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동을 변호하다

―고창근 서사시집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문학마실, 2018)

                                                   

김재순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은 고창근 작가가 아홉 번째로 펴낸 책이다. 그는 엄청난 문학적 에너지로 지금까지 소설집 세 권과 장편소설 네 권을 출간했고 서사시집도 두 권이나 냈는데 최근에 출간한 서사시집이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이다. 작가가 여러 작품에서 주창한 페미니즘 사상을 이번에는 서사시로 보여준다.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이나 비디오방이 거리를 풍미하던 가까운 지난 시절 유리문에 붙어있던 어우동 영상물 광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멈췄을까. 아름다운 여배우의 선정적인 차림과 요염한 자태, 남자배우와 엉겨있는 배경, 상업자본과 맞물린 그토록 매혹적인 도화를 똑바로 당당하게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힐끔거리면서 볼 것 다 보게 했을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우동을 어떻게 기억할까. 젊은 아가씨에게 어우동을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기생이라고 했다. 황진이처럼 예인인 기녀도 아니고, 홍랑처럼 절개가 있는 기녀도 아니요, 논개처럼 의로운 기녀도 아닌, 그냥 퇴폐적인 기생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어우동을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그녀를 그렇게 기억할 것 같다.

  어우동은 충북 음성 음죽현(현 경기도 이천)의 정3품 박윤창의 딸로 태어났다. 외숙부가 영의정을 지낸 정창손이며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손부가 된 조선 최고의 신분이다. 신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온갖 잡설, 음녀의 불명예를 아직까지도 벗지 못한 어우동에 대해 고창근 작가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녀는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으며 그녀에 대한 많은 기록이 권력의 검열을 거친 누명이라고 말한다. 그의 변론을 들어본다.

 

  그렇다고

  은장이한테 흑심을 품은

  건 아니었다

 

  다음 날 은기를 만드는 것이 신기해

  차마 사대부가의 아녀자로서는 못 가고

  장미의 옷을 입고 변장하여

  부엌으로 가 물 한 그릇을 들고

  은장이한테 다가가 주곤 다시 앉는데

 

  등에 꽂히는

  독화살 하나

 

  오호라

  이제야 알았구나

  소문으로만 들었다가 막상 두 눈으로

  보니,

  이 음탕한 년!

 

―「제2부 쫒겨나다, 7장」 중에서

                       

  위의 장면들은 어우동이 쫓겨나게 된 경위를 보여준다. 어우동은 왕족과 혼인하여 해인이라는 작호를 받았고 장미는 그녀의 하녀 이름이다. 그러나 남편 이동은 첫날밤만 어우동을 찾았을 뿐 기생을 별채에 들여서 주색잡기에 빠져 어우동을 잊었다. 남편의 무관심으로 쓸쓸하게 지내던 어우동은 하녀복장을 하고 집안에서 은그릇을 만드는 은장이를 찾아가, 그냥 신기해서 물도 떠다주고 말도 나누며 옆에서 잠시 앉아 있는다. 은장이와 마음을 나누거나 간통을 한 것이 아닌데 다른 여자에게 빠져 어우동을 내쫓을 구실을 찾던 남편 이동에게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어우동은 가부장사회에서 사통한 천하의 음탕한 여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친정으로 쫓겨난다. 아비와 오라비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활달하고 열린 생각을 지닌 어미의 도움으로 조금의 재산을 분배받아 분가한 어우동은 길갓집에 살게 된다. 그녀는 젊고 건강하다. 소박맞아 홀로지내는 심정이 어땠을까. 신열을 앓으며 누워 지내는 어우동에게 하녀의 권유로 신분을 속이고 중인이지만 사헌부 도리라는 직책에다 용모가 준수한 오종년이라는 사내를 만나 서로 몇 번의 탐색을 끝내고 사랑을 나눈다. 그들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서 정을 나눈다. 이후 어우동은 풍기문란 죄로 구속되기 전까지 많은 남성을 만난다. 시와 거문고 등의 재주가 뛰어나서 당대의 유명인사와 유생들이 찾아왔고 어우동은 가리지 않고 만났다. 신분의 귀천도 나이도 가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프리섹스였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남성들과 만나 어떤 애정행각을 했는지는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열거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 시집에서는 잘 보여준다.

