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두 번째 시집을 묶는다

 

내 뼈의 첫 자리, 별은 하늘에만 뜨는 줄 알았지

가슴에서부터 뜬다는 것, 그때는 몰랐던,

나를 통과한 숨구멍들

내 뒤편의 무늬들인 것 같아

돌아보니 다 부끄럽다

 

또 다른 계절의 시작이다

 


박경조/ 경북 군위 출생, 2001년 계간 『사람의 문학』등단

『사람의 문학』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밥 한 봉지』 『별자리』가 있다

 


<작품 해설>

                    희망의 성좌

 

 시는 언어를 통해 세계와 교감하는 예술 양식이다. 하지만 시

는 산문과 달리 ‘보이는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는 서사 양식이

아니다. 시는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세계와의 관계 맺기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눈에 쉽게 포착되지 않는 사물이나 대상과

의 새로운 관계를 생산하는 표현 방식이다. 때때로, 시가 사물

과 언어의 관계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해 언어적 전위와 급진적

구성 방식을 택하기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서정시의

언술 방식이 세계와 언어 사이의 내적 합의를 파기하는 형태로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일상적이고 친숙한 시적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얼마든지 우리 삶의 어두운 부분을 발견하고,

속에 새로운 빛과 온기를 부여할 수있다.

 박경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별자리』는 그런 따뜻함을 가진

작품집이다. 이를테면, 『별자리』는 “불문”을 “활짝 열”고 아낌

없이 자신을 태워 열기를 뿜어내는 “탄불”(「목소리」)의 호흡을 보

여주고 있다. 특히, 그녀는 이질적이고 낯선 비유를 직조하는

데 골몰하지 않으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소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애쓴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이동 식자재 마트”를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는 “차 씨”(1인분의

하루), 또 “쿵 꺼져버린” 생의 바닥을 찿아서 “금”이 간 삶에 다

 

시 희망을 바르는 “설비 보조 미장쟁이 장 씨”(「숨구멍」), 그리고

도시의 가장 “응달진 자리”에서도 “상생의 배려”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덕이 아지매”(「구색을 맞춘다는 것」)등이 그 예이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가시화하는 섬세한 촉각을 지니

고 있다. 이와 같은 감각적 역량을 감수성(sensibility)이라고 부른다.

감수성은 일상의 언어 규칙과 정보 체계 속에서는 목격 되거나

감지되지 않는 것들을 새롭게 감각하고 지각하게 하는 능력자질(ability)이다.

박경조 시의 미덕은 ‘차 씨’와 ‘장 씨’, 그리고

‘덕이 아지매’와 같은 이들이, 그저 화려한 도시의 ‘구색“이나 맞추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님을 새롭게 발견하는 능력(감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인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낙”(「물때」),

“현풍 할매”(「여름비」), “나연이 아빠”(「말복」), “유과 집 어무이”(「봉덕시장」),

“단골 할미”(「꽃 가라 풍경」) 등의 이름을 하나하나 발굴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에서 ‘발굴’ 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시인이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고고학적 실천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명자 할매」라는 작품은 시인이 어떤 시적 가치

와 표현 방식을 통해 취약한 이들의 존재 조건을 형상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함께 작품을 읽어보자.

 

지하철 큰고개역 내려

동서종합시장 속 들여다보면

변방의 사람들 견딘 내력 새겨진

내 고장 할인마트, 명문 돼지국밥집, 스마일 빵집 등

삶의 구석 꽉 채운 백여 개 점포 살아간다

(중략)

시장 재개발 이전에는

비바람 속 떠밀려 다녔지만

늘그막에, 세상의 봄날에 폐 끼칠 일 없는

내 인생의 특설 무대라며

시장 사람들 특별한 행사 날에는

자신의 무대 척 내어준다며 활짝 웃는 꽃,

                             

                                   -「명자 할매」 부분

 

 이 시의 배경이 되는 “동서종합시장”은 주변부로 내몰려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는 곳이다. 흔히

재래시장은 향토성과 인간성이 조화된 공간으로 인식 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형상화 되고 있는 ‘시장’은 소박한 휴머니티의

공간이 아니다. 시인은 시장이라는 공간의 주변성(“변방”)

주목하면서, 재래시장 사람들의 취약한 삶의 조건을 가시화하고

있다. , 자본의 논리(“시장 재개발”)에 의해 삶의 자리를 박탈당할

처지에 놓여있는 이들의 사연을 환기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나열하지 않는다. 시인은 ‘명자 할매’로 표상되는 시장 사람들의

“속사정”(「꽃가라 풍경-현풍 오일장」)을 모조리 기록하고자 하지

않고- “이동 커피 마니아 점주”인 41년생 명자 할매의 생애 내력을

중심으로 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이들의 척박한 상황을 감각하게

할 뿐이다.

