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강시회洛江詩會

  낙동강 천 삼백 리를 일반적으로 칠백 리라 일컫는 것은 상주를 기점으로 한 것이다. 위로부터 퇴강 일대의 삼탄三灘 ․ 매호梅湖 ․ 죽암竹巖 ․ 자천대自天臺(경천대) ․ 도남서원道南書院(낙강시회의 공간은  정허루靜虛樓) ․ 관수루觀水樓 등의 명승지가 다 시회의 공간이었다.

  기록상 낙동강 시로서는 1196년(고려 명종 16) 최충헌의 난을 피해 상주에 우거(음6월 14일부터 9월 20일까지)했던 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시를 비롯하여 1491년(성종 22)의 상주목사 강구손, 의성군수 유호인등의 시회를 거쳐 1894년 갑오경장까지 7백년 간 유명 시회 51회에 수백 편수의 낙강시문이 남았다.

 

*낙강범월시洛江泛月詩 (일명 임술범월록壬戌泛月錄)

  1622년(광해군 14) 음7월 16일부터 이틀 간 조정 ․ 이전 ․ 이준 ․ 강응철 ․ 김혜 ․ 류진 ․ 전식 등 상주 선비 25명이 낙강에서 뱃놀이 하며 시를 남겼는데, 1778년(정조 2)까지 많은 선비가 낙강시회 때 지은 시를 한 책(낙강범월시 ․ 임술범월록)에 누가 기록하여 도남서원에다 보관하였다. 이 시첩에는 1607년(선조 40) 상주목사 김정목과 조익 ․ 이준 ․ 전식 등이 뱃놀이한 시회까지 합쳐 171년 간 8회의 낙강시회 작품을 망라하였다.

  ※ 한 강을 제재로 한 공동시집으로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