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무언가 담게 될 틀은 비어있어야 한다. 비었다고 일부러 채울 필요는 없다. 이미 시간이 시나브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콩알만 한 틈까지 채우고 나면 그때는, 그때는 다른 이름이 되어 창틀이든, 대청마루 천장이든, 처마 밑이든 어딘가에 매달려 기억을 영글게 한다. 그래서 자꾸만 매달렸던 틀을 찾아 서성이게 한다. 그런 틀은 시간까지 흔드는 ‘기억의 틀’이 된다.

 

물 한 바가지 뿌려진 마당에 먼지를 일게 할 소리가 있을까. 그 소리로 채울 수 있는 틀이 있을까. 있다. 마당은 시끄러운 소리를 담아내는 틀, 가득한 먼지도 담아내는 틀, 그런 것들이 뒤섞여 있는 지금을 담고 있는 ‘기억의 틀’이다.

 

 

가을볕 아래 바지랑대 널린 이불소청이 졸리듯 펄럭이고 있다. 쇠파리 소리가 마당 그늘진 구석에서 졸고 있는 누렁이를 귀찮게 하는 점심 한나절이다. 위이∼ 잉윙윙. 누렁이 귀는 얼떨결에 쫑긋거리고, 땅바닥에 깔린 배는 꺼릴 거 없다는 듯이 축 늘어졌다. 오후의 고요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 게으름을 가두려는 틀이 있으니, 그 틀은 좀 시끄럽다. 늘어진 게으름을 깨울 정도로 시끄럽다. 마당은 지난여름이 벗어 놓은 흔적들로 빈틈을 채우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치열히 내리쬐던 땡볕으로 채워졌었다. 마당에 널린 콩대에서 후덥지근한 열기와 물기 덜 마른 풋내가 났었다. 이제는 바싹 마른 콩대가 마당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주름진 손이 허리통 굵은 방망이를 들더니 마당 한복판에 던져 놓는다. 콩대는 방망이를 내리칠 때마다 어쭙잖게 탈탈거렸다. 털털털 탁탁타타다닥. 동네 여기저기서 콩 터는 소리가 담 너머 들려왔다. 그래도 옅게 남은 풋내는 잔먼지를 내며 땅바닥에서 푸덕거렸다. 콩 터는 소리는 저녁 늦게까지 마당을 채웠다. 콩 털기가 어느 정도 되자, 주름진 손이 방망이를 내려놓았다. 콩알만 한 빈틈도 채우고 싶어서일까. 빈 꼬투리만 달린 콩대를 다시 땅바닥에 놓고 탈탈 털었다. 그런 후 빈 콩대를 한아름 안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를 불렀다. 그는 스무 살 청년이 다 되었건만 주름진 손인, 그의 아버지는 매사 못 미더운 잔소리를 했다. 그럴수록 아버지 목소리는 쇳소리가 더해져 카랑카랑했다.

“아야, 재식아! 마당에 떨어진 콩 좀 주워 담아라∼이! , 양재기 있지?

그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 에.

콩은 자기 몸보다 더 작은 틈새도 용케 찾아냈다. 마당 빈틈에 점박이처럼 흩어져 있는 콩알을 주울 때면 흙먼지 속에서 콩알을 골라내야 했다. 콩알은 쪼그맣기도 하지만 맹랑했다. 키를 까부를 때면 고 작은 것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대청마루 틈새까지 들어갔다. 그러면 젓가락을 대동하여 후벼대었다. 지금, 고 맹랑한 것이 그의 기억까지 흔들 틀에 담기려는 참이다.

 

오늘은 고것이 네모진 빈 틀을 채우는 날이다. 주름진 손은 아궁이에 연신 장작을 넣었다. 콩물이 가마솥에서 하얗게 끓어 넘치기 시작했다. 한 바가지 물을 부었다. 솥뚜껑을 닫자 또 한 차례 끓어올랐다. 또 물을 부었다. 이렇게 끓기와 물 붓기를 두서너 번 하다 보면 콩이 물러진다. 다 삶아지면 널따란 고무 통에 넣고, 절구 공이로 빻는다. 빻아진 콩을 한 손 가득 떠서 네모진 빈 틀에 넣는다.

