면 헛배가 부풀던 별자리…

그 속에서 내 사랑이 늙어가고 별의 호흡이 북풍으로 변이되어 숲으로 몰렸다 이에 대해 진술을 하는 것은 회색 고양이와 소녀의 이야기만큼 진부하므로 더는 진술하지 않기로 하겠다

 

문을 닫아도 영하의 산기슭,

그 무렵까지 지구별 주민증을 열한 번 옮겼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노동판에서 얼었다 녹기를 반복했지만, 별자리 계산은 世系 밖의 일이었다

밤에 아버지 곁에 누우면 죽은 식물 냄새가 흘렀고

 

어둠을 사랑한 여신은 늘 귓속에 거주했다 바람 우는 밤이면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귀를 앓았고 이불 속은 섣달그믐보다 더 캄캄했으며 몸통은 잠들고 동공은 새벽까지 불면이었다  

내 눈의 충혈은 그때의 습성에 다름 아니다 이 사실을 금세 눈치채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뒷걸음질 치면서 눈동자에 젖은 바람이 번진다

 

아버지는 자주 집을 비웠는데

어느 밤, 예고 없이 흐린 주소로 이적했다 아버지의 눈을 감기기 전, 마지막 바라본 눈동자엔 별자리가 실종되고 없었다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지만 그림자의 손가락은 길었고

 

 

- 3

이주한 곳은 늘 검은 허공에 닿은 곳,

신의 은총이라 여겼으므로 교회당 옆에서 돌탑을 쌓으며 염불을 찬송했다 친구들이 산 아래 상급학교로 진학을 해도 나는 저 높은 곳만 향했는데…

 

그즈음 강물이 사막을 건너기 위해 별 속으로 스며든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동생의 구슬이 반복적으로 없어졌고, 내 별자리 또한 우주 구석까지 흘러갔다 돌아오곤 했다

 

동생은 물빛자리였기에 언젠가 수몰될 터였다 동생이 바닷가에 위치한 결핵요양원으로 떠난 후부터 문방구에서 야광별을 훔쳐와 앉은뱅이책상 밑에 붙였다 동네 형들에게 길을 물을 수는 있었어도 구원에 대해서는 침묵했기에

 

불을 끄고 책상 아래로 기어들면 동생의 별이 귀뚜라미와 함께 희미하게 울었다

귀속으로 흩어져 날리던 빗물,

어떤 날은 동생의 별자리가 나를 관찰하다 나의 폐에 수상한 색깔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러다 어떤 별은 낡아졌고 또 어떤 별은 추락했고

 

 

지구별은 진화를 멈추지 않았으므로 진화와 진화 사이에서 늙은 아이들이 무표정하게 결빙되었고

 

       

- 4

별을 그리는 여자들을 만났다 그녀들 눈 속에도 별자리가 거주했다 나는 그것들을 만지작만지작하였다 나뭇잎이 빠르게 시들었고

 

   

- 5

병실이 성지였던 날들도 있었다

밖이 안쪽보다 아늑해 보였지만 실은 밖도 안도 경계였다 흰 가운은 규칙적으로 성지순례를 나와 선교하곤 했다

 

겨울밤 달빛이 푸르른 남빛은 마치 밤에 사파이어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당신을 고백할 때 푸른색 별을 선물한다면 당신의 시간에 대한 진실성을 우주에 그대로 전달할 수 있으며 순수한 병을 앓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제우스와 여신과 바다의 신이 내포한 병증에 대한 관계이며 완전성입니다

 

물병자리나 물고기자리를 병실에서 만난 적은 없다

그들의 신화는 성지 밖에 존재했으므로 아프로디테만 탐구했다 시와 음악과 미술은 그것의 변종이었기에 병실 벽면에 음악을 판각했고  

 

 

- 6

지구별이 다시 겨울에 진입했다

 

얼마 전, 제 별자리로 돌아간 누군가는 새벽녘까지 술을 퍼마시고는 도로 난간을 향해 빛처럼 질주했다 한다 천체 밖으로의 탈출 같은, 우연한 사고 같은, 혹은 음모 같은 것들이 함께 몰려다녔지만 건네받은 희미한 웃음과 건네준 모호함만이 기억으로 명명되었다 그것도 순간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밤 허공,

보이는 별과 보이지 않는 별에

아름다운 눈이 펑펑 쏟아진다

 

