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복숭아 꽃밭을 찾아 떠돌던

나의 시들이 남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들을 씻기고 먹이고

아늑한 방을 내어준다

이 세상에 복숭아 꽃밭이 어디 있으랴

그래도 내일 미명이면 또다시 나서리라

 

내 팔을 이끌어 늘 함께 가는 고창근님과

조용히 챙겨주시는 임술랑님과 가까이서 멀리서

미소를 보내주시는 선생님들과 벗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멀어진 내 그리운 사람의 이름도 가만히 불러본다

 

아침 햇살이 감나무잎과 어우러지는 2017년 여름

                                녹향정에서 김재순

 

 

 

 

 

이 세상의 또 다른 무릉도원

 

임영석 (시인, 문학평론가)

 

 

 

 김재순 시인의 시집 원본을 받아 들고 『복숭아 꽃밭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물음을 찾기 위해 며칠을 복숭아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복숭아나무는 그 며칠을 묵묵부답으로 나를 바라볼 뿐, 복숭아 꽃밭이 어디에 있는지 말을 하지 않았다. 참 난감한 일이다. 복숭아 꽃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시집 해설을 쓴다는 것은 솔직히 수학 문제를 풀 줄도 모르는 선생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심정이다. 그래서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복숭아나무 가지를 잘라보았다. 나뭇가지 속에 복숭아 꽃밭이 숨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잘라보았는데, 그 속은 허공을 층층 감아 놓은 실타래뿐이었다.

 

 둥근 나이테를 바라보다가 그래 이것이다 무릎을 쳤다. 김재순 시인은 살아온 삶의 세월을 풀어 한 뜸 한 뜸 의 수를 정성스럽게 놓았으니 복숭아 꽃밭은 김재순 시인의 속에 있다는 결론이었다. 복숭아꽃은 순간에 피어 영원히 가슴에 묻히고 있는 꽃이기 때문에 그 꽃밭은 복숭아씨처럼 단단한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볕을 짙게 바른 담벼락 앞에

젊은 홍매 한 그루

수천의 잔가지를

성냥개비처럼 들고 있다

 

담벽에 가지 하나 확 그으면

화락

화락

화락

그대의 중년도 타오르겠다

 

―「봄7」 전문

 

 시 「봄7」에서 김재순 시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다. 그 스스로가 수천 가지의 삶의 날들 속에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담벼락에 확 그어 불타오르는 풍경을 만드니 그 가슴속에 불어오는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화락(花樂) / 화락 / 화락” 리듬을 타며 꽃이 피는 모습이 마치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는 손끝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고결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매화는 나뭇가지의 선이 직선과 곡선을 함께 이루고 있기 때문에 곡선인 음()과 직선인 양()의 중간이라고 본다.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음양설에서 음과 양의 중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홍매화는 나뭇가지가 피를 토하여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피워 낸 모습처럼 보여 수많은 상처를 감추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그 아름다움은 한옥의 담과 잘 어울려 따뜻함을 더해주는 꽃나무이다. 시인은 “수천의 잔가지를 / 성냥개비처럼 들고 있다”라는 상상력을 통하여 홍매화가 개화하기 전의 모습을 앞에 연에 뒤의 연에는 그 성냥개비를 담벼락에 확 그어 만개한 홍매화를 보여주는 구도를 통해서 시각적 모습과 시간적 공간을 함께 말해주고 있다. 시 「봄7」은  김재순 시인의 시적 공감을 입체적이면서 사실적 이미지를 확장시키는 진정성을 대표하는 시라고 본다.

 

 봄은 인내와 시련을 딛고 일어서서 삶의 내면을 밖으로 표출하는 계절이다. 그 계절적 에너지를 김재순 시인은 홍매화의 힘을 빌려서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를 만들었다고 본다. 홍매화는 기나긴 시간 삶의 뿌리를 땅속 깊이 뿌리 내리면서 나뭇가지에는 땅속뿌리가 보고 들은 모든 사실들을 숨기고 하늘이 우러러 내려다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꽃을 피워냈다. 그렇게 화락, 화락, 화락 거리는 꽃가지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이 꽃잎의 수만큼 많은 삶의 날이었을 것이다.