틀은 오래 묵은 손때로 까맣게 바래있었다. 먼저 빈 틀에 베 보자기를 깔았다. 그 안에 빻아진 콩을 꽉꽉 넣은 다음 보자기를 덮었다. 그가 콩으로 가득 채워진 틀에 올라서자 두 발 폭이 꼭 들어맞았다. 한 발, 한 발 놀렸다.  물컹거리며 발바닥을 간질거렸다. 이때 천천히 오래 밟아야 된다. 그래야 틀대로 모양이 단단히 잡히기 때문이다. 밟는 것은 늘 그의 몫이었다. 그는 발바닥에 힘을 주고 꾹꾹 밟았다. 틀 안에 콩은 밟을수록 메주가 되어갔다. 다 된 메주는 새끼줄에 묶어 볕 잘 드는 대청마루 끝에 매달았다. 겨울 동안 누런 메주는 허연 곰팡이를 피우며 영글어 갈 것이다. 가을볕이 쓸쓸히 툇마루를 훑고 지나가고 있다. 그는 마루 끝에 앉았다. 메주는 처마 끝에 매달려 있었다. 콩은 마룻바닥 빈틈을 차지하던 때를 기억이나 할까. 메주는 찬바람과 냉랭한 볕으로 채우고 있던 마당을 기억이나 할까. 메주 틀 위에서 제 모양이 흩어지지 않게 꼭꼭 밟아주던 그의 발바닥을 기억이나 할까. 메주는 지난여름의 기억을 영글게 하고 있었다. 차츰 ‘콩’이 남긴 흔적들도 마당에서 비어지고 있는 겨울이었다.

 

 

어머니! 제가 오늘 무엇을 했는지 아시는지요? 메주를 띄웠습니다. 예전에 어머니처럼 메주 틀 위에 서서 말랑하게 삶아진 콩을 밟았습니다. 새끼줄도 꼬아 대청마루 끝에 메주를 매달았습니다. 이제부터 보드랍던 메주도 서서히 굳어지겠죠. 어머니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처럼요. ! 어머니! 언제쯤 돌아오실까요. 저는 어머니가 오시는 날까지 매달린 메주를 보며 대청마루 끝을 서성일 것입니다.

 

그날, 그는 흩어져가는 어머니 얼굴을 틀에 단단히 가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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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틀을 좋아하지 않는다. 답답하게 가둬 놓는 거 같아서다. 하지만 ‘가둔다’는 말이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요즘은 기억이 종종 풀어헤쳐지고 있다. 엊그제 보던 얼굴도 긴가민가 헤맨다. 그래서인지 기억만큼은 어느 틀에 꽉 갇혀있었으면 한다. 사진처럼 말이다. 사진은 흩어지고 있는 기억을 잘 가둬놓고 있는 ‘기억의 틀’이다. 내게는 그런 기억의 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창틀이다. 그 틀 앞에서는 희미해져가는 기억도 잊지 않고 찾아온다. 그래서 창틀 앞에 설 때면 꼼꼼히 잘 봐두려 한다.

 

창틀은 기억의 흔적을 찍어둔 사진틀이다. 그렇게 찍어둔 사진은 좀처럼 낡지 않는다. 흔적 없이 지워졌다 해도 그 틀 앞에만 서면 생생히 떠오른다. 마음에 담아 둔 사진틀이기 때문이다. 창틀 앞에서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집 창틀이 커서 겨울이면 웃풍이 세었다. 그것이 겁이 났다. 겨울이 시작되자마자 비닐막이를 사다 창틀을 꼭꼭 동여맸다. 그 탓에 찬바람은 덜 들어왔지만 봄꽃이 피도록 창문을 열어보지 못했다. 분명 가로수에 눈은 쌓였을 것인데 겨울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다. 날이 따뜻해지더니 비닐막이 떨어졌다. 걷어내자마자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방안이 봄 햇살로 환해졌다. 벚꽃이 눈송이처럼 피어 있었다. 내 기억이 흔들렸다. 벚꽃을 따라 십여 년 전 아버지 장삿날 풍경이 창틀 가득 찾아왔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날은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봄이었다. 그때눈물밖에 나올 것이 없었다. 햇살만이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상여꾼들이 석관을 메고 오르는 선산은 무척이나 질퍽했다. 선산을 오르는 발자국들은 도장처럼 찍혀있었다. 지우기 싫은 인연들의 발자국을 틀에 찍어 놓기라도 하듯 또렷했다.

