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 박찬선 동학 시 

 

 하늘에도 잔디가 자란다 외 9편 

박찬선

 

 

오래도록 몸 낮추어 살아왔다.

이 땅의 산야에서 

으깨지고 짓밟히면서 살아왔다 

흙을 지키려는 일념으로

어울려 푸른 물살을 이루고

어울려 누런 금빛으로 물들고

관절통을 앓으면서 튼튼해진 뿌리 

하지만 목 꺾어지고 피 흘린 자들이

어디 우리 뿐이랴 

늘 그리운 것은 엄마 품 같은 하늘 

팔 벌여 바라보며 

하늘 되기를 바랐으니 

꼿꼿한 자세로

어둠을 거둬 올린 자잘한 검은 꽃씨들

속으로 몇 섬이나 달달 볶아댔을까

먹구름이 걷히면 

하늘에도 잔디가 자란다.

 

 

 

 

구업(口業)

 

 

 

재종조부님께서는

상주시 은척면 우기리 동학교당에서

열심히 수도하신 동학교인 이셨습니다.

얼굴은 늘 해가 떠오르듯 밝게 빛이 나셨고

음성은 굵고 진동이 넘쳤습니다.

오로지 성전(聖典)의 가르침대로

수행에 몰두하시는 모습을 보고 더러는

“빠져도 보통 빠진 게 아니야”

“이상해, 정상이 아니래도”

이렇게 험구를 하고 악담을 한 사람들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답니다.

입이 고갯길처럼 삐익 돌아가고

얼굴에는 게딱지같은 부스럼이 돋아나고

갑작스럽게 닥친 일에 어쩔 줄을 몰랐답니다.

침을 맞고 약을 발라도

쉽게 낫지를 않았답니다.

몇 달 몇 년이 걸린 뒤

마음을 바로 잡고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니

참 이상한 일이지요.

예나 이제나 입은 무거워야 되나 봅니다.

구업은 짓지 말아야 하나 봅니다.

 

깍지벌레

 

 

 

감나무에 깍지벌레가 산다.

깍지를 끼고 약속이나 한 듯이

자석처럼 착 붙어서

이른 봄부터 지은 향기로운 성찬에

슬그머니 먼저 손을 댄다.

흡사 싸락눈 같이 뽀얗지만

속은 붉은 피로 가득 차 있다.

문득 옛적 고부 고을

배가 큰 사람이 떠올랐다.

겉과 속이 다른                    

 

 

 

 

 

 

 

학창의(鶴氅衣)*

                   

 

 

풍선처럼 가볍게

하늘나라로 가는 옷이야

신라적 어느 스님은 옷에 밥을 먹였다지만

살아서 나붓거리는 저 춤사위 좀 봐

나래질 할 때마다 하늘자락도 춤을 추는

융단 같은 구름을 타고 오르는

천 년 몸짓의 언어

조을시구 조을시구(鳥乙矢口)*

맑은 정신을 살찌운

깨끗한 영혼의 옷이야

 

 

 

*동학 교인들이 의식을 행할 때 입는 옷으로 학의 날개 모양임.

*상주 은척동학가사 도덕가중 몽심명심가에서 인용.    





똥 다 누고 나가겠네

 

 

 

마지막 가는 길 가볍게 가려고 하네.

속에 가득 찬 것 모조리 비워야지

포식자가 많은 세상

꿈에 신인이 나타나 손바닥에 써서 보여준

남조선을 개벽(開闢)한다는 이름 김개남(金開南)*

차별의 굴레를 벗기 위해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해

불꽃같은 삶을 산 백성의 해방

배신으로 조여 오는 순간 내 뱉은 말

“올 줄 알았네.

 똥이나 다 누고 나가겠네.”

마흔 두 해 무거운 삶을 부러 놓는

깨끗하게 뒷세상을 열어가는

 

*김개남(1853-1894) 본명 김기범. 태인 땅 산외면 지금실에서 부잣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남. 꿈에 신인이 개남(開南) 두 글자를 손바닥에 써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름을 개남으로 고쳤다고 함. 봉건사회의 심장 꿰뚫은 ‘불꽃 삶’을 산 동학인.  





1894년 12월 2일

 

 

 

회문산 아래 순창 피노마을에서

한 날 전봉준이 붙잡혔다.

 

희문산 아래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느티마을에서

한 날 김개남이 붙잡혔다.

 

피노마을과 종성리는 20여리 떨어져 있다.

 

조리돌려진 머리가 살아 있다.

세상 바로 보는 눈

부릅뜨고

차마 감지 못하고

 

   

   

 

 

 

 

 

 

 

우는 산

 

 

비가 청승스럽게 추질추질 오거나

날씨가 을씨년스럽게 궂은 날이면

몸을 비틀며 고시랑고시랑 우는 산이 있어요.

이 땅 원한을 못 푼 농민들의 혼백이

서러워 서러워서 우는 소리지요.

1894년 10월 14일

반외세를 부르짖으며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처참한 죽임을 당한

경남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고성산*

수천의 고성산이 끄억끄억 울고 있어요.

산이 다 알고 있어요.

 

 

*고성산(高城山) 해발 185m 고승당산, 고시랑산이라고도 부름. 1894년 10월 14일 농민군이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패전 일본군은 ‘비적 186명 즉사’라고 보고했으나 몇 천 명이 죽었다고 전해지는데 일 일대에는 10월 13일 한날에 제사지내는 후손들이 무수하다.(진양향토사연구소장 김범수의 증언) (동학농민전쟁인물열전 이이화 지음 한겨레신문사 p.120)




  마당 포덕(布德)

 

 

가설무대 앞

징과 꽹과리 소리에 사람들이 모였다.

“동학에 입도하여 살길을 찾자”

해월선생이 자리를 정하고 입도식을 가졌다.

하도 사람이 몰려들어

마당에 맑은 물 한 그릇 떠놓고 절을 했다.

바로 동학인(東學人)이 되었다.

하느님을 모시는*

해 뜨는 나라 사람이 되었다.

 

 

*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1980년대 동학은 전라도 지역에서 급속히 번져나갔다.(동학농민전쟁인물열전 이이화 지음 한겨레신문사 p.196)   




감나무

 

 

올 봄에 감나무 접붙이기를 했습니다.

고염나무에 접을 붙여야 감나무가 되어

해를 닮은 감이 주렁주렁 달리듯이

접으로 밝아지는 동학

하늘빛을 받아

하늘과 인간이 접해야

새 길이 열리는

푸른 생명의 가지가 뻗어가는

 

감나무는 새순이 나와 잘 자라고 있습니다.

 

       

   

 

 

 

  

해원(解寃)

 

 

해원이란 말 속에는 물이 흐른다.

언 땅을 녹이는 물이 흐른다.

 

신라적 큰 스님도 해원을 얘기했거늘

2008년『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라는 시집을 낸

탈북 시인 장진성(43)도

문학을 통해 때론 해원한다고 했으니

2012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시인대회에

북한대표로 참가하여 느낀 것이

인권 선진국일수록 문화선진국이더라는 것

정치가 아닌 문화로 말하고 설득하려고 했다는 그

1994년 상주동학100주년 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누군가 해야 될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 모시고

한풀이 굿도 하고 열린 제사도 올렸는데

궁궁을을 잘 사는 뒷날이 온다는 연극공연도 하고

녹두꽃 떨어진 그 이후 그림전도 열었는데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아니 사람사이에서

사는 일 모르는 사이 원을 쌓는 일이거늘

애타게 바라지 않아도

성처럼 쌓여지는 일이거늘

돌아보면 모두가 푸는 일이었네

얽히고설킨 꼬인 매듭을 풀듯

가슴에 응어리진 쇠뭉치의 원한을 푸는 일이었네

참회의 리본을 달고 빈 하늘로

연처럼 가볍게 날려 보내는 일이었네

 

해원이란 말에는 날개가 달려있다

가볍게 서방으로 나는 날개가 있다.

 

박찬선/ 경북 상주 출생. 1976년《현대시학》등단. 시집『상주』외 저서 다수. 제3회 흙의 문학상 외 수상 다수. 상주동학100주년기념사업회장, 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장 외 다수 역임.



위국헌신

강상률

 

 

살아야

한다면

혼을 태워

동포와 함께

이 생명 다하고

 

죽어야

한다면

넋을 뿌려

민족과 함께

이 목숨 다하여

 

맹세한

길위에

나라위한

거룩한 불씨

피워라 혼 불을.

 

 

강상률/ 다산문학 대상, 대한민국향토문학 공로상, 시집<북소리 들리는 아침>외 다수.

 

 

봄, 그 사내

강정이

 

 

어라 어라 저것 좀 보셔요

미나리 파란 싹이 돋고 있어요

파릇파릇 웃는 얼굴

노숙자가 아니네요

예쁜 지하철에 때절은 사내라 사람들은 슬금슬금 피하는데

 

검정 비닐봉지 속 구두가 있네요

사내는 구두코를 소매로 문지르고 손바닥으로 닦아

가슴에 껴안네요

지그시 눈 감네요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

폴짝 뛰고 있나봐요

사자자리 오리온자리 하늘별자리 몰라요

그냥 새신 신고 어린소년으로 달리고 싶을 뿐

사내 얼굴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고 있어요

 

 

강정이/ 1994년 <경남신문>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 2004년

《애지》시부문 등단. kangjungii@hanmail.net

 

 

외딴집

고경연

 

 

어떤 날은

댓돌 위의 신발이

인사를 하고

 

또 어떤 날은

빨랫줄의 분홍 이불이

아는 체를 한다

 

가끔 서 있는 흰색 차는

할머니의 핏줄일까

시청 직원일까

 

남산 아래 마당 깊은

파란 지붕집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가

나를

자꾸 부른다

 

고경연/ 상주들문학회 회원, twin1968@hanmail.net

 

 

연꽃

고현자

 

파란 수면에 단아한 미소가

골똘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주문한 시간을 기다리는 듯

그것도 뙤약볕 아래서

사뭇 고운 자태로 말이다

 

초여름 날은 억겁을 돌아

수없이 출렁다리를 건너듯

너울처럼 일렁이는데

먹보다 진한 뼈를 갈아내는

침묵의 말씀이 들린다

 

세월이 가고 오듯

지고지순한 사홍서원

겹겹의 연홍 꽃잎을 사르고

어두운 세상 불 밝힐

다음 역으로 떠나야 할 즈음

 

어느 날

턱 허니 배달된

계절의 마지막 한 그릇을

처절하게

비워내야 할 것이다

 

그래

처음인 양 마지막인

오만 번뇌의 허공으로 난 길을

반야심경 음송으로 승천해야 할 시간

 

이제

삼귀의 열반하는구나.

 

 

 

고현자/ 경기 부천 거주, 백제문화예술협의회 사무국장, 현)시사코리아 기자, 현)프러스코리아 타임즈 기자, 현)일간경기신문 문화체육부장.

 

 

뇌졸중

곽도경

 

 

벼락 맞아 반쪽 검게 타 버린

처연한 모습으로

그 길 언저리에 서 있네요.

 

남은 반쪽으로

얼마나 힘겹게 온몸 수액

우듬지까지 올려 보냈는지

수많은 푸른 손들 눈부시네요.

 

당신 떠나던 그 날

꿈속까지 찾아와

품안 가득히 안아 주시고도

아직 못다한 말 남았는지

 

한참 껴안고

귀 대고 서 있어도

나뭇잎 마다 적어 둔 시린 언어들

한 장도 읽을 수 없는

당신 마음입니다.

 

곽도경/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 회원.

 

 

몸으로 말하다

권숙월

 

흔들리는 것은 흉이 아니다

바람이 지나가면서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도 들어주지 않으면 설 자리를 잃는 것처럼

무게 없이 흔들리는 대나무를 보고

보기에 저리 꼿꼿해도 줏대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할 수 없다

한겨울에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는 대나무가

걸핏하면 흔들리는 것은 건성으로 하는 말도 새겨들을 말이 적지 않다는 뜻이리라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비굴함이 아니다

하늘이 펑펑 눈으로 쏟아내는 말도 달게 받지 않으면 탈 없이 지낼 수 없는 것처럼

귀 기울여 듣는 대나무를 보고

속이 비어 아무 앞에나 머리를 조아리는 것 같다는 말을 할 수 없다

늦가을에도 나눌 것 없는 가난한 대나무가

잊을 만하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진정성 보이는 말도 욕심내면 무겁다는 뜻이리라

 

권숙월/ 1979년《시문학》등단. 시집『동네북』『하늘 입』『가둔 말』등 11권. 시문학상, 경상북도문화상, 경북예술상, 김천시문화상 등 수상. 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장. 김천신문 편집국장.