겨울에 몇 번 더 당도하면 내 별자리는 좀 더 가까워질 것이다 우주가 설계한 우연에서는 점점 멀어져 가겠지만 신전은 무너지고 또 세워지게 마련

 

 

별자리는 기억을 먹고 운항하기에

나는 기억되지 못할 테고

 

 

 

 

 비어秘語 혹은 비어悲語

  

 

- 1

 

2053년 그리고 12월 같은 혹은 그랬으면 하는 흐린 밤, 나는 적는다 몰락에 관하여 그대와 나에 관하여 더불어 기다란 고통에 관하여

 

이마의 왼편에서 질주해 온 기차가 바람을 찢으며 지나간다 유령의 옆모습처럼

 

그때의 상황은 불가해한 일이었다

 

검은 고양이가 제 별을 뱉어내며 날아올랐고 그대는 고독과 불안의 정체도 모른 채, 검은 기차들 옆을 서성거렸다 그러고 시장에서 가지를 고르듯 기차를 골랐다 기차는 대개의 여자에게 소용되는 용품… 하지만 기차 없이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다 가령, 처녀인 채 지워진 나의 막내 이모가 그랬고 목을 매고 떠나간 어느 독재국의 외동딸도 그러했다

 

그대가 고른 기차는 분별없이 달리는 중이다 셀 수 없을 만큼 목침을 밟고 왔던가? 폭주와 음주와 굉음과 비명과 폭발과 폭탄, 그 사이와 사이에서 그대는 겨울 억새처럼 흔들리겠지 낡은 간이역 지붕처럼 힘없이 주저앉겠지

 

이 밤도 뿌연 분진을 날리며 기차는 난폭하게 그대 허리 아래를 지나고 있다  

 

 

 

- 2

 

기차가 그대를 통과했으므로 그대는 어쩔 수 없이 기차의 운명에 속해 있다

 

계절 변경선을 통과하는 저녁, 그대는 돌이킬 수 없는 시발역을 추억하기도 한다 그러나 추억은 후회를 포장한 실체에 불과한 것 돌이킬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탈선은 스멀스멀 자라난다 누구나 기차를 버리거나 기차에서 뛰어내릴 꿈을 품고 있다 하지만 동공을 덴 새와 심장을 다친 사슴과 제 눈을 찌른 여자의 부음을 접하고도 달리는 기차에서 이탈한다는 건 참으로 두려운 예술이다 더욱이 황토물 붉게 흐르는 철교 위에서라면… 누구는 이런 상황을 운명의 장난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돌이킬 수 없는 숙명이라고도 하고 하나밖에 없는 내 누이는 「코미디야, 코미디!」라며 울부짖기도 한다  

 

 

「나, 이제 돌아갈래!」와 같은 문장은 순결하지만, 그것은 기차 밖에서도 암담한 빛깔이다 ‘돌아갈래’ 라는 말은 ‘돌아버리겠다’ 의 또 다른 은유이다 도저히 돌아갈 수 없으므로 뇌내腦內의 화폭에 혼란한 색깔을 칠하는 이들이 있다 몰락을 숭배하는 이들은 그 황량한 구역에서 어떤 획책을 건져내기도 한다 하지만 기차는 무지개가 흘러가는 거나 무지개가 다음 계절까지 생존하는 거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까닭에, 기차는 무지개를 0.59g 혹은 3.87분의 허상으로 여긴다 대개의 기차들은 외형적으로는 도덕을 아버지로 섬기며 참으로 윤리적이다

 

0.59g 혹은 3.87분의 예술을 분석하는 과학자와 무지개를 올려보며 야음을 모색하는 시인이 빨강과 주황의 경계에서 서로의 멱살을 잡은 채 울고 있다  

 

 

 

- 3

 

기차가 잠시 방심하거나 비틀거리며 달릴 때, 그대는 첫 번째 애인을 태웠다 누구는 이러한 행동을 인공 비행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그대는 절실했다 불온하지 않은 예술이 없듯 기차의 내부는 지옥이면서 침대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경험한 내밀한 구간과 닮았기도 하다 나는 과연 몇 번째인가, 궁금하지만 그러한 의문은 적색과 녹색의 분별만큼 사소한 일이다 「눈동자가 적록색약을 앓는 줄 알았는데 색맹으로 판명되었다」

 

