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저 별들은 기억 할까요

황지에서 부산까지

순리와 질서 거스름 없이

뜨거운 젖줄 척 안겨주던 젊디젊던 당신을

왕버들 물풀 우거진 새벽 강물에

머리 감고 피어나던 이른 봄날의 풀꽃들

싱싱한 근육 뽐내며 멱을 감던 물고기와

풀 섬의 풀씨와 별빛을

신나게 물어 나르던 곤충과 철새

당신이 키워 낸 그 많고 많던 자식들을

 

그런데 어머니, 여기 와보세요

오로지 살리기, 살리기 위한다던

그 몰염치의 프로젝트가

이리 저리 베어 낸 물길 끊긴 이 강변에서

손톱 빠지고 발가락 뭉개진 기형 물체 되어

아프다, 아프다고 신음 중인걸요

어쩌지요 어머니,

살려야, 살려 내야하는데

강물은 흘러가야하는데

푸른 젖줄 핑그르르 다시 돌려야 하는데,

아픈 자식들 일으켜 세워야 할

당신의 절규를, 당신의 일생을

오늘밤 강변에 뜬

저 별들은 이해할까요

 

 

 

 

 

 

 

     

로데오 골목

   

                                

 

50%할인,

22인치 허리의 그녀가 방금

두툼한 목도리를 두른 채

체크무늬 미니스커트 갈아입고

호객을 시작한

수성구청역 에스컬레이트 끝

여기는 로데오 골목

그 입간판위로 대각선 혹은 대칭으로

각양각색의 말들로 현수막을 내다 건

유명 입시 학원들과

시시때때로 발가벗기는 마네킹들

 

꿀사과 왔어요, 달고 시원한 꿀사과,

 

오늘도 쉰 목청으로

통유리창 타고 반사되는 핸드마이크

을씨년스러운 11월의 비

사선 긋는 사이로

주룩주룩 지워지는 리어카 바퀴 따라

이 소리 저 소리 섞여야 제 맛 나는 세상이라고

금세 빗줄기 눈발 되어 흩날린다

살벌한 이 자본주의 골목에

문득문득 와 주시는

달고 시원하다는 말, 저 목소리 없으면

얼마나 쓸쓸할까, 재미없을까

 

 

 

 

 

 

 

 

 

 

 개옻나무

 

                                           

 

 

 

날마다

창창한 초록으로만 빛날 생이라고

진짜인 척 했네

 

버리고 떨구다 시나브로 점 하나로 멈춘

옹이까지 다 드러낸 저 나뭇가지

뒤돌아봐야 할 길목이라고

종아리를 친다

연초록에서 초록으로

짙은 초록에서 붉음으로 이르는 길

온갖 색깔의 순환을 만류한 채

정점을 향해 오르기만 한 적 있었다

올라가다 보니

여기 이 동네에도 산 아래 저 마을에도

, 척 하는 온갖 허구들로 시끌벅적하여도

저 혼자 적멸에 든 개옻 단풍

 

‘참’ 으로 완성된 저 붉음이라면

‘개’ 자의 경계에도 참으로 무성 하리

 

 

 

 

 

 

 

 

 

 

 

 

 

경북선

 

                                                   

당신,

코미디 같은 세상에 열 받아 노여울 때

경북선 열차에 승차하시라

덜컹 덜커덩 다소 불규칙적인 보폭의 무궁화 열차는

측백나무 잎잎 같은 옛 편지를 다시 읽듯

청리나 옥산역 플랫폼 어디쯤 내려주리라

 

앞다투어 하얗게 자두꽃 피는 차창 밖에서

제 모습 비춰주며 손 흔들어줄

별정우체국의 깃발도

덤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밟는 내 속도에 뒤뚱거릴 때

세상 눈치 보지 않고 덜컹 덜커덩

리듬을 탄다

 

 

폭염

 

                                               

 

담벼락 아래 머위 잎,

 

손바닥만 한 그늘까지

 

사정없이 태우고 있습니다

 

듬성듬성 남아있는 그늘,

 

거기

 

지렁이 한 마리 소신공양 중입니다

 

 

 

 

 

 

 

 

 

 

 

 

 

 

 

호박

 

 

 

 

베란다에 방치된 채

겨우내 얼었다가 녹았다가

뼛속까지 허공이 된 몸

담장아래 내다 묻었을 뿐인데

 

미처 읽어내지 못한 세상사처럼

곁가지만 만들며 가는 어리석은 내 방식까지 품어

다시 싹 내리고 꽃피워

칠팔월 땡볕에도 탯줄 맨 끝자리에

잔병치레 잦던 나를 앉혀 다스려낸 당신

 

-호박은 늙으면 속이라도 달지만

다 늙은 어미 속은 소태맛이라, 아무쓸모 없구나.

