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세상은 각기 다른 생의 지층으로 다져져 오롯이 존재한다.

 

 부박(浮薄)하면서도 고단한 곳에 켜켜이 쌓여간 생의 모습 속에 시는 늘 자리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엔 ‘생’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더 낮은 자리에서 시를 통해 본 우리 시대의 민낯, 그 속엔 4.16의 아픔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진정 시가 우리들 생의 자그마한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아직 봄일 수 없는 4월의 어느 날 금곡에서

                                                           김요아킴 씀

 

 

약력

 

김요아킴

1969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다녔다. 경북대 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2003년 계간《시의나라》와 2010년 계간《문학청춘》제1회 신인상으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가야산 호랑이』『어느 시낭송』『왼손잡이 투수』『행복한 목욕탕』과 산문집『야구, 21개의 생을 말하다』가 있다. 한국작가회의와 한국시인협회 회원이며 부산작가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청소년 문예지《푸른글터》편집주간이며, 현재 부산 경원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메일: kjhchds@hanmail.net

블로그: http://blog.naver.com/kjhchds (김요아킴의 시야)

 

 

 

 

해설

 

역사의 악몽과 구원의 시쓰기

 

 

                                                       

                                                       이민호(시인, 문학평론가)

 

 

 

 

 1. 역사 위에 서 있는 시인

 

 김요아킴의 시를 대하며 경건한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이 지나간 자죽 우에 서서 부르짖는 것은 개와 都會詐欺師뿐이 아니겠느냐(시 「玲瓏目標」에서)”는 김수영의 일갈을 곱씹었다. 시를 함부로 써 댔던 현대 시인들을 ‘죽음보다 엄숙하게’ 바라보았던 시인의 눈빛을 그에게서도 보았기 때문이다. 그처럼 김요아킴의 이번 시집은 ‘사람이 지나간 자죽(자국)’을 담았다. 외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 김수영의 새로운 목표이듯 ‘종소리보다도 더 玲瓏하게’  들려주었다.

 ‘사람이 지나간 자국’은 역사다. 시인은 역사 위에 서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개처럼, 사기꾼처럼’ 부르짖어서는 안 된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린「안개바다 위의 방랑자」처럼 시인은 단독자여야 한다. 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사내는 묵묵히 안개가 바다를 이룬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안개 바다는 거칠게 꿈틀대며 엄습하고 있는데 사내는 뒷모습인 채 망루의 초병처럼 흔들림이 없다. 그의 내면은 알 수 없다. 단지 적막하고 고독하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자연은 공포와 절망을 껴안은 듯 거칠다. 김요아킴이 서 있는 역사 또한 악몽과 같다. 거기서 그는 지나간 사람들의 아직 발효되지 않은 흔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쓰인 역사’와 문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역사’로 구분한다. 쓰인 역사를 ‘하얀 빛’으로 명명하고 이 빛이 이야기 형식의 스펙트럼을 통과하여 발광하는 ‘다채로운 빛’으로 분사된다고 말한다. 역사 위에 서 있는 시인은 어쩌면 이야기 형식 그 자체가 아닐까. 김요아킴에게 역사는 백일몽처럼 하얀 빛이며 발효되지 않는 상태에 있다. 그는 이 역사의 악몽을 새로운 형식으로 뿜어내 발효되길 꿈꾼다.

 역사 위에 서서 꿈꾸는 시인 김요아킴이 경험한 시간은 벤야민이 말하는 ‘참된 시간’과 ‘공허한 시간’으로 중첩돼 있다. 전자는 ‘별똥별빛이 섬광처럼 번쩍이는 순간’이며 후자는 ‘스스로 시작한 일을 결코 성취할 수 없는 자들의 지옥 같은 순간’이다. 김요아킴은 지옥 같은 시간에 서 있다. 그리고 거기서 발효되지 않은 시간의 균열을 꿈꾼다. 이러한 시간 속 틈이야 말로 벤야민이 말한 ‘메시아가 들어서는 작은 문’이며 ‘사물이 참된 표정을 띠는 순간’이며 ‘잠 깨는 순간’이다.