 시집 『별자리』에는 ‘시장’ (혹은 좌판을 펼쳐놓은 ‘거리’)이라는 장소가

중요한 시적 배경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는 박경조 시의 핵심적

특징 중 하나인데, 「봉덕시장」의 장소 형상화 방식을 통해 이를

살펴볼 수 있다.

 

듬성듬성 핀 개오동, 꽃그늘마저 배고프던

신천 굽이굽이

육이오 정착촌, 일본군 80연대, 캠프헨리에 이른

엇박자의 역사 맥 짚어온 봉덕시장 가보시라

 

맨땅의 거기

언 병아리 같은 자식 여럿 뜨겁게 키워낸

상주 전통 손 유과 집 어무이 사신다

돌아보면

남루하게 펄럭이는 청춘의 편린만 장터에 떠돌 뿐

정직한 손맛조차

길 건너 대형마트 그 도도한 구색 틈에

진열될 일 만무한데

 

                        -「봉덕시장-유과 집」부분

 

 「봉덕시장」은 ‘시장’ 이라는 장소성을 아예 전경화하고 있다.

“봉덕시장”은 “엇박자의 역사”를 구축해온 한국 현대사의 “맥”을

짚어볼 수 있는 장소이다. 하지만 봉덕시장의 ‘장소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거대하고 유장한 역사의 흐름이나 담론이

아니다. 오히려 뒤틀리고 굴절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언 병아리

같은 자식 여럿 뜨겁게 키워”낸 “손 유과집”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봉덕시장의 장소성이다. 비록 이제는 “정직한 손맛”의 유과가

“길 건너 대형마트”에 밀려 상품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지만, 봉덕시장의

‘손 유과’는 여전히 우리 삶을 버티게 하는 생의 동력원이다.

  이와 같이 박경조 시인은 사람의 사연을 이야기하되.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재현전화(再現轉化)의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구체적인 생의 자리에서 사람의 흔적을 발굴하고, 또 새롭게 기록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시장’ (혹은 거리)이라는 장소성에 대한 감각이다.

주지하다시피, 장소는 물리적 환경만이 아니다. 굳이 이푸 투안이나

에드워드 렐프와 같은 현상학적 장소이론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장소(place)가인간의 체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의미(장소성)

형성한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시집 『별자리』에 등장하는 장소들

(“구청 가는 길”, “덕이 아지매 간이 채소가게”, “로데오 골목”,

 

“선착장”의 “좌판”, “봉덕시장”, “동서종합시장”, “현풍장” 등)

사람의 기억과 온기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인 장소 경험에 근거하여 우리 사회의 소외된 존재를

감지하고자 하는 시인의 작업은, 시적 기억의 환기와 복원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이는 『별자리』의 내용적 차이와 구성방식에서

방증되는 바이다. 『별자리』의 1부와 4부는 자연을 통해 가족에 대한

기억과 “어머니”라는 원형적 심상을 반추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달리,

『별자리』의 속살을 구성하는 2부와 3부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자기 몫을

부여받지 못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내쫓긴 자를(outcast)' 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 사이의 간극은 ‘시상(詩想)의 단절’

이 아니라, 시적 지평의 ‘사회적 확장’을 의미한다. 다음의 시를 보자.

 

수평선도 하늘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갈기를 세워

밀려왔다 금방 돌아서 간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파도와 어둠을 응시한 내 시야에

이제사 뚜렷하게 윤곽을 드러내는

이 땅의 음모들, 거대 담론들만 희번득일 뿐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다, 없다

어둠도 깊이 껴안고 응시하다 보니

보여주는 마음 있어

4월의 꽃 흩날리던 진도 앞바다

그날 그렇게 멈춰버린 시간 속에

세월의, 세월 흘러도

차디찬 맹골수도 여태 맴도는

저 어린 나비들

어루만질 수 없어 가슴 콱 막혀오는

새파랗게 소름 돋은

우리 아이들의 어깨다

 

