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거나 먹지 않거나

 

동물보호단체에서 개고기 식용을 금지해 달라고 시위하는 장면이 보도되는 것을 보았다. 어떤 단체에서는 닭을 먹는 것도 동물학대라고 시위를 한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게도 살아있는 것을 찜통에 바로 넣으면 안 된다고 한다. 전기 충격기로 기절시켜서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학대를 하지 말라고 해서 그리한단다. 그렇게 하면 게가 고맙다고 여길까? 이 이야기를 들으며 꼼수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동물학대라는 말을 들먹이려면 고기나 생선을 먹지 않아야 한다. 동물을 죽이지 않고 고기나 생선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이러다가는 식물 애호가가 나타날까 두렵다. 식물도 생명이 있다. 쌀알마다 귀한 생명을 품고 있는데 그것을 솥에 넣어 불을 지펴 익히는 것은 식물학대가 아닌가?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동물이나 식물을 재료로 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 생명이 없는 돌이나 흙을 먹고 살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은 먹어도 개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개가 인간의 반려동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이 기르는 동물 치고 반려동물이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유목민들의 양이나 우리의 소는 이름까지 붙여서 정을 주고 기른다. 우리의 소는 사람을 위해 평생 힘든 일을 하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를 잡아서 불고기로 육회로 뼈까지 고아서 곰탕으로 먹는다.  

 

  사람이 무엇을 먹거나 먹지 않는 것은 그 집단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된 문화다. 이슬람문화권의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힌두교 문화권의 사람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개를 집안에서 기르는 유럽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그리 많지 않기는 하다. 중국의 한족, 베트남 민족, 우리민족 정도가 개고기를 먹는다. 중국도 한족은 개고기를 먹지만 만주족은 먹지 않는다. 만주족이 개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봉천(심양)에서는 쉽게 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봉천에는 한때 개장사가 많았다. ‘만주 봉천 개장사 할 때’라는 말도 이때 생겼다고 한다.  

 

  동물 죽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백정의 손을 빌려 동물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백정(白丁)이라는 말은 세금을 면제받는 계급이라는 표면적으로 긍정적이지만 실은 사람  대접 받지 못하는 계급이다. 이 또한 꼼수다. 모든 생명체는 죽으면 음식으로 바뀐다. 사람들은 소를 먹는 것이 아니라 불고기라는 음식을 먹는다. 개를 먹는 것이 아니라 개장국이이라는 음식을 먹는다. 조장문화가 있는 지역에서는 사람도 죽으면 독수리에게 제 몸을 내어준다. 독수리에게 왜 사람을 먹느냐고 나무라지 않는다. 그것이 먹이사슬로 이루어진 자연의 질서이다.

 

  무엇을 먹거나 먹지 않는 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선택이다. 이슬람문화권 사람들은 우리가 삼겹살 먹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그냥 자기들만 먹지 않을 뿐이다. 자기가 먹지 않는 것을 먹는다고 그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게  사람에 대한 예의다. 111년 만에 처음 겪는 더위라 한다. 날씨도 더운데 허준 선생 지으신 동의보감에도 나오는 개장국(보신탕이 아니라 개장국이 원래 이름이다) 먹는다고 시비 걸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