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序


조선시대에선 소위 ‘난’을 일으킨 사람은

모두 효수형에 처해졌다.

목을 잘라 긴 장대에 머리를 매달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을 끊임없이 일으켰으니

지배층의 노예로 살기보다

인간으로서의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겠는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부터

오늘날 촛불을 든 국민들 모두

그러했으리니

이 또한

보수기득권층의 노예로 살기보다

삶의 주체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약력

고창근/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소도(蘇塗)』『아버지의 알리바이』『나는 날마다 칼을 품고 산다』장편소설『누드모델』『존재의 이유』『신윤복, 욕망을 욕망하다』』『갈대는 바람에 꺾이지 않는다』서사시집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



발문


3대가 효수 당한 상주 농민항쟁의 현대적 의미      

 - 고창근 장편 서사시 <아리랑 아라리요 – 농민이 새 세상을 꿈꾸다> -

임헌영(문학평론가, 민족문제연구소소장)


고창근은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이미 <나는 날마다 칼을 품고 산다> 등 3권의 창작집과 <신윤복, 욕망을 욕망하다> 등 장편 4권을 낸 중견이다. 그가 상주에 정착하여 현지 문학인들과 창작을 겸한 현실비판 활동을 맹렬히 전개해온지도 어언 20여 년이 흘렀다.


그 치열성이 이룩한 획기적인 업적이 이번의 장편 서사시 <아리랑 아라리요>이다.


농민운동으로 유서 깊은 고장인 상주를 중심으로 가족사 3대에 걸친 농민 수난과 저항의 실상을 민중사관의 시각으로 대중성 있게 풀어낸 노래가 이 결실이다.


상주에서는 19세기 후반에만도 임술농민항쟁(1862)부터 함창농민항쟁(1891)을 거쳐 동학농민항쟁(1894)까지 세 차례나 처절한 농민항쟁이 있었다. 고창근 작가는 이를 할아버지-아들-손자에 이르는 3대에 걸쳐 좌절당한 농민항쟁을 재기시키려다 잡혀 효수(梟首)당한 인물의 고백형식으로 서사구조를 풀어나간다.


농민항쟁의 발생과 경과 및 결말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다 엇비슷하다. 지방장관의 수탈과 억압을 견디다 못해 들고 일어나 그 고을의 수령(대개 시장 군수급)과 핵심 탐관오리들을 차마 죽이지(혹은 죽이기도) 못하고 쫓아낸다(혹은 도주한다). 중앙에서는 이내 신임 수령이 나타나 적폐 청산은커녕 도리어 농민운동 주모자를 잔학하게 처단하며 여전히 탐학을 일삼는다.


이에 격분한 농민들은 2차 봉기를 일으켜 처음에 당했던 분풀이로 과격한 보복행위를 하게 되지만 이내 국가 권력 차원의 진압군에 압도당하고 만다. 관군은 언제나 훨씬 잔혹무비하다. 농민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새로운 저항을 꿈꾸지만 그리 쉽지가 않다. 그래서 상주(뿐이 아니라 지구 위에 농민이 있는 어디서나)에서는 세 번(뿐 아니라 더 많은)이나 농민항쟁이 일어났으나 역시 좌절당한 채 오늘에도 새로운 항쟁을 꿈꾸고 있다.


제1부 <농민이 난을 일으키다-1862년 임술농민항쟁>의 화자는 할아버지다. 화자는 효수당한 상태에서 자신이 듣고 보고 겪었던 일들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절절히 호소하는 형식을 취한다.


제2부 <농민이 수령을 고을 밖으로 들어내다 – 1891년 함창농민항쟁>의 시적 화자는 제1부에서 효수당한 할아버지의 아들이 어머니(즉 할머니)에게 호소하는 형식을 취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잃은 뒤 외갓집 신세를 많이 지고 성장했다. 마침 외가가 있던 함창에 갔을 때 큰 외숙부가 병환으로 부역엘 못나가자 대신 나갔다가 농민항쟁이 일어나자 휘말려들었다.


순진한 농민들은 항쟁 초기에는 수령을 공격하지 않은 채 농민들에게 직접 폐를 끼치는 자들만을 응징하려 했지만 일이 커지면서 점점 수령도 나쁜 무리의 우두머리임을 깨닫고 차마 죽이진 못한고 추방해버린다. 그러면서도 농민들은 국가체제는 믿었던 지라 예로부터 고을의 수령이 없으면 인근 수령이 겸직한다기에 함창과 가까운 문경현감에게 의탁했다. 그런데 이런 농민의 뜻을 거스르고 문경현감은 농민항쟁에 앞섰던 인물들을 가차 없이 처단해 버린다. 화자인 이 아들 역시 효수 당하고 말았다.


제3부 <농민이 읍성을 점령하다-1894년 동학농민항재>은 이 서사시의 클라이맥스로 바로 상주지역의 동학농민전쟁을 다룬다. 화자는 효수당한 손자가 아버지에게 호소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상주 동학에 영향력을 끼쳤던 최시형이 초기엔 농민항쟁보다 내부 조직 강화에 치중하다가 1894년에야 본격적인 투쟁에 나선 경위를 항일애국운동으로 풀이한다. 그 항쟁이 일본군의 무자비한 학살로 좌절당하는 과정을 통하여 작가는 그때까지 농민군이 철석같이 믿었던 국가와 왕권에 대한 신뢰마저도 무너져 내리는 계기로 설정한다.

   

농민들의 요구조건은 언제나 생존권과 평화로운 삶인데, 그게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의 제주 강정마을은 미 해군기지 철폐가 되며, 밀양에서는 송전탑 이전이 되고, 성주에서는 사드 배치 반대가 되는 등 지역과 시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농민은 언제나 항쟁하지 않으면 안 될 요인과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고창근은 이 서사시를 통하여 19세기 상주의 농민항쟁을 한유하게 담론하려는 게 아니라 그 항쟁을 통하여 오늘의 한국 농민이 직면하고 있는 민족사적인 투지의 절실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