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이 눈길 더불어 저 숨결

 

언젠가 나는 이런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들이 땅을 다지
고, 기둥을 세우며, 벽을 쌓고, 지붕을 덮어, 마침내 집을 짓는다.
그러나 이런 작업으로 정작 얻고자 하는 건 벽이나 지붕 따위가 아
니라 바로 공간이다." 건축가들의 주장이 음악에도 통한다면, 아마
작곡가들이나 연주자들은 다채로운 소리와 소리 사이에 가로놓인 침
묵을 언급할 것이다. 문인들이라 해서 이와 다를 것도 없다. 우리들
은 행간에 펼쳐진 세계를 떠올릴 테니까.
공간이나 침묵은 이미 있던 것들이다. 그런 만큼 우리들 가운데
누가 공간이나 침묵을 창조한 건 아니다. 그러면 누가 뭘 어쨌다고
해야 하나? 나는 이걸 변형이나 차용이라 하면 어떨까 싶다. 문인들
이 문장으로 드러내는 세계도 이와 같다. 그런데 이런 공간이나 침
묵이나 세계를 품은 작품들한테서도 얼마쯤 떨어져서 다시 이것들을
바라보면, 여기에도 또 공간이라거나 침묵이라거나 세계라고 할 영
역들이 중중무진으로 드러난다.

 

이래서 장삼이사의 고달픈 인생사도 아리땁게 영롱한 것일까? 물
론 이게 이런 줄 깨닫자면 우선 이들한테 여유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 발상이 워낙 뜻밖이어서 아득해진 경험이 있다. "어쩌면 생각을
해도 저렇게 하나?" 또 어떤 의견은 처음부터 끝까지 터무니없다.
그래도 우리들이 이런 분들의 말을 억지로 막지는 말아야 한다. 우
리들이 진실로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면, 우리들이 이것도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이래도 누군가는 불만을 토로한다. "어휴, 그렇다고 저런 헛소리
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느냐?" 한 사나이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누
구는 주먹질을 해댔다. 이러고도 어찌 탈이 나지 않을까? 그렇다고
마냥 모르는 체 지나칠 수도 없어서 혹자는 가만가만 이의를 제기한
다. 그 방식이 기기묘묘하다. "너 혹시 바보 아냐?" 할 것을 "너 참
독특하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들이 망한다." 할 것을 "아무래도 그
건 시기상조이다."고 한다.
교언영색은 좋지 않다는 게 성인의 가르침이다. 그렇다고
내가 누구 면전에서 "너야말로 한심하다." 할 것인가? 이런 망발이라
니. 그러면 내내 허튼소리나 할까? 이러자니 내가 괴롭다. 에라, 사
정이 이러니까, 얼렁뚱땅 논점을 흐리며 사시춘풍으로 일관하자. 하
하하. 그러나 이것도 길이 아니다. 이래서 우리들이 불철주야로 말
과 글을 어떻게 부릴 것인지를 궁리한다. 아무쪼록 이런 노력이 헛
되지 않기를!
경판이 꼭 해인사 장경각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얼굴은 '화엄경
'이고, 저 발자국은 '열반경'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여기 '대구
작가' 제16호를 뒤적여 보라. 만경창파를 헤치고 나아가는 조각배가
보이는가? 북풍한설에 몸을 떠는 나뭇가지가 보이는가? 이것도 아

니라면, 홀로 골방에 퍼질러 앉아 흐느끼는 여인이 보이는가? 더러
는 이 눈길이 안으로 향했고, 더러는 저 숨결이 밖으로 향했다. 더
러더러는 두루두루 구비했다.
남들도 그 내막을 잘 아는데, 내가 또 뭐라고 한다면, 이게 군더
더기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 이제 더는 말을 말련다.