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티브이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요즘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강남 부자동네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그들은 그들 밖의 사람들을 개, 돼지로 여긴다는 정도로만 짐작할 뿐이었다. 코디라는 말도 연예인의 옷차림을 관리해 주는 사람 정도로 알았는데 그들의 코디는 자녀를 명문학교에 입학시켜주는 기획자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소도구 가운데 피라미드 모형이 있다.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차 교수는 피라미드 모형을 늘 책상에 두고 보면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르기를 소망한다. 자녀들에게도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를 것을 요구한다. 꼭대기에서는 누리고 아래에서는 짓밟힌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그들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모두 이런 부류의 사람만 산다면 우리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사회가 아직 온전히 망하지 않은 것은 자기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며 이웃을 배려하며 사는 선량한 다수, 곧 피라미드의 아랫부분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일 것이다. 사회 모든 구성원이 모두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르려고 온갖 부정과 불법과 편법을 저지르며 산다면 우리사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이 개, 돼지라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피라미드의 아래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지배계층에 짓밟히면서도 오히려 그들을 지지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우리는 OECD 국가 가운데 자영업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 산다. 최저임금을 올리자 자영업자들이 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올린 정부를 탓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건 우리 경제의 오래된 구조의 문제이지 누구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가 지혜를 모아 풀어야 할 어려운 과제다.

 

  경제개발 시대에 우리는 대기업에 자본을 몰아주기 위해 강제로 저금을 하고, 우리의 어머니들은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았다. 독일에 광부로 가고 간호사로 갔다. 베트남에 용병으로 가고 젊은이들은 공돌이와 공순이로 불리며 저임금 노동을 하며 기업을 키웠다. 그 희생이 모여서 대기업이 성장하고 통계상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런데 그 공은 어느 한 사람의 것이 되고 노동자들은 아직도 최저임금도 받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사는 사람들은 밖에서 보면 우아하고 품위가 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꼭대기를 향한 천박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속은 병들었으나 겉만 멀쩡한 꼴이다. 어두운 과거를 숨기고 우아한 척 사는 드라마 속 인물인 한서진은 화가 치밀면 태도를 돌변하여 “아갈머리를 확 찢어 놓을라.”라는 비속어를 수시로 사용한다. 비속어는 대책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 가끔 필요하기도 하다. 주위에서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비하하고 피라미드 꼭대기를 두둔하는 말을 들을 때는 한서진의 대사를 되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피라미드를 내동댕이치며 한 차 교수 아들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지구는 둥근데 왜 피라미드여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