어딘가에 유폐된다는 건 결국 갈 데까지 가봐야 한다는 상징이다 나는 자주 유폐되었다 기차를 동경하는 이의 관점에서 유폐는 매혹적이거나 은밀함이 될 수도 있겠지만, 유폐의 실체는 내내 폭우가 내리는 섬 같은 것이다

 

비를 맞으며 섬이 둥둥 떠간다 세상의 모든 섬이 흘러간다 어둡고도 흐린 가슴을 향해

 

기차는 멈추지 않는다 기차에 유폐되면 불구를 앓는다는 걸 나는 몇 가지 학습으로 잘 알고 있다 나도 한때는 기차였고 구름 안쪽을 달리길 기도한 적도 있었으니… 「그러나 나는 그다지 명료하지 않았고 아이처럼 왜소했음을 고백한다」그러므로 나 또한 윤리적이었다 기차의 내부에서 윤리적이지 않다는 건 폭약을 가슴에 품고 시가를 피우는 거에 다름 아니다 기차의 속성을 잘 몰랐고 윤리와 타협하지 않을 때였다 메테르를 닮은 여자였다 그녀는 주인 있는 여자였고 도덕은 기차와 연루되어 있었다 두 번 혹은 세 번의 밤이었을까? 그 짧았던 구간, 우린 다음 역을 계산치 않고 최선을 다해 밀착하고 밀착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걸 버리고 뛰어내려야만 했다 가을 깊어지던 쓸쓸한 24시였다 인간의 거죽을 벗겨내고 싶던 밤이었다 나의 불구는 아마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터였다 하여, 나는 어떤 것에도 쉽게 흥분하지 않고 무엇에도 쉽게 발기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에 잠기면 심장 가까운 곳에서 빗물이 샌다

 

 

나의 신앙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는 존재하게 마련이고 그것은 선로의 함정이다 함정으로 추락할 화성火聲은 화요일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결국 화성의 무덤은 함정이고 나의 무덤은 화요일 밤이다 지금 나는 기차의 내부에서 기차를 망각하기 위해 명상을 한다 하지만 기차는 더욱 또렷해지고 불면은 짙어진다 기차의 전면과 후면이 구분되질 않고 눈 안에선 안개가 자욱하게 흐른다

 

 

 

- 4

 

그대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설국열차를 경험한 적 없다 하지만 그것엔 동의한다 그뿐만 아니라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대는 몇 번째 칸인지 알 수 없고 나 또한 어디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다 단지 계절 지나가는 지대에서 한 번 또는 두 번 조우한다 이것은 암묵이고 규칙이지만 코 없는 인디언 부족의 축제만큼 위태하다 시인은 위험한 짐승이다 시인은 불행한 악기다 세상은 상징과 음표를 노리는 사냥꾼으로 득실댄다 상징과 음표가 어두운 길을 빠져나간다 사냥꾼은 언제나 자기의 소유가 존재하는 줄 믿고 있다 도덕적인 자가 자신을 담고 있는 구덩이가 자신의 소유인 것으로 착각한다 윤리적인 자가 자신의 물건을 품고 있는 동굴이 저를 주인으로 섬길 것으로 믿는다 그대와 나를 가둔 기차처럼…

 

 음률은 대체로 기차의 내면에 속한다 음률은 예술을 위해 어느 구간에선 천천히 죽어가고 어느 구간에선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흐느낀다  

 

오늘 밤에도 원치 않는 기차가 그대의 내부에 들어서고 있을지 모른다 그대는 신음을 흘릴지, 아니면 몸부림을 칠지,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찬밥처럼 밋밋할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 또한 한 마리 짐승에 불과하기에 추적추적 비 내리는 밤이면 터널을 찾아 헤맨다 그 터널이 불온한 구멍이든, 사연이 있든 혹은 없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느끼고 있는 순간이 나를 망각하는 구간일 테니…  

 

 

 

- 5

 

기차를 의식하지 않는 구간 또한 터널이다 내가 기차였던 기억이나 혹은 기차의 내부에 유폐되어 있다거나 변형되고 있다는 명제를 잊는 그 아득한 순간, 캄캄함은 중요 부위의 감각만을 깨어나게 한다 대개의 인간은 지나온 터널 개수를 세지 못한다 내가 처음 터널을 경험한 것은 1998년 겨울의 일이다 내가 터널을 헤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진다 그러한 기억이 나를 몰락하지 않고 깨어 있게 한다 몰락하지 않고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에 나는 또 얼굴이 붉어지고 그대의 공간엔 새들이 추락하고

 

 

 

 

- 6

 

객차의 문을 몇 개 통과하면 하얀 병실 칸이 있었다 그곳에서 첫사랑 K와 이십 대 초반 S와 이십 대 중반의 O를 보았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닿는 M도 보았다 여전히 혼란했고 여전히 슬프도록 황홀했다 그녀들은 시차를 두고 기차를 구매했을 것이다 보기에 그럴듯할 만큼 길고 탄성 또한 적당했을 것이었다 그녀들은 떠나면서 누구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기에 내 사춘기와 청춘은 시차 없이 무너졌다 그런데 그녀들은 왜 모두 그곳에 머물고 있었던 걸까?

