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되돌아보니, 참으로 긴 시간을 《기억의 틀》속에 있었다. 이 작품은 지난 몇 년간의 ‘나’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온 나라가 울먹이며 큰 슬픔에 빠져 있었다. 나 역시 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해 가을, 진도 팽목항 인근 시댁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쓰는 내내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그래서 다른 작품에 비해 뜸도 훨씬 더디었다. 그냥 덮어두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런 작품을 마무리하고 나니 앓던 이가 빠지듯 시원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퇴고를 할수록 허접한 구석이 자꾸 보인다. 그래도 더는 손대고 싶지 않다. 이즈음에서 못난 모습 그대로 두려 한다. 그것도 지금의 ‘나’이기 때문이다. 수필은 작가의 심성을 그대로 솔직히 드러낸 것이 오히려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작품 전편에 진실을 담아내고자 수행하듯 썼는데, 글쎄 모르겠다.

 

무엇보다 가장 고심한 것은 시각의 범위였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시각으로 썼다. 그것이 저자인 나의 큰 숙제였고, 화두였다.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느낌을 오롯이 잘 담아낼 수 있을지 내심 의심을 하며 썼다. 아버지 시각과 내 시각 이렇게 두 가지 시각으로 작품을 쓰는 것이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이 글은 수필가인 나에게 처음 시도하는 실험 작품이다. 아버지 생각을 좀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느끼기 위해 ‘그’라고 썼다. 그렇지 않으면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시각의 다각화는 저자가 독자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읽어 내기를 요구한다. 한 작품에 아버지를 보고 있는 나의 눈으로 썼지만 이런 것도 독자는 분명 다른 시각으로 읽을 수 있다. 6·25전쟁 세대 할아버지와 60년대 월남전쟁 세대 아버지, 격변의 80년대를 청소년기로 보낸 딸이 바라본 세대의 느낌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좋은 것은 좋고,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감’이 있음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눈치챘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셸 푸코가 말하는 콘베니엔티아, 닮음처럼 말이다.

 

또 한 가지 욕심을 부린 부분은 ‘단어’이다.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는 듯, 느낌을 너무 세련되지 않으면서 묵은 맛을 우려내 개운해지는 그런 느낌을 오롯이 담아내고 싶었다. 작품 소재와 단어도 60년대에서 90년대에 많이 사용하는 소재와 말들을 골라 썼다. 그래서 옛 기억을 많이 더듬었다. 아버지 시대를 담고 싶어 어릴 적 기억에 남는 단어들과 어휘들을 투박한 느낌이 나도록 썼다. 무엇보다 가장 한국적인 느낌이 무엇일까 고심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 묻혀버린 잊힌 감성을 거칠게 문대어 보고자 썼다. 거친 것이 더 거친 것에 문대고 나면 부드러워지듯이 말이다. , 지난 시간이 마음 한편을 쓰리게 긁고 있다면, 이 글에 문대어 조금은 부드러워지길 바란다.



 

추천의  

 

 

죽은 아버지를 되살려내는 효심과 공감의 미학

 

이경철(문학평론가,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불이 넘어가는 문턱, 부넘기. 그 문턱 역시 높다. 그래서 아무거나 들어가지 못한다. 화려한 때깔, 불꽃만이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넘기는 불길이 방고래로 넘어가게 하여 방구들을 데워지도록 한다. (중략) 불도 넘어야 되는 문턱이 있다. 그곳이 높을수록 불꽃은 더욱 화려하게 타오르며 그 문턱을 넘어간다. 만약 넘지 못하면 매운 연기로 눈물이 날 수도 있다. 불도 높은 턱을 잘도 넘어가는데, 그러는데….