 

  이 팔뚝에 그대의 이름을

  새겨주시오

 

  박강창이 머뭇거리다

  현비의 팔뚝에 먹물을

  먹인

  바늘을 가져갔다

 

  (중략)

 

  현비는 낮과

  밤을 구분 못하고

  음식도 먹는 등 마는 둥

  절벽에 서 있는 듯

  지냈다

 

  매일  

  죽은 사람처럼

  말라가는 꼴을

  보지 못한 장미가

  이틀에 걸쳐 사연을

  알아왔다

 

―「제5부 열락의 세계에 빠져들다, 21장」 중에서

 

  어우동이 이런저런 남자들과 관계한다고 본능만 따르는 음탕녀가 아니라 그녀의 가슴은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할 줄 아는 순정한 여인이라고 고창근 작가는 대변하고 있다. 현비는 어우동이 길갓집에 살면서 사내들을 만날 때부터 바꾼 이름이다. 아무리 길갓집에서 여러 남자들을 상대하며 살고 있는 그녀라지만 그중에는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 맺혀서 그리움에 눈물짓게 하는 한 사람의 이름이 있는데 박강창이라는 젊은이다. 스스로 팔뚝을 내밀어 박강창의 이름을 새겨달라고 했고 박강창이 집에 갇혀 못 오게 되자 절망하며 눈물로 밤을 새우고 말라갔다.

 

  그만 돌아가시지요

  아녀자들만 있는

  집이요

 

  왜 이러셔, 다른 사내들에겐

  넙죽법죽 잘 주면서

  나도 그 구멍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 좀 합시다

 

  치욕,

  마비된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 전 일,

  이 떠올랐다

 

  장미가 없는 틈을 타 사내는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항할 틈도 없이 옷이

  발가벗겨지고

 

  이렇게 사내들의 쾌락의

  종이 되느니

  죽는 게 낫다

―「제6부 사랑은 외로움이더라, 27장」 중에서

 

  이근지라는 자는 어우동과 가까이 지내는 사내의 이름을 팔고 어우동에게 접근해서 그녀를 희롱하고 능욕했다. 대문으로는 드나들지 못하고 얍삽하고 교활하게 몰래 들어와서 강제로 폭행하는 파렴치한 인간 말종도 있었다. 노류장화라고 소문난 어우동에게 달라붙는 잡것들이 많았다. , 나비, 산들바람만 있었겠는가. 온갖 잡것들이 달라붙었지만 “사내들의 쾌락의/종이 되느니/죽는 게 낫다”는 말로 그녀는 맘에 드는 사내와 스스로 향유할 뿐, 자유롭고 주체적인 생활을 했을 뿐이라고 작가는 그녀의 편에 서서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어우동의 행동이 한성부에 퍼지고 진상을 요구하는 공론이 형성되어 왕 성종은 어우동을 풍기문란 죄명으로 잡아들였고 상대 남자들도 잡혀왔다. 그녀를 탐하던 남자들은 하나같이 어우동을 모른다고 했다. 자백을 않고 있던 어우동의 입에서 당대 유명 인사들 방산수 이난, 수신수 이기, 박강창, 오종년, 이승언, 홍창, 이근지, 구전, 어유소, 김휘, 김청……이라는 이름이 줄줄이 꿰어져 나왔다. 허위와 가식을 성리학으로 포장했던 사내들의 헛된 이름을 마구 불러내었다.