 김요아킴의 이번 시집은 원심적 흐름에 얹혀 있다. 자기로부터 출발하여 역사 속으로 들어가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홈커밍 스토리다. 즉 귀향의 궤적을 이루고 있다. 1부는 공포와 역설을 주조로 구원자로서 스스로를 구성한다. 어린기억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호메로스 대서사시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처럼 발효의 역사를 향해 출발한다. 2부는 세월호의 참극을 비롯해 사회 주변부 사람들의 불안한 기억을 담고 있다. 거기에 시인의 개인사가 겹치며 한 걸음 세상으로 나아간다. 3부는 사회적 개인의 열전()으로 확장된다. 역사의 주변부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거기에 언제나 시인의 개인사가 쌍을 이루며 흐르고 있다. 4부는 역사의 악몽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열전이다. 역사의 트라우마 속에서 떠오르는 시간의 고원처럼 현실적 상상력으로 보다 열려 있다.

 

 김요아킴은 자기 현실에서 나와 광막한 역사의 현장에서 위대한 모험을 하는 오디세우스다. 그러므로 이번 시집은 발효되지 않은 역사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고 우리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려는 시쓰기라 할 수 있다. 이제 역사의 악몽 속에서 구원의 문을 열려고 하는 그와 만날 수 있다.

 

 2. 발효되지 않은 역사

 

 발효(醱酵) 과정은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유기물이 분해되는 현상을 말한다. 발효는 인간에게 좋은 미생물 작용을 자극한다. 이때 ‘산화(酸化)’ 과정과 ‘열기’의 첨가가 따른다. 그러므로 산화는 시적으로 변용한다면 상실을 의미한다. 무엇으로부터 분리되는 일이다. 이렇게 발효의 시적 과정은 산화하여 재생하는 뜨거운 변화를 뜻한다. 이때 반드시 누룩의 열꽃 같은 징후가 있다. 이를 시적 열기라 부르면 되지 않을까. 역사의 현장에서 발효할 수 없는 상태는 부패라 할 수 있다. 다시 사는 생명으로 이끌 수 없는 지옥 같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어린 나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몸을 불 태운다는

세콰이어 나무가

광장에 누워 있다

                 ―「그 사람, 김영오」에서

 

그해는 정말 무서운 바람이 불었지

피다 만 꽃들은 붉은 하혈을 하고

서걱이는 울음을 기어이 삼켜야 했어

                                     ―「이용녀 할머니」에서

 

163센티미터 37킬로그램

두 발로 일어서고 걸으면서부터

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던,

수십 차례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던,

질곡의 뿌리는 기어이 성장을 멈추게 했다

                                           ―「불꽃-삶은 계속되어야 한다」에서

 

나는 그를 위해 매일 새벽 기도를 바쳤어요

 

 

지팡이를 짚을 힘은 없지만 묵주만은 놓지 않았어요

 

정지된 그때의 화면이 늘 악몽처럼 베갯머리로 떠올라요

                                                    ―「고백성사」에서

 

강산이 한 번 더 바뀐 지금도, 여전히

살을 엘 듯한 굉음은 구르고 있어

              ―「두 꽃잎을 묻다, 왼쪽 자리에-미선이와 효순이를 기억하며」에서

 

아내와 새로이 정착한 땅은 여전히 낯설었고

이방인 3세라는 수식어만이 붙어다녔다

                                        ―「어떤 장례식」에서

 

 세월호 참극으로 수장된 어린 생명 유민이의 아버지, 일본군 ‘위안부’ 이용녀 할머니, 원폭 피해 2세 환자 김형률, 김주열 열사, 미선이와 효순이, 강제이주 고려인 김로만 등은 아직 쓰지 않은 역사다. 백색으로 탈색된 듯 창백한 빛을 발하고 있다. 역사의 주변부에서 이들은 공허한 시간 속에 존재한다. 제국주의와 파시즘과 비인간적 억압 아래 동질화된 시간이다. 어린 목숨을 살릴 수 없는 상태이며 폭력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전쟁의 폭압을 견디지 못해 성장을 멈추었고 역사의 악몽은 정지된 채 시인을 고통 속에 몰아넣는다. 반복되는 역사의 수레바퀴와 같다.