 

「내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의사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칼을 잘라주었다 몇 줌의 기억이 싹둑싹둑 검정 빛깔로 바닥에 떨어졌다 눈물이 그렁그렁 피어났지만 나는 다시 나의 객차로 회귀해야만 했다」

 

내가 위험하다는 것을 아무리 느껴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십 분에 열 개비의 담배를 피운다 풀들의 영혼이 차창 밖으로 빠르게 빠져나간다 나는 나에게서 멀어지는 영혼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큰 새의 날개를 잡고 허공을 날아본 경험이 있다면 나의 표정에 동참할 것이다 삼백육십오 그리고 또다시 삼백육십오의 두 번이면 우울증이 10g이라도 치료될 수 있을까?

 

2053년 그리고 12월이 오면 기차는 기차가 아닐 거란 생각에 나는 어제를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기차가 북회귀선을 통과해 기억의 좌측을 달리고 있다 나는 윤리를 증오한다고 외쳤지만, 비겁하게 윤리와 타협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윤리는 기차의 속도만큼 퇴화하고 내 몸뚱이는 박물관을 닮아간다 내가 누군가를 경외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윤리와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상사와 비서, 매혹적인 앵커와 위대한 학자 그리고 몇몇 시인과 방랑자는 철저히 윤리적이었다 최소한 낮에는 그랬다

 

 

 

- 7

 

 

나는 레일 주위를 방황하며 목적지를 분석하고 조정하는 이가 분명 신일 거로 여겼다 나도 그대도 목적지를 모른다 레일이 교차하는 지점 혹은 변곡점 어느 구간에서 숱한 기차가 의도하지 않은 생경한 곳으로 향한다 이 기차도 내 의지나 그대의 의지대로 조절되지 않는다 물론 기차의 목적대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차만의 착각이다 오류는 그러한 지점에서 발화한다 저녁이 내리는 구간을 지날 때마다 기차는 광폭해지지만, 그것은 나의 잘못도 그대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가 속한 기차는 파업과도 무관하다 그저 그렇게 진창으로 설계되었으니…

 

폭설이 쏟아진다 그대가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기차 안은 밖보다 시리다 영하의 겨울에 컨테이너 내부를 경험하였다면 망한다는 거에 동의할 것이다 온몸이 서서히 망해간다 나는 내식대로 망해야 한다 산산이 부서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러니까 눈꽃은 부서져 다시 눈으로 돌아간다 날개가 산산이 부서질 때 나비는 눈 부신 햇살로 돌아간다 밖에서의 날들이 그리워질 때면 독주를 마신다 빙산의 일부처럼 꽝꽝 얼어붙은 독주를 녹이기 위해선 고혹적인 여배우를 떠올리며 지퍼를 내린다

 

지퍼는 궁색하거나 초라하다 성에가 뜨겁게 끼고

 

끝도 없이 펼쳐진 지퍼를 닫으며 기차는 달린다 나는 열려 하고 기차는 계속 닫으려 한다 이 또한 코미디일 것이며 그대와 나는 이러한 관성에 속해 있고 그것은 영원히 풀 수 없는 함수 같은 거다 여하튼 나는 결빙되는 중이다 동태처럼 얼어붙은 내 몸을 만지게 된다면 누구든 열화를 입을 것이다 나의 비밀은 생각하는 것보다 허망하다 얼어붙은 허구를 해체하려다 식칼이 해체되는 상황을 관찰한 적 있다 그러니 부디 조심하시길… 나는 이러한 편지를 고독에 적셔두었다가 밤마다 띄워 보낸다

 

 

 

- 8

 

500년 전 즈음이면서 500년 후 즈음이면 좋을 것 같은 밤, 나는 끊임없이 적는다 나에 대하여 그리고 그대의 여행에 대하여

 