-「부넘기」 부분 발췌

 

• 서정과 서사와 평이 어우러진 ‘총체적 수필’

 

채선후 작가의 수필집 《기억의 틀》은 사별한 아버지를 효심과 공감의 미학으로 다시 살려내고 있는 애틋한 사부곡(思父曲)으로 내겐 읽혔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시나 소설이나 수필로써 틀에 박힌 그런 정을그린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문학 장르의 특징만 뽑아 우리네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는 살갑고도 깊은 정, 그리움을 길어 올려 독자들과 공감을 나누고 있는 ‘총체적 수필’이다. 6장으로 나눠 36편의 작품을 실은 《기억의 틀》에는 6·25세대인 할아버지, 월남전과 경제개발 세대인 아버지, 1980년대 민주화세대로 오늘을 살아가는 딸의 세대의 서사가 들어있다. 살아있을 때는 서로 등을 돌려야 했던 세 세대의 한 많은 속내를 이제는 서로 보듬고 공감케 하는 서정이 들어있다. 그런 서사와 서정을 이어주는 것은 추억을 소환하여 공감하며 그리움을 아득히 이어주는 언어와 응축된 문장들이어서 총체적 수필이라 부른 것이다.

 

 저자는 1972년 충북 음성에서 출생해 여주 남한강변으로 이사해 자랐다. 어려서부터 동양고전을 탐독했던 저자는 한문에 소양이 있어 어렵고 까다로운 불교 경전을 우리말로 맛깔스럽게 번역하는 작업을 해오며 수필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필집 《십오 년 막걸리》를 비롯해 《문답대지도론》, 《머뭄이 없는 가르침》, 《마음 비행기》등을 펴냈다. 불교를 통한 마음공부가 잘 돼있어 언어에 들어있는 혼과 마음을 잘 읽어 내 전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작품이 이 《기억의 틀》일 것이다.

 

 “밤하늘 별빛을 보면서 묵은 기억을 받아썼다. 아버지의 낡은 사진과 함께 지나온 시간을 들추어 보면서 행복했다. 코흘리개 시절 내 모습과 젊었던 아버지 목소리를 받아 쓴 문장 끄트머리에 점을 찍을 때면 묵은 때가 벗겨지듯 개운했다. 기억의 반추는 가슴 속 박힌 못을 빼내는 것과 같이 시원하다. 밤하늘을 서성이는 동안 욕심으로 번민하고, 어리석음으로 찌그러진 문장을 펴게 해주었고,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을

 

씻게 한 반추의 시간이었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마지막 작품인 〈반추점(反芻點)〉의 한 대목이다.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와 그 방법론, 그리고 효과를 솔직히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다.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 사별하고 나면 누구든 불효에 우는 그 죄스러움이 이 작품을 쓰게 하며 부모에 대해 못 다한 정을펴게 한 것이다. 해서 이런 작품을 쓰고 읽는 행위는 가슴 속 박힌 못을, 마음에 뭉친 응어리를 빼내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대목에선 저자의 언어관과 문학론이 드러나고 있어 소중하다. “밤하늘 별빛을 보면서 묵은 기억들을 받아썼다”는 단 한 문장으로 언어와 우리네 글쓰기의 요체를 드러내다니 놀랍다. ‘하늘에는 천문(天文)이 있고 땅에는 지문(地文)이 있으며 인간에게는 인문(人文)

