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집

―상주 은척 동학교당

                                       

살아있는 자들은 집이 있습니다.

죽은 자들도 집이 있습니다.

풀쐐기가 야문 각질의 집을 짓듯이

굳고 단단한 성 같은 집을 짓고 삽니다.

 

방랑자와 방황하는 자는 집이 없습니다.

가는 길이 집이요 머문 하늘이 집입니다.

산에 집을 짓기도 하고

바위 속에 집을 짓기도 합니다.

 

미로의 중심에 지은 정신의 집 네 채

낮이 없던 깊은 밤 잠자지 않고 깨어 있는

집 안에 집이 있는 음양의 조화

 

집을 두고도 집이 그리워서

사경(寫經)을 하듯 한울님의 집짓기를 거듭해온 개벽

서러움이 받치면 집이 됩니다.

눈물이 마르면 집이 됩니다.

 

물결에 바람결에 허물어지는 보루

가라앉은 주춧돌만이라도 지키려는 어기찬 행진

굴욕의 끝에 자리 잡은 교당(敎堂)

 

고문 받는 신음 소리 사이사이

경 읽는 소리, 주문 외는 소리, 먹 가는 소리

뒷담 위 하늘수박 익는 소리가 들리는

열린 하늘 집

 

가난한 자의 집은 대낮같이 밝습니다.

집 안에 없는 자의 고독이 켜켜이 쌓여

밤에도 빛나는 구슬처럼 혼이 나르는 반딧불처럼

빛을 나투는 집이 됩니다.  

 

은척 가는 길

           

은척 가는 길은 동학의 길이다

사람이 낸 사람의 길이다

사방으로 막힌 높은 산길을 넘어야 하고

물오를 때는 자라가 기어오르는 개울도 함께 간다

깊은 땅속 검은 불

곤이 잠든 시간을 캐 올려 온몸을 태울 검은 광장

비껴 돌아드니 성주봉과 칠봉산이 마주 선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

상주시 은척면 우기리에는

내 친구가 교장으로 있다가 퇴직한 중학교가 있고

그 옆에는 김주희 선생이 창도하신 동학교당이 있다

은자골은 평화롭다

발길 닿아 머무는 곳이 도량이라지만

다리품밖에 없던 시절 첩첩산중을 어이 찾았을까

마음의 눈은 풍수에 밝아

험한 산하를 넘은 것일까

간간이 비 뿌리는 초겨울

붉은 산수유 열매가 조롱조롱 매달린

마을 안 길 찾아든 동학교당

빈 마당에는 경 읽은 소리가 가득하다.

 

 

 

 

 

 

 

 

 

 

 

 

 

 

 

 

놋양푼이 온전하다

 

부잣집 가을 섬같이 넉넉한

보름달같이 둥두릇이 차오른

놋양푼이 온전하다

 

황금빛 태양의 이글거리는 모습으로

한울님의 뜻을 담는 제기(祭器)

탈 없이 남아 있는 것이 이상하다

 

공출 당해 강제로 징발 당해

포탄이나 탄환으로

사람을 겨냥했을 놋양푼

 

싸늘한 칼날을 피해

새앙쥐의 눈초리를 피해

용케 남아 있다는 것이 놀랍다

 

기원의 쌀밥 붕긋하게 담고

하늘 열리는 새 세상의 도를 담은

고문 받은 우리 할배의 역사

 

빛바랜 거친 세월

참말이 술술 풀려나고

갑오년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때가 되면 다 된다

 

때라는 말이 참 좋다

때라는 말에는 기다림의 싹이 돋는다

 

우리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억눌려 지냈을 때

짓밟히고 으깨지고

가마니처럼 묶여가서 고문을 받았을 때

사람이 하늘임을 몸소 보여준 여든네 해

삼풍 선생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남기신 말씀

‘때가 되면 다 된다’

잠자던 경전이 눈을 뜨고

풀린 겨울 개울물 소리가 난다

 

때라는 말에는 닫힌 문이 열린다

다 때가 있다는 말 언제 들어도 참 좋다

 

 

 

 

*상주 은척 동학 교주인 김주희(1860~1944) 선생은 키 8184cm, 기골이 장대하여 2m 왕죽을 지팡이로 삼았다. 성격은 아주 엄격하여 안채마루에 서서 불호령을 내리고 왕죽을 내리치면 처마가 들썩거릴 정도였단다. 체천사상과 선천회복, 교정 분리, 향신설위를 주장했다.