나는, 다시

맨손으로라도 이 땅의 검은 밭 매야 할

눈물이다,어미다,

                              -「검은 밭」전문

 

 세월호 사건은 이 시집의 소실점 역할을 한다. 1,3,4부와 달리, 2부는

끝없이 침잠하는 하강적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힘겹게, 너무도 힘겹게

토해놓은 시인의 말은, 조각조각 부서져 추락할 수밖에 없는 이곳

“어디에도 사람은 없”다는 절망적인 한탄이다. 구체적인 장소 감각 속에서

사람을 발견하고자 하는 박경조 시인의 시적 지향이 곤경에 처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어떤 “하늘도 보이지 않”고. 너무나도 “캄캄”(「사진각구 팝니다」)

한 시공간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사람과 자연의 모습 자체를 묘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녀에게는 ‘봄’(「검은 봄」)조차도 검고 어둡다.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시인은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새로운 삶의 희망을 인양하는 존재이다. 하이데거가 휠덜린 시인을

‘역사의 선구자’ 라고 불렀던 것과 같이, 시인은 시대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

박경조는 그러한 ‘시인의 사명’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가슴 먹먹한

사건을 언어를 통해 육화 하면서, 그녀는 “어미”의 마음으로, 또 어미의 “눈물”로,

여린 목숨들의 귀환”(4월」)을 소망한다. 그것도  “맨손”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차거운 “맹골수도” 속에 가라앉아 있는 “아이들”의 귀향이

기도를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시적 화자의 눈은 ‘세월호 사건’을 통해 크게 변화한다. 이제 그녀의 눈은

세상의 외적 양상을 입안하는 ‘시선(vision)'의 기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어둠”)을 투사하는 ‘응시(gaze)의 투시경이 된다. 시인이 눈에

보이는 형상을 이미지화하고 각인 한다면 , 이와 달리 ‘응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감각하고 폭로한다. 시 「검은 밭」에서, 시적 화자는 “응시”를

통해 어둡고 컴컴한 세상 속에 숨겨진 “음모”와 “거대담론”을 가시화한다.

또 “권력”과 “우등”을 통해 구축된 가짜 질서의 계보학과 서열주의를 비판

(“비겁한 계절”), 「검은 봄」)한다. 사회적 약자를 다룬 2부의 여러 시편과

소외된 타자()의 거처를 다룬 3부의 작품들은, 모두 이와 같은 ‘응시’

과정 속에서 새롭게 포착되고 발견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지평의 확장 양상은, 자연스럽게 현실(“이 땅, 「양파」)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관심과 부조리에 대한 관심과 고발로 이어진다.

 

세 번을 갈아타야 지상에 오를 수 있는

지하철 수성구청역 에스컬레이트

다시 고용 승계 애원하듯

츠륵, 츠르륵

마지막 계단 톱니 꽉 물고 설핏 비켜가는

정오의 심장에 쿡,

발자국 찍어보는 저 청년의 등짝

아직 때 아니라고 단풍도 낙엽도 되지 못한

중국단풍 가지 사이로 얼룩얼룩 표류하는

섬 하나

                                  -「얼룩」 부분

 

 시 「얼룩」은 우리가 “얼마나 밑바닥에 서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라는

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행복(“해피데이”)해질 수 있는 낙관적인 세계가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

“살벌한 자본주의 골목”(「로데오 골목」)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법칙”

(「봄」)은 개별자의 능력이나 도덕률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코피가 터지도록 바짝 엎드려”서 일해도, 지상으로 가는 환한 출구를

만날 수 없는 낮고 어두운 “밑바닥”이기 때문이다. 정규와 비정규

지상과 지하의 삶은 엄정하게 구분되어 관리된다. 아무리 “애원”해도

2년 시한부계약”의 삶은 “승계”되지 않고 “표류”할 뿐이다. 정주할 장소

가 없다는 것, 이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징표(“얼룩”)이다.