 

 

여자는 웃음을 꽃잎처럼 날리는데

웃음은 사뿐히 어디에 앉을까

 

샤넬일까 피아제일가

하나뿐인 아이가 그려내는 도원의 풍경일까 입체화법일까

대낮에도 게게 풀려 소파와 변기를 한통속으로 보는 사내

그 사내에게로 아직도 이어지는 순정일까

 

-「슬픈 장미」 부분

 

 

몸에 불을 붙인 그 사람

저렇게 타올랐을 그 사람

힘차게 뻗친 저 가지는

노동법을 손에 든 그의 팔뚝 같아

노란 잎 수북한 저기가

불길보다 뜨거웠을 그의 가슴 언저리 같아

 

-「은행나무의 분신」부분

 

저 여자

이제 그 꽃밭을 찾았을까

얇은 입술에

꽃잎 한 점 묻어있네

 

옛 사람이 거닐었다는

복숭아 꽃밭은 어디 있을까

번쩍이는 불빛 속에 숨었을까

클럽 ‘황태자’에서 밤을 지새우던 여자

 

속을 다 보여주지만

그 만큼 지독한 게 또 있을까

도원은 분명 그 속에 숨었을 게야

벌컥벌컥 병째 소주를 들이키던 여자

 

자욱한 담배연기

요술램프 연기처럼, 문득

도화밭에 데려다 놓을 것 같아

쿨럭쿨럭 줄담배 피우던 여자

 

아아, 그의 가슴은 분명

활짝 핀 복사꽃밭일 거야

어린 것들 떼어놓고

남자들 가슴팍을 유랑하던 여자, 저 여자.

 

 

-「복숭아 꽃밭을 찾던 여자」 전문

 

 김재순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단조롭지가 않다. 꽃을 피우지 않으면 안 되는 삶에 매달려 있지만 나를 구원할 것 같은 순정은 현실에서는 항상 가시처럼 돋아나 내 살을 찌르고 있는데도 꽃을 피우는 일에 게으름이 없다.

 

 슬픈 장미는 말 그대로 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의 몸에 가시를 매달아 꽃이 피는 순간까지 꽃을 지켜낸다. 그러한 삶의 여인으로 능구렁이 같은 남자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스스로 잡것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요염한 여자의 자태다. 사내들과 질펀한 웃음도 섞는다. 그러면서 그 삶의 웃음이 이슬처럼 도처에 맺히고 있음을 확인한다.

 

 은행나무 분신은 땀과 노력을 다하여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말한다. 그것도 전태일의 삶의 문구를 인용하여 노동의 가치를 주장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마라 / 내 죽음을 헛되이 마라 / 마지막 생명을 짜낸 외마디 소리일까”라며 전태일의 목소리를 내어 본다. 자본은 자본이다. 자본이 노동자의 역경과 어려움을 이해하는 척해도 그 논리 속에는 자본을 증식하는 방법만 숨어 있을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은행나무는 해마다 자본의 논리에 대항하여 분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복숭아 꽃밭은 클럽 ‘황태자’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여자의 삶을 그리고 있다. 반짝이는 조명과 짙은 화장, 그리고 술과 담배연기로 얼룩진 모습이지만, 그 공간이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무릉도원이라는 것이다. 뭇 남성들의 가슴을 유랑하지만, 요술램프 같은 담배연기에 쌓여 있지만, 어린 것을 떼어놓고 클럽에서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하는 클럽 황태자를 이 세상의 또 다른 무릉도원이라 생각하고 살아간다.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수많은 사람이 환락을 즐기는 그 공간이 무릉도원이라는 것이, 김재순 시인은 그래도 그 삶이 진정한 무릉도원의 복숭아 꽃밭이기를 갈망한다.

 

첫사랑이 고개 돌리지 않았다면

이만한 딸아이 내게도 있을지 몰라

벙그는 목련꽃 같은 스물하나

눈 내리는 창가에 처연하던 스물하나

 

아기가 태어난 지 몇 달째인가

큰소리로 띄엄띄엄 물으니

오 개월요 나직하고 또렷한 우리말

이제

동네 앞 느티나무처럼 굳건하다는 듯

아가의 손을 흔들어 보이고

 

수백 송이 꽃들 중에 최고 이쁜 것을 골랐다고

 

그래도 또 한 번 가고 싶다고

사이버 결혼상담소 벽에 붙은 여자아이 전신을

마우스로 더듬어 내리면서 요 이쁜 것 요 이쁜 것

군 침 삼키던 이 남자

아기의 할배뻘은 될 것 같은 이 남자

 

침상에 꽂았던 최고 이쁜 것을

이제 가슴으로 옮겼을까

그럴 거야

가슴 깊이 심었을 거야

아기와 색시에게 보내는

그윽한 저 눈 빛

 

―「뿌리를 내리다」 전문

 

 

