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

 

왜 사느냐는 물음에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한다. 행복하기를 바라지 아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누구나 바라는 그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시인 칼 붓세(Carl Busse)는 산 너머 저쪽에 행복이 있다기에 사람들을 따라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다는 시를 쓴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머나먼 인생길을 헤매고 있지만 행복을 찾았다는 이는 흔하지 않다. 어떤 이는 인생은 괴로움의 바다이니까 세상에 행복은 없다고 말한다.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는 없어도 지난날에는 행복했었노라고 말하는 이는 있으니 행복은 현재에 있지 아니하고 과거에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행복하지 않을까 라고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높은  점수를 얻어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면 행복할까.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어 돈을 물 쓰듯 하면 행복할까. 자신의 능력을 계발해서 만인이 우러르는 높은 자리에 앉으면 행복할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연인이 되어 사랑을 나누면 행복할까. 세칭 일류학교를 나온 영재라 불리는 사람, 돈을 물 쓰듯 하는 부자, 지위가 높아 누구나 우러르는 자리에 오른 사람, 미인을 얻어 그와 결혼한 사람도 지금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바라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누구나 기뻐한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느끼는 기쁨이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쁨은 소멸되고 만다. 바라는 것을 모두 이루어도 행복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그 행복이라는 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원하는 것을 이루면 행복해야 마땅하리라고 여겨지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어도 행복하지 않은 것은 무슨 연유일까. 오래 전에 봉화 구천에 사시던 전우익 선생이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라는 책을 써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적이 있다. 책의 내용은 대략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것이었다. 바라는 것을 이루었다고 반드시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그 성취가 혼자만의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구도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선이 나와 당신 사이뿐만 아니라 나와 여러 사람 사이에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어진 선이 많을수록, 그 선이 따뜻할수록 행복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행복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어디쯤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