나는 왜 그대의 여행에 포위됐을까 그건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절망의 문제였다 다시 강조한다면 몰락과 우울과 기차의 문제였으며 또한 January 31.999…의 문제였다 겨울이 한 페이지씩 파란 얼굴을 넘기며 지나간다 생경한 얼굴이 나를 관찰하며 예언한다 「당신의 동공에 유언처럼 낙엽이 쌓이게 될 것입니다」

 

지금, 그대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가장 멀리에 있고

 

 

우리가 토론한 적 있는 기차가 스쳐 지나간다 그 속엔 누구도 탑승하지 않았다 파란 음표와 녹색 휘파람 그리고 오래전 유년의 목소리만 가득하다 아, 그것은 기차가 아니라 하모니카와 플롯이었다 인도와 페르시아 대륙을 거쳐 북해로 향하는…

 

「인도를 설계하였습니까? 페르시아를 명상하였습니까? 나는 나의 객실을 해석하기도 버겁습니다 나는 속도를 느끼기도 벅찹니다 변곡점과 소실점에 대해 더는 밤을 지새우고 싶지 않습니다 기적 소리의 간격을 통계적 기법으로 분석해 주십시오 그래도 수긍하기 힘들겠습니다」  

 

 

 

- 9

 

철로는 제 몸보다 수천 배 무거운 몸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나는 내가 무겁다 사실 내가 무거워진 것은 이천 년 하고도 십 년이 지났을 때부터였다 나는 나를 팔아 시를 장만했다 내다 팔 것 없는 나를 팔수록 나는 점점 원통 기차의 쇳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내가 구매하여 자랑스럽게 전시한 시는 정말이지 걸레였다

 

「중독은 무겁다」

 

중독된 이들이 적막을 풀어내며 흘러다녔다 중독된 이들이 철로 변을 서성거렸다 어머니는 철로를 건너 공장엘 갔고 어둑해지면 철로를 건너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발은 기찻길 목침 위에서 언제나 무거워지곤 했다 어머니는 애초에 기차를 믿지 않았다 아니 기차를 저주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기차를 경계해야 한다 스스로 기차가 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결핵 앓던 동생은 기적 소리만 들려도 귀를 틀어막고 얼굴을 무릎에 묻었다 나는 모든 게 적막했다 기차도 철로도 땡땡땡 어지럽게 울리던 노란 종소리도…

 

하지만 기차를 동경하여 제 그림자를 철로 변에 누이고는 동공을 고요하게 풀어내는 짐승들도 있었다 그들은 몸도 영혼도 다 중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 10

 

기차는 마구 흔들리며 달리지만, 나는 달팽이보다 느리다 지구별이 빛의 속도로 달리지만, 그대가 나에게 닿는 건 유계처럼 멀듯

 

 

젖은 음악이 지나간다 음악이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 흐르는 나의 소문은 누구에게나 다 방영된다 나는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하곤 했다 거짓말을 두 번째 들키면 누구를 막론하고 내 영역에서 지워지곤 했다 그러한 사실에 모든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거짓말을 증오한다」 라고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에 가깝다

 

나는 거짓으로 왔고 정말이지 진실로 살았고 거짓을 덮고 죽어가게 될 것이다 더는 미사곡이 나를 편곡할 수 없다 더는 고해가 나를 취급할 수 없다 까닭에 나는 냉담 중이다

 

나는 기차를 속였다, 고 고백하고 싶다 하지만 그대와 나는 기차의 내부에 속해 있다

 

「죄송합니다 속여서」

「나의 뺨을 휘갈겨 주십시오」

 

기차 안, 기차 안, 기차 안, 기차를 속인 게, 정말이지 기가 찬다 나 자신에게도 그렇다 발버둥을 쳐도 기차 안, 기차 안, 기차 안이고 오늘은 40년 혹은 50년 후 같은 마지막 12

 

밤이다 이 밤 난

 

낡기를 염원한다

부재를 염원한다

몰락을 염원한다

 

더불어

그날을 염원한다

 

「그날은… 그대가 나의 세계입니다 아무 내용이 없을지라도」

 

그렇게 염원은 끝없이 계속되겠지만

그날, 나는 존재하기라도 할 것인지…  

 

아무튼 기차는 위험하게 달리고 나는 거짓으로 왔고 진실로 살았고 거짓을 덮고 떠나게 될 것이다 심장엔 어떤 영혼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