 그러나 이 역사의 흉포는 역설적이다. 총체적 상실은 달리 말하면 완전한 재생을 잉태하는 토대라 할 수 있다. 존재의 밑바닥까지 산화해버렸기 때문이다. 공허한 시간은 참된 시간을 예감한다. 동질화된 부정의 자질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균열하여 다채롭게 분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균열된 시간은 파열을 만들고 그 충돌 속에서 열기를 뿜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 목전에 있다. 이 발효되지 않은 역사 앞에 김요아킴이 서 있는 것이다. 저 정지된 역사는 부패를 견디며 그의 시적 프리즘을 통과하였다. 그리고 이 시집 속에 별똥별빛처럼 빛나고 있다. 다음 시는 그의 시적 발효과정을 잘 담고 있다.

 

늦은 아침, 아내와 주문한 국밥을 한술 뜹니다

 

서로의 말투 같은 뚝배기엔

어젯밤 노동이 우거지처럼 담겨있습니다

뜨끈하게 지펴 오르는 김은

한 점 땀방울로 이마에 송글거립니다

켜켜이 묵은 책장 사이로 발효되지 못한 활자들이

와락, 한 톨 밥알로 목구멍을 채웁니다

 

수십 년 동안 부화하지 못한 지식들,

책꽂이 깊이 옹송거리며 동면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한 푼 두 푼 모아 찾아간 헌책방의 곰팡내와

 

낯선 이데올로기에 묻어난 매캐한 가스도 보였습니다

지난 세기의 잔해들이 그럴듯한 제스처도 없이  

마스크를 낀 채로 결별을 선언하였습니다

종이박스에 몇 상자로 차곡차곡 재여

윤회할 채비를 갖추며 이른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일용할 한 끼 양식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국밥으로 환생하다」전문

 

 늦은 아침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는 헤겔의 법철학은 현실을 견딘 지혜의 기다림을 은유한다. 이 시간의 견딤은 곧 역사로 변환될 수 있으며 도래할 역사의 조건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섣불리 예측하는 행위가 아니다. 시는 그보다도 더 기다린 늦은 시간에 ‘국밥(현실 혹은 역사)’ 앞에 있다. 이러한 발효의 순간을 기다리는 일은 계륵처럼 목구멍에 피를 내는 것이다. 김요아킴의 ‘발효되지 못한 활자’가 역사 속에 빛나길 기다리는 사유는 더 없이 시적이다. ‘뜨끈하게 지펴’지는 열기가 있어야 함을, 땀방울이 맺히는 노동 이후에 도래할 것이라는 깨달음이 발효의 필수 조건임을 이야기 한다. 발효의 다른 언어는 동면, 결별, 윤회로 변주된다. 이 시집에서 건져 올려야 할 시적 모티프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발효된 역사의 재생을 앞에 놓고 환생의 환희를 맞보게 될 것이다. 늦은 아침의 빛이 이른 아침의 반짝이는 시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3. 새로운 천사

 

 발효되지 않은 역사의 순간은 공허한 시간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균열을 내포하고 있다. 이 틈이 ‘메시아가 들어서는 작은 문’이다. 메시아는 역사의 악몽을 헤치고 참된 시간을 가져오는 존재다. 시인에게는 ‘별똥별빛이 섬광처럼 번쩍이는 순간’이다. 김요아킴이 발효되지 않은 역사를 인식하고 발견한 모습은 시적이기도 하고 구원자의 면모이기도 하다. 시인은 역사가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다.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천사는 미래의 메시아를 지금 믿게 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는 신학적 은유일 뿐이다. 벤야민은 이 미래적 역사의 도래를 현실의 고통을 망각시키는 행위라 여겼다. 그래서 김요아킴의 시적 화자는 벤야민이 말한 ‘새로운 천사’와 비견된다. 시인은 역사를 기억하고 간직하여 현실 공간에서 이야기하는 존재다. 새로운 구원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 것이다. 김요아킴의 시쓰기는 ‘숨은 신’이 어디에 있는가 찾아나서는 소중한 여행이다. 벤야민이 말한 메시아, 곧 숨은 신은 ‘난쟁이 곱추’로 상징화되었다. 이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은 시적이다. 김요아킴의 시에 등장하는 침묵하는 존재들의 간절함이기도 하다.