 

 

킬러들의 도시

권천학

 

 

 

도시의 콘크리트 숲에 야생동물들이 우글거린다

곰, 양, 여우, 독수리, 늑대와 뱀도 있다

숲에 사는 그냥 야생동물과는 달리 모두 별종들이다

영장류의 인간 목(目)에 속하는 짐승들로

돌연변이도 있고 악성코드도 있고 진화된 변이종도 있다

허물렁한 벽과 단단한 어둠과 하릴없는 틈 속에 스며 산다

 

돌연변이에 이어 별종 암컷과 수컷들도 우글거린다

온몸에 침을 발라 온몸을 성기로 만들고

럭셔리한 치장으로 털을 감싸고

윤활유 바른 혀로 매끄럽게 말을 굴려내고

벌건 눈을 가리는 팻션으로 선글라스를 이용한다

 

콘크리트 숲이 늘어남에 따라

별종 야생동물들의 종수가 늘어났다

콘크리트 벽에 근육을 문질러 키우거나

어둠속에서 이빨과 손톱을 뾰족하게 갈아대거나

그림자가 되어 소리 없이 웃는 표정연습을 한다

먹이를 만나면 손톱발톱을 세우고 으르렁대며

무서운 얼굴로 달려드는 산속 야생동물과는 달리

별종들은 가시와 이빨과 손톱과 꼬리를 감추고

달콤하게 웃는 얼굴로 다가선다

 

가볍게 저질러진 살인들은 추억이 되고

그럴듯한 말 뒤엔 으레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밤낮 가리지 않는 성폭행이 취미가 되는 킬러들의 도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쫒고 쫒기는 숨바꼭질

몰이꾼과 저격수의 스릴 넘치는 게임이 계속 된다

 

힘겹게 양심의 귀퉁이를 지키기 위하여

도시의 골목마다 서있는 신호등은

늘어나는 별종야생동물들, 그놈들 때문에 늘

날이면 날마다 빨갛게 충혈 된 채 서 있다

허수아비로 서 있다

 

 

권천학/ 토론토 거주,《현대문학》등단, 시집『그물에 갇힌 은빛 물고기』『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등 10권, 단편소설『오이소박이』등. impoet@hanmail.net

 

 

대자보

권혁재

 

 

굳이 붉은 글씨나

큰 글씨가 아니어도 좋다

마음에 생채기 같이 돋아 올라

가시처럼 콕콕 찔러대고 싶은

비장한 말씀을 또박또박

새겨내는 것이다

굳이 정규방송이나

언론매체가 아니어도 좋다

우리들의 처절한 생각,

우리들의 단단한 바람은

노도처럼 밀려들고 밀려나가는 것을,

들불처럼 쓰고 싶은

간절한 한 말씀을 똑똑히

역사 앞에 새겨내는 것이다

시대의 역류를 추적하여

만인의 고통을 읽어내는

거룩하고 거룩한 광장의 벽에

우리들의 절망이 우리들의 분노로

새겨져 펄럭이는,

비수 같은 비장한 말씀을

손글씨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민주공화국의 새로운 슬픈 언어.

 

권혁재/ 경기 평택 출생, 2004년<서울신문>신춘문예 등단.

 

 

빈집 느티나무

권현옥

 

 

발소리 들린다

문소리 들린다

신발 벗는 소리 들린다

가만가만 다가오는 인기척

휙 고개 돌려 담 너머 바라보면

텅 빈 마당

웅크린 어둠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권현옥/ 경북 문경 출생, 시동인<느티나무시>로 작품활동. kho-gn@hanmail.net

 

 

감골

권형하  

 

 

제비 입새 닮은 잎사귀들

그 파릇파릇한 것들.

하늘 슬쩍 내려놓고 부채질 하는 것들.

감꽃 하얗게 피면

왠지 눈물 날 것 같은

상주하늘

휑하니 빈 툇마루

등불 환하게

마을길로 밝혀들어

잊었던 소식들을

시렁마다 매다는 것들

기적소리 높이 날리던 먼 하늘로

기러기 몇 마리 날아올라

까치집 처마 끝마다 달아 올리고

너븐 들녘 경전으로 읽던 것들.

이 밤은 산마루 넘던

하얀 눈들이 무릎 다 깨지도록

마당을 덮고 덮다가

순한 소처럼 앉아 있는 것들.

 

권형하/ 경북 상주 출생, <매일신문>,<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바다집』외 3권.

 

 

꽃이 피려고

김기옥

 

 년간 암투병을 하던 처제가

새벽에 사망했다며

동료 한 사람이 조퇴를 했다

갑자기 심해진 꽃샘바람에 얼음 얼어도

팬지꽃 모종을 화분에 심었다

 

새봄에 며느리를 본다고 청첩을 보냈던 친구가

며느리감의 교통사고로 결혼식 취소라한다

새학기에 미싱을 배우려고

평생학습 패션과에 들어갔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지인이

여대생 자식을 가슴에 묻었다한다

갑장산 가는 길목 경치좋은 계곡마다

특별한 이름의 팻말들을 발견했다.

 

오늘

강단이 있어서 어설픈 병마는 접근도 못할 것 같았던

로망이던 언니가 폐암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앙심이 깊어 특별한 쓰임으로

선택 받은듯이 담담하게 말 하더란다

 

처음으로 로또복권을 사놓은 나

저녁 먹은 속이 거북해서

몇가지 소화제를 먹었는데도

결국 한참을 토하고 말았다

 

김기옥/ <매일신문>여성한글백일장 장원 등 다수 입상,  상주숲문학회 회원.

 

 

저수지의 아침

김다솜

 

물안개 오르는 저수지 건너편

지팡이 짚고 산책 하시는 할머니

쑥을 뜯다가 뽕잎을 따는 아줌마

삽을 들고 논둑 고치러가는 농부

 

어디선가 닭들의 울음소리

거위와 까치, 산새들의 울음소리

덩달아 개 짖는 소리까지 들린다

 

복권 1등을 꿈꾸는 사내가

월척을 낚기 위해 찌를 바라보는

잔잔한 물결 위로 무리지은 붕어새끼들이 물방울을 내 보내며 간다

청포 숲에서는 어미 붕어들이 심심해서 장난을 하는지 산란을 하는지

아님 높이뛰기와 술래잡기를 하는지 첨벙, 첨벙하는 소리 들린다

하루살이가 하루살이에게 시비를 한다

수면위로 새들이 날아가고 온다

찌에 앉는  물잠자리 날개

 

등 뒤로 경운기가 지나간다

트랙터 지나가고 오토바이 지나간다

쌀보리현미팥콩양파....., 삽니다.

 

김다솜/ 한국문인협회 상주지부 회원.

 

 

요여(腰輿)

김만수

 

 

없는 너를 무등 태우고 왔다

달랑거리는 놋 종소리도 저만치

제 소리를 물고 널 따라가 버린

미현리 숲정이

 

모두들 연신 돌아보며

나무를 벗는다

나무에 돋는 눈으로 살아있기를

푸른 그늘로 얼렁얼렁 살아가라고

새들도 별빛도 차르락 차르락 내려앉으라고

두물머리 노랑붓꽃 저녁물 위로

물아제비들 자꾸 무얼 써 내리는 물가로 날리어 가는

소리

 

한 번만 한 번만 왔다 가이소

 

그 소리

긴 광목 끈에 칭칭 매달고 돌아오는 길

가만히 붉다

 

 

김만수/ 1987년《실천문학》등단, 장시『송정리의 봄』,시집『소리내기』,『햇빛은 굴절되어도 따뜻하다』,『오래 휘어진 기억』,『종이 눈썹』,『산내통신』,『메아리 학교』,『바닷가 부족들』등

 

 

모서재를 넘으며

김미연 

 

 

눈바람이 무섭게 덤빈다

하얗고도  까만 밤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산 중턱

내리꽂는 눈발을 뚫고서

재를 넘는다

 

머릿속은 온통 하얗고

가슴이 먹먹하다

 

조금 전까지

슬로프 위를 활주하며

신나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절인 배춧잎처럼

축 처진 몸을 곧 추세우며

염려와 불안으로 애간장을 녹이는

세 아이들의 모습이

거울 뒤로 보인다

 

갈 길은 먼데

이 순간 혼자가 아니어서

두렵다

 

 

김미연/ 상주들문학회 회원. kbsc5065@hanmail.net

 

 

 

기울다

김설희

 

예고에도 없던 소나기다

처마 밑에 서서 바람의 방향을 기웃거리다

한발 물러서고 또 한발 물러서고

어두운 하늘

등 뒤에는 벽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다

벽도 나의 등을 보고 벽처럼 서 있다

 

나는 벽 때문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비가 쏟아지는 쪽으로도 갈 수 없다

 

시나브로 신발이 젖고 양말이 젖고 발가락이 젖는다

발목이 젖고 정강이가 젖고 무릎이 젖는다

번개가 번쩍 천둥이 우루루쿵

번개는 어느 쪽으로 사선을 그었을까

 

장대비가 소란하게 바닥을 쑤시다 물길을 만든다

가느다란 고랑이다

그 길로 케케묵은 먼지들이 황톳물로 흘러간다

처마와 멀어지는 저 빗물

어느 골을 기웃거리다 어떤 흐름이 되는 것일까

혓바닥이 긴 바람이 바다로 흠뻑 기울어간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곳에서 나는 그만 비와 함께

바람 쪽으로 기울어진다 

김설희/ 상주숲문학회 회원.

 

 

감자를 먹으며

김소영

 

 

감자 한 알 먹으며

시원을 먹는다

태초의 첫 숨결

문명의 꽃을 피운 산맥의 기운

기근에 굶주려 허기진 배고픔

곡기 대신에 불평등을 채워야 했던 아픔을 먹으며

45억년 지구의 나이를 먹는다

 

감자 한 알 먹으며

우주를 먹는다

농부의 거친 손에 밴 땀

알이 싹트고 굵어지기까지 보듬어준 흙

시시때때로 이야기 들려준 벌레소리까지

먼지 한 톨 덜지 않은 우주를 통째로 먹는다

 

감자 한 입 베어 먹으며

시공을 넘어선 존재의 어머니,

그 맑은 젓을 먹는다

 

 

김소영/ 상주들문학회 회원. peacenow@hanmail.net

 

 

상사화

김수화

 

봄몰이하던

꽃샘바람도 이겨내고

남 먼저 달려와

댓잎 닮은 잎

꿈결처럼 밀어 올려

마당에 초록물 번지게 하더니

벌써 몇 년째

꽃대가 올라오질 않는다

조급한 마음은 기다리지 못하고

상사화 잎 타들어간 자리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거기, 웅크리고 있는

상사화의 둥그스름한 우주

집착을 끊어버린 듯

사진첩 속의 정지된 시간처럼

메울길 없는

공백의 거리

깊디깊은 어둠이 눈부시다

 

 

 

김수화/ 2003년《자유문학》신인상, 시집『햇살에 갇히다』,제3회 경상북도 여성문학상 수상, 경북여성문학회 부회장.

 

 

Waves and an Island (파도와 섬)

김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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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the mountains of waves hit

The craggy back of the island's head,

"Sharp and stiff and proud you are,

Tomorrow, you'll be broken. "

 

"We know you're an orphan

Helpless before our attack;

Go on, fight back, if you can,

By tomorrow, we'll smash you. "

 

" Thanks for the blows. They keep me awake.

I'd rather take death than sleep.

Now, I hear the sun's whirling step,

Through night, through sea, into morning. "

 

 

파도와 섬

 

 

산더미 같이 큰 파도가

섬의 바위 뒤통수를 들이 치며 말한다

"오늘은 꽤 날선 단단함에 자존심까지...

허지만 내일, 넌 파멸이야..." 

 

"우리의 공격 앞에 꼼짝 못하는

 너는 천애의 고아란 걸 우린 알아.

그래, 힘이 있으면 덤벼 보라.

 내일엔 아주 박살을 내 줄테니까"

 

"힘찬 공격 고마워. 나를 깨어있게 해 주어서...

잠들기 보단 차라리 죽음 택하리니...

 아, 이제야 들린다. 밤을 뚫고, 바다를 뚫고

아침을 날라오는 저 태양의 발소리를."

 

김연복/ 경북 상주 출생, 창작 영시집『Lost Landscape(잃어버린 풍경)』외 6권, 한국문인협회 외국문학번역분과회장 역임, 미국 월트 휘트먼 시협상(1986년), 월간문학 동리상(2004년) 등 다수.