1943년 음력 1028일 수운 선생 오신 날 제사를 지내려던 참이었는데 난데없이 들이닥친 일경의 발굽 아래 교당은 아수라장이 되고 ‘이런 흉악한 놈들! 이 무슨 짓이냐’며 대노하며 위엄을 잃지 않았으니…… 19441228일 여든네 해를 일기로 순도한 삼풍 김주희 선생의 마지막 말씀이 ‘때가 되면 다 된다’이다

 

 

 

 

 

   

 

  궁궁 을을

―약한 사람들의 세상이 곧 온다

 

 

 

갑오세(甲午歲) 가보세 그려

어언 일백 년 거친 이랑 넘어온 오늘

아직도 사람들은

전쟁, 혁명, 봉기, 반란, 운동, 싸움이라고

제 생각만을 고집하고 있지만

궁궁 을을  

뜻 막혀 저승이 된 길목에서

한 많은 넋 위로하는 제() 올리고

원혼 달래주는 진혼굿 펼친다

묵정밭 풀들은 닥칠 겨울을 슬퍼하고 있지만  

갑오세 가보세 그려

죽은 사람은 아주 죽은 것이 아닐세

없는 사람은 아주 없는 것이 아닐세

잎 진 자리 끝에 새잎이 돋아나듯

안개가 짙어야 해가 더욱 밝아지듯

사람 사는 세상은 먼저

뒤 하늘이 열리는 법

궁궁 을을(弓弓 乙乙)

 

 

 

 

 

 

 

 어떤 강론 1

―인내천(人乃天)             

                                 

 188512월 어느 날 상주 화령 전성촌에 최 보따리 선생이 오셨다. 사람의 향기는 아카시아 꽃향기보다 더 멀리 날아가는 모양이다. 소백의 능선을 넘어온 바람이 귓불을 때리는 한겨울인데도 그의 말씀을 듣고자 도인들이 줄줄이 모여들었다.

최 보따리, 해월 선생이 먼 길 나설 때는 낡은 무명 보자기에 필요한 도구만을 넣은 뒤 둘둘 말아 묶어서 등에 메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마루와 마당에 도인들이 귀를 모으고 있었다. 선생은 무거운 이야기보따리를 풀 참이었다.

 

“내가 얼마 전 청주를 지나다가 서택순의 집에서 찰가닥 찰가닥 베 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쉼 없이 일정하게 울리는 그 소리를 듣고 서군에게 ‘누가 베를 짜는 소리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서군이 대답하기를 ‘제 며느리가 베를 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대의 며느리가 베 짜는 것이 참으로 그대 며느리가 베를 짜는 것인가?’ 서군은 무슨 말인지 아리송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뜻을 몰랐습니다. 여러분! 나의 말뜻을 모르는 것이 어디 서택순 혼자뿐이겠습니까? 서군의 며느리가 베 짜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공교롭게도 하느님이 베를 짜는 소리로 들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우리 도인의 집에 사람이 찾아오거든 사람이 왔다고 이르지 말고 하느님이 찾아오셨다고 말하십시오.”*

 

그날 해월의 강론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노루 꼬리같이 아주 짧은 강론이었다. 도인들은 짧은 강론에 고개만 끄덕이다가 산처럼 말이 없었다. 가슴에 뜨거운 불덩이가 들어와서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사람과 하늘, 하늘과 사람, 두 낱말이 번갈아 솟구치다가 하나로 합쳐졌다. 인내천, 몸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조중의가 지은 『새로운 세상을 꿈꾼 해월 최시형』의 122123쪽 인용.

              

 

어떤 강론 2

―밥 사상

 

 

 

1894년이 기우는 12월 우금치 싸움 이후 최 보따리의 잠행(潛行)은 계속되었다. 이듬해 동짓달 덥수룩한 수염, 움푹 파인 눈, 땟국에 전 해진 옷자락, 노인의 초라한 모습으로 들길과 산길을 걸어온 강원도 인제 땅, 잇단 비보에 붉은 눈물을 흘렸다. 그곳에서 도인이 차려준 보리밥상을 앞에 두고 입을 열었다.  