 

내일 새벽 출항할 계획은

미끌거리며 난간으로 팽개쳐지고

기관사인 그는 고장 난 부분을

더 이상 만지지 못했다

 

 

갯내보다 더 비릿한 붉은 빗방울이

주름만큼 패인 아스팔트를 삼키고

사십 년을 함께 한 해풍이

천천히 조문을 시작했다

                      ―「수부水夫의 눈동자」에서                    

 

가진 거라곤 맨 몸뚱어리인 약관의 나이,

냅다 지른 주먹은 허공만을 갈랐지요

                                   ―「the boxer」에서

 

남도, 시골, 농사, 가난, 가출

부산, 달동네, 공장, 야근, 저축

결혼, 장사, 성공, 부도, 택시 운전

                                ―「택시 안에서 서사를 읽다」에서

 

철거가 궁지에 몰린 변두리 마을 입구

한 사진관에 내걸린

문 밖의 액자가 나이를 먹는다

 

화목을 시도한 가족사진들이, 서둘러

쇼윈도의 먼지로 빠져나가는 사이

돌 지난 아이의 벌거벗은 얼굴이

몰려다니는 흙바람에 잠시 주름이 진다

                                     ―「그 집 앞, 사진」에서

 

수천 년의 발효되지 못한 역사가 윤회를 거듭하듯

더 큰 증오로 퇴적되고

죄 없이 맑은 눈동자와 식은 온기는

마지막 손가락의 수소문 끝에

힘겹게 발굴되었다

                  ―「팻데일저빌」에서

 

 아스팔트 바닥에서 멈춰버린 뱃사람의 목숨도, 가난하고 어린 복서의 소망도, 삶의 거처를 잃고 쫓겨나는 철거민의 그늘진 모습도 모두 ‘숨은 신’들의 변주다. 난쟁이 곱추처럼 그로테스크한 형상처럼 상징적이다. 이러한 상징은 김요아킴의 시에서 읽히길 기다리는 서사다. 그 이야기는 삶의 질곡을 지나 발굴되어야만 하는 발효되지 못한 역사다.

 ‘붉은 빗방울, 허공, 주름’의 기억은 윤회하듯 반복하고 있다. 고통스럽지만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이 시집은 이러한 표징을 담고 있다. 역사의 균열된 틈 속에서 건져 올린 영웅들을 소환하여 본질적인 역사의 구원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적어도 발효되지 않은 역사 자체인 이들 소수자들이 메시아를 상상하게 하는 새로운 천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요아킴의 구원의 목소리는 만해(萬海)가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던 슬픔의 힘처럼 은근히 뜨겁다.  

 

 슬픔이 뜨거운 것은 망각의 유혹을 뿌리치고 악몽을 기억하도록 힘을 주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일은 역사에 책임을 묻는 일이다. 인간은 언제나 역사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기억하고자 하는 뜻을 우리 자신에게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김요아킴은 그처럼 스스로에게, 나아가 현재 우리에게 발효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기억하길 요청한다. 망각은 무수한 역사적 존재들을 구원하지 않겠다는 자기부정행위이며 재생을 거부하는 비시적 욕망의 폭력이라 할 수 있다. 공허한 시간에 매몰된 저열한 인간으로 함몰되는 일이다. 그래서 김요아킴은 인간이 지니고 있어야 할 가장 인간됨의 시선으로 새로운 천사와 조우하길 소망하고 있다. 이러한 바람 속에서 기억은 반성적 자아를 요구하며 자신과 타자의 거리를 좁히고 일체가 되게 한다.  