 

 그녀는 이와 같은 계층적 분열과 청년 세대의 고립감을 “섬” 이라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표현한다. 통상, 서정시는 세계와 자아의 아름다운

합일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 시는 세계와 자아의

분열과 균열 과정 속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고구하는 표현 방식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안정적인 삶의 자리에서는 목격할 수 없는 ‘존재’와

‘사건’을 탈은폐하는 역할을 수행 한다. 박경조 시인이 “6개월 짜리 계약직”

에 기댄 “노인들”(「봄,꽃」)과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농촌으로 떠밀린

일용직 노동자(「양파」)나 이주 노동자(「얼음 구멍」)의 “눈물”을 담아낼 수

있는 까닭은, 그녀가 단순한 신체적 기관으로서의 눈(‘시선’)이 아니라,

예민한 존재 감각(‘응시’)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의 핵심 비판 전략은 ‘4대강 사업’을 조롱하는 것

(“오로지 살리기, 살리기, 위한다던/ 그 몰염치의 프로젝트”, 「낙동강」)

같이, “권력”(「검은 봄」)을 향해 격발되는 직핍한 언설에 있지 않다.

『별자리』의 주된 창작 방법은 현실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재생산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 모순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왜냐하면 시의 정치성이란 현실정치의

어긋남을 직설적 언어를 통해 격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관리하는

인지적이고 감상적인 질서 체제를 새롭게 재분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시인은 자연과 사람의 성찰적

관계 구도 속에서 우리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정초하고자 한다.

 

하늘과 물안개 한 된 공산폭포

이쯤에서 한번 뒤돌아 보거라

아래로만 흘러가는 물결에도

탐욕이 실리는지

절벽이다

온몸 얼얼하도록 채찍질하는

맵고 뜨겁고 차디찬 낙차에

무섭게 붉어진 개옻단풍 가지 사이로

애야, 여기 피해 갈 생이란 없단다

어머니 목소리에

살얼음 끼는 소리

                               -「폭포」전문

 

 이 시는 “공산폭포”라는 자연물에 빗대 인간의 자기 성찰을 촉구하고

있는 작품이다. 폭포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얼핏 보면, 폭포의

흐름과 낙차란, 자연의 이치와 순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시인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차디찬 낙차”, 낮은 것을 향해 흐른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리는 아니라는 것. 우리가 옳다고 믿는 신념과 가치

(“아래로만 흘러가는 물결”)에도 욕망(“탐욕”)이 탑재될 수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삶을 “절벽”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상하좌우의 ‘방향성’이 아니다. 시인은 ‘아래로 흘러야

한다’ 는 방향성을 따르는 것보다, 특정한 곳을 향해 달려갈 때

누락하지 말아야 할 ‘자기 성찰’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아래로,

 

아래를 향해 달려가되, “이쯤에서 한번 되돌아 보”는 자기 성찰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성찰의 중요성은 「꽃」이라는 시애서 더욱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폭포」의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진전시키고 있는데, 꽃은

시적 화자의 성찰적 대상이다. 가지꽃 송이는 “하나같이 땅을 쳐다보고

있”으며, 모두가 “양지 쫓아 윗자리 옆자리/눈치 재는 시절”에도

“자성(自省)”적 태도를 잃지 않는 삶의 표본이다. 시적 화자는 이런 꽃을

보며 부끄러움 (“참 부끄럽습니다”)을 느낀다. 시인의 이러한 자기 성찰적

태도는 새의 ‘균형감각’을 의미 한다. 그녀는 우리 삶이 어느 한쪽

(“위와 아래”, 혹은 “오른쪽과 왼쪽”)으로 치우칠 경우, 반드시

“나머지 한쪽”은 “쓰라”(꽃받침)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박경조의 시가 부조리한 세상을 비판하거나 소외된 이웃을 노래하면서도,

교조적 운동성과 속류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폭포」나 「꽃」외에도 『별자리』에는 자연을 소재로 삼고 있는 작품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구분하는 근대문명론의

인식적 폭력이 『별자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녀는 자연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분법적인 문명 비판이나 세태 비판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우위를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자연 예찬론이 아니라, 사람의 생()을 자연 속에서 녹여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자연이란 곧 사람이다. 이는 「우산」과

「목소리」에서처럼, 자연의 순리가 인간 삶의 원리임을 간명하게

포착하거나, 「호박」에서와 같이, 시적 화자가 느낄 수 있는 “다디단” 삶이

“늙은 어미”(「호박」) 의“쓰디쓴” 인생 속에서 발아된 것임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렇듯, 시인의 작품, 아니 시인의 자연과 사물 속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즉, 시인에게 사람은 “직진도 후진도 불가능”(「늪」)한 “불확실한 세상”

(1인분의 하루」)을 함께 견디고 살아가는 여전한 힘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군()이 이른바 ‘별의 시편’ 이라 부를 수 있는 「별자리」, 「별」,

「송림사 밤별」등이다.

