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구순

 

김규중

 

어머니 나이 구순은

나이 이름 같지가 않다

구엄리, 구억리*처럼

오래된 마을 이름 같다

손자 손녀들 모여 가족사진을 찍으면

마을 행사 끝나고 팽나무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는 주민들이 현상된다

오랜 세월이 지나

마을 모습도 많이 변했다

둥근 선이 납작 가라앉은

어머니 가슴 같은 빈집이 있는가 하면

어머니 생일상 같이 멋진 이층집도 있다

구부러지고 좁은 길이 반듯이 펼쳐졌지만

오른손 검지 모양으로 여전히 구부러진 길도 있다

나이 이름 같지 않는

어머니 구순은

이민을 떠난 자식 걱정으로

마을 입구에는

가로등 하나 켜 있다.

 

* 구엄리, 구억리 : 제주도에 있는 마을 이름.

 

 

 

金重業 건물

 

나기철

 

 

도서관 구석

 

배가 고파

 

클레 화집

 

아직 못 돌린

 

한국문학사

 

먼 가정科

 

운동장까지

 

올라온 파도

 

관탈섬

 

일몰

 

사라진,

 

* 김중업 건물 :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구 제주대학 본관. 1964년에 지어지고, 1995년에 철거됨.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도

 

김경훈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도 건드리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풀 한 포기, 보말 하나라도 다치게 마라

 

바람 한 점, 파도 한 겹조차 거스르지 마라

시멘트덩이 하나, 쇳조각 하나 들이대지 마라

 

죽음의 말 한 마디, 파괴의 언어 하나 내뱉지 마라

폭력의 몸짓 하나, 허튼 전쟁의 아픈 기억 하나 보태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바라노니

사람 하나, 그 모든 생명 하나 감히 다스리려 마라

 

 

그 사람

 

김광렬

 

곱던 그 사람 꽃그늘에 묻힌다

성을 내도 내겐 아리땁던 사람

내 사랑이며 종교이며 우주인 사람

언젠가 일터에서 돌아와 까매진 얼굴을 씻고

물방울에 찰싹 달라붙은

몇 가닥 머리카락 쓸어 올릴 때

어린 내 마음을 움직여버린 그 사람

서녘하늘에 황홀한 노을 번져서

아뜩 나를 덮어버려서

어질 쓰러질 번한 그 사람 등 뒤에

나는 언제까지나 파묻혀 있고 싶었다

국화꽃이 무덤에 흩뿌려진다

겨울이 길고 차갑고 슬프다

권하면 부끄러운 듯 두어 모금 홀짝이다

독주 마신 듯 부르르 몸 떨고야 말던

젖은 술 한 잔 봉분에 뿌리고

돌아올 때 나는 자꾸만 뒤가 아렸다

뭉툭하게, 노루꼬리 해가 떨어진다

 

 

 

동전을 주우며

 

김순선

 

식당가 골목 길가에

10원짜리 동전 한 개 떨어져 있네

 

그깟, 10원짜리

나도 그냥 지나갔지

 

며칠 후, 그 골목길 다시 지나갈 때

반짝!

내발을 붙드는 구릿빛 웃음

 

큰 것,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높은 사람 앞에서는

허리를 굽히면서도

 

작고 보잘 것 없다고

외면해 버린

 

동그란 네 작은 손안에

거대한 다보탑이 숨 쉬고 있는

 

너는, 작은 거인

 

 

어머니는 힘이 세다

 

김수열

 

발령 받고 열흘째 되던 날

검은 지프가 교무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와

끄트머리에 앉아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초임교사를

단번에 낚아채 차에 실었다

 

불온서적 명단을 들고

초임교사의 방에 들어선

검은 지프의 구둣발을 본 순간, 어머니는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신발!

 

기세 꺾인 검은 지프는 슬쩍 꽁무니를 빼더니

현관에 신발을 착하게 벗어놓고 다시 책장을 뒤지는데

지프도 초임인지

책 찾는 꼴이 우습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여

어머니 덕에 당당해진 초임교사는

인심 쓰는 셈 치고

몸소 비교적 덜 불온한 것들만 골라

가방 가득 챙겨주었다

 

 

즐거운 출장

 

현택훈

 

미터기의 말이

한 낮 속으로 달린다

거북이 피시방

코끼리 주유소를 지나

넥타이를 맨 낙타

미니 스커트를 입은 고양이를 지나

앵무새 노래방을 돌아

기린 어린이집 앞에서

천천히 천천히

낮잠을 자고 있을

병아리반 병아리들

다람쥐반 다람쥐들

하늘엔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가는

비행기

무당벌레 한 마리

택시 옆에 와서 선다

붉은 눈 이리 떼 피해

강을 건너는 순록 몇 마리

나른한 룸미러

서류 봉투는 따분하고

택시 기사

호랑이 부장 닮아 좀 그렇지만

달려라 달려라

히이힝 히이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