 

 

벽                                                   

김연자

 

 

공사장 겨울 모퉁이

오후 네 시 반에 묶여 있는 개 한 마리

진종일 허공을 입에 물고 흔든다

팽팽하게 숨통을 죄는 목줄 

단단히 박힌 실밥들은 터지지 않고

붉게 타오르는 눈빛만

눈꼬리 너머로 흘러내리고 있다

 

기를 쓰며 밀어보는 앞다리에

기를 쓰며 맞서는 언 땅바닥이 완강하다

발톱이 빠지도록 버티는

노가다 하루하루의 신음은

찌그러진 노숙의 양푼 속에서

기약 없는 날품팔이 속에서

희나리 같이 뼈속이 비어 가는데

 

수업이 허공에 발자국을 찍어도

수렁 같이 빨려드는 현실의 유리벽

미련한 발톱들만 가난에 촘촘 박히고

개의 외로움은 늘 그 자리

벽은 종일 개를 밀어내고만 있다

 

 

대물림 가난이 내리내리 아우성쳐도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는

저 완고한 신자유주의 자본의 벽 앞에서

개가 시들어간다

 

 

건축주도 야반도주 해버린 공사장에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겨울과

뼈마디 앙상한 부실 건물이

원근법으로 개의 눈을 꿰뚫고 있다

 

 

 

김연자/ 전남 장성 출생, 1998년 계간《시대문학》등단, 시집『막막한 어둠을 버티는 일』『흑백영화 이야기』kyj-si@hanmail.net

 

 

너하나 나하나

김영수

 

너의 변명은 아직 힘이 좋은지?

전구는 아직 밉지 않지?

응 여긴 기둥들이 간신히 제 길이를 유지해

왜 그날 2시에 불타야해?

노망한 할머니에게 설명도 할 수 없게

응 소방업자들도 다양성 재고 차원에 포함이 된데

새털구름은 누가 펼쳐주기나 하니?

그것이 가치로서 기록되기 전까지

그럭저럭 사건들은 시류를 잘도 비켜나가지?

잔챙이들이 아닌 척, 그러나 상상을 넘어

응 거짓말은 예전부터 두 부류랬어

기억이 참말을 만들어 가져온다고?

과거에 말했어야하고 현재에 외면당하는 것

같이 걷던 누구에게도, 산책로로도 퍼져야 된다고?

응 그래야 행복은 어디에도 있다고 톤이 올라가지

우리의 긴 대화는 무엇을 부축할까?

가녀린 식물줄기나 오토바이 굉음을?

담쟁이들은 기어오르고 비밀은 자살하지 않지

자존심마저 보여 껍질엔 힘줄이서고,

소문은 신비롭기까지 해

생전처음 하얀색 과 보라색의 도라지꽃이 보여

그 앞에 너를 앉히고 나는 돌아오고 싶어

내 것이 된 너의 무엇이 쓰는 나의 일기

갈색 노끈에 묶여있는 가보지 않은 들판

 

 

 

김영수/ 2004년 <진주신문>가을문예 시부문 당선, 2005년 일연문학상 신인상, 구미 문인협회 회장 역임. marbu-kim@hanmail.net

 

변방은 여전히 평안하다

-황령산 봉수대에서

김요아킴

 

먼 옛적, 나라의 화급한 일이 생기면

맨 먼저 목멱산으로 제 목소리 피워 올리던

산봉우리 굴뚝 위로

멧비둘기 한 쌍, 느릿느릿

세월을 부리고 앉아 있다

 

콕콕, 찍어먹어야 할 시대의 아픔들은

저 멀리서 속속 불땀으로

하나 둘 번져 오르려 하는데

귀를 막은 그 날갯죽지 사이로

미동 없는 그림자만 유난히 짙다

 

다섯 화구엔 급한 마음으로

불을 댕겨야 할 마른 장작 대신

차가운 빗돌들이

체념한 듯 바람을 퉁기고

 

도별장과 봉군(烽軍)들은

어깨를 견주는 부산포와 해운포의

수려한 눈요기만을 남겨둔 채, 이미

유물 표지판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위급한지 모르는 변방을

그저 공중파 첨탑 세 개만이

자본의 높이만큼 뾰족 솟아

화려한 손짓으로

눈먼 백성들과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을 뿐

 

멧비둘기 한 쌍, 여전히

세상이 평안한지

봉수대를 온몸으로 점령하고 있다

 

 

김요아킴/ 1969년 경남 마산 출생. 2003년 계간《시의나라》, 2010년 계간《문학청춘》등단. 시집『왼손잡이 투수』,『행복한 목욕탕』외 다수. 한국작가회의 회원. 부산 경원고 교사.

 

녹색전투

김원희

 

 

햇살 작열하는 8월 한여름

담쟁이 넝쿨

온 힘을 다해 生을 일구고 있다

 

이른 봄 연두의 아기 새순이

진녹색 전투복으로 무장해서

수직으로 돌격중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냉정함

푸른 포식자가 되어

담장의 팔할을 점령했다

 

 

김원희/ 1998년 계간《불교문예》'희곡'부문 신인상, 2012년 계간《창작 21》'시' 부문 신인상.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 창작 21 작가회 회원.

 

늙은 오후

김위숙

 

칠 벗겨진 외벽은

광대뼈 드러나도록 문드러지는 우주다

외벽 앞 빨랫줄에

호박오가리 말라가고

책꽂이 한구석 빛바랜 오후가

길게 늘어진 가을 위로

바쁘게 매달린다

점박이날개나비

묵언처럼 말아쥐고

저 산을 건너왔을 늘어진 빛이여

말라죽은 딱정벌레

입에 착착 감기는 감칠맛에 홀린 걸까

늘어졌던 몸통

칭칭 걸어 말린

저 문드러지도록 깃들었던

간절함도

우주의 그늘처럼 깊어진다

 

김위숙/ 경북 경산 출생. 1999년 계간《불교문예》신인상 수상, 2002년 계간《현대시》로 등단, 계간《낯선시》편집위원, 시집『내 남편 김의부씨의 인생궤적』.kyungyun45@hanmail.net

 

와중에

김은령

 

 

그날 우리는

도다리쑥국을 먹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세월호의 침몰이 있었고

우왕좌왕, 열흘이나 흘려보내는 동안

가여운 나라의 가여운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 되어갔다

우리는 도다리쑥국 집에 모여 도다리쑥국을 먹으며

피지도 못하고 꺾인 꽃다운, 꽃 같은

꽃이었던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주검과 주검뿐인,

삶도 죽음인 진도 앞바다와 팽목항의 실체에 대해

무능이다, 음모일거다 말들을 섞다가

무능이 음모로 잘못 읽히는지

음모가 무능으로 포장되었는지

헷갈리게 하는 ‘그네’들에 대해서 분노하며

이제는 다 까발려져야 한다고 너도 나도 떠들었다

와중에,

누군가 ‘이집 도다리쑥국 끝내준다.’ 고 했다

도다리쑥국은 통영음식이라고

목포에 가면 홍어애국이 끝내준다고

해장국으로 정말 끝내주는 것들이라고……

봄날, 꽃잎처럼 흩어진 목숨들의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게 술국이야기로 넘어갔다

 

진달래가 붉은 4월인데,

그 봄날인데

술보다 더 독한 것에 취한 우리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끝내 주는 쪽으로 넘어와서

박정희 일가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박힌

참 희한한 달력이 걸려 있는 도다리쑥국 집에서

어쩌면 진도 앞바다에서 잡혀 왔을지도 모르는

도다리, 흰 살을 발라가며 도다리쑥국을 먹었다

 

 

 

김은령/ 경북 고령 출생, 1998년 계간《불교문예》등단, 시집『통조림』,『차경』. 제6회 백신애문학상 창작기금 수상.

er803@hanmail.net

 

 

뿌리

김이숙

 

 

어둠 속 또 하나 태양을 향해

잘리지 않은 꿈이 뻗어나간다

 

은자골 가는 길

줄남생이 따르듯 서 있는 은행나무

저마다 옹이구멍 여럿

상처로 달고 있다

 

변덕스런 바람에

도리 없이 휘청거려도

버릴 수 없는 간절한 꿈

   

매몰차게 팔이 잘리고

지상의 몸에 상처 늘어갈수록

소리 없는 절규는

아래로 아래로 깊어진다

악착스럽게 흙덩이 움켜쥐고 몸 비튼다

 

포기할 수 없다는 듯

죽어도 쓰러지지 않겠다는 듯

 

어둠마저도 삼켜버리고 뻗어나간다

 

 

 

김이숙/ 경북 상주 출생. 시동인 <느티나무시>로 작품활동.

hosoo71@hanmail.net

 

숲속의 진언

김인구

 

 

어느새 숲이 넓어졌어요

살금살금 숲속으로 기어들어 온 시월이

건초더미처럼 야위고 있어요

낮은 나무 위로, 높은 나무 아래로 웅크리고 앉아

산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는 시월

타닥타닥 불타오르는 숲 속으로 천천히

가을이 태어나고 있어요

아시나요?

숲 속 나무들은 하지 이후로는 자기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대요

그냥 그대로 마르고 말라 나무를 떠나간대요

숲속의 법칙엔 아무도 반기를 들지 못하는 법

숲속에선 꽃보다 아름다운 뿌리의 힘으로

좌절조차 금지되는 것을 아시나요?

숲이 깊어졌어요

슬그머니 숲 속으로 기어들어 온 어둠 안에

동그랗게 눈 뜬 시월

가을이, 숲속에서 자신의 또 다른 생애에

화들짝 놀라고 있어요

김인구/ 전북 남원 출생, 시집『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신림동 연가』『아름다운 비밀』『굿바이, 자화상』등

 

마늘 밭에서

김재수

 

흙 묻은 손으로

뚫어 가는 마늘 밭

비닐 구멍 사이로

 

고개를 내민

마늘 싹들이

 

고마워요

땀을 씻으며 인사를 한다.

곡식이란

저절로 자라는 게 아니란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크는 거란다.

 

아버지

 

 

내일 또 오마

 

 

마늘 싹들이 모두

파란 인사를 하고 있다.

 

김재수/ 동시집『낙서가 있는 골목』『겨울 일기장』『농부와 풀꽃』, 동화집『사랑이 꽃피는 언덕』『하느님의 나들이』, 산문집『트임과 터짐』등, 상주아동문학회장.

 

 

녹두꽃, 저 녹두꽃

김재순

 

 

층층 다랑논 벼포기들 검푸르다

구불구불 논둑따라 녹두꽃 자욱하다 

 

저기 저 녹두꽃

그 멀리서 그 넓은 배들 들판에서

이 골짝 다랑논까지 뭐 하러 왔나

저기 저 다랑논

열세 살에 이국의 정글까지 끌려갔던 김씨할매

깨어진 몸과 마음 얼기설기 동여매고 돌아왔지만

윗 것들 대신해서 반 죽어 돌아왔지만

손을 잡는 사람보다 소금 뿌리는 사람들 천지에서

김씨할매, 정글의 지옥에서도 살아왔는데

내 나라 내 고향에서 어찌 못 살까

겉보리 한 되박에 종일 호롱기를 밟았고

장리송아지 새끼를 낳고 낳아

저 다랑논 되었다네

천수답 저 다랑논 비 안 오면 어쩔꼬

산비탈 저 다랑논 물은 어찌 댈꼬

산 아래 저수지 물을 이고가다 지고가다

그렇게 몇 가마니 벼를 거두면

이고지고 날랐던 저수지물 값도 그 만큼 쌓여

할머니 목숨줄은 풀뿌리 나무껍질 따라서 이어졌다네

 

그 넓은 배들 평야에 들불을 질렀던 녹두꽃

아직도 타고 있는 그 빛은 이 골짝까지 뻗쳐

쓰러진 할머니 일으키고

불길처럼 물길을 끌고 와서

할머니 흔전만전 벼논에 물을 대어

다랑논 벼포기들 저리 검푸르고

그걸 또 지키느라 논둑마다

저리 자욱하다네

녹두꽃.

 

 

김재순/ 경북 상주 출생, 상주작가 회원,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은척 동학교당

김정희

 

 

녹두서린 

고을 저편

은자에

앉은 초가

인내천 배움 담고

낫과 괭이

동고동락

미물도

아 선천회복

성주봉이 지키리

 

궁궁을을

시천주라

후천멸굴 고집하리

보국안민

포덕천하

광제창생 하였구나

성경신 지키고 나면

후일창창 하리라.

 

김정희/ 상주작가 회원. 상주시 청리면 119센터장.

 

재앙을 잉태하는 자들

- 헛된 것을 믿고 거짓을 이야기하며 (이사 59,4)

김종인

 

 

 

가을도 가기 전에,

비 오다가 눈이 온다.

 

온갖 불법과 부정과 거짓의 시대

드러난 진리를 거짓으로 숨기고,

증거와 함께 드러나는 부정을

안보라는 이름으로 대낮에,

은폐하려고 하려는 세상.

 

진실을 조작하고 은폐하기 위해서

소신 있게 일했던 동료들을 쫓아내고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재갈을 물리니

정의는 어디로 갔으며

진실은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파견 근무와 비정규직을 통해서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고

합법적인 권리를 외치는데도

불법으로 매도하고 법외노조로 만드니,

정의로써 소송을 제기하는 이가 없고

진실로써 재판하는 판관(判官)이 없고

헛된 것을 믿고 거짓을 이야기하며

재앙을 잉태(孕胎)하여 악을 낳는 자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하여 밝혀내고

악을 낳은 자들을 처벌하라!

