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어깨 도요새

   

 

주민등록표에 등재된

그의 전입지는

이곳이 스물 몇 번째다 

 

서쪽 해안가 여기저기

발자국을 찍던 그가

재첩이나 다슬기도 보기 어려운

찌질한 이 하천으로 왔다

 

낡은 민소매 셔츠가

얇고 붉은 어깨를 보여주며

그의 근육을 뜯어 해안선을 만들었으나

바다는 강물만을 받아들였다고

흐린 그의 눈이 잠시 번쩍였다

 

깃털이 뭉치고 빠진

늙은 그가

작고 훌쭉한 가방을 쓰다듬으며

시베리아까지는 꼭 가겠다는 듯

수척한 몸으로 얕은 하천을 기웃거린다

 

 

 

 

은행나무의 분신(焚身) 


 

가을비에는 휘발유가 섞였을까

점화의 불꽃같던 이파리 하나에서

큰 불길이 치솟는 은행나무 한 그루

 

몸에 불을 붙인 그 사람

저렇게 타올랐을 그 사람

힘차게 뻗친 저 가지는

노동법을 손에 든 그의 팔뚝 같아

노란 잎 수북한 저기가

불길보다 뜨거웠을 그의 가슴 언저리 같아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마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마라*

마지막 생명을 짜낸 외마디 소리일까 *

그의 입술처럼 누런 잎 하나 살짝 움직이네

 

저기 할머니 한 무리, 그가 그토록 아끼던

그 때의 순이 분희 영자였던가

그의 분신 후 혈서를 쓰던 그 날처럼

붉은 단풍잎 손에 들고

꽹과리 북소리처럼 떠들썩하네

 

천년을 타오를 은행나무

맹렬하고 깨끗한 분신 앞에

한 여자 고요히 손을 모우네

 

*전태일 평전에서 차용

 

 

 

 

이삭 줍는 할머니들


 

경호차량처럼 보행기를 대기시키고

햇살이 갓 지핀 벽난로 앞에

구부러진 몸을 펴는 할머니들

 

이제 곧

손주뻘 되는 직원들의 훈시를 듣고

정해진 구간의 길거리를

몽당 빗자루 되어 쓸어 갈 것이다

 

젊은 시절

남의 집 보리밭에서 고구마 밭에서

몇 알의 이삭을 줍던 그 때처럼

잡풀 속에 떨어진 하수구에 떨어진

지전의 이삭을 주울 것이다

 

보리쌀 한 줌으로 고구마 한 개로

하루를 살아낸 그날처럼

지전 몇 잎으로 또 그렇게

멀겋게 하루를 채울 것이다

 

 

지금은

국민소득 삼만 달러 시대

겉으로만 번쩍이는 시대

 

 

 

네온의 꽃밭을 보다 


 

어둠을 쨍쨍한 봄볕이라 생각했을까

형형색색  네온꽃이 만발했다

 

에버랜드의 플라워 스트리트처럼

꽃들의 축제장이 된 유리창 저 너머 거리

목말을 탄 아이는 손을 흔들어 보이고

젊은 커플들은 꽃그늘로 들어간다

웨딩카 같은 자동차들 계속 지나간다

 

그러나 저 거리

네온이 피기 전 저 곳은

마음 한 곳이 절단된 어미 곁에

눈물 가득 머금은 어린이가 쪼그려 있던 곳

보행기에 몸을 기댄 노인들이

휴지 줍는 일자리로 몰려들던 곳

담요를 두른 중년의 남자가

기초생계비 신청하러 가던 곳

담벼락 그늘에 몸을 걸치고

맨발의 주정꾼이 잠을 자던 곳

 

빗줄기는 후두둑 쏟아져

저 길바닥도 온통 꽃빛으로 어룽지는데

낯빛이 어두운 사람 하나 유리문에 기대섰다

 


 

서민 아파트


 

어느 비싼 아파트에는

창가에 빨래를 널지 말고 털지도 말라고

여기는 서민 아파트가 아니고 

고급 아파트라고 방송을 한다나요

 

우리 아파트 확성기도

화단에 농작물을 심지 말라고

저음으로 품위를 포장해 집집이 보내지만

어떤 때는 강제로 베겠다고

음절마다 방점을 낫처럼 걸어보내지만

 

방울토마토는 똑똑 혼자 사는 할머니 댁 창을 두드리고

옥수수가 기척 없는 할아버지 댁으로 키를 높이면

그제야 칸나는 울타리로 붉게 피어

떠꺼머리의 가슴에 장작을 지핍니다

 

폐기물로 내놓은 식탁을

백발의 할머니들이 달라붙어 나무그늘로 옮겨놓고

좀 젊은 아낙들은 주전부리를 올려줍니다.