 

창문을 닫았다. 그래도 발자국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원고지 앞에 앉았다. 하얀 원고지 위로 월남에서 막 전역한 젊은 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국방색 모자를 삐딱하게 썼고, 통기타를 들고 환히 웃고 있었다. 1946년생 최재식, 그는 내 아버지다. 원고지 글씨들이 자꾸만 질퍽한 발자국들이 되었고, 그 발자국들은 다시 아버지 얼굴이 되었다. 그는 내게 기억의 사진첩을 내밀었다. 차곡차곡 끼워진 사진 한 장, 한 장이 기억의 틀이 되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내 가슴 속 사진틀 속에서.

 


 

분진(憤塵)

 

 

덥다. 한창 덥다. 길에 뿌연 분진(粉塵)만 일고 있는 땡볕 속 한낮이다. ‘덥다’라는 말은 열을 식힐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을 때 쓴다. 하지만 그런 믿음이 어느 순간 막혔다면 ‘덥다’가 아니다. 그때는 ‘뜨겁다’라 쓴다. 뜨거울 때는 촐랑대면 안 된다. 섣불리 움직여서도 안 된다. , 거기서 열이든, 분진이든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분진(粉塵)! 분진은 뜨거운 날 잘 날린다. 잠시 멈춰 서지도 않고 재빠르게 날아간다. 땀이 흘러내리기 전에, 바람이 불어오기도 전에 잠시 참지 못하고 어딘가에 달라붙는다. 거기다 어떤 분진은 겁도 없이 달라붙은 자리를 검게 태워 버릴 수 있다. 월남 혼바산에 밀가루처럼 뿌려지던 그 분진처럼 말이다. 그때도 다가가면 안 되었다. 숨을 차분히 쉬면서 분진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 그래야 다시는 달라붙지 않는 것인데.

 

동네 한가운데 너른 소 장터를 왼편으로 끼고 돌면 골목길이 나온다. 그 골목길 끝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 노는 공터가 있다. 그 입구에 이발관이 있다. 빨간 선, 파란 선이 꼬아져 있는 이발관 표시등이 낡은 문을 지키듯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오쟁이삼촌이 이발관으로 들어갔다. 오쟁이삼촌은 두 발끝을 안으로 오므려 걷는 안짱걸음을 했다. 걸음걸이는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띈다. 그와 오쟁이삼촌과는 외가로 먼 친척지간이었다. 오쟁이삼촌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집안 어르신들이 모두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났었다. 오쟁이삼촌네 할아버지는 짚으로 가마나 바구니인 오쟁이를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삼촌네 가마는 튼튼했다. 동네 집집마다 창고에 먼지 쌓여 있는 오쟁이와 가마는 모르긴 해도 오쟁이 삼촌네 할아버지 손을 거쳐 갔을 것이다. 오쟁이삼촌은 오쟁이가 아닌, 시멘트로 블록을 만들어 팔았다.

 

그는 가겟집에서 산 거북선 담배 한 보루를 손에 들고 뛰었다.

“오쟁이삼촌!

그도 이발관 안으로 들어갔다. 제대 후 처음 찾는 이발관이었다. 이발관 아저씨는 여전했다. 흰 얼굴에 깔끔히 빗어 넘긴 머리는 검게 염색한 것이 어딘지 어색해 보였다. 그리고 흰 반팔 가운을 입고 있었다. 이발관 안은 선풍기 두 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발관 아저씨는 오쟁이삼촌 머리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어이구! 이게 누구여? 재식이 아닝겨? 제대했다구 진작 소식 들었써∼어. 월남서 어디 다쳤다며 괜찮은겨?

“예. 별거 아닌데요, . 아저씨도 안녕하셨지유?