 

새파란 싹 숨구멍 내주던 동구 밖 미나리 꽝

철사줄 박아 만든 앉은뱅이 그 썰매

작은오빠 몰래 한 번만 타본다는 게 그만

얼음 구멍에 발목까지 빠졌으니

모닥불 피운 논둑에 모여 앉아

나일론 양말 말리다 보면

졸음에 겨워 스르르 눈 감겨도

신기하지, 불똥 맞은 내 양말

구멍구멍으로 돋아나던 하얀 별

 

별은 하늘에만 뜨는 줄 알았지

가슴에서부터 뜬다는 것 그때는 몰랐다

 

빌딩숲에서 밤하늘 올려다보며 문득, 드는 생각

양말 벗어 말리던 또래들 두 볼도 별, 하나

 

나무라지 않고 집으로 데려가던

커다란 오빠 손도 별, 하나

갓 지은 저녁밥 아랫목에 묻어두고

나를 찾아 나온 엄마 목소리도 별, 하나

지금 내 가슴에 박혀 있는 총총 그 별들은

 

세상으로 통과하는 숨구멍

 

                                     -「별자리」 전문

 

 

 윤동주 시인의 저 「별 헤는 밤」이 그러했듯이, 시인에게도 ‘별’은

‘기억’이고 ‘사람’이다. 별이 “총총” 박힌 자리에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큰오빠, 작은오빠, 그리고 “저녁밥을 아랫목에 묻어”

두고 나를 찾아 나온 엄마까지, 별은 기억이고 나를 세상과 소통시키는

생의 호흡이자 통로(“숨구멍”)이다. 또 별은 “가족사진”(「아버지」)과 같은

사랑의 기록인 동시에, 때로 “상심한 나를 들어 올”()리는 구원과

희망의 지렛대이다. 그것은 “무성한 여름을 보내고 다시 봄이 될

때까지/저절로 맺히는 열매 없다며/혼신을 다한 저 생애 법칙”(마지막 봄)

을 알려준 ‘어머니’의 마음(“별빛”)과 다르지 않다. 이 마음의 반짝임, 혹은

“별빛”은 자식들을 위해 스스로 “소태”(「호박」)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기억과 교차하며 아름답게 형상화되고 있다.

 별은 현재의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내 뼈의 첫 자리”(「별」), 혹은

“빌딩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오욕 덩어리 도시”(「숨구멍」)에서도

숨 쉬며 견딜 수 있는 삶의 자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

(혹은 별빛)이 시적 화자의 개인적인 기억만을 환기하는 사물은 아니다.

별에서 뿜어져 나오는 “별빛”은 어두운 밤의 타자를 위한 “배려”

(「송림사 밤별」)이다. 시인이 ‘별’이 아니라 ‘별자리’를 서시(序詩) 격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별에 대한 기억은 각자

다르지만, 별자리의 상징성은 보편적이다. 별자리의 의미는 문화권별로

다를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이 각자의 “별”을 통해 공통의 희망(“자리”)

모색하고자 한다는 점은 어느 곳에서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별자리’를 노래 한다는 것은, 별과 별 사이를 상징적으로 연결함으로써,

개개인의 사연과 기억을 ‘공동의 의미’로 재분유하는 연대의 행위와 다르지 않다.

‘나’의 별은 ‘너’의 이 되고 다시 ‘우리’의 ‘별’이 된다. 그렇다면,

박경조 시인에게 ‘별자리’란 물리적인 형태나 수학적 좌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성장시키고 인도하는 희망의 성좌(星座)가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공통의 별자리를 모색하는 작업은 희망의 좌표를 탐색하는 시적

실천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시인의 별자리 속에는 이간의 시간과 장소,

혹은 사람의 기억과 온기가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와 모순에 찬

세상이 우리 삶과 무관한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변혁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어긋나고 비틀어져 침몰해가는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초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에게는 그것을 기록하고 인양할

 

책무가 있다. 박경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별자리』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그러한 시적 소임을 포기하지 않은 데 있다고 하겠다. 그녀의 시가

소외된 삶의 자리와 은폐된 진실을 함께 밝힐 수 있는 희망의 언어로

독자들에게 오롯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朴炯俊 <문학평론가.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