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두고 나를 찾다 

 턱을 내리고 다시 약간 위로 다시 옆으로 올리고 OK. 혼자 나가기 싫어 동반 가출한 나를 찾으러 갔지요 어딘가 있을 나를 찾아 지갑 속마다 주머니 달린 옷마다 털어봤지만 없었지요 서랍을 열어 봐도 없었지요 그동안 나는 나 인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나는 없고 그가 나였다니요 점프하듯 현기증이 나고 소리 없는 한숨이 나왔어요 그러나 그것이 있어야 살아 있는 목숨, 어쩌다 나를 잊어버리고 찾아 헤매는데 어제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법, 법이 바뀌었다며 여권사진처럼 귀와 눈썹 다 내놓고 아카시아 향기와 함께 다시 찍어 오라 합니다 자격증, 수료증, 졸업장, 이력서…… 은행, 동사무소, 여권 발행처…… 나는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 하러 다녔지요 나는 여기에 있는데 수없이 나를 복사 했지요 지금 세상에 나는 없고 나만 있지요 나를 찾지 못 해 운전도 못하고 하루하루 기다렸지요 나는 어디로 갔을까요 분홍 루즈를 바르고 눈썹을 짙게 그리고 다시 찍은 사진 가지고 주민센터 갔다가 경찰서 갔다가 결국 나를 가출 신고합니다 가출 하고 싶어도 가출 할 시간도 없이 살아 온 나를 두고 가출한 나는.

 

 

 

어머니의 방

손자와 손녀 결혼식 사진이 걸려 있고

증손자와 증손녀 사진이 벽보처럼 붙어 있다

 

약장수가 공짜로 준 휴지와 설탕이 몇 개나 있고

장롱 위에 자신이 장만한 수의가 보자기에 싸여있다

 

사위가 해외출장 갔다가 선물한 여우 목도리와

첫애 낳고 해드린 금반지가 내 손바닥으로 돌아오는 날

 

비오면 빗물 마시면서 세수하고

햇볕나면 햇볕 마시면서 세수하신

관세음보살 닮은 어머니, 어머니

 

그 흔한 비타민이며 보약 철마다 드시지 않아도

아흔 넘게 사시면서 용돈 달라 귀찮게 하지 않으신 어머니

힘들다 외롭다 아프다 그 흔한 말 하지 않으신 어머니

그저 공부 시켜주지 못해서 많은 재산 주지 못해서

드리는 용돈마저 선뜻 받지 않으시는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던 외삼촌 돌아 가셨고

큰이모와 작은 이모도 어머니 두고 하늘로 가셨다

 

고아처럼 혼자 남아서

벽보처럼 붙은 사진을 보면서

노인정 오고가는 락樂으로

 

 

 


 

곤충의 세계

보름달 아래서

오색 흰나비 번데기는

나뭇잎으로 위장한 채 매달려 있다

실 뽑아 고치 만드는 누에처럼

밤나무누에나방도 하현달 아래 보인다

풀잎에 붙어있는 진드기 먹는 사마귀는

그믐달 아래서 개미무리에게

잡혀 먹히기도 하는

먹이사슬,

 

쇠똥구리, 극동버들바구미는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죽은 척, 죽은 척 한다

 

어느 스승에게 죽은 척 해야 산다는 것을 배웠을까?

 

살기스런 저 애벌레들의 숲,

먹고 먹히는 곤충들의 세계

 

을이 갑을 이기는 무기는

오직 지혜인가, 깃발인가, 침묵인가.

 

 

  

 

 

단잠 자는 영혼을 깨운 것은

피아노 치듯 하는 장맛비도 아니고

잠꼬대 하다 가위눌려 일어난 것도 아니다

사기꾼 세상에 무슨 사기 당해 억울해서 저러나

한 다발 선물 해준 애인이 이별하자고 했나

메르스가 목덜미와 겨드랑이까지 올라왔나

가뭄에 내리는 장맛비가 좋아서 그럴까

귀신들의 중얼거림처럼 들리는 곡

거북이처럼 종족 퍼뜨리고 싶어서

암컷이 수, 수컷이 암을 찾는 메타포인가

행복빌라와 꿈의 빌라를 흔드는 저 우렁찬 소리

두 손 모아 기도하듯 사랑초, 토끼풀들이 잠든 밤

불면증 환자를 만드는 두꺼비, 황소개구리인가

그것을 듣고 뒤척이는 달팽이관인가

 

 

  

마주하고 있는 개하고 개

 

 

남산 1길 골목 순둥이 집 앞에서

썩은 방망이 든 아이가 씩씩거리고 있어요

 

-, 오늘 학교 안 가고 뭐하니?

-스승의 날이라서 내일모레도 안 가요

-근데요. 개가 동생을 괴롭혀서 혼내주려고요

 

안개 낀 날은 유람선 같은 산책길을

한 바퀴 돌고 오니 개하고 서성이고 있는 개

 

-개가 자꾸 도망가요

-개도 살고 싶어 그러니 집에 가거라

 

그 순둥이 집 앞을

몇 년 째 지나도 짖지 않은 개

새끼 보려고 대문 앞에 서성이며 캉캉거리던 개

해마다 몇 번씩 새끼 낳아 분양 하더니

증조할머니처럼 늙어버린 개

 

방이며 거실, 마당마다 개, ,

들이며 산, 개와 개들이 산책을 하고

개들이 무슨 잘못했다고 죽이고, 버리고, 때리고

개가 개를 사랑하고, 입양하고, 미워하고, 용서하고

개와 개들이 사는 고향에서

 