그의 이력에는

출생과 전자고 졸업이 몇 줄 엎드렸지만

그의 블로그 ‘살롱’에는

소월과 휘트먼 우암과 플라톤

박헌영과 애덤스미스의 얼굴이 자정까지 너울거린다

 

달콤한 저녁밥을 받아먹고

몸통이 굵어진 눈꺼풀을 떠받치기보다

공사장 잡부가 더 쉽다고 그는 중얼거리며

9시 뉴스도 못보고 퍼드러진다

 

―「채용의 조건」 부분

 

 두 편의 시는 대조적이면서도 각각 다른 내용을 지니고 있다. 「뿌리를 내리다」는 농촌 노총각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을 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고 「채용의 조건」은 취직을 못해 이력서를 서랍에 넣고 시를 쓰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시 「뿌리를 내리다」를 읽다 보면 그 아이의 엄마가 우리말로 또렷이 “오 개월요”하는 대답에서 막막한 사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그것도 나이가 띠동갑도 아니고 할배뻘 쯤 되는 늦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모습마저 없다면 이 농촌은 더 비극적이고 끔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침상에 꽂았던 최고 이쁜 것을 / 이제 가슴으로 옮겼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아가의 손을 흔들어 보이”는 모습에서 나이 든 아기 아버지는 찾고 있다.

 

 「채용의 조건」에서는 돈을 벌어야 밥을 먹고사는 우리들 삶에서 자본 사회가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깊숙이 자본에게 길들여 사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본의 힘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권력도 되고 힘도 되고 총도 되고 칼도 되고 따뜻한 손길도 되어 준다. 이 세상의 모순이란 모순은 다 잠재하고 있으면서도 그 자본이 이 사회를 구성하는 축이 되어 있다. 악의 축도 되고 선의 축도 되는 이중성을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것이 이 사회의 절대적 과제다. 젊은이들이 먹고 살아갈 일자리에 대한 문제는 오늘날 가장 큰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일본의 주켄 공업이라는 회사에서는 사원을 채용할 때에 이력서는 보지 않고 입사지원 순서대로 채용을 한다고 전해진다. “사람은 저마다 어떤 재능을 감추고 있는지 모른다. 동기 부여하면 스스로 일하고 능력을 발휘한다.”라는 것이 주켄 공업의 마츠우라 모토오 사장의 철학이라 전해진다.

 

 

 우리 사회는 심각한 고용의 벽에 부딪쳐 있다. 고용이 안정되지 않으니 결혼을 미루고 결혼을 미루다 보니 저 출산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인구가 감소하다 보니 미래가 불안한 사회로 가고 있다. 「채용의 조건」은 이러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에다. 또한 「낮술의 힘」에서도 “소주 냄새 훅훅 뿜어대며 / 일흔 넘은 할마시 징징 웁니다”라며 슬픔을 함께 하고 있고, 「포장마차 아줌마」에서도 “바람벽 펄럭이는 포장마차에서 / 새벽까지 동동거리며 / 손님 한 명 비닐문 들어설 때마다 / 반짝반짝 윤이 나네 / 스물하나의 얼굴이 되네”라며 술의 힘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이는 김재순 시인의 일상 속에 항상 서민으로 살아가는 숨소리가 들꽃처럼 피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깊은 그늘에 열매는 곪아터지고

회창거리는 가지 무수히 뻗어

목을 옥죄려는 미루나무 숲으로

NO FTA

깃발 높이 꽂은 화물차의

가속 페달을 밟는 사람

 

―「오라버니」 부분

 

 

국민소득 삼만 달러, 그래도

먹고 사는 일이 늘 위태로운 비정규직

그 남자, 이제 자신이

불을 일으켜야 한다고

고개 넘어 재를 넘어

동학교당에 간다

불씨 하나 받으러

 

―「동학교당에 간다」 부분

 

 

집집이 노인만 남아서

앞으로 어찌될까 속수무책인데

산은

 

참나무와 잡목 덤불

 

골목까지 내려보내

마을을 정탐 합니다

 

―「산이 준비하다」 부분

 

 세상이 변해도 너무나 빨리, 그리고 너무나 많이 변해 있다. 새로운 도로가 수없이 만들어져 내비게이션이 없이는 찾아갈 수 없는 세상인데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오라버니는 NO FTA 깃발을 화물차에 꽂고 목청을 외치고, 그 남자는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고 삶의 불씨를 얻으러 동학 교당에 나아가 새로운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있고, 노인들은 산이 마을 어귀까지 내려온 동네에서 외로운 노년을 살아가며 새로운 고려장골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김재순 시인은 定義롭지 않은 세상 삶에 대하여 조목조목 말하고 있다. 이 소리들을 누군가는 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리에 답을 해 줄 사람의 심장의 소리가 넘치는 세상이기를 바라고 있다.