 

 

  내 정신도 어쩌지 못하는

  몸이다

  정신과 몸이 쓰라린 갈등을

  겪을 때 내 몸

  어디에서 또 하나의

  몸이 불쑥

  나타났다

 

  나는

  그 또 다른 몸을

  인정했을 뿐이다 그

  몸 또한 내 몸이기

  때문이다

 

  내 몸을 툭,

  내려놓을 때 나는

  해방을

  느꼈다

―「제7부 사랑이 꺾이다, 32장」 중에서

 

  어우동은 감옥에 갇힌 죄인이 되었지만 그녀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단지 위선 떨지 않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마음에 드는 사내와 즐기며 살았을 뿐인데 그것이 죄가 되는가. 도대체 제도와 관념이 무엇이기에 개인의 삶마저 통제한다는 말인가. 여성은 아무런 권리도 주장도 할 수 없었던 사회, 힘의 논리 즉 남성의 논리 권력의 논리로 지배되던 사회, 그들의 틀 속에 여자들을 가두고 숨도 못 쉬게 하던 사회에서 어우동은 너무도 절실하게 몸의 해방과 정신의 해방을 추구했다. 허울뿐인 비단 옷을 벗듯이 마음도 벗고 몸도 벗어 주체적으로 살아간 여인, 드디어 그것을 성취하고 인간의 본질을 찾았지만 그녀는 성리학의 사회를 뒤흔든 죄인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죄인은 그 사회라고 작가는 어우동을 변호한다.

  어우동은 옥사에 갇히고 상관했던 남자들은 신분이 낮은 자들을 제외한 사대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되고 직책도 돌려받았다. 어우동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은 장 백대에 이천 리의 유배가 합법적이지만 다른 비슷한 조문, 남편을 배반하고 도망하여 바로 개가한 법에 적용하여, 즉 억지법을 적용하여 성종의 명에 따라 사형에 처해졌다. 이후 그녀는 왕가의 족보에서도 사라지고 그녀의 시, , 화 등 작품도 폐기되었고 현재 몇 작품만이 남아있다.

 

  성종은

  고려의 멸망을 교훈삼아

  국가의 긴급한 사명은 인간의 본성을

 

  순화하고 풍속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규범을 강화하였는데

  우주론적으로 하늘에 해당하는 것이 남자고

  여자는 땅이라 남자는 여자에게 군림하며

  낮은 존재인 여성은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고

  여겼다 특히 욕망 가운데

  성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여자들은

  성리학에서 제시하는 부덕(婦德)을 요구했고

  예에서 벗어나 욕망을 발산하거나

  일탈된 행동을 하여

  가정과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를

  제약했다

 

  그 제약은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 가문에까지 공동 책임을

  지웠다

 

  개인의

  생명보다

  국가의 풍속이 더

  중요했고

  왕권강화가 더

  시급했다

―「제8부 사랑에, 죽다, 38장」 중에서

 

  성종은 왕이 될 수 있는 서열이 먼 사람이었지만 당시 최고의 권모술수를 가진 한명회를 장인으로 두었고 뛰어난 지략을 지닌 어머니(훗날 인수대비)의 합작으로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다.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두고 기반을 잡아가던 시기, 인수대비는 조선이 성리학의 나라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우동이 처형되기 몇 년 전에 내훈을 발표하고 아직은 고려의 분방한 습성이 남아있던 조선 여인들의 삶을 더욱 더 통제했다. 그것이 지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종은 그런 어머니 의지를 꺾지 못해 어우동을 교수형에 처하고 비슷한 시기에 자신의 부인도 사사했다. 이 여인들을 비롯해서 조선의 모든 여인들은 남성우월주의, 남성중심주의, 유교사회의 질서에 희생되었고 그녀에 대한 기록도 그 권력의 기록일 뿐이라고 작가는 서사시로 말하고 있다.

  이 서사시집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에는 어우동의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만 노래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부정부패, 혼인의례, 품위로 포장된 이면에 썩어빠진 양반과 왕족들의 부도덕, 불법으로 법을 행사하는 성종의 모습 등 당시 사회를 알 수 있는 많은 자료를 볼 수 있다.

 

  그리움이 밀려오는 계절이다. 대상에 대한 실체가 없는 그리움이다. 이런 계절에 보기 좋은 서사시집이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이다.


(이 글은 2018년 <작가정신>에 실렸습니다) 


 김재순/경북 상주 출생. 2002년 『작가정신』으로 등단. 시집 『복숭아 꽃밭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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