오쟁이삼촌도 환하게 반겨 주었다.

“어, 재식아!

 

그는 이발관 커다란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쳐다보기 민망했다. 어찌할 수 없어 눈은 벽에 걸린 선풍기만 쳐다보았다. 삐걱대는 소리가 요란한 선풍기였다. 돌아가는 것이 기특하기만 했다. 선풍기 바람을 타고 깨알 같은 머리털들이 분진(粉塵)처럼 날렸다. 그의 얼굴에도 날아왔다. 얼굴이 간지러웠다. 잘라진 머리털은 땀으로 엉겨 붙어서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오쟁이삼촌은 일자리를 구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머리만 긁적였다. 삼촌은 마땅한 일이 없으면 와서 시멘트 블록을 만드는 일 좀 거들어 달라고 했다. 벌써 제대 후 달포가 지났다. 부상 입은 머리는 무거웠다. 상처는 더디게 아물었다. 그래도 집에만 있기 답답했었던 터라 오쟁이삼촌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는 거북선 담배 한 갑을 오쟁이삼촌에게 또, 한 갑은 이발관 아저씨에게 주고 이발관을 나왔다.

 

이발관 밖은 곡소리가 분진처럼 날리고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 이놈아! 나부텀 죽여라!

문희 엄니 대성통곡 소리였다. 문희네 집 문은 이발관 뒤쪽에 있었다. 그는 조심히 분진 소리를 따라갔다. 문희 엄니의 쪽진 머리는 마구 풀어 헤쳐져 비녀 코가 달랑거리며 뒤통수에 매달려 있었다. 문희 엄니는 고쟁이 차림에 얼굴은 온통 눈물과 땀으로 뒤범벅이었고, 벌겋게 퉁퉁 부운 눈에서 뜨거운 불똥 같은 것이 가장 낮은 밑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들리는 곡소리는 더욱 거친 분진이 되어 날렸다. 문희 엄니는 무당이었다. 신이 내린지 몇 해 되지 않았지만 동네 사람들 사이에 용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동네 누군가 죽거나, 집안이 잘 안 된다 싶으면 문희네 엄니를 찾아가곤 했다. 그가 월남 가기 전부터 문희네 집을 지나면 굿하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곤 했었다. 그런 문희 엄니가 무당을 안 하겠다고, 자신을 죽여 달라고 대성통곡하는 것이다. 갑자기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희 엄니가 홍철릭을 문밖으로 냅다 집어 던지는 것이 아닌가. 홍철릭은 소매가 넓은 장삼 전체에 백일홍 물을 들인 듯 붉었고, 모란이 수놓아져 있었다. 소매 깃은 흰색에 모란이 실로 촘촘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이번에는 남색 전복을 집어 던졌다. , 소매, 섶이 없는 전복은 홍철릭에 비해 가벼워 공중에 날리며 사뿐히 땅 위로 내려앉았다. 다음은 방울을 내던졌다. 방울은 거세게 딸랑이며 땅 바닥에 툭 고꾸라지며 떨어졌다. 그 다음에는 징, 삼지창이 시끄럽게 땅 위로 떨어졌다. 황색과 백색 오방기도 내던졌다. 홍색 기도 던져졌다. 홍색 기()는 한참을 공중을 날아 그의 신발 위에 떨어졌다. 무당이 굿을 할 때 제일 재수가 좋다는 색이 홍색이었다. 그는 발 앞에 떨어진 홍색 기를 주웠다. 다음에는 청색 기가 날아왔다. 마지막으로 검은 기가 맥없이 땅 위로 버려졌다. 청색은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고, 검은색은 죽음을 뜻한다고 무당들이 꺼려하는 색이다. 문희 엄니는 버려진 것들을 다시 주워 모으더니 미친 듯이 성냥을 찾았다.

 

“성냥 어딨어! 성냥! 내가 두 번 다신 니, 눔을 찾을 줄 알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못해!