날조(捏造)와 억지, 소름끼치는 웃음

누군가, 거짓으로 덮으려고 하는데,

 

겨울도 오기 전에

눈 오다가, 비가 온다.

 

 

김종인/ 1954년 경북 금릉 출생, 1983년《세계의 문학》등단.

시집『흉어기의 꿈』,『별』,『나무들의 사랑』,『내 마음의 수평선』등. 《분단시대》동인, 한국작가회의 회원.

 

 

목공소이야기

김주애

 

 

사람 손으로 하는 것이 똑같은 것이 있나

나뭇결 따라 순리대로 켜야지

 

골목 안에 자리 잡은 목공소

언제부터인가 대패 켜는 소리 죽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던 목공술

문짝에는 구멍이 숭숭

나무를 먹고사는 버러지만 산다

 

평생 기술 하나면 밥 빌어먹을 일 없다더니

세상은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정직하게 살아온 나무가 거짓말을 한다

 

길 건너 우레 같은 소리로

나무를 켜는 가구공장

정답은 모두 그곳에 있었다

 

뿌옇게 톱밥이 들러붙은 창 너머

켜다 만 목수의 삶이 방치된 채

멈춰 있다

 

틀에 박힌 문짝이 즐비한 거리

누구하나 눈여겨보는 이가 없다

 

 

김주애/ 경북 상주 출생, 시동인<느티나무시>로 작품활동.

 

 

엿장수

김진문

 

 

세상의 모든 총알

세상의 모든 대포알

세상의 모든 미사일

 

세상의 모든 총칼

세상의 모든 탱크들

세상의 모든 나쁜 쇠붙이

 

엿 바꿔 먹자.

엿 바꿔 먹자.

 

엿장수야 나오너라!

엿장수야 나오너라!

 

고물 실은 리어카 끌면서

짤깍짤깍 철컥철컥 철거덕

 

쇠가위 들고 나오너라!

짤깍짤깍 철컥철컥 철거덕

 

엿장수야 나오너라!

엿장수야 나오너라!

 

세상의 모든 나쁜 쇠붙이

엿 바꿔 먹자.

 

 *엿장수: 지금은 엿장수가 사라진지 오래 되었지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시골에는 리어카 끌고 고물을 모으는 엿장수가 있었다. 시골 아이들은 집안의 소주, 쇠붙이 따위로 엿을 바꿔 먹었다.

 

 

김진문/ 경북 울진 대끝머리 언덕, 바다가 보이는 죽변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며 주로 자연과 농어촌아이들 삶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다. 한국작가회의회원, 경북아동문학회원, 울진문학회장

 

해제(解除)

김차순

 

 

내가 손수건였음 좋겠다던

그대 이름을 부르고 부르고

허공 한 복판에 부르다

내제율이 된 눈물샘만 터지는

사랑의 비문

엇갈리지 않았음 좋겠어

란 약속 구겨진 기억은

명치끝에 매달린 집

묵묵히 흐르는 시간의 배후에

찬바람 긴 하품 토해내듯

켜켜이 쌓인 낙엽 헤집고

그리움 비문이 된 새싹

 

김차순/ 한국문인협회 회원, 동화구연가, 시낭송가, 상주시낭송회 회장.

 

마당에서

김춘자

 

석에 널어놓은 들깨

허리 아파 다리 아파

깨알같은 글귀들

고개 아무리 숙여도

다 읽어내지 못하는

어머니의 시

 

 

 

 

 

 

 

 

 

 

 

 

 

 

 

 

 

 

김춘자: 느티나무 동인

 

 

 

.

cjk1651@hanmail.net

 

 

제세안민(濟世安民)

김현만 

 

 

둥둥둥...장엄한 북소리

1894년 4월 7일 황토현 골짜기 마다 들려오는

민초들에 성난 아우성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남았다

백여년이 흐른 이 시대는 또 어떠한가

 

날새고 나면 민초에 피를 빠는 흡혈기가 세상 천지 가득하지 않는가

이름하여 관피아 해피아 검피아 금피아

수없이 많은 피아들에 천국 대한민국이 골마 썩고 있지 않는가

 

실패한 경제에 백성은 거리로 내몰리고

자고 나면 한강에 투신한 사업가 들이 그 얼마 이던가

 

힘없고 빽없는 민초에 새끼들만 최전방 개가 되어 밤낮 없이

저리 개고생하고 도는데

있는자 가진자에 새끼들은 다 어디 갔는가

 

나라 경제를 파탄낸 자들에 새끼들은 도피성 유학이라는 미명으로

외국으로 가서는 시민권 받으면 이나라에 의무는 헌신짝 버리듯 팽게치고

애비들은 자랑 삼아 늘어 놓는 이야기 나라가 불안 해서 울애들 안들어 온데

 

이땅에  민초에 정의로운 삶은 정영 실현 가능한 일이까

120년전 짓눌린 민초에 함성이 이땅에 제현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는데

관리자에 도덕성이 절실하게 필요할때 동학에 정신이 오늘을 사는 우리를 저리 애타게 부르고 있지않는가

 

濟世安民  ( 제세안민 )   ...(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 하게한다.  )

補國安民 ...(보국안민 )   ...(  탐관 오리의 부패와 외세의 침약을 지킨다.  )

동학정신이여 이땅에 재림하라

 

 

 

김현만/ 시인, 인천 광역시 남구 주안동 거주.

 

 

그리움 세어보고

김희수

 

어디서 밀려오나 네 모습이

아무 말도 못하는 내게

너는 말을 시킨다

네가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나 그냥 네 곁에 서 있는데

그대 자꾸 아름답다하네요

넌 언제 내 그리움이 되어

텅빈 내 영혼을 흔드니

 

저 푸른 밤나무 아람이 되어

그 알싸한 그리움으로

깊어가는 그믐 뜨락에 서서

반짝이는 저 하늘의 별을

헤어보고 헤어보고

 

김희수/ 상주숲문학회 회원, 시집『행복이 춤추는 뜨락에 서서』.

 

종로기생

나병서

 

종로 비싼 땅 넓은 공원

세워진 돌판 속에

어린 기생이 삽니다

 

일본순사 말꼬리에 머리채 매어진 채

땅 위에 구푸러져 삽니다

 

열여덟 꽃나이 다 빨려

피기도 전에 말라버린 여윈 몸으로

 

짐승꼬리에 묶인 머리채 벗겨진 버선짝으로

아프게 삽니다

 

아무 것도 받은 것 없는 조선땅에서

손가락질 손가락질 어린 가슴에 멍자국 가지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만세를 불렀습니다

 

조선이 광복된 이유입니다

 

조선을 해방시킨 열여덟 어린 기생이

공원 돌판 속에 피흘리고 삽니다

 

나병서/ 1960년생, 노동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거주.

nabyungseo@naver.com

 

어머니는 노래를 부른다

남수현

 

평생을 들판에서 보낸 어머니는 노래를 배울 기회가 별로 없으셨다. 한번은 먼 전라도까지 가는 잔치 버스에서 어머니가 노래를 두어 곡 부른 후 동네에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밭에서 잡초를 뽑다가도 유행가를 크게 튼 계란차가 지나가면 일손을 잠시 멈추고 그 차가 멀어질 때까지 호미로 장단을 맞추며 몇 번 흥얼거린 것밖에 없다고 하시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최근엔 문경 5일장, 도라지를 까서 제법 짭짤한 액수의 돈을 만지신다. 5일장마다 온다는 안동아주머니는 최신 유행가까지 다 꿰고 있어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좌판 옆 또 그 옆의 이웃들 모아놓고 박자를 짚어가며 즉석에서 노래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는데 어머니는 음정도 박자도 두어 번 만에 곧잘 익힌다고 칭찬을 했다는 것이다. 객지생활을 하는 두 여동생이 지난해 여름휴가를 고향에서 보낼 무렵 싱크대에 빨래집게로 꾹 집어놓은 찢긴 누런 종이상자에 삐뚤삐뚤한 필체로 쓰인 긴 내용의 글을 보고 '엄마가 詩도 쓸 줄 아시나 봐'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고 한다. 그 詩는 바로 안동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 가르쳐 준 '꼰니피 떠러진다고 향기가 업써지나요..'라고 시작되는 유행가 가사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남수현/ 경북 상주시 거동동 거주.

coblue2002@hanmail.net

 

 

쓰나미가 오는 밤

남태식

 

 

삼십 년 전 울진, 핵비가 내리면 어쩌나,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작은 무덤들과 아직 짓지 않은 큰 무덤들 사이에서 다 죽어 서성이던 그날 밤,

 

나는 보았다.

 

벌떡 일어선 파도가 성큼성큼 먼 바다에서 가까운 바다로 쏜살같이 달려와 작은 포구와 낮은 집들을 굶주린 짐승처럼 순식간에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것을,

 

뒤집혀 흰 눈자위 드러내며 언덕을 기어오른 짐승의 거친 이빨에 깊숙이 물어뜯긴 아직 짓지 않은 큰 무덤들의 벌려진 지붕 사이로 솟구치던 핵비를,

 

죽어 작은 무덤들에 누웠다가 놀라 일어나 쏟아지는 핵비를 폭풍으로 맞고 핵파도에 휩쓸려 넘실넘실 물위를 퉁퉁 불어 떠다니는 돌아갈 기약 없는 얼굴들을,

 

그 때 이미 내게 온 바로 삼십 년 후 엊그제의 후쿠시마를.

 

하나, 어찌 알았으랴.

 

그날 밤 물어뜯긴 이빨 자국을 숨기며, 그 언덕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던 내가 그 후쿠시마를 정말 만나 쓰나미보다 더 크게 눈자위를 뒤집으며 또 죽게 될지를.

 

남태식/ 2003년《리토피아》등단, 시집『속살 드러낸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내 슬픈 전설의 그 뱀』,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tsnbd@hanmail.net

 

 

범벅

노정희

 

 

호박범벅에는 말이야

다른 식구도 버무려야 하거든

막차를 타고 오다 생긴 물집은

팍팍 삶아서 껍질 벗거야 해

 

찹쌀에 울콩에 팥도 넣어야 하는데

그 팥이라는 녀석이 늘 골치덩인게야

삶아도 삶아도 잘 무르지 않는

까탈스런 성격은

겉도는 내 성질을  닮은게야

 

콩도 팥도 제 색깔 주장하면

주인공인 호박은 얼룩이 들게야

각자 깨끗하게 목욕하고 둥근품에 안기면

사르르 빨려드는

애무

콩맛 팥맛, 혓속 구르다 한 몸 되는 것

 

범벅이라는 건바로 어울림인 게야

노란 속살에 찰싹 달라붙어야

비로소 찰진 범벅이 되는게지

노정희/ 시인, 수필가, 수필집『빨간수필』『어글이』, 계간《문장》편집위원, <매일신문>시민기자.

 

부러진 가지

동길산

 

 

 

부러진 가지에서 잎이 난다

부러진 가지를 쓰다듬고

부러진 가지에서 난 잎을 쓰다듬는다

나를 가지 앞에 세운 건

부러지지 않은 가지가 아니라

부러져서 끊어질 것 같은 가지

부러진 가지에서 난 잎이다

내 앞에 섰다 간 사람에게

나를 쓰다듬고 간 사람에게

나는 부러진 가지였을까

부러진 가지에서 난 잎이었을까

나를 쓰다듬던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이 가지 이 잎에서 나도 멀어질 것이다

내 앞에 섰던 사람이 아주 안 보일 때까지

내 몸에 난 가지를 내밀었던 것처럼

내 몸에 난 잎을 내밀었던 것처럼

이 가지 이 잎도

내가 아주 안 보일 때까지

부러진 가지를 내밀고

부러진 가지에서 난 잎을 내밀 것이다

잡아당기면 끊어질 것 같은 가지와

잡아당기면 끊어질 것 같은 사람이

등을 돌리지도 못하고

안 돌리지도 못하고

초저녁 석양에 물든다

초저녁 석양에 멍든다

 

동길산/ 1989년 무크지《지평》으로 등단. 시집『뻐꾸기 트럭』『무화과 한 그루』, 산문집『시가 있는 등대 이야기』,『우두커니』(2013년 문체부 우수교양도서)’ 등.

 

잡초

민병덕

 

떼거리 소나기가

다짜고짜

내리

팍!

팍!

 

잡초들 잡년답게

죽든 살든

받고

받는 …

 

인하여

종말론 묻으며

청~ 청~

세월 흐른다

 

 

민병덕/ 경북 상주 출생,《시조문학》추천, <매일신문>신춘문예 시조 당선, 《월간문학》신인상. 상주문인협회 회원.

