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하여 그 동안 <흉어기의 꿈>, <아이들은 내게 한 송이 꽃이 되라 하네>, <별>, <나무들의 사랑>, <내 마음의 수평선> 등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했던 김종인 시인이 작품 활동 35년만에 새 시집 <희망이란 놈>을 펴냈다.

가을도 다 가려는데
문득, 돌아보니 그대가 없네
그래, 우리 두어 달만
헤어지기로 하자

정녕, 봄이 올 때까지
나무마다 연초록 새잎이 날 때까지

희망이란 놈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게냐
꿈이란? 사랑이란? 새로운 세상이란?
우리 사는 세상에 있기라도 하는 게냐!

그래, 우리 꼭 두 달만 헤어지기로 하자
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지친 영혼을 적시는 봄비같이
그대가 올 때까지 희망이여.

섣불리 헤어지지 말자
살을 에는 눈보라가 몰아치더라도
올 겨울에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아프게 하지 말자

'희망이란 놈'에서 시인은 희망의 기운이 흐릿한 기간이 '두어 달'밖에 안 된다고 말한다. 희망이란 놈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으며, 우리 사는 세상에 있기라도 하는 겐가 하고 의심하기도 하지만, '두 달만' 참으면 봄이 온다고 말한다. 시인이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게 '올 겨울에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아프게 하지 말자'라고 당부한다. 이는 사람에게 근본적으로 따스한 본성이 있다는 인식이 전제된 표현이다. 시인은 생명 있는 것들이 눈보라를 이기지 못해 봄이 와도 되살아나지 못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아픔에 젖는다고 말한다.

시인이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라고 한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수인 사람은 시인 본인으로 볼 수 있겠지만 복수인 '사람들'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일반화된 인간을 의미한다. 이는 '겨울비 목련'을 보면 알 수 있다.

겨울비가 내린다.
이 비 그치면
만산의 홍엽(紅葉)도
사라지고 앙상한 나무들
바람 앞에 맨살로 서리라.

겨울은 한 걸음 더 빠르게
목덜미 사이로 스며들고,
빗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온누리 꽁꽁 얼어 붙겠지

이 비 그치면,
김장김치라도 푸짐히 담고
소담스레 내리는 눈을
바라볼 수 있을까, 봄이 오기 전에,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들을 수 있을까

가뜩이나 추운 것이 많은 오랜 세월
겨울비 내리는 창밖을 보다
문득 고개 들어 맨몸으로
찬비 맞는 목련을 보네

아뿔싸, 가지마다 어느새
꽃눈송이 맺혀 있는 것을,

보송보송 솜털마다
다시 오는 봄을 예비하고 있거늘
왜 나는 가슴으로 겨울비만 맞는가
겨울비 오는 풍경(風景)만 바라보는가.

시인은, 목련은 찬비 속에서도 보송보송 솜털마다 다시 오는 봄을 예비하고 있는데 왜 '나는' 가슴으로 겨울비만 맞는지 자문하고 있다. '희망이란 놈'에서 '참을 수 있을 때까지만 / 지친 영혼을 적시는 봄비같이' 희망을 가지자고 했던 인식이 이 시에 와서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희망을 가지고 있을 때에도 특정 개인은 절망에 젖고 슬픔에 빠져 허우적댈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희망을 심으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네'

평생을 교사로 살았던 시인은 '다시 퇴임 이후'에서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아프던 / 해직 후의 일상은 다 추억'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명퇴를 하고 난 뒤 / 일 주일도 되기 전에 모두 잊었네 / 내가 언제 학교에 살았던가 /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네'라고 스스로 놀란다.

시인은 '교단에 선 채로 죽으리라 / 무슨, 그런 헛된 맹세를 / 하던 때가 있었단가? // 최루탄이 튀어 오르는 포도(鋪道)에서 / 신문지를 태우며 쓰라리게 / 눈물 흘리던 때가 있었던가? // 지난 세월 / 햇빛 짱짱한 날, 언제 있었던가 / 비 오다가, 천둥 치다가 / 눈 오다가, 바람 불다가 / 그래, 그게 다 인생이지 // 학교 앞을 지나가도 / 종소리 들리지 않고 / 교복 입은 아이들을 봐도 /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네'라고 탄식한다.