저녁 늦도록 식탁에 앉았던 푸른 소리가 창으로 들락거리는

혼자 살아도 독거가 아닌,

 

 


꽃등을 거는 일


 

무인카메라 가린다고

현관 앞 목련터널을

줄줄이 넘어뜨리는, 아저씨

그 나무를 베지 마요*

 

늙은 건물 아직도 정정한 것은

푸른 목련 때문이라요

꿈은 이런 곳에서 품는 것이야

십삼 평의 창문마다

커다란, 꽃을 달아줬지요

 

당신과 내가 정말로 해야 할 일

아파트 마당 목련나무로 채우는 것

자목련 백목련 꽃빛 아래선

싱싱한 목숨 하나

저 나무처럼 퍽퍽 쓰러뜨리는

톱날 물러져서, 녹아내려

또 한 그루 목련으로 설 수도 있는 것

  

당신과 내가 정말로 해야 할 일

어두운 창문마다 꽃등을 거는 일

목련나무를 그냥 두오

 

 

 

*문태준의 그늘의 발달 풍으로


 

 

빗살무늬 토기

 


 

거울이 나의 연대를 보여준다

 

수천 년의 지층에 묻혔다가 발굴된 토기처럼

오랜 세월 속에서 튀어나온 얼굴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기면 박편이 떨어질 듯

실금이 그득하다

 

몰아치는 광풍에 버티기 위해

백사장 깊이 뽀족밑을 내리박은 흔적이 아직도

충혈된 눈빛에 남았으나

사금이나 산호초를 담았던 기억도 있을까

빗질자국 단아하다

 

세월의 유물,

유성크림을 바르고 UV 필름을 씌운다

어느 연구자는 자신이 발굴한 유물을

성형으로 꼭꼭 동여맨다고 한다

 

나는 많은 시간을 유리장 앞에 앉아

현존 형태의 빗살무늬 토기

영구보존 법을 연구하나 결과는 늘

세월 속에 속절없음이다

 

 

 

  

반야사에서*


 

몇 해 전에 만났던

솜털 뽀송하고 속눈썹 검고 긴

내 마음 설레어 자꾸만 눈길이 가던

그 머슴애 같은 부처님

한 쪽 어깨 다 드러내고

웃을 듯 말 듯 배롱나무 꽃그늘에 앉았는데

 

저 혼자 흔들리던 여인 하나

부처님, 참 이쁩니다

오른손 왼손 만져보고 당겨보고

드러난 어깨까지 쓰다듬고

 

세조 대왕 몸 씻던 저 개울물에

이 몸도 씻을 테니

오늘 내 시중 좀 들라우

수려한 저 경치는 무언가를 더욱

간절하게 하잖우

 

봐요

안개도 산과 엉기고

버들가지도 개울물과 어우러지는데

젊은 부처 어찌 견디시었나

 

못 견뎌, 못 견뎌

혼자서 몸이 젖던 여인도

배롱나무 꽃잎 아래

붉은 가부좌 트네

 

 

*상주시 모동면 소재

 

 

6

 

가슴 속

꿈틀거림 치밀어

온 몸에 노란 꽃이 피는

저 할마시

 

 

이제

사뿐사뿐 흐드러진 개나리꽃 꺾어들고

돌담에 기대서서

애마르게 부르던 그 옛날처럼

점 찍어둔 영감 이름 부를 것인가

휘영청 달 밝은 시냇가

낮은 버드나무 아래서

물새처럼 열 오를 것인가

 

뿌연 거울에

얼룩진 얼굴을 들이밀며

처진데 쓸어 올리며

어쩌자고 전신에

달걀노른자 찍어 바르는가

 

아아

고목 둥치에 

움이 돋았네

 


 

가시가 박히다

 

오라비는 돌아가다 술을 마신다

변두리 짜장면 집 구석에 앉아

소주 두어 병 홀로 마신다

 

하나 남은 누이

골수에 병이 깊은 누이

덤불처럼 매달린 몇 가닥 링거줄이 체액을 뽑아가는지

사람 형체의 낡은 옷가지처럼 널브러진 어린 누이

 

잦아드는 누이의 짧은 생을 쓰다듬다 돌아가는 길

누이와 함께한 어릴 적 추억을

조현병 환자처럼 중얼거리며 술을 마신다

 

 

오라비 가슴에 선인장 가시처럼 박힌 누이

차가운 소주에도 꿈적 않는 가시에

눈물 콧물 범벅해서 들이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