 

 

개옻나무

박경조

 

날마다

창창한 초록으로만 빛날 생이라고

진짜 인 척 했네

버리고 떨구다 시나브로 점 하나로 멈춘

옹이 까지 다 드러낸 저 나뭇가지 보다

내려야 할 욕망 더 있는지

뒤돌아 봐야 할 길목이라고

가지산 11월이 종아리를 친다

 

연초록에서 초록으로

짙은 초록에서 붉음으로 이르는 길

온갖 색깔의 순환을 만류한 채

정점을 향해 오르기만 한 적 있었다

올라가다 보니

여기 이 동네에도 산 아래 저 마을에도

척, 척 하는 온갖 구호들로 시끌벅적하여도

저 혼자 적멸에 든 개 옻 단풍

 

‘참’ 으로 완성된 저 붉음이라면

‘개’ 자의 경계에도 참 으로 무성하리

 

박경조/ 경북 군위 출생, 2001년 계간《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현재《사람의 문학》편집위원. 시집『밥 한 봉지』.

 

 

세월 따라 왔더니

박규해

 

 

세월이 달려가기에

멋모르고 따라 왔더니

칠십을 넘어서고

비오는 날 눈 오는 날

수많은 나달을 달려 왔네

 

뒤돌아보면 소용없는 일

생각하면 아픔만 남아있고

살아갈 나날만 생각하며

작은 소망이라도 챙겨가며

웃음 웃고 즐거운 시간만이

하루의 행복인 것 같네

 

때로는 웃던 날 울던 날

기쁜 날도 많다지만

세월 흐름에 따라 가다 보니

칠십년이란 세월이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들 하네

 

이제는 하루하루 정리하며

남은여생 즐기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네

 

박규해/ 만주 신경 출생,《현대시조》등단, 시집『희망의 횃불』,한국문인협회 경북지회 회원. 현대시조 회원. 창작과 의식 동인. 만다라 문학 회원, 파라문예 회원.

 

처마  

박순덕

 

 

 

남산에 다녀오다 소나기 만났다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국지성 호우

아무리 찾아도 비 피할 만한 처마 하나 없다

요즘 집이란 네모지고 까칠하기만 해

한 점의 헛 공간도 허락치 않는다

 

밀이나 콩 말릴 멍석 놓여있거나

겨우내 소들 먹일 짚 쌓여있거나

호미나 삽 괭이가 걸려있거나

숨바꼭질 할 수 있는 처마

 

빗물 하나 고일 데 없고

마음 하나 스밀 데 없는 회색 빛 건물 아래

비바람 튕겨 나간다

 

비 그을데 없는 아파트 홀딱 비를 맞는다

 

 

 

박순덕/ 경북 상주 출생, 시동인<느티나무시>로 작품활동.

qkrtnsejr07@hanmail.net

 

 

안계들판

박승민

 

벼들이 해가 지는 쪽으로 일제히 눈을 맞춘다         

고개를 숙이고 숙여서 자신을 바닥의 눈금 쪽에다 눕힌다

수만 개의 삼베두건이 무한 경배로 일렁이는 시간

 

살아 있는 몸들은 다 자란 후에는 어디로 가는가

누군가를 베어 먹은 피 묻은 입조차 막판에는 또 어디로 가는가

 

지나온 몸의 시간을 묵주처럼 한 알씩 복기하는 자

혹은 최후를 수긍할 수 없어서 고개를 처든 자

기어코 자신을 옭아맨 결가부좌를 끝까지 풀지 않는 저 한 톨의 외로움까지!

 

벼들이 해가 뜨는 쪽으로 서서히 입을 맞춘다

고개를 숙이고 숙여서 마지막 뿌리에도 조금씩 물기를 뺀다

 

멀리서 전조등을 켠 콤바인이 어둠의 새벽을 꾹꾹 누르며 천천히 바퀴를 굴린다

 

박승민/ 경북 영주 출생, 2007년《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활동, 시집으로『지붕의 등뼈』가 있음. 대구경북작가회의 사무국

 

 

적국의 별

박은숙

 

여름밤 뒤란 돌담사이

별처럼 반짝이던 돌나물꽃

갈래머리 소녀가 젖은 눈으로

올려다본 하늘에 빛나던 돌나물꽃

 

돌나물 꽃별이 낮별로 반짝일 때

아이야, 유령의 도시에서

박쥐의 날갯짓을 읽으렴

빛나는 눈빛을 하고

허공으로 쏟아지는

별꽃을 가슴으로 담으렴

 

아이야, 돌나물 꽃별을

밤이 오도록 헤아려 보는

여기는 적국

 

나의 왼뺨을 후려쳤던

당신 큰손의 열기가

앳된 계집아이의 볼에서

타고 있었던

 

이제 내속에서 어지럽던

거룩하지 못한 당신의 오른손과

천둥소리에 놀란 일백 개의 눈과,

그날 교실 남쪽으로 뚫린 쥐구멍과

그 유령의 도시와도

이제는 안녕

 

오늘 내가 아침의 나라에서 

혜아려보는 돌나물 꽃별이

내 마음에 반짝이는

엄마별이란 걸 알겠네

 

박은숙/ 구미 거주,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나락의 노래

 - 우기리 들판에서 -

박은주

 

머루다래 먹으며 노래하던

동방의 푸른 새를 보았느냐

겨울 꽃 봄꽃 함께 피었다는 옛 마을에

잣나무 높은 가지 보았느냐

청명한 하늘 아래 광명은 어딜 가고

광활한 대지 위에 천리만리 흔들리던

동학의 횃불 보았느냐

사람이다 사람이다 울부짖는 소리 들었느냐

참다가 참다가 산불처럼 일어나던 그들을 보았느냐

초근목피 씹던 힘을 끌어당겨

피 토하며 일어나던 그들을 보았느냐

나락아 너는 보았느냐

이 땅을 지키려고 일어난 사람들을 보았느냐

참말로 보았느냐

일어나라 나락아 너도 일어나라

한 백년 뜨겁게 일어나라

출렁거려라 나락아 파도처럼 출렁거려라

어미아비 넋을 지고 들판을 흔들어라

참지 말고 한을 풀어라

천 년 만년 천 년 만년

밥이 되려고 일어서는 누런 고집아

눈부시게 일어서라

성주봉 푸른 기상처럼 힘차게 우뚝 서라

나락아, 나락아

 

]

박은주/ 1968년 대구출생,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대나무

박일아

 

 

자신을 단련시켜

홀로 꼿꼿이 서 있기 위해

마디를 만들고

 

세상이 자꾸 채우라는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대나무는 모진 바람이

댓잎을 흔들 적마다

고개를 가로 젓는다

 

속을 비우고 살아야

홀로 설 수 있기에

바람의 바람을 모른척한다

 

박일아/《사람의 문학》(2009년 여름호)등단,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pflow@hanmail.net

 

 

고추꼭지 따는 할머니

박정우

 

 

씨-잉

찬바람이 썰매를 타고 온다.

지붕으로

마당으로

성큼성큼 날아와

할머니 장갑 위에 앉는다.

 

한평생

애써 키운 자식들

다들 고향 등져 떠나가도

나만은 지킨다며

온종일 싹둑싹둑

바알간 햇살을 자른다.

 

설날 올

손주 녀석들 새뱃돈 주고

큰아들, 작은 아들 한 포대씩 싸준다며

흰목도리 질끈 감고

주름 깊은 손끝 비비며

고추꼭지를 딴다.

 

한겨울 고추 냄새

눈꽃으로 피어난다.

 

 

박정우/ 한국문인협회 상주지부장.

 

질경이

박해자

 

하수구 맨홀 사이에 근심스레 살고 있다

 

밟혀서 찢긴 흔적 비늘처럼 입고 앉아

 

가운 팔월 햇볕에 어깨 펼 날 묻고 있다

 

박해자/ 한국문인협회 회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 숲문학회 회장 역임.

 

그냥

송영미

 

 

자장면에 단무지 씹고 드는 마트

걱정없다 카드 한 장이면 만사 오케이

다음 달 결제일이야 오든지 말든지

카드 긁는 소리

장바구니 물건 담는 소리

너도 나도

주머니 두둑하길 바라지

달마도를 걸어두고

부르튼 손을 모으고

꿈꾸지만

그러나 하 ㅡ

정성도  가진 것도 없는 나는

눈물나게 맑은 가을 날

샛노란 은행이나 털어야겠다

 

송영미/ 경북 상주 출생. 상주들문학회 회원. sym6622@daum.net

 

오월과의 별리(別離)

신대원 

 

죽음의 문화 앞에서

떠나 갈 오월과 마주 앉아

술 한 잔 나누고 싶었지.

그렇듯이 추억처럼

기억 속에서나 상처투성이로 반짝일까봐

나 시방 오월을 부여잡고

까만 밤이 하얘지도록

통곡처럼

한 잔 술에 어깨 기대어

촛불 두렷이 밝혀두고서

도란도란 얘기 한 자락 나누고 싶었지.

생명의 문화가 올까

그대 닮은 생명의 문화가

언제나 다시 우리 앞에 설까

오월아, 그대 가버리고 나면

우린 또 어떤 모습으로

무뎌진 가슴 새파랗게 빛나도록

숫돌 질을 해야 하나

아, 빛나는 가슴끼리 또 얼마나

익숙하도록 슬픈 시간을

걸어가야 하나

 

신대원/ 경북 의성 출생. 상주들문학회 회원. 천주교 신부.

smariae@hanmail.net

 

 

풍장신성철

 

한 줌의 고요세상을 접었다

 

봉인이 열리고갇혔던 씨앗들이 화르르 쏟아진다

 

해와 달과 별들이 뿌리 내린 눈금 속에서순한 손이 잠을 깨운다.

 

햇살을 잡아바람이 새기는 경전들 이제 다시 맨 얼굴로찰랑이는 하늘이 되고싶다

 

한 줌의 침묵해그림자 길어진만큼 바레가는 침묵도 짙어진다

 

신성철/ 200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상, 2010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2011년《백교문학》우수상 수상, 2013년《지필문학》에 신인상 수상. sinnamsan@naver.com

 


감자를 깎으며

신순말

 

 

봄이면 잘 간수해 놓았는데도

움처럼 싹이 자라는 감자의 눈

땅에 묻히지 못해도 제 몸 쪼그라들며

자꾸자꾸 싹을 내보내는 눈

 

씨가 되지 못한 감자알, 그 눈은

번거롭고 해로운 독(毒)일 뿐이라고

썽둥썽둥 베어내고 옴팍옴팍 도려내어

조림으로나 상에 오르는데

 

우리들 한 끼 밥상처럼 서늘한

씨감자가 아닌 감자氏가 되더라도

수평이라는 세상의 많은 칼날 앞에

자꾸자꾸 싹을 키우는 눈

 

 

신순말/ 경북 상주 출생. 상주들문학회 회원,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시집『단단한 슬픔』. dolcong-i@hanmail.net

 

나무 5

- 회화나무

신재섭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내가.

회화나무 같은 사람이 되길 바라셨을 게다.

태연하고 어젓한 나무에

흰 꽃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면

묻혀 있던 여러 그리움이 일어 올라.

버드나무를 기르며 시내가 앞들을 감싸 흐르는 마을.

듬직한 회화나무 정자 아래 서면

정든이들과 같이 있는 듯 정겨워.

어머니는 저 세상에 가셨어도 내가

회화나무 같은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실 게다.

 

 

신재섭/ 상주작가 회원.

 

 

전포대 일기

- 구둘 84112417 동계

안병호 

 

 

Heat ALFA 000.

 

아름다운 이병을 쓰려다 내가 누군지 잊은 채 걸레 같은 아기가 됩니다. 먼저 발 담근 자가 광자狂者여야하기에 연령은 통제되고 몸은 수긍합니다. 가슴에 장약이 장전되고 폐쇄된 성대聲帶 뚜껑이 열리면 군가를 토해냅니다. 음률의 사거리는 155미리 포와 동일합니다.  

 

나는 겨울을 경험한 적 없는데 눈雪 속에서 미시적으로 투시됩니다. 관측병은 동공이 무수히 많고 정말이지 눈발은 야구공 크기로 우우 몰려듭니다.

 

각이 없어 죄송합니다.

 

내게 작대기 한 개만 더 주십시오. 그럼 내 흰 남근을 방열放熱하겠습니다.

 

 

Heat BRAVO 001.

 

추우웅성! 근무 중 이상 무!

 

초침; 시침보다 더 느리게 흐릅니다. 모나리자에 안경을 씌우고 머리칼을 박박 밀면 야간 동계冬季에 적응되겠습니까? 내무반에선 등단한 적 없는 말년 몇몇이 목 없는 기린과 코 없는 코끼리를 조각하고 있습니다. 어둠을 덮어쓴 올빼미 한 마리 화성이 궤도를 돌듯 연병장을 돕니다.