 

입었던 구명복의 기억을 짜 내며

                              ―「다시, 율포」에서

 

문틈으로 삐져나오는 산 자들의 통곡과

향불의 타들어가는 마음

                       ―「그 친구」에서

 

마악 쪼그려 앉은 알라딘이 다음 생을 위해

찬찬히 벼룩시장을 읽어간다

                          ―「만물상회」에서

 

 김요아킴의 시쓰기는 누군가를 구원했던 기억의 힘겨운 재현이다. 역사의 ‘문틈’으로 삐져나오는 타자들의 삶을 애도하는 일이다. ‘다음 생’을 위해 협소한 생활의 낱낱을 읽어내는 천사의 날갯짓이다. 좀도둑 알라딘처럼 시의 램프를 문질러 발효되지 못한 거대한 ‘지니(소수자)’를 불러내는 경이로운 이야기다.

 

4. 위대한 모험

 

 이 시집은 역사의 바다로 나아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모험 이야기다. 시적 항해는 발효되기 위해 역사의 악몽에 투신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시적 귀향은 증류(蒸溜) 행위와 같다. 발효의 과정을 거쳐 열기 속에 기화됐던 시를 차갑게 냉각시키고 시의 액체로 돌아와 영롱하게 맺히는 일이다.

 

 적어도, 그날 그이와의 만남을 위해선 몇백 년 전의 뱃길이 열려져 있어야 해. 쓰시마 해협을 따라 몇 번의 풍랑을 부여잡고 통신 사절단이 상륙한 그 곳이어야 해. 나라 잃은 한이 큰 뱃고동으로 울리며 무수한 사연을 실어 나른 연락선의 종착지이기도해야 해. 우진과 심덕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바다 속 심연深淵으로 가라앉은 곳, 지금도 둥글게 울음 우는 그 곳을 스쳐 지나야 해.

 

 우선, 그이를 만나기 위해선 삼백 오십 엔의 입장료가 필요하지. 뉘엿뉘엿 해를 쓰러뜨리는 여로의 마지막 날, 낯선 곳으로 혼자만의 용기도 필요하지. 문이 열리는 입구의 정면엔 서로를 교묘히 응수하는 스모선수의 정지된 화면동작도 필요하지. 반쯤 벽을 친 남녀 탈의실 가운데서 미동조차 않고 인사를 건네는 가녀린 목소리도 필요하지.

 

 

 순간, 그이와의 만남이 시작되었어. 반듯하게 세월을 읽어낸 듯한 까만 안경이 수건을 움켜 쥔 나의 눈동자와 마주쳤어. 대수롭지 않은 여느 사람들과 달리 욕탕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나의 알몸을 슬쩍 가려주었어. 선풍기 바람은 일상의 시간들처럼 돌아가고 초로初老의 그이는 한 점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붉게 달아오른 나의 마음을 결국 들춰내고 말았어.  

                                                        ―「그녀의 시모노세끼항」전문

 

 김요아킴의 시의 항해 중에 잠시 정착했던 ‘시모노세끼항’은 어떤 곳인가. 이 시는 묘하다. 대중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무슨 신파조일까. 이 노래가 모국을 떠난 사람들의 애환과 귀향의 그리움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한편으론 애조 띤 가락에 얹혀 일제의 제국주의적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말도 있다. 신파가 대중에 영합해서 흥미에 매달리기 때문에 저속하다고 한다. 역사는 신파가 아니다. 신파조는 기억을 망각하게 하는 조미료가 섞여 있지는 않나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때 맺히는 슬픔은 발효와 증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날것이라 더욱 그렇다.

 이 시는 신파를 연상하게 해서 묘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역사의 주체들이 함께 거주하기 때문이다. 시모노세끼항은 역사의 악몽을 거치고 난 후에라야 가 닿는 곳이다. 그리고 ‘그이’가 있는 곳이다. ‘그이’는 누구이며 ‘그이’와의 만남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어 미묘하다. ‘그이’는 제목에서 드러난 ‘그녀’일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묘하다. ‘그이’는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삼인칭 대명사다. 그러므로 ‘그녀’를 높이어 부르는 말일 수도 있고 그녀가 숭모하는 누구일수도 있다. ‘그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명확하지 않아 묘하다. 그리고 ‘그이’를 만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고 정지된 화면동작 같은 ‘경건함’이 필요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가녀린 목소리’가 필요하다니 묘하다. 세월을 반듯하게 읽어낼 수 있는 ‘그이’의 능력이 예사롭지 않다. 더더욱 내 마음을 읽는 신기가 묘하다.  