이 있는데 이는 하나의 도()로 통한다’는 게 《역경(易經)》에서 말한 ‘도문일체(道文一體)’요 이것이 동양의 언어관이요 문장론이다. 천지인은 셋이면서도 하나라는 우리 고유의 삼재(三才), 삼신(三神) 명재와도 통한다. 말과 글이 곧 하늘의 뜻, 도라는 것을 잊고 인간들은 자신의 꾀를 내어 제 깜냥껏 글을 쓰고 치장하려 한다. 그러니 문장이 찌그러져 하늘의 뜻과 사람 본래의 뜻을 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저자는 별빛을 보면서, 천문에 따라 쓰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자신의 ‘묵은 기억’, 인간의 본심으로 맑게 씻은 기억을 하나로 합치면서. 이것이 언어와 문장과 글쓰기의 본디 모습일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집의 〈여는 글〉에서 “이번 작품 화두는 ‘공감이고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 글은 ”누구네 아버지와 딸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 이야기이고, 딸의 생각이길 바라며 쓰고자 한다.”고 밝혔다. 본질적인 글쓰기, 곧 인문이 천문이 되는 글이니 어찌 하늘마음과 독자들의 마음과 다를 수 있겠는가. 저자는 또 〈마치는 글〉에서 아버지의 시각과 저자의 시각, 두 시점(視點)에서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대의 느낌은 다를 수 있지만 그 속에서 같이 느끼고 있는 ‘아름다운 느낌’을 독자와 공감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작가가 아버지의 시각, 즉 다른 이의 시각에서 쓰면 그것은 소설적 양식으로서 거기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시점에서 쓰면 서정이 우러나는 것이다. 그런 서사와 서정을 합치시키며 세상에서 항구 불변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느낌을 잡아냈기에 이 작품을 난 총체적 수필로 명명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와 느낌을 시적인 문장으로 잘 잡아냈기에 이 작품집을 대표한다고 생각해 내가 프롤로그로 올린 위 〈부넘기〉 대목을 다시 한 번 감상해 보시라. 저자의 아버지가 총각 시절 저자의 어머니가 될 처녀를 처음 보고 집에 들어와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생각하는 대목이다. 이성을 향한 설레는 마음과 이 세상의 삶을 헤쳐 나갈 마음이 순연히 일치되고 있지 않은가. ‘부넘기’라는 언어 자체가 또 아버지의 그런

 

마음과 일치하며 언어 자체가 꿈꾸어 나가는, 부넘기라는 말에 대한

명상 같은 이 문장을.

 

• 전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온 격동의 세대, 한 많은 서사

 

“지난날 그는 잘 피어나지 못한 불꽃이었다. 한 몫 잡기 위해 몸만 바쁘게 움직였었다. 그럴수록 잡히는 건 쓰디 쓴 술잔이었다. 세상은 그를 향해 산다는 게 다 그렇다고 타이르듯 말하고 있었다. 그는 쓴 술잔을 삼키면서 다짐도 했었다. 새로운 한 몫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고집처럼 포기하지 않았었다. 그는 더욱 빠르게 풍구를 돌렸다. ‘왜 내게는 풍구가 되어 줄 바람이 불지 않았는가?’ 그도 한때는 자신을 피어 줄 불꽃을 잡고 싶었다. 때때로 그런 불꽃을 피워 줄 바람은 불어 왔었다. 그 바람은 잡을 새도 없이 후딱 지나갔다.

 

 중년에 이른 작가의 아버지가 가을이 깊어가며 싸늘한 아궁이에 불을 붙이려 풍구를 돌리도 있는 〈풍구〉의 한 대목이다. 어버지를 ‘그’라는 3인칭으로 부르며 그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서사를 이번 작품집 한축에서는 풀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시점에서 그 서사에 대한 심리묘사도 하며 3인칭 소설 문법으로 가족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풍구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갈등과 한이 서려있는 물건. 아버지가

5살 무렵에 맞은 6·25전란 때 할머니는 집을 나간 채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술과 가난으로 집을 나간 것이라 여기며 아버지는 어머니 없이 성장한 한과 그리움으로 할아버지에게 반항하다 급기야 할아버지 앞에서 내팽개쳐 깨버린 것이 그 풍구이다. 할아버지가 죽고 고향집에서 이사 오면서 가지고 온 그 풍구를 돌리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는 대목이다.

“어떤 것도 그를 잡지 못했다. 아버지도 월남 가겠다는 그를 잡지 못했다. 집 나간 어머니까지도 그를 잡아 두지 못해 장돌뱅이로 떠돌게 했다. 그는 늘 시간 속에서 잡히지 못하고 흩어지고 있었다. 지금 피워대고 있는 담배 연기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흩어지도록 정해진 것이 그의 인생인지도 모른다. 그는 월남에서 흩어져버린 기억을 다시 주워 담으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여기까지 지나온 기억들을 다시

주워 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담배 연기와 함께 모든 기억들은 흩어졌다. 문섭 아줌니 집에서 낙엽 타는 매운 내가 날아왔다. 곧 그 냄새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흩어졌다. 그래도 연기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아마도 햇빛에 잎이 빛나던 날들을 기억하면서 바람 속에서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생각한다. 지금 타고 있는 낙엽은 분명 아름다웠다고, 그 기억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피어날 자리를 찾아 떠돌고 있는 거라고! 그는 타는 낙엽 냄새를 흠뻑 들이마셨다.