생애를 바친 학교도 '언제 (그곳에서 교사로) 살았던가' 싶을 만큼 아득하다. 학생들을 봐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살아온 삶이 문득 '헛된' '추억'처럼 느껴진다. 시인은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스스로에게 말한다.

눈물 아롱아롱 노래도 말고
한 목숨 바칠 것을 맹세도 말라 (중략)
무정한 사랑은 떠나가네 
서러워 마라, 그대 슬픈 강물이여

'헛된', '추억'이니 당연히 '무정'하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 놀라움 앞에서 '그게 다 인생'인가 싶어 자조한다. 왜 시인은 슬픈가? '천일 약전(略傳)'이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준다.

부산 메리놀병원 장례식장
처형이 돌아가셨다
이십 몇 년 전에 사별한
목포 출신 남편 사이에 한 점 혈육,
아들이 상주가 되었다.

가파른 70년대 영문과를 나왔다
보수적인 대구, 고성이씨 집안의 처녀가
목포의 눈물을 잘 부르던 호남 청년
천씨 집안의 사내를 만나
눈물과 설움에 깊이 빠졌다

눈물 젖은 옷자락 마르기도 전에
목포의 남편은 암으로 쓰러져
압해도에 묻혔다.

청상으로 이십여 년
고혈압에 신부전증, 투석으로 버티다가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남편을 따라가니
가까운 친척들이 남아 밤을 새운다

서로 부등켜안고, 혀 끌끌 차며
왜 그렇게, 구박했던가
미워했던가, 반대했던가,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며 장례를 치른다.

영락공원 화장장, 한 줌 재로 남아
공원묘지 천상원에 안치되었다.
천하에 홀로 남은 자식 하나
그의 이름은 천일(千一)이다.

시인은 '비 오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아마, 운동장의 물은 며칠 동안 빠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아마'는 시적 수사일 뿐 현실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며칠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운동장의 물은 반드시 마른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운동장의 물이 '며칠 동안' 고여 있듯이, '서로 부등켜안고, 혀 끌끌 차며 / (죽은 이를 박대했던 지난 날을) 뉘우치며 / 눈물을 흘리며 장례를 치른' '가까운 친척'들의 슬픔 또한 며칠이 지나면 삭아 없어질 것이다. 시인은 망자가 한 줌 재로 안치되고 나자 아들 천일이 '천하에 홀로 남은' 존재가 되었다고 기록한다.   

시인은 세상의 맷돌 같은 존재

김종인은 '대저 시란 무엇인가?'에서 '세상의 거친 껍데기들을 모조리 벗겨 / 알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 연자방아, 맷돌'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시라고 강조한다. 시를 쓰는 일은 '온몸으로 세상을 갈아내는 / 이 순수한 노동의 / 절차탁마(切磋琢磨)!'와도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김종인은 '기약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금오산의 봄')'면서 세상의 희망을 노래한다. 그러면서도 개인의 삶은 슬프게 노래한다. 김종인은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온몸으로' 맷돌을 가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본다.

김종인은 이번 시집의 권두에 '시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자서'를 실었는데, 무려 19쪽이나 되는 분량이다. 사실은 '자서' 수준이 아니라 시론 한 편을 수록한 특이한 편집을 선보이고 있는 형상이다. 그만큼 시인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던 듯하다.

시론도 시도 읽을 만한 김종인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을 감상하며 무더운 여름의 하루를 보낸다. 시집을 덮고 난 뒤에도 시인의 '광장을 메우고 거리로 흘러넘치는 어둠 속, / 스스로 타올라 세상을 밝히는 촛불은 황홀하다!'라는 말이 귀에 쟁쟁하다. 그의 어법을 빌자면 '시인은 촛불을 든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