 

 복숭아는 다산, 생명력, 장수를 뜻하기도 하고 기독교에서는 선과(仙果)로 여겨지기도 한 식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에서는 장수의 상징이기도 하고 악령의 침입을 막아주는 신의 영역에 피는 꽃이라 여긴다. 그래서 복숭아나무는 전쟁도 없고 가난도 없고 노인들이 평화롭고 한가로운 삶을 즐기는 무릉도원에 피어 있다고 전해지는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재순 시인 또한 이러한 신성한 복숭아꽃이 어디에 있을까 묻고 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난한 사람도 없고 굶주리는 사람도 없고 병든 사람도 없는 정말 낙원의 세상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세상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당신들이 설령 머리 풀어 헤치고

창백한 얼굴 검은 입술 긴 손톱으로

내 목을 조인다 해도

나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무지렁이 당신들의 꿈은

고관대작보다도 크고 높아

태풍이 되는 것이었지요, 태풍이 되어

새로운 하늘을 펼치는 것이었지요

 

찢긴 육신이 검은 흙속에 던져졌지만

그 꿈은

당신들을 닮은 우리들 가슴에 뿌리내려

칠월의 나무처럼 하늘을 향합니다

 

오늘, 넉넉한 상을 차리고

분향을 합니다

선녀보살이 길고 흰 명주수건을 감았다 풀면서

길을 안내합니다

 

 

이제

달을 안고 별을 안고 깊은 잠에 드십시오

망초꽃들도 저렇게 손을 흔듭니다

 

―「축제문」 전문

 

 「축제문」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망초꽃 같은 영령들에게 제를 올리며 드리는 기도 같다.  “오늘, 넉넉한 상을 차리고 / 분향을 합니다 / 선녀보살이 길고 희 명주수건을 감았다 풀면서 / 길을 안내합니다”라고 굿 장단에 마음을 다 내려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선녀 보살에게 의탁하고 있는 것은 이승에 남아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이승을 고통 속에서 살다가 떠난 이들의 영혼의 위해 빌고 빌어주는 넉넉한 마음만 보인다. 사후 세계에서도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내 삶의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마음이 아니라 망자들이 저승에서 편히 쉬고 다시는 인간 세상에서 겪은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

 

 김재순 시인의 시에서는 봄과 여름의 계절적 주제들이 자주 나타난다. 이는 그만큼 희망을 내려놓지 않고 부여잡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회상들이 깊다. 어머니, 고향, 추억 등을 통해서  나를 찾고자 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과거에 대한 회귀본능이 강하다는 것은 과거의 일들에서 행복감이 충만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겪는 갈등의 주체들이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갈등이 없었던 추억을 통해 현실의 삶을 위안 받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보리쌀 한 줌으로 고구마 한 개로

하루를 살아낸 그날처럼

지전 몇 잎으로 또 그렇게

멀겋게 하루를 채울 것이다

 

―「이삭 줍는 할머니들」 부분

 

 

성가신 동생을 따돌리다 숨어들었던 텃밭의 댑싸리가 없어요

기대서서 철수를 불렀던 돌담이 없고 그 돌담에

꽃가지를 얹어주던 살구나무가 없어요

 

그을음 냄새는 어머니 냄새, 가마솥에 밥을 안치고

부지깽이 끝에 붙은 불을 구정물에 적시며 불을 때던 부엌이 없어요

여름 한 낮, 샘물을 가득 안고 뻘뻘 땀 흘리던 두멍이 없어요

 

―「고향은 지상에 없다」 부분

 

 

 

밤이면 나를 업고 눈을 꼭 감은 듯 깜깜한 골목 따라

밤마실 가던 어머니, 등에 엎드렸다가 문득 고개 들면

별무더기, 그토록 찬란한 은하수 북두칠성

그 빛을 내게 주던 어머니

 

―「그리움의 변천사」 부분

 

  해방이 되고 6.25 전쟁이 나고 폐허 된 땅에서 굶지 않고 살아야 했던 할머니 세대의 삶은 고통과 시련이 전부였다. 고구마 한 개로 하루 끼니를 때웠다는 말은 흔하디흔한 일상이었기 때문에 나락 한 톨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그냥 지나치는 법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인의 삶에서는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와는 달리 고향이 사라지고 있다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고향의 집과 길, 산들이 사라졌다. 이제는 시인의 가슴속에서만 그 옛날 모습이 남아 있어야 하는 고향이 되었다. 불과 수 십 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위의 인용한 시들은 개인의 추억이기 이전에 이 시대의 역사다. 우리 사회의 근대사 곳곳에 이처럼 가난을 이기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고 묵묵히 인내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경제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그 숨소리가 추억 속으로 사라지기 이전에 김재순 시인은 가슴으로 감싸 앉고 있다. 그 애정이 더 강한 나를 만들고 단련시켜주는 힘이라 믿고 있다.