 

 

오토바이 사고로 머리를 다쳐 생활력을 잃은 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담배 연기처럼 흩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돌아보고 있는 〈청자 담배〉의 한 대목이다. 아버지의 삶을 지켜본 딸로서의 저자의 심사와 아버지의 심사가 그대로 일치되고 있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집을 나가 결손 가정에서 자란 아버지는 총명했음에도 초등학교를 마지막으로 학업을 접어야 했다. 아내 하나 건사하지 못해 도망가게 한 수치심과 죄책감인가. 아예 양조장 일을 돌보며 술로 살았던 할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땐 그런 할아버지에게 대들던

아버지는 월남전이 터지자 도망치듯 파월장병으로 전장에 가 폭탄 파편에 머리에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집에 머물지 못하고 포목을 싣고 이 장 저 장 5일장을 찾아 도는 장돌뱅이가 됐다. 할아버지가 죽자 아버지는 식솔들을 거느리고 처가 동네로 이사가 처갓집 방앗간 일을 하며 한 가정을 일으키다 오토바이 사고가 나 후유증으로 죽은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한평생과 함께 아버지의 속내가 소설적으로 작품집 한 축에선 그려지고 있다.

 

 “살다 보면 가고 있던 속도에서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아버지는 빠른 속도에 빠져 있음을 당신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 매력에서 멈춰버리고 싶었지만 아버지도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속도가 어릴 적 할머니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속도이고, 옛 전우들을 보고 싶은 속도이고, 옛 고향 친구들을 그리워했던 속도였다는 것을 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일까! 아버지는 사고를 당하신 후부터 아이가 되셨다.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는 늘 집 앞 느티나무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멀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중략) 아버지가 빠른 속도에서 멈춰버렸을 때, 나는 스무 살로 접어들고 있었다. 내 이십대는 그렇게 아버지 옆에서 멈춰 있었다. 모든 것에서 말이다.

아버지의 오토바이 사고 대목을 다룬 〈88오토바이〉 후반부이다. 저자는 이 작품집에 실린 작품마다 전반에서는 3인칭 주인공 아버지를 내세워 과거 아버지 실상을 드러내려 했고 후반에서는 현재 저자 자신의 시점에서 그런 아버지의 삶과 속내를 평하고 저자의 오늘도 그리려했다. 해서 외형상 과거의 서사와 현재의 평이 함께하는 ‘평전소설’ 형식을 띠게 했다.

 

위의 인용 대목에서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리고픈 것은 어릴 적 집 나간 어머니, 고향 친구들, 생사를 같이 한 월남 전우들이 그리워 달려간 것이라 보고 있다. 부녀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아버지 이야기와 심정을 밀도 있는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다. 특히 그때그때 아버지의 마음과 일치되어 심리나 풍경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응축된 문장들은 가위 산문시에 가깝다할 정도로 서정적이다.

 

• 서정적 문장에서 우러나는 우주적 포에지

 

 

 “사방에 흩어져 있던 빛들이 한 점으로 모여들면 흩어지지 않는 빛깔이 된다. 물이 끌어당기면 흰빛이, 흙이 끌어당기면 누런빛이, 불은 붉은빛이, 구름은 푸른빛이 된다. 사방색이 한 점으로 모여들어 검은빛이 되면 다섯 가지, 오방색을 이룬다. 그때는 흩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방색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온다. 그때는 까맣게 타버린 재가 되어 산으로, 물로, 하늘로, 불로 다시 흩날려간다. 그곳이 어디 있든지 멀리 멀리 허공 너머까지 간다. 오방색은 월남전에서 전역한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허공은 어딘가에서 날아와서 그를 휘감았다. 그는 그런 끌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오방 장돌뱅이다.