 

불은 쉽게 붙지 않았다. 문희 엄니 목에서는 그간 묵은 분진을 악을 쓰며 토해내듯 엄청난 굉음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문희 엄니는 곤로를 들고 나오더니 들어있는 석유를 무당 옷에 쏟았다. 눈에는 이미 독기가 시뻘겋게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독으로 불이 붙었는지 겨우 성냥에 불이 붙자 홍철릭 위로 내던졌다. 무당 옷에 불이 붙었다. 빠르게 불길이 커졌다. 동네 사람들은 나와 보지 않았다. 오방기에도 불이 붙었다. 순식간 홍철릭이 까만 연기를 뿜으며 불꽃을 내고 있었다. 불길 주변은 뜨거웠다. 그는 차분히 소리쳤다.

“불이야! !

머리 깎던 오쟁이삼촌이 양동이를 들고 급히 달려왔다. 이발관 아저씨도 바가지에 물을 들고 헐레벌떡 나왔다. 물을 끼얹자 타다만 까만 재가 분진으로 날려댔다. 양동이 물은 불을 끄기에 부족했다. 오쟁이삼촌과 이발관 아저씨는 다시 이발관 안으로 달려갔다. 그는 공터에서 자루가 짧은 낡은 삽을 찾아왔다. 삽을 마구 휘두르며 불길을 끄기 시작했다. 문희 엄니는 온 힘을 다해 그를 말렸다.

“저리가! 이놈아! 이 육질헐 놈아, 네 놈이 뭘 안다고, 우리 신장님을 함부로 하는겨?

그래도 불은 끄고 봐야 했다. 오쟁이삼촌과 이발관 아저씨가 연실 물을 뿌려댔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문희 오빠가 자전차를 타고 급히 달려왔다.

“엄니! 도대체 이게 다 뭐유-?

 

문희 엄니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끌려 들어갔다. 잠잠해졌다. 그는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손에 들렸던 거북선 담뱃갑들이 땅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줍지 않았다. 불길도 잠잠해졌다. 날리던 분진도 가라앉았다. 하지만 ‘니 놈이 뭘 안다고?’ 문희 엄니가 목이 쉬도록 내뱉었던 그 말이 귓속에서 뿌연 분진처럼 마구 날리고 있었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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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이 연이어지고 있는 팔월이다. 날씨 때문인지 분진이 여기저기서 일고 있다. 밖은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분진으로 뿌옇게 날리고 있고, 내 속에서는 더위를 이기지 못해 헉헉대고 있다. 이럴 때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분진이 가라앉기를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 미쳐 날뛰던 광경을 보던 날이 생각난다. 그 날도 오늘처럼 매미가 울었다. 하지만 매미보다 더 크게 동네를 울리고 있는 소리가 하나 더 들렸다. 바로 무당집 할머니 곡소리였다. 무당 할머니는 무당 옷들을 몽땅 들고 나와 불을 놓고 있었다. 어린 나는 무서워 움찔거리면서도 할머니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쪽진 머리에 비녀는 달랑거리며 매달려 있었고, 가르마부터 흘러내린 백발의 긴 머리가 얼굴 반을 가리고 있었다. 입에서는 살기 가득한 욕들이 쏟아졌다.

‘이 육질헐 눔! 내가 니 눔을 가만 둘 줄 알어? 칼로 배를 갈라 죽일 쌍눔아! 이눔아!

 

그 말들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무서운 말인 건 분명했다. 나는 목이 터져라 울어대는 할머니 울음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듯 들렸다. 아니, 슬픔보다 서러움이라 해야 될까. 알아주지 않는 슬픔이 서러움이라면 할머니 울음소리는 분명 서러운 울음소리였다. 어린 나는 무서워 떨면서도 무당 할머니를 놓치지 않고, 두 눈 똑바로 쳐다보았다. 곡소리를 흘리고 있는 주름 진 입은 무서웠다. 그 입은 만화 영화에 나오는 마녀보다 더 얇고, 뾰족했다. 붉어진 눈도 뚫어져라 보았다. 핏대가 터진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하지만 눈빛은 맑았고, 눈물은 투명했다. 난 그 빛에 끌렸다. 콩쥐를 도와주는 선녀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 눈물은 분진을 다 날려버린 빛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폭염이 사방에 깔린 오후. 덥다, 더워! 환장하게 덥다. 매미도 더위를 먹었는가 보다. 울지도 않는다. 조금씩 내 몸속을 떠돌고 있는 분진(憤塵)들이 움직이려 한다. 분진은 안에 쌓여있던 노여움들이다. 나는 노여움이 많다. 내 노여움은 좀 교묘해서 사람들 눈에는 착한 척, 화를 못내는 척, 얌전한 척,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내뱉지 못한 노여움들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요즘 눈에 힘이 점점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붉게 핏대가 생길 것 같다.