 

 

Heat CHARLIE 002.

 

병정놀이가 평등하다는 것은 진지陣地 밖의 일입니다. 나는 크리스마스이브부터 동화童話입니다. 그러니까 까라면 까는 호두까기 인형입니다. 비상벨과 비사격非射擊; 크리스마스를 축하했고 오 분 대기조 박 일병은 오 분 후부터 개처럼 얻어터졌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나는 성분이 실업계라 사각과 편각이 의지와 상관없이 맘대로 엉킵니다.

 

 

Heat DELTA 003.

 

빨간 피로 목도리를 짜는 꿈을 꿉니다. 밤마다 벙어리 소녀의 눈빛을 그리워하다 내 혀도 굳어집니다. 하나, 둘, 삼, 넷, 오, 어버버버… 공, 아홉, 칠, 팔, 여섯, 오, 어버버버…

 

어제는 45kg의 포탄을 둘러메고 오리가 되어 포반을 열 바퀴 돌았습니다. 오늘 낮엔 포신砲身에 매달려 있다 손가락마다 고드름이 열렸습니다. 어떻습니까? 내 손가락. 참, 황홀하지 않습니까?

 

 

Heat ECHO 004.

 

여기가 어딘지 계산이 불능입니다. 전초병은 눈꽃처럼 매혹적입니다. 눈 덮인 산꼭대기 고독한 깃발로 펄럭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결빙된 강가입니다. 계속 졸리는데 코피 냄새가 납니다. 본대는 500미터 하지만 아득한 이국異國이고 나는 뺨으로만 암호를 해독합니다.

 

고막이 천공된 귀가 난해한 문장을 흘립니다. 처녀막보다 더 얇은 고막이 공중에서 떠다닙니다.

 

배고파서 죄송합니다. 건빵을 숨기다 불붙은 장약처럼 뺨이 뜨거워졌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몰래 닭발을 뜯었습니다.

 

 

Heat FOXTROT 005.

 

밤마다 자키를 뜹니다. 코끼리보다 더 우람한 포를 허공에 띄우는 퍼포먼스; 내 양손의 악력은 20kg입니다. 포가 히죽히죽 웃으며 떠오릅니다. 코가 백금처럼 번득입니다. 손은 병정을 대견해 하는데 포신이 히죽거리며 가랑이를 벌립니다. 사각射角이 사각死角지대를 가리킵니다.

 

어머니가 면회를 왔습니다. 어머니 난 가혹하지 않습니다. 초코파이를 61kg이나 먹은 것 같습니다. 대대에선 그 일을 일지에 적어 캐비닛에 봉했다 합니다.  

 

 

Heat GOLF 006.

 

안녕하십니까. 나는 고문관顧問官입니다. 퍽 퍽 퍽 윽 윽 윽

 

 

Heat HOTEL 007.

 

둘 포! 둘 포! 삼, 넷, 둘, 하나, 여섯… 삼, 넷, 둘, 하나, 여섯… 가신架身의 거대한 발톱이 새처럼 푸드덕 납니다. 백색장약과 녹색장약 틈새서 방황할 때 바람이 귀와 코를 물어뜯습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색맹입니다.

 

눈동자가 남방南方일 때 물안개가 피어났습니다. 타자他者의 철모; 총알 속도로 뒤통수를 가격합니다. 밀봉된 별들이 눈앞까지 당도했습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식물로 퇴화합니다. 내가 알던 소녀는 부재이고 편지는 계절 변경선을 넘지 못합니다.

 

 

Heat INDA 008.

 

식물이 돼지와 분량이 같다는 거에 대해 간호장교는 신비해 합니다. 215 야전병원; 안전하거나 불안합니다. 하얀 가운을 볼 때마다 허기가 지는 건 조건반사입니다. 구둘의 동공들; 데굴데굴 구르고

 

나는 식물에서 장난감을 거쳐 병정까지 진화를 모색합니다. 봄은 오지 않았는데 마사토 작업을 하던 병사가 매몰됐습니다. 누군가가 짐승처럼 울부짖습니다.

 

이 상병은 애인에게 무전을 친 후, 장미와 프리지어와 성기性器에 대해 인형에게 전도傳道합니다.

 

 

Heat JULIET 009.

 

음어와 음어 사이를 떠다니며 절뚝입니다. 다리가 영혼을 질질 끕니다. 총번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군번이 정렬되지 않습니다. 수포처럼 균형을 맞춰 쓰러집니다. 포대경 반대편에서 포대경 안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여자가 군가를 편곡합니다.

 

아버지를 환경과 과장이라 했는데 분뇨수거반 반장이란 게 들통 났습니다. 내 작대기가 똥색으로 보입니다. 아, 아버지; 용서를 버려주십시오. 당신에게서 풍기는 냄새를 떠올리면 나는 잡식성이 됩니다.

 

 

Heat KILO 000.

 

선임하사님, 심장이 관측되지 않습니다. 측지반 윤 상병은 어쩌다 작대기가 지워지고 측량을 멈춘 것입니까? 알파에서 챠리의 구간까지 맨 낯 위에 거짓을 투하하고 있습니다.

 

암구호; ‘나야, 나’입니다.

 

OP에선 여전히 한파를 제어하지 못하고 전령의 문장은 뚝 뚝 부러집니다. 그러니까 군단TOT 때 허리가 부러진 병사의 제원은 계산될 수 없는 함수입니까? 나는 자키 봉으로 두 대 적게 맞았습니다. 대신 팔꿈치 포경이 산산이 부스러졌습니다. 근데 포 반장님, 둘 포는 견인포인데 나는 언제쯤 견인되는 것입니까?

 

 

 

 

안병호/ 경남 김해 출생. 2010년<불교신문>신춘문예로 등단.

dominiko8@hanmail.net

 

 

망초꽃밭

유재호 

 

상처가 깊은 날이면

밤하늘을 본다

그리움이 강물처럼 밀려드는 날이면

별을 본다

밤하늘엔 미리내의 별들

눈물이다

상처다

그리움이다 별들은

내 마음 골목 어귀 공터에도

미리내가 흐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흰 눈물자국

망초꽃이 흔들린다

저녁 어스름 어린 동생을

망초꽃밭에 묻고 돌아온 아버지

밤이 이슥하도록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하얀 눈물을 뿌리시던

그해 유월

 

유재호/ 경북 상주 출생. 1999년《시조문학》신인상, 상주들문학회 회원,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시집『붉은 발자국』

 

 

세월호(봉숭아 꽃)

윤경숙(윤진희)

 

봉숭아 씨앗을 땅속에 심었다

정성을 다 해서 조심 조심 심고는

폭신폭신 흙 이불로 덮어 주었다

 

며칠을 눈만 뜨면 화단으로 달려가

새싹이 나올까봐 살펴보는 게 일이었다

드디어 새싹이 안녕하며 말을 걸어오네

나 나왔어! 어찌나 예쁘던지

그리곤 상상해 본다

 

봉숭아꽃이 피면 백반과 찧어서

내 딸 손톱에다 곱게 물들여 줘야지

 

세월호 타고 봄 소풍 떠난 내 딸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봉숭아는 오늘도 자라고 있는데

내 딸은, 내 딸은, 내 딸은?

 

 

솎아내기

윤순열

 

사는 일

씨 뿌리는 대로 되는 일 없다

 

텃밭에 앉으면 참 많기도 하다

솎아내야 할 것들

시들고 못생기고 비틀어진 놈 앞에

가던 손이 멈춘다

생손 앓는 아이가 생각나서

 

흔들린 자리

상처 난 흙의 가슴에

바람이 일면

내 마음이 솎인다

 

윤순열/ 한국문인협회 회원, 문학세계 등단.

 

 

저 맷돌

윤임수

 

어쩌다 두부며 부침개며 찰떡으로

배고픈 날들 슬슬 달래 준 저 맷돌

 

우리 어머니 한숨과 응어리도

잘게 부수어 다독거려 준 저 맷돌

 

지금은 골동품 가게 한 구석에 들어앉아

거뭇거뭇 검버섯으로 늙어가지만

 

아랫돌에 잘 박아 놓은 중쇠처럼

중심 잘 잡고 살아라 말씀 건네는 저 맷돌

 

둘이든 셋이든 호흡 잘 맞는 맷돌질처럼

너희들 잘 어우러져라 눈빛 주시는 저 맷돌

 

 

윤임수/ 1998년 《실천문학》신인상 당선, 시집『상처의 집』. 한국작가회의 회원. yunis007@hanmail.net

 

 

꽃을 그리다

윤진숙

 

 

마음

꽃을 그린다.

 

손끝으로 느껴보는

님 그리워서

잎새를 그려본다

꽃도 피워본다.

 

유난히 길던

마음 끝자락

 

텃밭 일구어

가득한 꽃밭이다.

 

마음꽃

눈꽃

손꽃

그리움 꽃

 

윤진숙/ 상주숲문학회 회원.

 

 

사소한 기억

윤현순

 

 

딸아이가 사준 석류를

씨째 달게 씹어 삼키다가

어릴 적 살던 집

뒤란의 석류나무를 생각한다

 

몇 해의 겨울을 떨고

봄꽃을 던져

혼자서 굵어지던 나무

 

오래 익어

갈라진 손등 같은 열매를 보면서도

저편이 꽃이었던 시간을 잊고 있었다

 

덜 익은 석류처럼

참 많이 시고 떫었을 그때의 나를

석류를 먹다가

석류나무를 빌려서 기억하는

 

손바닥에 번진 끈적한 얼룩처럼

사소한 것들은 언제나

내 몸 깊숙이 스며 있다

 

 

윤현순/ 경북 상주 출생. 상주들문학회 회원. soon1500@hanmail.net

 

 

시장순대 국밥집

이미령

 

풍물시장 귀퉁이

장날이면 모처럼 나오시는 시골 할배들 아지트다

제각각 다른 의자 옆엔 장 본 물건들이 즐비하다

낫, 갈쿠리, 햇고추, 동태, 장화···

주인장, 국밥 두 그릇에 막걸리 두 잔만 주소

새댁, 순대 이천 원어치에 소주 반병만 주소

재촉하지 마라는 주인 할매 호통에 노인들 헛기침을 한다

굴티재 너머 사는 팔용 영감이 간암 말기라는구만

인평 김 이장네 그 필리핀 며느리가 기어이 집을 나갔대여

시장 선거가 내년 몇 월이여?

열 평 남짓 좁은 공간에 이야기꽃물 붉으레 번진다

스물아홉에 홀로 된 국밥집 할매

딸 셋 키워내느라 눈물 섞인 국밥을 얼마나 말아냈던가

허리는 점점 호미처럼 구부러져 가지만

서방 같은 국밥솥을 쉬이 떠나지 못한다

 

상주 장날

서녁 하늘 노을이 국밥으로 뚝뚝 떨어진다

 

이미령/ 경북 상주 출생,《상주문학》으로 등단. 상주문협 회원.

 

송아지

이상훈

 

 

송아지 한 마리

너른 들판을 펄쩍펄쩍 뛴다.

풀을 뜯다

다시 뛰는 품이

먹는 것엔 뒷전이다.

놀 줄 아는 세상에는

놀 줄 아는 송아지가 어울린다.

오랜만에 만난 귀한 세상이

좋아 입을 귀에다 걸고

몇 바퀴를 돌았는지 어지럽다.

잠시 앉아서

올려다 본 하늘

여유로운 구름이

자꾸만 낯익어

언제 만났던가

갸웃갸웃 반추한다.

아, 그래.

부드럽게 씹히는

향기로운 풀.

 

이상훈/ 경북 문경 출생. 상주들문학회 회원,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시집『나팔꽃그림자』hunahuna7185@hanmail.net

 

 

오갈미댁

이순영

 

 

할매는

사랑방 횃대에 여름을 하얗게 걸어두고

사그락사그락 친정을 간다

모시치마적삼 가슬가슬 풀 먹어 부풀고

코고무신은 덩달아 광이 난다

 

참빗질 단아하게 쪽을 지고

단정한 콧날에 눈매도 반듯하다

희수의 물꼬 틀고도 한 마리 학인 양

시오리 방둑길을 서리서리 돌아

열내살에 여윈 아버지 제사에 간다

 

애절하다

늦여름 매미소리 사열 받으며

양 어깻죽지 날개를 단 듯

오갈미 간다

늙은 친정을 간다

 

이순영/ 경북 상주 출생. 시동인 <느티나무시>로 작품활동.

 

 

두고 온 여자

이승진

 

 

지리산을 오르면서

두고 온 한 여자를 생각했네.

 

지리산 언저리에 쓰러져

영화 ‘별들의 고향’을 생각했네

‘오랜만에 같이 누워본다’는

그 대사를 외우며 지리산이 먼저 울고 있었네.

함께 눕고 싶던

뭇별의 꿈이 서러운 꽃으로 누워 있었네.

