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붓끝을 벼리며

 

 

세계지도를 펼치고 아프리카 대륙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으로부터 3백만 년 전에 출현했다는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옆얼굴이 떠오른다. 오똑하게 솟은 코가 소말리아, 앞이마가 이집트라면 리비아는 아프리카의 정수리에 해당된다. 그 정수리가 지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고, 그 중심에 40년이 넘게 철권을 휘둘러온 가다피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만해도 리비아의 지도자 가다피가 쓴 <그린북>은 미제국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소위 운동권의 필독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가다피가 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부르짖는 자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고 모든 외신이 봉쇄당한 가운데 희생의 정도마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는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리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독재투쟁이 어떻게 매듭 될 지는 미지수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주화의 열기는 결코 식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민중은 반드시 승리하고야 만다는 것이다.

2011년 벽두에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담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국가는 무엇이고 정부는 무엇이며 소위 국가의 주인이라 일컬어지는 국민은 무엇인가, 하는 어찌 보면 매우 원론적인 쟁점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이런 담론이 생성되었겠지만, 정통성을 근간으로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구성체 혹은 공동체가 국가라면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일종의 운영 시스템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서 국가를 말하는가. 문제는 국가라는 조직 내지는 공동체를 운영하는 시스템에 부화가 걸리거나 버그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시스템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몸체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고 결국 몸체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며 후대의 역사는 중고품값은 고사하고 오히려 폐기처분에 들어가는 값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불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지금의 운영 시스템이 별 무리 없이 사용자의 의지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굳이 국가 담론이 형성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운영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운영자가 몸체의 주인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힐 때 문제는 발생한다. 국가의 사용자인 국민은 운영자에게 일정 기간 운영의 권한을 부여했을 뿐이고 만약 운영에 문제가 있으면 망설임 없이 운영자를 교체해야지만 몸체가 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국가’에 다름 아닌 ‘제주’ 또한 이러한 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도민으로부터 운영 시스템을 위임 받은 도정과 그 주인인 도민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그 중심에, 강정이 있다. 국책 사업이라는 명분만 있으면 해당 지역 주민 혹은 제주도민의 의견은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민주주의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뿌리 없는 꽃이 존재할 수 없는 풀뿌리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는 그 어떤 민주주의도 허상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제주작가>는 ‘강정’을 중심에 놓고 사유하기로 했다. 해군기지의 본말에 대해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한 조영배 교수, 청정제주의 상징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강정의 환경적 가치를 다룬 윤용택 교수, 직접 강정을 찾아 마을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와 곁들여 들려주는 김경훈 시인의 글은 그래서 더욱 유의미하다.

두 번째 특집으로, 지난 2월 제주를 찾았던 김명식 시인을 조명하기로 했다. 군사독재에 맞서 온 생을 바쳤으며, 제주4․3의 정명과 진상규명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던 김명식 시인. 지금은 강원도 선이골에서 명상과 독서와 밭갈이로 세상과 대화하는 그를 읽는 일은 그와 만나는 일이며 그가 사는 삶터 선이골을 찾아가는 일이며 그가 꿈꾸는 세상을 더불어 함께 걷는 일이라 믿는다.

<작가를 찾아서>에서는 지난 해에 두 번째 시집을 상재한 강덕환 시인을 찾았다. 그의 삶이 그렇듯이 그의 시는 오래 전부터 발품을 팔아 4․3의 현장과 4․3을 기억하는 팽나무와 그 나무만 남고 사람의 자취라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잃어버린 마을의 뒤안길을 담담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걷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가 직접 쓴 그의 자화상도 읽을 만한 거리임에 분명하다.

2011년을 맞아 필진을 일부 교체했다. 지난 해 포토에세이를 통해 의미 있는 사진과 이야기를 전해온 소설가 김창집 회원이 이번 호부터 <제주어산문>을 통해 맛깔스럽게 독자와 만날 것이고, 대신 포토에세이는 시인 문영종 회원이 참신한 앵글로 독자와 만나게 되었다. 그대가 크다. 그동안 <제주어산문>을 연재한 소설가 한림화 회장께 고마움을 전한다.

노구임에도 불구하시고 심우성 선생님께서 글을 보내오셨다. 이 땅의 후배들에게 좋은 가르침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오랜만에 작품을 보내온 소설가 이석범 회원에게도 고마운 마음과 함께 안부를 전한다.

현 정부 들어 문학은 이미 예술의 한 범주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편입되어 부가 가치가 없는 애물단지에 불과하고 더 나아가 돈만 달라고 칭얼대는 버린 자식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비전도 없고 철학도 없는 정부를 준엄하게 꾸짖는 유일한 방법은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 문학의 힘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일이며 민주주의에 반하는 비민주적이고 반민주적인 것에 맞서 작가의 양심으로 걸고 시대와 맞짱을 뜨는 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011년 한국작가회의 총회 장소의 벽면에는 금년 우리가 가슴으로 새겨야 할 테제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상상하라 그리고 싸워라.”

<제주작가>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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