 

 

 

대형 세탁소

늦은 봄 맡겨 놓은 겨울옷을 찾으러 간다

스팀다리미로 매끈하게 다림질 한 옷을 찾는다

천장에는 사계절 옷들이 숲 속나무처럼 걸려 있다

 

무인 세탁소 동전 훔치다 잡힌 사람이 브라운관에 보이고

평생 세탁해서 번 돈으로 복권 사 모으다가 박스 담아 버리는 사람도 나온다

그 세탁소 천장에는 옷들이 비닐로 씌어져 있다

 

이 길 저 길에서 스트레스 받다 온 옷, 주머니마다 잔소리와 뒷담화 하다 온 옷, 입학이며 졸업식에 갔다 온 옷, 승진 했다 퇴직 했다 한 잔하고 취해 갈지자로 비틀거리다가 온 옷, 돌잔치와 결혼식 각종 행사 갔다 온 옷, 주연 조연 엑스트라에게 박수쳐다가 온 옷, 상사 앞에서 쩔쩔 야단맞다가 온 여우털, 악어가죽, 소가죽, 양털, 오리털…… 장례식장에서 국화향기 맡고 온 옷들

 

옷들이 세탁기 속에서

빙빙 윙윙 돌고 돌다가

오백 년을 기억한 듯

천장에 매달려 흔들흔들

 

낙강시회, 전야제

언제 어느 날 상량식을 했나요

실내체육관 벽에 붙은 시화가 발목을 잡아요

 

수 백 년 낙동강을 지켜보던

도남서원의 소리 없이 내리는 밤비처럼

북천전적지에서 실내체육관으로 오고가는 전야제

시와 술, 정겨운 만남은 어디로 외출 했는지

무대 위에 마이크만 즐겁게 춤을 춥니다

 

, 대한민국 노래를 듣다보니

‘대한 민국 만세’ 세쌍둥이가 보고 싶었어요

개구쟁이 같은 녀석들 아무리 봐도 사랑스러워요

 

가수는 히트곡 몇 곡으로 평생을 살아가듯

시인도 좋은 시 몇 편으로 평생을 살아가기도 하지요

그럼 나는 시, 그림, , , 노래 무엇으로

 

외롭게 밤비를 맞으며

걷는 내가 측은해 보였는지

젖은 은행잎들이 따뜻하게

동행해준 길, .

 

 

논밭 있는 친구가 땅을 샀다며 자랑을 해요

포클레인으로 언덕을 넓게 밀어 감나무를 심더니

그 아래 들깨, 참깨, 고추, 고구마, 감자를 심었어요

 

친구가 땅을 사니 나도 넓은 땅을 사서

황토집 짓고 개와 오리 키우며 살고 싶어서

부동산이며 교차로 지면을 찾아 다녔어요

 

집은 없고 돌무더기만 있는 집터, 이왕기와 트렉터 들어가기 좁은 길이 있는 논, 생각보다 비싸거나 산 넘어 산 뒤에 있는 땅, 평수와 가격이 안 맞아 여기 저기 다니는데 무얼 해도 좋을 평수와 흙을 만났어요

 

근데요. 부부무덤처럼 보이는 그 무덤 없었더라면 벌써 그 아래 과수원집에서 아님 부동산에서 사놓든지 그 위에 문중산에서 샀겠지요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면서 자꾸 그 무덤을 바라 보았어요  

 

내 땅, , , , , 바다 없어도

송이능이 온갖 약초로 살아가는 사람들 많지요

네 땅, 내 땅 노래하다 가는 파란종이 문서들

 

 

 

 

  

꽃무늬 노인정

이층에 올라가니 그녀는 없고

그 아래 노인정에 들어가니 조용하다  

 

언젠가는 노인대학에서 배운 글씨로 아들, , 전화번호와 손자, 손녀 전화번호 적힌 수첩을 보았다 꽃무늬 노인정 최고라며 그림이며 체조, 노래도 가르쳐 준다 꽃무늬들이 둥근 밥상에 둘러 앉아 그림 그리는 동안, 건너 마을 냉장고에 있는 뽀얀 물마시고 꽃무늬들이 바닥에 쓰러진 소문이 두리둥실 구름을 타고 날아온다 곧, 저승사자를 만날 텐데 왜 마을을 무섭게 했을까 남편이며 아들, 먼저 보낸 그녀를 즐겁게 해주는 꽃무늬들에게 1, 10, 50,100원 잃고 잃어 주라고 해마다 돼지저금통 몇 마리 갖다 드렸다 그림을 다 그린 꽃무늬들은 부침하고 막걸리 마실 꽃무늬들 동그랗게 모이고, 화투하려는 꽃무늬는 방석 들고 네모랗게 모인다 그들을 구경하려고 벽에 기댄 꽃무늬도 있고 집으로 가는 꽃무늬도 있다

 

하얀 옷 입고 태어나서 꽃무늬 입고 덮고 자다가

다시 하얀 옷 입는 연습하느라 꽃무늬 노인정으로  

 

  

아침의 종소리

승차권 없이 사차원 세계를 다녀왔다

 

창에 비쳐오는 불빛은 생명의 에너지로 다가와

 

, 어느 천상을 태우려고 떠오르는 가

 

유리창 너머로 들리는 풀벌레들의 합창소리

 

눈꼬리 비비며 기지개 펴듯 일어서는 붉은 풀잎들

 

종소리, 새소리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니

 

어디선가 들리는 자비로운 그분의 목소리

 

누군가를 용서하기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