 

이쯤에서 한 번 무당 할머니처럼 분진을 미친 듯 토해 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다. 미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잊고, ‘나’라고 쌓아온, 남들 앞에 번득해 보이는 것들을 잊고, ‘나’를 수식하는 단어들도 다 벗어던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솔직하게 실컷 울고 싶은 사람이라고 내보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다. 분진을 날려 버리는 것에도 큰 결심이 필요한 나는, 목이 찢어질 듯 토해내던 무당 할머니의 곡소리와 눈물이 부럽다.

 

! 할머니의 눈물 빛은 정말 영롱했는데….  그 눈물의 맑은 빛을 입고 싶다. 그 빛이 목까지 쌓인 내 분진을 날려 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오늘은 무당 할머니가 목이 쉬도록 내뱉었던 말들이 귓속에서 뿌연 분진처럼 마구 날리고 있는 밤이다.

 

 

 

양조장

 

 

밤에 떨군 눈물이 이슬이 되고, 낮에 삼킨 번뇌가 안개가 되었다면 이슬과 안개가 바람에 실려 쌀알 속에 고이면 세상을 흔들 맛이 된다. 햇빛은 안개를 삭혀 술 빛을 내고, 달빛은 밤이슬을 삭혀 씁쓸한 맛을 낸다. 바람이 쌀알을 쥐고 흔들수록 술은 점점 독해진다. 세상을 쥐고 흔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산다는 것이 씁쓸한 사람에게는 어떤 술도 쓰지 않고, 어떤 술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사람이 마시는 술은 바람으로 떨어진 나락으로 빚었기 때문이다. 그 나락은 더 이상 떨어질 데 없는 곳,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곳, 양조장에 있다.

 

볕이 들까 꼭꼭 덮어 둔 항아리. 밤이슬 앉을까 꼭꼭 덮어 둔 항아리, 상심(傷心)으로 꼭꼭 덮어 둔 항아리, 세상을 취하게 할 술 항아리가 있는 곳은 양조장이다. 양조장은 밤낮으로 세상을 쥐고 흔들 술을 빚고 있다. 그 앞을 지나면서도 좀처럼 취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바람에 떨어진 나락()일 수 있다.

 

그는 상근이와 함께 타고 온 트럭에서 내렸다. 상근이는 보따리를 실어 둔 트럭을 감곡 성당 근처에 세워 두었다. 감곡 성당에서 집으로 가는 걸음은 무거웠다. 달빛에 청국장 냄새와 누룽지 끓는 냄새가 묻어났다. 그의 그림자는 연탄처럼 시커멓고,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는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멀뚱하니 쳐다보았다. 전봇대와 나란히 서 있는 그림자는 마치 막대기 같았다. 그는 다시 걸었다.

'어디를 가야 되나! 어디를…….

그는 성당 골목을 지나 신작로를 걸었다. 주점에서는 시끄럽게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마신 술로 뱃속이 부글거렸다. 그는 배를 움켜쥐었다.

 

어느 집에서 흘러나온 밥 냄새가 골목에 가득했다. 밥 냄새는 어둠과 함께 짙어졌다. 어느 집을 지나갈 때는 누룽지 끓는 냄새가 구수히 새어 나왔다. 그는 콧속으로 들어오는 숨을 꾹 참았다. 그는 뜨거운 김과 함께 끓어오르는 밥 냄새를 좋아했다. 오늘따라 밥내가 진하게 속을 끓게 했다. 더욱이 시래기 된장국냄새는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골목으로 새어 나오는 냄새들이 발걸음에 엉겨 붙어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골목을 지나면 양조장이 나올 것이고, 또 그 길로 곧장 가면 그의 집이였지만 이쯤에서 멈추고 싶었다. 그는 힘겹게 한 발자국 발걸음을 떼며 다짐하듯 외쳤다.

