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笑傲江湖)’를 보고



 TV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중국 무협 드라마 ‘소오강호’를 접하자마자 나는 홀린 듯이 이 드라마에 빠져 들어갔다.


 나는 꿈 많은 고등학교 시절을 무협지와 함께 보냈다. 졸업하면 취직이 100% 보장되는 국립학교라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은 노는 일에 몰두했다. 나는 노는 축에 끼지 못해 무협지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만화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내 온 몸은 전율했다. 와룡생 작품들은 내게 무궁무진한 세상을 보여주었다.


 나는 ‘무협 세상’을 직접 만나기 위해 태권도를 배웠다. 무협 영화도 몰래 자주 봤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열정을 이렇게 식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미래의 꿈이 없는 소년은 참으로 슬펐다. 헤르면 헷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는 내가 그 수레바퀴에 깔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무협지를 통해 청소년기를 ‘보람 있게’ 보냈다고 생각한다. 분명 무협지는 우리를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게 한다. 무협지가 보여주는 세상은 사실 얼마나 허황된 세상인가!    


 하지만 무협지에는 ‘인간 세상의 궁극적인 문제’가 담겨 있다. 

 특히 나는 무협지의 멋있는 부분이 선과 악을 다룸에 있어서 이분법을 넘어서는 그 통쾌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유식하게 얘기하면 대극합일이다. 무협지에는 정파를 표방하는 선 쪽에서 항상 진짜 악이 나온다. 이것이 그 당시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소년의 눈에는 이 세상의 가식이 훤히 보였나 보다.


 소오강호의 주인공 영호충도 정파인 화산파의 촉망받는 제자다. 그의 스승 악불군은 군자검이라 불리는 ‘군자’다. 항상 점잖은 그의 모습에서 나는 그의 악을 예감한다. 역시 그는 비급 규화보전을 온갖 사악한 방법으로 얻어 무림지존에 등극하려 한다. 그의 악행의 그림자에 그의 제자 영호충이 갇힌다. ‘선’은 언제나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악의 대표인 마교 일월신교 교주의 딸 임영영은 우여곡절 끝에 영호충과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선과 악은 통합되어야 진정한 선이 된다. 심층심리학의 대가 융의 말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보이는 악들은 진짜 악이 아니지 않는가? 온갖 잡범들이 어찌 이 세상의 악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우리 주변의 선들도 진정한 선이 아니다. 선을 행한다고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온갖 선행들은 진정한 선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지 않는가?

 이 세상의 진짜 악은 우리를 악하게 살 수밖에 없게 하는 ‘자본주의’ 아닌가? 따라서 진정한 선은 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속에 사는 한 돈을 최고로 섬기는 우리는 진짜 악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진짜 악이 만든 매트릭스 안에서 우리는 선과 악을 구분하며 결국은 악하게 살게 되는 것이다.


 선을 표방하는 진짜 악, 악불군을 제거하고 영호충과 임영영은 피리와 금으로 소오강호(강호를 비웃다)를 합주하며 하나가 된다. 세상의 본질은 떨림, 영원한 音(음)인 것이다. 선과 악의 대극을 극복해야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영원한 音(음)의 세상. 그 세상은 그야말로 젖과 꿀과 음악이 흐르는 지상낙원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프로그래밍하고 있는 ‘자본’은 선을 표방하며 우리를 선과 악의 쳇바퀴 속에 가둔다. 선과 악의 굴레는 영원한 형벌이다. 이 굴레를 벗어나면 음악만이 가득한 세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