 

당신의 애끓는 노동가 뒤에서 나는 날마다 푸르렀습니다

 

그랬습니다

마땅하듯 차지한 다디단 이 꽃자리가

당신 애간장 다 녹여낸 깊은 속이란 것,

 

무서리 맞고 담장에 걸려있는

마른호박 줄기 걷어내면서

, 쓰디쓴 당신 속 그 소태맛의 배후에

단맛으로만 길들여진, 여태 생 속인 내가 있는 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

                                  -무화과나무

                                                       

 

-얘야, 꽃은 보여주는 것만 아니란다

무화과 꽃, 저 혼자 꽃받침 속에서 필 때쯤

독장골 나락 논에 엎드려 두 벌, 세 벌 김매다

휘어진 등짝으로 팔 남매 꽃피워낸 당신

 

-무화과는 속에서부터 익는 열매란다

당신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

그 아이의 6개월 된 딸 민채를 품에 안고

줄장미 담장 곁,

30년 전 당신이 심어주신

무화과나무 곁에서

찰칵 찰칵 가족사진 찍습니다

 

 

 

 

 

 

 

 

 

 

 

 

 

 

 

 

 

 

 

 

 

꽃받침

                                               

                                                      

 

내 손이 닿지 않는

붙박이장 위칸은 뾰족한 허공

글쎄 오른손을 받치러 온 식탁의자

허공 깊어, 섣부른 나를 내팽개친 것

금이 간다는 건

부러진 틈보다 오래 간다는 것

오른쪽과 왼쪽

위와 아래

한 쪽이 아프면,

나머지 한 쪽이 더 쓰라린 것

한 쪽이 베이고 나서야 알았다

 

한 때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했던 손

그 손으로 이별 또한 어루만져야 했던

가령, () 손이 꽃의 일생이라면

거친 세상과 쓰린 사랑 버무리고 치대던,

어미의 순한 손이 되기까지 팽팽하게 받쳐 준

꽃받침 같은 내 손목,

 

이렇게 깊이 들여다본 적 없다

 

           

 

 

 

 

 

 

 

 

 

 

 

             

 

 

텃밭 말석에서 피어난

가지꽃 송이 들은

하나같이 땅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양지 좇아 윗자리 옆자리

눈치 재는 시절에도

고개 수그려 땅만 바라보는

이렇게 자성(自省)이 깊은 식물 앞에서

참 부끄럽습니다

 

 

 

 

 

 

 

 

 

 

 

 

 

 

 

 

 

 

 

 

 

 

 

 

 

 

별자리

 

 

 

새파란 싹 숨구멍 내주던 동구 밖 미나리꽝

철사줄 박아 만든 앉은뱅이 그 썰매

작은오빠 몰래 한 번만 타본다는 게 그만

얼음 구멍에 발목까지 빠졌으니

모닥불 피운 논둑에 모여 앉아

나이론 양말 말리다 보면

졸음에 겨워 스르르 눈 감겨도

신기하지, 불똥 맞은 내 양말

구멍구멍으로 돋아나던 하얀 별

 

별은 하늘에만 뜨는 줄 알았지

가슴에서부터 뜬다는 것 그때는 몰랐다

 

빌딩숲에서 밤하늘 올려다보며 문득, 드는 생각

양말 벗어 말리던 또래들 두 볼도 별, 하나

나무라지 않고 집으로 데려가던

커다란 오빠 손도 별, 하나

갓 지은 저녁밥 아랫목에 묻어두고

나를 찾아 나온 엄마 목소리도 별, 하나

지금 내 가슴에 박혀 있는 총총 그 별들은

 

세상으로 통과하는 숨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