 

‘오늘은 반드시, 반드시 집으로 가야만 한다!

 

눈앞에 양조장 대문이 보였다. 어릴 적부터 보아 온 대문, 그 대문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턱, 하니 세월을 잘도 버티고 있었다. 집체를 다 가려버린 짙은 녹색은 세상을 가둬놓은 성문 같았다. 무언가 새어나올 것이 없어 보이는 묵직한 철문도 틈은 있었다. 그 틈으로 술 냄새가 새어나왔다. 냄새는 취할 만큼 힘차게 달달했다. 문득 그는 대문이 달달한 냄새를 걸러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걸러내고 남은 찌꺼기는 쓰겠지만 말이다.

 

보름 전, 아버지가 양조장에서 술 찌꺼기를 가져왔었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쏘았고, 고개가 저절로 흔들릴 만큼 독했다. 걸러내지 않은 것처럼 썼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독한 것이 좋았다. 독한 술은 입 안을 넘어가면서 온 몸을 흐르고 있는 피를 더욱 빠르게 돌게 했다. 그럴수록 몸은 뜨거워졌고, 그 뜨거움은 깊이 박힌 가시에 불을 붙였다. 가시가 활활 타도록 말이다. 타라! ! 제발! 활활 타버려라. 그는 삼켜버린 가시를 태워 없애고 싶었다. ! 그러고 싶을 때 아버지는 양재기 가득 술 찌꺼기를 가져왔다. 아마도 그보다 그의 아버지가 더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태워버리고 싶은 것을 아버지도 태워버리려 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술독에 풍덩 빠져 가시를 품고 있는 자신까지 태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6·25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양조장에서 일했다. 입에 풀칠을 면할 논과 밭떼기를 갈면서도 양조장 일을 놓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음성, 감곡을 고향으로 정한 것도 양조장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 ! ! 그 때문에 아버지지가 양조장 일을 놓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는 색 바랜 양철 대문 앞에 섰다. 어릴 적 단단해 보이던 그 철문이 아니었다. 대문은 냄새를 걸러내기에 힘에 부쳐 보였다. 그는 장승처럼 한참을 서 있었다. 대문 밖으로 아버지가 마시던 탁한 막걸리 냄새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달은 점점 연탄재가 되어 갔다. 다 타버려 길가에 내던져 구멍이 반쯤은 깨져 버린 연탄재! 달은 꼭 그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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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옆에는 아버지도 없고, 아버지가 가시처럼 생각했던 할아버지도 없다. 아버지에게 가시와 같았던 할아버지를, 그 가시를 미치듯 뽑아내고 싶어 했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만! 나만 이렇게 있다. 어릴 적 내 눈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서 그 어떤 가시도 보이지 않았었다. 단지 아버지가 마셔대던 술만 보였고, 할아버지가 피워대던 담배만 보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아버지가 잡고 있던 양재기 술잔에서는 술이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잡고 있던 거북선 담배에서는 담배 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련한 그리움이었다. 아버지가 들이킨 것은 술이 아니었다. 술이 아닌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삼킨 것이다. 그리움이 담긴 술은 좀처럼 취하지 않는다.

 

그리움을 맛으로 표현한다면 달달하다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아버지의 산소 가는 길에 그 양조장은 있다. 그 양조장 큰 문틈을 비집고 막걸리 냄새가 새어 나왔다. 냄새는 코끝을 톡 쏘는 것이 달달했다. 그 냄새는 맡아도, 맡아도 취하지 않았다.

 

오늘 저녁 막걸리 사발을 두 손으로 잡고 마셨다. 머리가 흔들거리며 취하기 시작했다. 나는 냄새를 맡고 있다. 코가 아닌 가슴으로 말이다. 아부지가 주름진 굵은 두 손으로 맞잡은 양재기를 들이키던 그 술! 어째 오늘은 달달했던 그 냄새가 나지 않는다. 쓰다! 아주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