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과 야만

 

품격이 있다는 말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품격이 있는 사회일까? 그렇다고 대답하기엔 망설임이 있을 것이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은 출발부터가 품격을 가지지 못했다.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등 각 분야를 책임진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에 친일행위를 했던 사람들이었다.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해산하고 친일파에게 나라 일을 맡겼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파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개인의 이득과 권력을 위해 민족이 아닌 왜구의 편에 섰던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혹은 우리겨레라는 가치보다 자기의 이득과 권력 더 소중하게 여기고 친일을 선택한 것이다. 좋게 말하면 개인주의자고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자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품격을 갖추기는 어렵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는 극단적 경쟁사회로 분류될 수 있다. 학교는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고, 직장을 구하는 데도 시험성적순이다. 학교도 등급이 있어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에 따라 사람의 평가가 달라진다. 평생 자기가 졸업한 학교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대통령은 그것 때문에 자격이 안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서민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다니지 못하게 하려고 시위를 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티브이 화면에 종종 나온다. 자기의 자녀가 서민아파트에 사는 아이의 친구가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베라르디는 한국사회를 ‘끝없는 경쟁과 극단적 개인주의’라 규정했다. 야만이란 말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고 했다. 유럽의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경쟁교육을 하지 않는다. 성적으로 줄 세우기도 하지 않고 출신학교로 인간의 등급을 매기지도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과의 경쟁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일 뿐이다. 독일은 2010년 홈스쿨링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홈스쿨링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으므로 사회적 공감능력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사회적 공감 능력이라는 말, 타인을 배려하는 능력이다. 아도르노의 관점에서 보면 타인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없는 사회는 야만인 것이다. 우리도 예전에는 천박한 경쟁사회가 아니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서울의 이회영 선생, 안동의 이상용 선생 같은 이는 가산을 정리해서 만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마련하고 일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셨다. 여운형 선생도 노비를 해방하고 그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고 독립운동의 길로 나섰다. 그분들의 품격 있는 삶이 있었기에 우리가 오늘 온전히 야만으로 떨어지지 않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