 

닷새마다 열리는 장을 바꿔가며 돌아다니는 아버지의 5일장 장돌뱅이를 다룬〈오방(五方) 장돌뱅이〉의 첫 대목이다. 첫 문단은 빛깔에 대한 명상적 산문시로도 훌륭할 정도로 적, , , , 흑 오방색(五方色)이 주인, 주어가 되어 가없는 깊이와 넓이로 확산돼 가는 문장들을 이끌고 있다. 그러다 아버지의 삶과 이어지도록 매 작품의 첫머리는 사물과 언어의 본질,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운항, 도에 따르는 우리네 삶에

대한 명상으로 시작된다. 우리네 색동저고리에서 볼 수 있듯 오방색은 적, , , , 흑 다섯 가지 빛깔로 우리 민족 전래의 색이다. 각 색깔은 각기 목, , , ,

등 이 세상을 이루는 다섯 가지 요소를 말하기도 하고 동, , , , 중앙 등 다섯 방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오방색은 음양오행설같이 우주의 본체요 운행의 도이기도 한 것이다. 위 첫 문단에는 우리 고유의, 동양의 그런 심오한 사상을 자연스레 담을 정도로 작품집 곳곳에 저자의 동양고전에 대한 실감적인 이해가 돋보인다.

 

 나도 티베트 명상센터에 한 보름간 머물며 바람에 펄럭이는 그곳 오방기를 보고 문득 깨친 바가 있었다. 우주의 본체는 돌이나 나무 같이 형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방기가 저 다섯 가지 요소를 끊임없이 이합집산(離合集散) 시켜가며 꽃이며 말똥이며 도마뱀이며 물고기며 풀로 윤회 전화(轉化)시키는 본체 없는 바람이라고. 그렇지 않던가. ()인지 티끌인지 모를 것들이 뭉치고 뭉치다 한점 빛으로 폭발해 원소들을 이합집산 시키며 탄생한 것이 우주라는 게 과학적으로도 정설이 돼가는 빅뱅(Big Bang)이론 아니던가. 우리 또한 원소들이 뿔뿔이 흩어져, 멀리 멀리 허공 너머 흩어졌다 다시 모여 또 어느 별에서 어떤 존재로든 태어날 게 확실하지 않겠는가. 위 문단 역시 오방색으로 우주적 본질을 실감으로 직관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들에

게 익숙한 언어와 문법으로.

 

 “낫을 얼마나 휘둘렀을까. 풀 더미가 제법 높게 쌓였다. 허리춤에 묶어 놓은 수건을 풀어 땀을 훔치는 찰나, 새파란 하늘에 왕거미 한 마리가 집을 짓고 있었다. 거미가 뭉툭한 꽁지에서 뽑아낸 실을 엉켜대었다. 살랑대던 바람에 거미줄 전체가 흔들렸다. 눈꺼풀이 끔뻑하는 찰나에도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자신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그 순간 짧은 찰나는 전체가 되어 다가온다. 한 덩어리였던 억겁 시간에서 아주 작

 

, 찰나만한 조각이 떨어져나간 것처럼. 월남에서 폭탄이 터지던 때가, 겨울이면 형과 함께 지게에 땔나무를 한 짐 지고 오던 때가, 가을볕에 말리던 찐 고구마를 주워 먹던 때가, 어머니를 찾아 소 장터를 울며 다니던 때가 모두 잊고 있던 조각들이었다. 점점 찰나의 조각들은 하나로 뭉쳐져 전체가 되고 있었다.

