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한 점의 고기, 한 점의 고통

 

이선(시인, 충북작가회의)

국내 한 채식운동단체에 따르면 구제역 파동 이후 회원 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본 단체의 회원은 아니지만 나 역시 구제역 여파로 채식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높아진 경우이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는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될 리 만무다. 그러니까 붉은 고기류를 가능한 금하는 가운데 오리나 닭 같은 가금류 정도만 먹는 반半채식주의자 쪽으로 상당부분 옮겨가 있는 수준이다. 나아가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육식은 피하고 생선까지만 먹는 페스코(pesco)를 지향한다고 할까나. 미안한 일이지만 한 가정의 식생활을 주도하고 있는 주부로서의 이러한 취향은 구성원인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일정 부분 강요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식구들의 호응이 좋은 편이어서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건강을 고려하는 차원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는 점이 종전과 다른 부분이다.

그러니까 겨울의 끝 무렵인 지난 2월 인터넷 뉴스를 보던 중이었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사랑실천협회에서 공개한 동영상 자료를 통해 구제역 살처분 작업으로 돼지가 생매장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포크레인에 의해 내동댕이쳐지는 대로 족족 흙구덩이에 쌓이면서 압사해 가는 광경이라니. 몸뚱어리 어디 하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빼곡하게 들어찬 수백 마리의 돼지들이 공포 속에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일제히 오열하고 있었다. 지상에서의 이 마지막 절규가 하늘을 저주하는 함성이 된다한들 공허한 메아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다. 이승과 저승 사이로 무심한 백설이 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저리 처절한 눈망울의 목숨붙이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숨을 쉬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들이라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 바로 생지옥이었던 것. 아비규환의 이곳이 지옥이 아니라면 진정 사람의 땅인지 의심스러운 순간이었다. 육식을 그다지 즐기지 않던 나는 그날 이후로는 고기를 더 꺼려하게 되었다. 게다가 몸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신음하다시피 살아가는 가축들의 생육 환경을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육식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게 되었다. 한 점 고기가 한 점 고통으로 밀려드는 까닭이다.

구제역 발생의 중심에는 공장식 축산 방식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대한 단기간 내에 살을 찌우기 위해 가축을 비좁은 금속 틀에 가둬 키우는 밀집 사육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크다는 얘기다. 인간에게 영양 공급원으로서의 마지막 생을 바쳐야 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만큼이라도 동물로서의 최소한의 생존적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일 것이다. 인권과 동물권은 그 주체가 생명체라는 점에서 공히 존중 받아야 마땅한 노릇이다. 종을 뛰어넘어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유정의 동물이라는 점에서 양자 간의 등식이 성립된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한 인간이 그 아래에 놓인 가축과 같은 동물들을 지배할지언정 그들의 동물권마저 박탈할 권리는 없을 터이다. 우리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에게는 동물권이 있다. 결국 친환경적 축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축산농가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적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여하튼, 이것이 앞으로 가야할 길이지 않은가 싶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번 구제역 파동은 그 피해액이 무려 3조원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사상 최악의 규모임에 틀림없다. 3백만 두 이상의 가축이 살처분 되었고 이를 처리한 매몰지가 4천 7백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돼지의 경우 대부분이 생매장 되었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이 경악하였다. 비용이 발생하고 시간이 걸린다는 명분으로 안락사가 아닌 생매장을 자행한 정부의 비인도적 행태가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이 야만적 처사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 땅의 국민으로서 공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자연인인 인간으로서도 가없는 죄업과 슬픔에 속울음을 삼켰던 일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환경지표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음에 그러한 사회가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떤 윤리나 도덕, 철학도 발견할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은 시대의 불모성을 말해주며 그 야만의 극단을 연출한 인간의 영혼마저 피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구제역 여파로 나타난 국내 채식인구의 증가는 일시적 현상에 그쳐 향후 주춤할 가능성도 있겠다. 나 역시 이번 구제역을 둘러싼 여러 가지 충격이 해소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채식 생활을 꾸준히 즐겨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다. 더욱이 생산성이나 효율성만 추구하는 비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인 현재의 공장식 축산정책이나 사육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한 그러할 공산이 크다.

때는 바야흐로 녹음방초 우거진 시절이다. 계절의 제단 같은 장미담장 아래로 이질적인 적막이 흐른다.

편집자 주 - 이번 충북작가 31호에서는 지난 30호와의 간극을 고려해서 구제역 특집을 기획하였다. 지난 겨울 강추위와 함께 전국을 휩쓸고 갔던 생매장과 살육의 기억을 인간됨의 숙명으로 여기며 소와 돼지들에게 바치는 글을 모아보자는 편집진의 의도였다.