 

“젖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곡식이요, 곡식은 천지에서 나는 젖이라네. 그러니 사람이 어려서 어머니의 젖을 빠는 것도 천지의 젖을 먹는 것이고 자라서 곡식을 먹는 것 또한 천지의 젖을 먹는 것일세. 그래서 밥 한 그릇의 이치를 알면 만사를 아는 것이라네. 그러니 천지는 부모요, 부모는 곧 천지라네. 천지와 부모는 한 몸인 것일세. 그런데 사람들은 부모가 아이를 배는 이치를 알면서 천지가 곡식을 배는 이치를 모른다네.”*

 

밥숟갈을 든 해월의 손이 나뭇잎처럼 떨렸다. 보리밥알이 몇 낱 옷자락에 떨어졌다. 까칠한 밥알이 입안에 들자 부드러워졌다. 천천히 꼭꼭 씹어 삼켰다. 구수한 맛, 달착지근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둘러앉은 도인들이 꿀꺽꿀꺽 침을 삼키고 있었다. 목 줄기가 꿈틀거리고 천지가 꿈틀거렸다.

 

 

 

 

 

 

*조중의가 지은 『새로운 세상을 꿈꾼 해월 최시형』의 190쪽 인용.1895년 동짓달 강원도 산속으로 피신하면서 인제에 다다라 도인이 차려준 보리밥상을 앞에 두고 행한 강론이다. 천지와 부모는 한 몸이요 젖과 밥은 천지의 산물이니 공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원론이다. 밥이 곧 생명인 사실을 잊고 지내는 평상심에 대한 각성이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해월은 1898년 5월 원주시 호저면 송골에서 관군에 체포되어 7월 21일 한성감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처형, 72세의 생을 마감했다. 죄목은 좌도난정률(左道政律) 호남지역을 어지럽게 했다는 것이다.

     

 

 

1

 

다 주고 떠나는

마지막 가는 길은 부드럽다.

빈들로 사라지는 종소리의 여운이듯

해질녘 길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이듯

 

땡볕과 장마 속에서 초병처럼 서서 버틴

이제는 무서리 내린 찬 논바닥에 누워

덕장의 명태처럼

바람과 햇살에 몸 말리는 초분(草墳)

 

가벼운 육신 무더기로 꽁꽁 묶여서

수의 같은 흰 비닐에 싸여서

누룩 뜨듯 푹 익혀 진한 맛을 들여

온몸을 소에게 소처럼 고스란히 공양 올리는  

 

우걱우걱 되새김질하는 저물녘의 우리

가죽 속 움직이는 붉은 꽃으로 불어나는

은밀한 시간

 

함께 머물렀던 텅 빈 자리  

벼 그루터기 추워 보인다.

마른 눈물 자국 보인다.

 

       

 

 

 

       

 

2

 

아버지 짚이 되셨네.  

햇살 밝은 가을날 벼 거둔 천수답에서

퇴비 깔고 보리씨앗 넣으시며

‘참 좋다 참 좋다’ 이르시고 짚이 되셨네.

마당 가득 처마보다 높게 차곡차곡 쌓인 낟가리  

볏짚으로 쌓은 황금의 성

그때는 정말 넉넉한 부자였네.

은은한 달빛 넣어 꼬아낸 새끼줄보다 질긴

삼신 줄을 엮어 오신 우리 아버지

포성이 오갔던 그해 여름 문경 새재 보국대 다녀오신 뒤

목마를 해서 건넜던 낙동강

아버지의 높은 어께에서 솟아났던

쇠죽솥의 구수한 짚 냄새

한가한 날 약주를 즐기셨던 아버지의 불그레한 얼굴이

근심을 태우셨던 아궁이의 불기운으로 상기된  

그 모습으로 나도 홍시가 되면

멍석에 누워 별 헤며 들었던 가마니 치는 소리 솟아나고

이엉 엮어 새로 덮은 집의 따뜻한 겨울밤에 닿는데

짚 거둬간 빈 들 썰렁하다 못해 차가움으로 오는

대설 지난 지금에야 조금 알 듯도 하네.

짚이 되신, 흙이 되신

아버지의 길지 않은 생애를  

 

 

 

 

 

       

 

 

  시래기에 대한 명상  

 

 

그때도 줄줄이 엮어서 매달았었지.

늦가을 어스름이 내리면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며 

 

성지를 드나들듯 장독을 둘러보고 

잎 떨어진 감나무 사이로 내려온 하늘 

허공으로 뻗어나간 가지 끝에 솟은 별을 보았지. 