 

주민등록표에 등재된

그의 전입지는

이곳이 스물 몇 번째다

 

서쪽 해안가 여기저기

발자국을 찍던 그가

재첩이나 다슬기도 보기 어려운

찌질한 이 하천으로 왔다

 

―「붉은 어깨 도요새」 부분

 

 

막 실뿌리 내린 아들딸

그 연한 줄기에 기댈 수 없어

폭염 속 호박잎처럼

더위 먹고 폐품 모으지만

 

하얀 타일 깔린 욕실에서

찬물 한 번 끼얹으면

펄펄 기운 솟는다네

 

늦둥이라도 볼 것 같다네

 

―「어떤 노부부」 부분

 

방울토마토는 똑똑 혼자 사는 할머니 댁 창을 두드리고

옥수수가 기척 없는 할아버지 댁으로 키를 높이면

그제야 칸나는 울타리로 붉게 피어

떠꺼머리의 가슴에 장작을 지핍니다

 

폐기물로 내놓은 식탁을

백발의 할머니들이 달라붙어 나무그늘로 옮겨놓고

좀 젊은 아낙들은 주전부리를 올려줍니다.

저녁 늦도록 식탁에 앉았던 푸른 소리가 창으로 들락거리는

혼자 살아도 독거가 아닌,

 

―「서민 아파트」 부분

 

  김재순 시인에게 일상은 영화 같은 삶의 표본들이다. 그 삶의 표본에는 자막도 없이 그대로 돌아가고 있다. 스물 몇 번의 이사를 전전하며 허기진 삶을 이끌고 돌아온 곳이 재첩이나 다슬기도 없는 찌질한 하천변이라 말하고, 자식에게 등을 기대지 않기 위해서 폐지를 모아 그 폐지를 팔아 살아가는 노인이 따뜻한 물도 없이 몸을 씻으면서도 그 개운함이 힘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혼자 살지만 독거가 아닌 서민 아파트 풍경은 시인이 늘 애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삶이다.

 

 이렇게 삶의 표본 속에서 김재순 시인이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삶의 행동들은 다르지만, 사람 세상에서 사람과 함께 하는 외로움들은 모두 하천을 흘러가는 물줄기라 생각하고, 폭염에 잎이 쳐진 호박잎들이라 바라보고, 서민 아파트 울타리처럼 큰 칸나의 붉은 꽃이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가난하다거나 외롭다거나 슬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묵묵히 제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삶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과거가 없다면 어떻게 미래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 막막한 물음들에 대하여 복숭아 꽃밭은 김재순 시인에게 또는 이 시집을 읽는 독자들에게 무릉도원이 아닐 수 없다. 복숭아 꽃밭은 어디에 있을까 무궁하게 찾아가는 발걸음 속에는 진실한 삶이 있을 뿐이다. 그 삶이 고통스럽고 가난하고 외롭고 굶주리고 허덕이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를 담아 놓았지만 시인의 가슴 또한 외롭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끝없이 울었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말을 해도 울지 않았다는 목소리 속에 얼마나 깊이 사무치게 울었는지 목쉰 대답 속에 묻어 있다.

 

 시인은 시간의 저울을 읽는 사람이다. 어제의 삶의 무게를 읽어 내고 내일의 삶의 무게를 읽으면서 꿈과 희망을 찾는 사람이다. 그 꿈과 희망이 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김재순 시인에게 는 복숭아 꽃밭을 찾아가는 길이다. 묵묵히 무릉도원을 향한 발걸음을 옮겨왔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무릉도원은 전쟁이 없고 질병이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말한다. 그러한 세상을 향해서 걸어온 김재순 시인의 마음 또한 무릉도원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갈망하고 있다. 이 세상이 너무나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무릉도원으로 가는 꿈들을 김재순 시인은 시속에 풀꽃으로 피워 놓았고 정으로 묶어 놓았고 추억으로 그려 놓았다. 앞으로도 김재순 시인의 마음 밭에 무릉도원의 복숭아꽃이 더 활짝 만발하여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낙원으로 가는 꽃길이 될 수 있도록 힘찬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