 ‘그이’를 만나는 일은 시적 항해는 아닐까. 그러므로 김요아킴의 시쓰기는 ‘용기와 경건함과 가녀린 목소리’를 지향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는 김수영이 생각했던 시법이기도 하니 묘하다. 김요아킴의 시를 읽으며 경건하게 되었다는 말머리의 고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신묘한 능력을 볼 때 ‘그이’는 레비나스가 말한 ‘그분(Illéité)’은 아닐까. 인간이 표상할 수 없고 인간권한 안으로 포섭할 수도 없는 절대자의 성격으로서 3인칭. ‘그분’은 역사에 흔적을 만든 존재로 여기에 부재하며,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제3(la troisième personne)’이라 한다. 그렇다면 ‘그분’은 김요아킴의 시 속에서 발효되지 못한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 부활하지 않았는가. 왜 김요아킴의 시쓰기가 구원을 지향하는지 깨닫게 된다.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김요아킴의 시적 항해가 위대하다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이번 시집이 종착지가 되기 때문이다. 바로 새로운 세계로 항해를 시작하길 바란다. 오디세우스라는 이름은 ‘미움 받는 자’ 또는 ‘노여워하는 자’라고 한다. 김요아킴의 다음 시집이 위대한 모험이 되기 위해서 가져야 할 시적 덕목이라 생각한다. 부패한 역사에 ‘노여워하고’ 소수자를 위해 ‘미움 받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추천사

 

험악한 세파를 이기고 견뎌낸 생명들이 겹겹의 지층을 이루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또는 무엇을 감추려 할 것인가. 김요아킴은 스스로를 던져 이런 질문에 묻고, 응답하려 하고 있다. 바로 그렇다. “거대한 숲을 꿈꾸던 당신”은 “광기의 역사”가 지나가던 자리에 폐허처럼 남아 “비로소 몸이 침묵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 무거움과 고요와 불꽃들이 이처럼 생의 무게를 힘겹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폭력 앞에 하염없이 무릎 꿇고 엎드려 있던 민초였지만, 그들이 세상에 내뱉은 말들은 의 세계 속에 커다란 울림으로 살아나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그의 시집『그녀의 시모노세끼항』은 김요아킴의 새로운 지평의 발견으로 읽힌다.

                                                               -이수익(시인)

 

 김요아킴 시의 품은 든든하고 넓다. 너끈히 세상의 여러 곡절들 끌어안고 나아간다. 슬픔과 아픔들 기꺼이 담지하면서도 그는 징징거리지 않는다. 다감한 눈길과 손짓으로 세상 맞아들여 가만히 안아줄 뿐이다. 온기 골고루 퍼져 있는 그의 시() 품에서 사람이든 사물이든 즐거이 평안을 나눈다. 고요 속의 역동 같은 흐뭇한 시적 교감이다. 나 아닌 것들 자꾸만 밀쳐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의 이같은 선의는 갸륵하고 고맙다. 새롭게 보이려 모나게 비틀어 적지 않아도 정감 고운 시는 사람들 맘속에서 스스로 새로워진다. 조화롭게 펼쳐져 이루는 김요아킴 시의 결이 놀랍도록 섬세하고 깊다. 우리 시단이 또 하나의 경사를 맞았음에 틀림없다. 그의 시를 느끼자 내게도 새로운 경계가 열린다. 가만히 들어가 흔쾌히 익히리라.  

                                     - 정우영(시인, 한국작가회의 전 사무총장)

 

 김요아킴은 자기 현실에서 나와 광막한 역사의 현장에서 위대한 모험을 하는 오디세우스다. 그러므로 그의 시집은 발효되지 않은 역사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고 우리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려는 시쓰기라 할 수 있다. 이제 역사의 악몽 속에서 구원의 문을 열려고 하는 그와 만날 수 있다.

                                       - 이민호(시인,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