 

이른 새벽에 몇 사람이나 길을 떠났을까

 

겨울에 푹 삶아 끓여주던 쇠죽 냄새 나는 

시래깃국에 보리밥 한술 말아 먹고 

사발통문 가슴에 품은 채 

눈 내린 고갯길 발자국 지우며 걸어간 사람들 

 

그칠 줄 모르게 내려 쌓이는 눈으로 

소나무 찢어진 가지 허연 속살에서 

기름 짜듯 송진이 삐져나오는 고통의 한기

 

부엌 아궁이에는 사그라진 재 속에 불씨는 살아 

그래도 아랫목은 따뜻했는데 

벌들은 한 방울의 꿀도 나눠먹으며 

겨울을 난다는데 

 

맵고 찬 바람을 맞으며 

눈 속에 묻힌 풀들의 꿈을 생각하며 

새벽을 열어 간 흙을 사랑한 사람들

 

매달린 것은 시래기만이 아니었지.

바람에 서걱거리는 시래기만이 아니었지.

 

 

   

 

 

                       

가는 것은 반드시

 

가는 것은 반드시 돌아올 때가 있나니*

아주 간다고 생각지 말자

해질녘 곱게 물드는 노을 속에

그림자 지우며 나는 새들 돌아와

아침이면 다시 떠나는 것을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주 가는 것이 아니라

먼 저편에서도 기원의 손 모으고 있나니

한 송이 조화가 없어도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이 꽃인 것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광경인 것을

아주 간다고 생각지 말자

강 건너 저 언덕에도

들꽃은 바람에 흔들리나니

진 잎은 새 잎으로 다시 피어나느니

 

 

 

 

 

 

*주역 태괘 구삼효(周易 泰卦 九三爻)에 나오는 말. 무평불피(無平不陂) 무왕불복(無往不復)으로 평탄한 것은 반드시 기울어질 때가 있고 가는 것은 반드시 돌아올 때가 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지난밤 꿈에 먼 신라 적

상주 사벌에서 일어선 원종과 애노*를 만났습니다.

 

두 분을 꼭 시로 써야 한다는 초조함으로

똑같은 꿈을 세 번이나 연거푸 꾸었으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나도 사람입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이 말이 딱 좋다고 거듭 거듭 이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은 채

애를 태우다가 깼으니……

 

땀에 젖은 가마니가 실려 갈수록

잘 익은 호박빛 얼굴로 오는

 

꿈에 시로 나타난 사람이 있습니다.

흙을 걸우던 옛 사벌 사람이 있습니다.

 

 

 

 

*진성왕 3(889) 나라 안의 여러 주()·군()에서 공물과 조세를 보내지 않아 나라의 창고가 텅 비어 나라의 씀씀이가 궁핍하게 되었으므로 왕이 사자를 보내 독촉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도적들이 곳곳에서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에 원종(元宗)과 애노(哀奴) 등 사벌주(沙伐州 현재 상주)를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키자 왕이 나마() 영기(令奇)에게 명하여 붙잡아오도록 하였다. 영기가 적의 보루를 멀리서 바라보고는 두려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으나 촌주(村主) 우련(祐連)은 힘껏 싸우다가 죽었다. 왕이 칙명을 내려 영기의 목을 베고 나이 10여 세 된 우련의 아들에게 촌주의 직을 잇게 하였다.

―『삼국사기』 권 11 「신라본기」 11 진성왕 3

 

 

 

   

당신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당신이 아주 가까이 있어서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쑥스러웠습니다.

당신이 너무 멀리 있어서

사랑한다는 일이 덧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리석고 부족한 줄 알면서

당신을 사랑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는 당신의 깊은 속을 모릅니다.

나는 당신의 말 없는 말을 모릅니다.

그리워하면 엄마의 흙냄새를 풍겨주고

외로워하면 온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당신의 넓은 속을 모릅니다.

비바람이 치고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당신은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시사철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심장이 쿵덕쿵덕 뛰게 하는

가장 장엄한 교향곡을 들려줍니다.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투정에 불과하고 

한갓 시샘으로 그칠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아랑곳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나의 운명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면서 오는 날을 맞을 것입니다.

들어서나 나서나 늘 함께하는 당신 

당신이 있어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