현장답사를 통한 생생한 기록을 위주로 한 글을 도모했으나 여러 가지 제약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강찬모 평론가의 구제역 일기로 대신하기로 했다. ‘극한의 한계상황에 처하게 되면 이성도 윤리도 인간성도 모두 곁가지가 되고 말며, 오직 인간의 본능만이 작동하고 추동하는 현실이 된다. 인간이 만들었던, 그래서 그것으로 다른 생명체와의 우월한 차별성의 근거로 내세운 인간의 보편적 가치 체계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현장 근무자들의 자리에서 담담하게 그려낸 구제역 일기는 회원들의 시와 함께 동물권에 대한 약간의 위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풍명월 충북의 문학지리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영동지역 문학지를 써준 윤남석 회원의 글은 특집란을 빛내주었다. ‘사람의 땅, 그 굴곡의 미학’이란 제목으로 영동의 산수가 시인들의 시에 끼친 영향과 미학을 두루 살펴주었다.

신작시에는 주로 구제역 파동과 관련하여 소와 돼지들을 아픔을 기리는 작품들을 위주로 받아 실었다. 이번호를 통해 처음으로 시를 선보이는 강찬모 평론가의 ‘구제역’을 필두로 김덕근, 김성규, 김영범, 김은숙, 김종혁, 김철순, 김치영, 김혜경, 류정환, 박병희, 박운식, 박원희, 박윤규, 신준수, 이윤경, 이인해, 이종수,이주형, 장문석, 조원진 회원의 시를 실었다.

산문은 어느 호보다 풍성하다. 올해 청주대학교 국문과를 정년퇴임하신 권희돈 선생님의 ‘꽃자리’를 비롯하여 박종희, 윤남석, 김병기, 이미경 회원의 주옥같은 글을 실었다.

소설에는 오랜 인도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김정애 소설가의 ‘그해 45도의 여름’이 지난한 보고서를 대신했고, 이강홍 소설가의 역작 ‘언리미티드 파워’는 신선한 파문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춘천교대에서 아동문학을 연구하는 남지현 선생님이 권태응 동요를 새롭게 들여다본 논문 ‘ 권태응 동요의 형식적 특징과 시적 공간 ‘동네’의 의미‘를 선뜻 보내주셔서 권태응 선생님 연구에 진력을 다 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겨주었다. 거듭 감사드린다.

서평과 지난호 읽기는 정기세미나에서 다룰 김영범 시인의 첫 시집 <김씨의 발견>을 다루었다.

끝으로 올해 충북작가 신인상 전 부문에 수상자를 내지 못한 점 송구스럽기만 하다. 충북작가를 이어갈 회원 확보에 의미를 두고자 충북도내 거주자나 출향인사로 응모자 제한을 둔 탓도 있지만 심사위원의 눈을 끌 만한 작품들이 없어서 부득이 당선자를 모시지 못했다. 심사숙고하여 질 좋은 작품들이 신인상의 영예와 충북작가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을 느낀다.

 

 

사람의 땅, 그 굴곡의 미학/윤남석

 

 

신작시

 

강찬모 구제역 1 외 1편

김덕근 뱃살論 외 1편

김병기 밥이 아프다 외 2편

김성규 행렬

김영범 사실

김은숙 어머니의 변신 외 1편

김종혁 봄의 진혼제 외 1편

김철순 워,워,워 외 1편

김치영 인심 외 1편

김혜경 아버지와 꽃밭 외 1편

류정환 돼지들 외 1편

박병희 죽음의 색 외 1편

박운식 꿈 외 1편

박원희 복사꽃 2011년 4월 외 1편

박윤규 지줏대를 세우며 외 1편

이윤경 비명 외 1편

이인해 별 외 1편

이종수 웃는 돼지 외 1편

이주형 빵점 대통령 외 1편

장문석 봄 經典 외 1편

조원진 분서갱유 외 1편

 

 

산문

권희돈 꽃자리

박종희 편지

윤남석 아버지의 논

이미경 문박골 꽃뱀

 

연재산문

정민 옌타이 편지

 

논문

남지현 권태응 동요의 형식적 특징과 시적 공간 ‘동네’의 의미

 

서평

소종민 발견하는 기쁨, 발견으로 얻는 것

 

단편소설

김정애 그해, 45도의 여름

이강홍 언리미티드 파워

 

지난 호 읽기

이종수 계주의 생명은 바통을 놓치지 않는 것

 

제17회 『충북작가』신인상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