 

비안개로 젖어있던 그 여자

나보다 더 많이 아팠고 더 많이 울었던 여자

지리산을 오르면서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가는 오랜 길을 생각했네.

 

지리산을 두고 오며

지리산이 한 여자라는 생각을 했네.

한 여자가 지리산이라는 생각을 했네.

 

 

이승진/ 상주문인협회 회원. 시집『사랑 박물관』

 

 

아이의 동굴 1

이원준

 

동굴로 들어간 아이가 역시 강에서 시체로 발견됐지만 아무도 놀라지는 않았다 깃털이 모두 뽑히고 심장을 감싸 쥔 채 모래펄에 걸려있는 아이 구경나온 사람들 간격에는 아까시 꽃잎이 어지럽게 날린다 심장이 아직도 꿈틀대며 피를 내보였는데 눈길들은 예상대로 사타구니가 잘려나간 사실에 더 관심을 두었다 어둠이 와도 수습하지 않아 눅눅한 가마니만 밤새 달빛에 마른다 천천히 동굴은 또 습관으로 폐쇄되어 한 달 정도 지탱해줄 적당한 크기의 푯말이 몇 번 망치질에 세워진다 서성이는 자식의 팔목을 찾는 어머니들 머리 위로 소금 같은 꽃잎이 계속 흩날렸다 마을 큰 어른이 베푼 잔치에 불려간 아버지들은 아침이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강줄기 따라 물새가 날며 긴 울음을 남기는 동안 4月처럼 떠는 아이는 동굴에도 사람이 산다고 남은 몸으로 중얼거린다 허전한 샅의 기억을 어루만지며 흐르는 강물에 서서히 풀어지는 증언은 바람결 따라 떠돌 준비를 하고 저기서 벌써 동굴을 향해 다음 아이가 자분자분 걸어오고 있다

 

 

이원준/ 1991년《현대시세계》로 등단, 소설가. 저서『행복한 씨앗』『흔들림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권정생』 『김오랑』『노먼 베순』 『넬슨 만델라』 『정약용의 편지』 외.

 

대 떠난 빈자리에

이위발

 

바람이 불었다

그대가 초승달처럼 절정을 향해 치달릴 때

하늘은 그을린 솥단지 바닥처럼 시커멓고

구름장은 한군데도 틈새가 없었다

사납게 일렁이는 나뭇잎들의 물결에

손금 같은 산봉우리들이 비에

파랗게 질린 채 서 있었다

봄날 벌레처럼 의식은 벅찬 감흥으로 차올라

목련나무 잎들은 하나의 욕망이고

기도이고 눈물이고 회한이었다

그대와 마주치는 신비한 순간

나뭇잎들도 물보라 되어

몰려오고 솟구치고 날아다녔다

눈물 보다 더 비극적인 그대의 미소

어떻게 내 심장이 비둘기의 둥지일 수 있으며

어떻게 우리들의 편지들이 구구거리며

날갯짓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안개는 엉긴 우유처럼

짙어지고 있는데

 

이위발/ 1959년 경북 영양 출생.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3년《현대시학》등단. 시집『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산문집『된장 담그는 시인』출간. 현재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상실 

이창한

 

만과 독선의 위세가

자리를 떡하니 잡고 있다

이대로는 안된다

안간힘을 쓰지만

닿는곳은 허공일뿐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한계에 다달아

낮은자들의 존재감

소외되는 무리안에

나도 끼어 있다

 

타자의 고통에

무책임한 것들

그 속에 나는

깨달은 사람처럼

눈 질끈 감고

하늘의 뜻이라고

이창한/ 상주시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2009), 영강 지상백일장 시부문 당선 (2010), 월간 문예사조신인상 시 당선 (2010), 월간 문예사조신인상 수필 당선 (2011), 상주문인협회 회원.

 

 

ㄱ자(字) 할부지

이해리

 

내 단골 미용실 앞길에서 이따금 다리쉼 하는 할부지 있다

그 할부지 삶의 곡절 얼마나 곡진했는지 허리가 ㄱ자로 굽었다

조선낫보다 더 직각으로 굽은 허리로 폐휴지 리어카 끌고 가다

손잡이에 엉덩이 얹고 휴우 날숨 뱉을 때

자신의 날숨에 꼬부라진 그 몸 다 날아갈 것 같았다

어느 날부터 그 할부지 보이지 않았다

미용실에 물었더니 죽었다 했다

인물 멀쩡한 할머니 하나 주워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 얼마나 독한지

수입 없이 오는 날은 집안에 들이지 않았다 했다

그날도 집에 들여 주지 않아 추운 골목 배회할 때

너무 춥겠다고 저승이 주워갔다 했다.

다 꼬부라진 늙음마저 자본주의 산술 법은 피해 갈 수 없는 동토라서

미용실 유리창 밖으로 때 아닌 흰나비 한 마리

허리 굽은 채 날아갔다

 

이해리/ 1998년 대구<매일신문>에 ‘화석’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2003년 평사리문학대상, 시집『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감잎에 쓰다』외 동인지 다수.

 

 

발동기

임술랑

 

 

사람이 사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이

마치 발동기 같다.

굉음을 내며 요란스럽게

저 혼자 고집스레

악착같이

골똘하게 돌아가는 발동기

흰 연기를 뿜으면서

바르르 떨면서

무엇인가로 향해

끊임없이 자기 몸을 부수고 있었는데,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어떨 땐

냉정하게 식어서

아무 기척을 못 내는

저 차가운 물건이

하루를 펄펄 끓이면서 돌아가던

그 발동기였나

그 발동기였나

 

임술랑/ 상주작가 회원, 시집『상 지키기』,『있을 뿐이다』

 

 

백합꽃

임연규

 

 

쪽진 비나를 꽂은 엄마

엄마 머리는 장독대에서는

언제고 빗금을 그은 소나무에 걸린

반달도 되고 보름달도 되었다 

엄마는 뒤란 장독대 항아리 곁에 백합꽃을 피웠다

칠월의 장맛비에 퀴퀴한 울안에 백합꽃 향기는

와양간 황소도 코를 벌렁이게 했다

백합꽃 몇 송이를 방안에 꽂아 놓고 방문 닫고 자면

사람이 백합꽃 향기에 취해 사람이 죽는다고도 했다

터무니 없이 향기로운 주검이 있을까?

충주 가금면 탄금호 중앙탑 박물관 뜨락에는

신라때 조성 된 석가모니불

홀로 장맛비 속에 억년의 삼매로 깊다

엄마가 생전에 모시던 부처님이다

부처님앞에 나도 백합꽃을 심었다

부처님 무릎에 반달이 앉고

나는 백합에 취해 부처님 무릎에 잠들었다

 

임연규/ 충북 괴산 출생, 《시와 산문》조병화 시인 추천 등단, 시집『제비는 산으로 깃들지 않는다』,『꽃을 보고 가시게』,『산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충주문협 회원, 충주중원문학 회장.

 

 

사월은 섧다

장운기

 

 

사월은 섧다.

 

사월이 오기 전

긴 겨울잠을 쫓아

앞 다투어 핀 벚꽃

 

제대로 영글지 못한 향기에

날개를 묻고

꿀맛에 정신이 팔린 벌들은

때 아닌 북서풍에

 

피다만 꽃잎이 무수히 땅바닥에 떨어지고

벌들은 꽃잎을 머금은 채 나뒹굴고 있다.

 

장운기/ 상주시 산림공원과장, 상주숲문학회 회원, 경북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2차와 3 사이

정동재

 

전작권 유보에 백 년 세월 식민지근성 매스컴까지 부채질이다

복기할 필요도 없이

신의 이름으로 시작된 제국들의 식민지 건설 현장엔

세상에 없었던 천사들이 곳곳에 출현해

신식병원과 신식학교 줄을 이어 늘어섰다

 

휴전 중인 전황, 미세먼지에 거리는 눈코까지 복면 중

'얘들은 배신을 몰라요.' 중년의 여인 금지옥엽 포대기 둘렀다

털북숭이 아들을 업은 엄마 황혼 속으로 총총걸음 사라진다

개망초처럼 피어나는 반려견 빌딩 숲 물 들이고 있다

 

오 마이 갓! 신음으로 방바닥 할퀴는 홍콩행 

3의 아편전쟁 서막이다

​​.COM천국 동영상을 클릭하면 밀폐된 공간에 도착한 페로몬 향수 

검은 숲을 향해 칙칙 사정된다 

 

 

동학농민 만세!

정 숙

 

  

무딘 돌덩어리 자신을 깨우기도

하늘의 별 따기지만

깊이 잠든 이웃을 깨우는 일 또한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것을 

 

곡괭이와 지게 작대기로 하늘에서 별을 딴    

그는 누구인가?

나라를 위해 계란으로 바위를 친 

그들은 또 누구인가?

 

정숙/ 1991년 계간《시와 시학》신인상, 시집『신처용가』,『위기의 꽃』,『불의 눈빛』,『영상시집』,『바람다비제』,『유배시편』등,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한 아이가 떠날 때

정숙정

 

꽃병 쓰러져 깨지던 시각

혼령의 마지막 인사도 모르고

고왔던 꽃, 깨진 꽃병

무참히 쓰레기통에 묻었다

 

아까와 너무 아까와

앞섶 뜯어대는

어머님 가슴에 삽 댈 때

슬픔보다 더 아픈 말은 없었다

 

한 사람이 떠나는 겨울 밤

까맣게 구멍 난 가슴마다

아기 별의 울음 소리

바람에 섞이어 나댄다

 

정숙정/ 상주숲문학회 회원.

 

해프닝

정훈교

2003 03 미쿡의 이라크 침략1965 02 미쿡의 베트남 침략1948 04 한국 군부의 제주도 점령1945 08 미쿡 군부의 한국 점령1910 08 일본의 조선 침략제 1강령(중개)복덕방 K처럼 오지랖 넓은 훈수가 필요조건이다. 장군! 멍!제 2강령(존재)모든 파괴는 평화를 위한 것이라 굳게 믿는 신흥종교여야 한다. 천!지!창!조!제 3강령(돈오)뭐든 파괴의 점수를 따기 위해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유쾌!상쾌!통쾌!제 4강령(관심법)최강이 되려면 남의 떡을 더 크게 볼 줄 아는 심미안이어야 한다. 고!고!고!제 18계(적을 잡으려면 그 우두머리부터 잡는다) :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해 중학교 땐 일본어를 독학하기에 이르렀다.제 35계(여러 가지 계책을 연결시킨다) : 이크라 전쟁 발발 전 백악관 부시에게 메일을 보내기에 이르렀다.양동작전은 실패했다대학교 갓 입학해 배운 역사는 (대구가 제주가 광주가) 폭동이 아니고 민중항쟁이었다. 이후 줄곤 대머리 독수리의 鳥葬에 대해 생각했다 29만원 밖에 없는 괴물을 폭파하기 위해 도시락 폭탄 제조과정을 알아보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작전도 실패했다. 그 누구도 멸종되지 않았고 산 자들은 죽은 화분에 물을 주었다!그러나바람은 늘 위태롭고군부는 늘 이빨을 반들거리도록 닦는다구럼비는 위태롭고태평양 폭죽의 서막이 오른다오늘의 청와대는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을 지낸, 별이 빛나는

밤!

 

정훈교/ 경북대 경영대학원 졸업(석사). 2010년 계간『사람의문학』등단. 시집『또 하나의 입술』(2014,시인동네).『젊은시인들』편집장, ‘김광석벽화거리’에〈시인보호구역〉집필실 두고 있음.

 

 

창고

조영숙

 

큰 형님네 창고엔

이런 저런 잡다한 것들이 있었지만

형님 손길이 많이 닿은

갓 수확한 고추도 있었지

첫물, 탐스럽고 붉은 것이

형님에겐 금송아지였다네

 

셋째 형님네는 연장이 필요해

창고를 다녀갔고

일곱째 형님네도 갈무리해둔 참깨 씨앗을

한줌 덜어 갔고

여덟째 형님네는 귀가 갈라진 절구통을

새집 마당 꾸미는데 쓴다고

창고를 들렀었는데

 

막내인 우리 내외를 불러

그 날 형님네 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 날 또 창고에 들어 간일이 있냐고도 물었다

그 날 그리 급하게 돌아 간 이유가 있냐고도 물었다.

그 날 스무 댓근 고추가 다 사라졌다며

우릴 바라보는 눈빛이 고추처럼 맵고 붉었다.