서늘함이 깃들기 시작하는 처서(處暑)에 할아버지와 함께 집안 산소에 가 벌초하는 아버지의 심사를 다룬 〈찰나(刹那)〉 전반부의 한 대목이다. 찰나는 인도에서 온 불교 용어로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사이에 65찰나가 지나간다는 가장 작은 시간 단위. 반면 가장 긴 시간 단위는 겁(). 사방 40리나 되는 바위에 백년마다 한 번씩 엷은 옷자락을 스쳐 그 바위가 다 닳을 때보다 더 긴 시간이 겁이다.

 

 그런 찰나와 겁으로서의 시간을 명상하고 있는 대목이 위 인용 부분이다. 그와 함께 바람에 흔들리는 거미줄을 보는 찰나, 우주의 뭇 것들은 거미줄 같이 서로 연결돼 있어 하나가 아프면 우주 전체가 아프다는 불교 인드라망의 자연스런 설법도 새어나오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대목, 이런 문장과 문단으로 이뤄진 이번 작품집을 읽는 내내 ‘참 서정적이구나!’ 하고 감탄을 연발했는데 그 서정 미학의 요체가 위

대목에 오롯이 들어있다. 시학(詩學)에서 서정성의 요체로 일반적으로 꼽는 것이 나와 너, 자아와 우주는 하나로 같다는 ‘동일성의 시학’과 찰나로서의 한 순간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예감을 통합하고 있다는 ‘순간성의 시학’ 아니던가. 하여 서정성을 나는 ‘너와 내가 오롯이 만나는 순간의 포에지’로 보고 있다.

 

 좋은 시들을 읽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명상에 명상을 거듭하며 프랑스 철학자이자 문예이론가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얻어낸 바로 그 포에지. “한 편의 짧은 시 속에 전 우주의 비전과, 하나의 혼의 비밀, 그리고 여러 대상의 비밀을 동시에 드러내는 순간화된 형이상학으로서의 포에지”말이다. 하여 “포에지는 본질적인 동시성의 원리, 아주 확산되고 분리된 존재가 자신의 통일을 이루는 그런 원리가 된다”며 바슐라르는 포에지를, 서정의 핵심을 ‘순간화된 형이상학’이라 부르지 않았던가. 그런 포에지와 순간화된 형이상학의 실감을 위 대목에서 저자는 찰나의 명상을 통해 아주 자연스런 문장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의 심리를 묘사할 때도, 아버지의 눈으로 저자와 아버지가 함께 살았던 농촌과 소읍의 풍물들을 그릴 때도 정련되고 응축된 언어와 문장에 그런

우주적 포에지가 묻어난다.

 

 수필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형식 제약 없이 자유롭게 개인적인 서정이나 사색과 성찰을 산문으로 표현한 문학 양식’이라 정의된다. 그러나 요즘 수필들은 너무 자유를 누리고 있음인가. ‘문학 양식’도 뛰어넘어 일반 산문들과 구별할 수 없이 풀어지고 있는 수필들도 많다. 수필은 정련된 문장과 서정과 성찰과 구성 등으로 시, 소설, 평론 등 다른 문학 양식을 다 포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값싼 감상이나 자유롭게 풀어놓는다고 다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장르의 특징을 고려하며 창작 기법을 고심해야 하는 엄연한 창작이다. 그 최대치를 난 ‘총체적 수필’로 부르며 이 작품집 《기억의 틀》은 그 한 모범이 되고 있다. 그런 수필의 위상과 깊이, 그리고 미학을 계속 일구며 큰 작가로 성장하시길 빈다.

 

 

 

저자 약력

 

 

채선후 債先後 (본명: 최종숙)

 

1972년생 충북 음성에서 나고, 여주 남한강변에서 자랐다. 서울디지털대학 문예창작과를 거쳐 동산불교대학원에서 불교경전을 공부하였으며, 현재는 국립목포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2012년 작품〈설거지〉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저서로는 《십오년 막걸리》, 《문답대지도론》, 《머뭄이 없는 가르침》, 《사춘기부모와 자녀를 위한 대지도론-마음 비행기》, 영문판 《BUDDHAS THEACHING FOR TEENAGERS & PARENTS: Mahaprajnaparamita-ststra MIND GLIDER,Waiting For The First Snow》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