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인민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국민학교는 일제강점기인 1941년부터 사용되었다. 일제가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학교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국민은 황국신민의 줄임말이다. 물론 국민학교의 교육목표는 충량한 황국신민, 즉 친일파를 양성하는데 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1996년 초등학교로 바꾸었다. 해방된 지 50년 만이다.

 

  학교 이름은 국민이라는 말이 쓰지 않지만 ‘국민’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인민이라는 말이 보이고 대한제국에서도 백성과 같은 뜻으로 인민이라는 말이 쓰였다. 인민은 영어의 People을 번역할 때도 쓰였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에서도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라는 말이 나온다.

 

  인민이라는 말이 쓰이지 않게 된 것은 분단 이후다. 북에서 인민이라는 말을 쓰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인민 대신에 국민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동무라는 말도 북에서 쓰는 말이기에 남에서는 쓸 수 없는 말이었다. 원래 동무는 ‘동모’, 동메‘ 등으로 쓰이다가 조선 후기 광산에서 덕대 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서로를 ’동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후로 친근한 사이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도 원래는 ‘동무 따라 강남 간다.’였다.

 

  1964년 춘천의 한 교회 전도사가 ‘모여라, 동무야 여름성경학교로’라는 펼침막을 교회 앞에 걸었다가 경찰에 끌려가 온종일 맞았다. 제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술자리에서 동무라는 말을 했다가 전기고문을 당하여 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로 동무라는 말은 차츰 남쪽에서 사라졌다. 노동이라는 말도 근로로 바뀌었다. 만약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인민, 동무, 노동이라는 말을 자유롭게 쓰고 있었을 것이다. 원래 쓰던 우리말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것도 분단으로 인한 국어의 수난이라 할 수 있다. 국어가 시대를 잘못만나 고생이 많다.

 

  지금 북에서 쓰는 말을 쓴다고 처벌 받는 일은 없다. 그만큼 민주화 되었다. 게다가 우리는 북의 40배나 넘는 경제력을 갖고 있으며 군사력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북에 쫄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무나 인민이나 노동이라는 말이 낯선 말로 느껴지는 것은 분단이 너무 길어 ‘국민’이나 ‘친구’, ‘근로’라는 말이 굳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분단으로 인해 남과 북의 국어도 상당부분 이질화 되었다. 남에서 동무는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이에 쓰는 말이다. 북에서 동무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함께 싸우는 사람’ 정도의 뜻으로 쓰인다. 북에서는 정을 나누는 가까운 사이에는 친구라는 말을 쓴다. 동무와 비슷한 말로 동지가 있는데 동지는 자기보다 윗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김일성 동무라고 하지 않고 김일성 동지라고 한다.  

 

  남에서 ‘아바이’는 ‘어마이’와 작을 이루는 말로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북에서 ‘아바이’는 남의 ‘어르신’과 같은 높임말이다. 남북의 통일은 아직은 어렵지만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비무장지대 초소도 철거하고 서로 비방도 하지 않는다. 필자가 소속된 한국작가회의에서는 남북한 공동 국어사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