 

병들어 삼년 방안에만 갇혀 지내던 막내 시동생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런 짓을 했으리라

그런 짓을 또 할까 어림짐작으로 오해를 했을 수도 있으리라

 

그 날 이후 내 창고

수시로 묻던 형님의 삐죽한 말투가

형님의 붉은 눈빛이

형님에 대한 미움이

헤일 수 없이 쌓였는데

 

담낭암 말기 큰형님

 

그동안 잘 못 사는 막내시동생

미리 챙겨준 마음도 많았고

미리 챙겨준 곡식도 많았고

의심은 한번 뿐이었는데

잘 해 준 것은 왜 창고에 하나도 넣어두지 않고

미워한 것 의심한 것으로만

한가득 채워 놓았을까

 

창고 문을 다 열어 젖혀

훌훌 다 비워내고 있네.

진작 비울 껄

진작에 다 비울 껄.

 

 

인생의 스승

조영옥 

 

  

빈 마음 하나 들고 온 줄

알았는데

빈 그릇으로 구걸하네

비우겠다

비우겠다

그 욕심 가득하니

문득 부끄럽네

저대로 빛나는 별을 보며

부끄럽네

세상 감싸듯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게 부끄럽네

별이며

바람이며

잠시 왔다 스러져도

활짝 웃는

키 작은 들꽃이며

무량의 초원에서

고개 숙여야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스승들을 만나

그 사랑으로 마음을 지우리

마음을 지워 사랑이리

 

조영옥/ 부산 출생, 시집『해직일기』,『멀어지지 않으면 닿지도 않는다』,『꽃의 황홀』등 다수, 한국작가회의 회원.

 

 

장생의 숲

조재학

 

나는 꿈에 본 그 나무를 찾아다녔습니다

숲과 수백 년 몸 섞고 있는 한 나무가 자꾸 나를 불렀습니다

나는 귀를 모으고 소리 쪽을 따라갔습니다

바람에 부딪혀 소리의 갈피들이 푸드득 거렸습니다

내가 소리의 갈피들을 헤는 동안

아이는 제 길을 따라 가버렸습니다

숲에는 이따금 노루 같은 것이 지나가고 까마귀가 날고

고목인 그 산벚나무는 고목인 고로쇠나무의 몸속으로

제 몸을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나무 그림자들이 바닥에 검은 무늬를 드리웁니다

수백 년 이어지는 그들의 몸의 진동이

내 속으로 전해옵니다 나도 나무처럼 흔들립니다

어쩌면 나는 이 숲에서 영영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저들의 체온이 내 몸에서 다 빠져 나갈 때까지

나는 이 숲에 갇혀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나무처럼 흔들립니다

 

조재학/ 경남 마산 출생, 1998년《시대문학》등단, 시집『굴참나무의 사랑 이야기』,『강 저 너머』등, 상주문인협회 지부장 역임.

 

 

아버지의 발

조정숙

 

 

젊은 아버지가 무논을 갈고 계신다

지게에 모판을 싣고 걷는다,푹푹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 장화 속에서

새어나오는 그 소리

 

어쩌면 가난은

헤어나올 수 없는 진창길일지라도,

입 벌린 어린것들 생각하면

바람 부는 논두렁에서도

고꾸라지거나 무너지는 일 따윈

없어야하고 말고

 

저녁을 물린 아버지가

굳은살 썩썩 잘라내신다

곁에 앉아서 나는 말랑말랑하고

시큼찝질한 아버지의 그것을

배불리 받아먹고 자란 것이다

 

꿈결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선듯한 다랑논 돌아보셨는가

오소소 몸을 떤다

칠십 평생 벗지 못한 장화를 닮아

둥글게 닳은 아버지의 발

나는 가만가만 잡아 본다

 

조정숙/ 경북 상주 출생. 상주들문학회 회원. pure9378@hanmail.net

 

 

백련(白蓮)

차영호

 

 

새남골* 농막에

내가 번듯이 누워 있다

 

식전댓바람부터

생면부지 마을 문전옥답 복판에

클 태太 자로 누워 뒹굴 수 있는 것은

어여쁜 그대 덕분

 

당신이

나를 여기 뉘어놓고

매콤한 체취 흩뿌려 푹푹 절일 때

 

장아찌처럼 염장된 나를 안고

거대한 날개 펄럭이며 난바다로 나아가는

범선

 

연밥 채 여물기도 전에 푸른 하늘을 서찰 접듯 접어

가슴 속 깊이 쟁여 넣고

더러는 논두렁 위로 기어올라

미꾸라지가 간질이던 발바닥 내보이기도 하면서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지산리

 

 

차영호/ 1986년《내륙문학》으로 작품 활동. (사)한국작가회의 회원, (사)우리詩진흥회 회원. 시집『어제 내린 비를 오늘 맞는다』,『애기앉은부채』,『바람과 똥』등 youngghc@hanmail.net

 

 

여름날

차진환

 

 

상주 화서 상현리에 가 보아라

늙은 부처가 산마을 길로 공양오신지

몇 백 년일까

 

아직도 점심 끼니 제대로 못 챙기셨나

뙤약볕 속에도

먼 산마루 한 사발만 머리에 이고

묵언정진 중이시다.

 

장삼이라야 저 산마루 바람이 입고 간 세월

온몸이 흰구름이다

 

어쩌다 입 한번 뗀 게

십년 전 등 돌리고 앉으셨다가

맑은 날에 벼락치던 게 그 소리였다나

 

입 닫으신지 또 백 년

 

 

※ 시 설명 : 상주의 국보급에 해당하는 화서면 상현리 50-1번지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93호, 수령 500년 된 화서반송에 관한 노래입니다.

 

차진환/ 상주숲문학회 회원,《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등단, (사)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상주시청 근무.

 

 

천승현

 

가을날산신각 마룻장에스며들어온손바닥만 한햇살 한 장,그도 엎드려가만가만절을 한다

 

천승현/ 한국작가회의 회원, 안동글밭동인지 회원, 포크싱어 시노래 작곡. imm123@hanmail.net

 

 

고맙다

최기종

 

다시 5, 꿈이 길어져서 고맙다.

더디게 온다는 세상, 더디게 살아가게 해서 고맙다.

아직 이른 봄 더 기다리게 해줘서 고맙다.

워커 끈, 허리 띠 졸라매고 작업모 고쳐 쓰게 해서 고맙다.

족제비, 살쾡이 살던 긴 밤이 깊고 깊어져서 고맙다.

눈썹 하얗게 새던 새벽이 멀고멀어져서 고맙다.

겨울나무 비바람 불고 눈보라 몰아쳐서 고맙다.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들 깨어지고 깨어져서 고맙다.

과거가 미래를 불의가 정의를 냉전이 화해를 이겨서 고맙다.

4대강이 신음하고 구럼비 바위 피 흘려서 농촌경제 파탄 나서 고맙다.

NLL로 무장하고 친북좌파라며 때리고 낙인찍어서 고맙다.

남북으로 동서로 청장년으로 진짜와 가짜로 갈라져서 고맙다.

부유세도 종부세도 없어지고 비정규직만 늘어나서 고맙다.

노동자 농민들 고공농성하고 줄줄이 목숨을 끊어서 고맙다.

아직은 무르익은 봄이 아니라서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얼어붙어서

꼭꼭 묶어서 송백의 염 담아내게 해서 고맙다.

이렇게 흙바닥 밀면서 길어지다 보면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그 날이 오면

고맙다.

 

최기종/ 1956년 전북 부안 출생, 포엠만경 동인, 목포작가회의 회원, 시집으로『나무 위의 여자』,『만다라화』,『어머니 나라』,『나쁜 사과』가 있음. jogi-choi@hanmail.net

 

 

개미

최성익

 

 

지나가는 비에

지렁이들이 길 위로 나왔다

구둣발이 지나가고

자동차 바퀴가 지나가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가는 비도 지나가고

 

날이 들어

끓는 땡볕 아래

터지거나 눌린 살점들

아스팔트에 들러붙어 그대로 말라가는,

개미들이 둘러 칼질을 했다

그들 중에 섞여 칼질하는 나를 보았다

 

최성익/ 경북 상주 출생. 2012년《충북작가》신인상 수상, 상주들문학회 회원, 충북작가 회원. chs620101@Daum.net

 

 

바다

최순섭

 

엄마 품에 앉아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어린 꽃들을 누가 저 바다에 쳐 넣었나

 

바다는 끓는 무쇠 솥단지

 

그리움의 불꽃으로 끓어 넘치는 파도 알갱이

알갱이에 그 이름 다 녹아들어있다.

 

아가는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거짓 음성에

엄마 품인 줄 잠을 자고 영영 깨어나지 못 했네

 

답답한 숨쉬기에 삶도 죽음도 모두가 펄펄 끓어 넘친다.

 

하얀 뼛국 우러나오는 상처 깊은 세상에 산산이 튀어 오르는

파도 알갱이

알갱이에 새긴 이름 부르고 다시 부르고 수천만이 불러보아도 

젖은 갯바위 가슴 때리는 하얀 꽃

 

물거품 필 때마다 보고 싶다.

 

순섭/ 1978년《시밭》동인으로 작품활동. 2007년《작가연대》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고양작가회 감사, 창작21작가회 회장, 서울시교육청근무.

 

 

봉천(奉天)

최형심

 

개울에서 태양의 편자를 줍는 아이들은

서정의 외연에서 춤을 춥니다.

말발굽이 길어지고 비눗방울 속에 가둔 시계가 날아오릅니다.

둥근 뼈를 가진 달동네 꼭대기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별들

세공사가 밤의 청력을 빌어 내리막길을 열고 있습니다.

낡은 장판에 누워 죽은 비단벌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을 둘레에 청자색 밤의 궤도가 놓이면

두 개의 거울 사이에서 세상을 탕진한 악사들이 술을 마십니다.

걷기만 하면 생겨나는 폐허들

빨간 우체통 곁에서 수수께끼를 실은 기차들이

한 방향으로 세상을 속이고 있었습니다.

청명에는 두 손을 모아 두고 간 사람들을 기억했습니다.

여름의 포도원을 지나 혀 안에 머무는 피톨을 헤아리면

골목마다 대신 첫사랑을 앓아줄 사람을 찾는

구인광고가 나붙던 밤,

고요에 몰두한 머리들만 홀로 밥상 앞에 앉아

손목에 검은 선을 그었습니다.

태양을 등진 것들만 별이 되는 곳,

아무나 무지개가 되는 하늘 가까운 마을이었습니다.

겨울을 교환한 연인들이 나란히 두 개의 계절을 버티며 서있었습니다.

투명한 절망으로 가득한 허공은

진화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쐐기풀 무성한 달빛 공동체,

천형에 다가가 시를 쓸 때면 윗입술만 남았습니다.

마가목을 닮은 사내들은 공중그네를 밀며 마을을 떠나갔습니다.

우산에 감염된 이들이 슬레이트 처마 밑에 모여 살던

첨탑이 하나도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최형심/ 2008년《현대시》등단. 2014년 《시인광장》시작품상 수상. elqut@hanmai.net

 

 

하재영

 

  

별이 별을 어깨동무하고 온다

환한 꿈길이다

 

어느 하루 대낮에도 별을 본 적 있다

속이 시커멓게 탔던 날이다

 

지나고 보면 하루하루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올리기 위해

공손히 두 손 모은 삶이다

 

내일도 별을 찾으러

별천지, 사막으로 가야한다

 

 

하재영/ 199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별빛의 길을 닦는 나무들』등 7feeling@hanmail.net  

 

 

가을

허남기

 

 

가을의 햇살을 씹고있는

머리풀은 옥수수가

천고마비의 엽서를 쓰고있다

무더위의 두건을 벗고

단풍잎의 수수께끼를 푼다

불꽃이 타오르면

하늘길 여는 살찐 말의 울음소리가

가을의 추색문을 열것이다

구름은 더높은 하늘을 가르키며

제각기 가을에게 손짓한다

가을빛에 물든 단어들이

단풍물을 뱉어 내며

산천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자연의 신비로움은

늘 그자리에 머문 바위를 움직이고

감동의 언어를 풀어 내며

가을 악동을 부추긴다

악동들은 산천에 불장난하며

훨훨 타오르는 가을의 풍광을

쏟아내며 단풍놀이 날개짓한다

 

    

 

허남기/ 계간《문장21》2014년 봄호 시 부문 신인상 등단, 월간《사진》 94'초대작가. hurdang62@daum.net

 

꽃을 꺾으며

황정철

 

 

꽃을 꺾네 꽃가지를 꺾어

당신을 모시네

당신의 사랑을 꽃으로 얻으려네

 

내가 믿는 신은 오직 당신

당신을 내가 지은 신전에 모시리다

그 전에 때마다 피는 온갖 꽃들을

바치리다 부디 흠향하시라

 

문득 꽃이 지네 속절없이 졌네

껍질만 남았네

위로하지 않는 당신을

울며 원망하다가

당신도 내게 온 적이 없었다는 걸

알았네

 

뿌리째 온전히 거두지 않은 죄인인 나는

꽃을 장사지내며 우네

 

황정철/ 경북 상주 출생. 상주들문학회 회원. to-j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